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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두려워하지 말라!’
조회수 | 162
작성일 | 20.06.19
[청주] ‘두려워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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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21세기는
2001년이 아니라2020년인 올해부터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코로나19 라는 바이러스로 인해 온 인류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는 뜻일 것입니다. 아직도 진행 중인 만큼 이후에 우리가 맞이하게 될 시간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일상이 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일상과 변화될 모습은 우리에게 기대도 안겨주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맞이해보지 못한 낯선 막연함이 불안과 걱정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며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더러운 영에 대한 권한도 주시고, 병자들을 고쳐줄 수 있는 능력도 부여해주십니다. 더불어 그들에게 파견된 이로서 갖추어야 할 자세를 몇 가지 당부하십니다.

첫 번째,
불필요한 것들을 지니고 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주머니나 여벌 옷, 신발, 지팡이조차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두 번째,
박해를 각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을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며, 스승의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 번째,
박해하는 이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육신을 죽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영혼은 죽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수많은 참새보다도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더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세어두실 만큼 깊이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무려 세 번이나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박해와 어려움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실 것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고, 그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기시면서도 그들을 온갖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시겠다고도 하지 않으십니다. 길을 떠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부족함 없이 갖추어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빈손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들은
무언가 준비되어야만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불안거리를 안겨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질적인 뒷받침과 안전보장이 있어야만 안심하고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이나 교리에 대해 많은 지식과 경험 또는 능력이 있어야만 다른 이들에게 신앙을 잘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주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나는 하느님을 압니다’라고 증언하는 필요충분조건이 이런 것들이 아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아직 완전한 꼴을 갖추지 못한 제자들을 파견하셨습니다.

여러 번에 걸쳐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신 것은 그들이 겪게 될 두려운 일들을 미리 예상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는 이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환대받기보다는 그 일들로 인해 미움받게 될 것입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 마음에 풍랑이 이는 일들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어려운 순간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에 계시다는 확신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실 것이며 필요한 힘도 주실 것입니다. 다가온 새로운 시대의 삶, 하느님께 기대어 두려움 없이 맞이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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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이건희 대건 안드레아 신부
2020년 6월 21일 청주교구 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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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참된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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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대한 두려움,
경외심은 다른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고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살게 합니다. 사도행전9장을 보면 사울은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드나들며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계 유다인들은
사울을 없애 버리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효가 늘어갔습니다. 진정한 두려움은 주님을 차지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창세기 15,1)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도
“두려워 마라. 내가 너의 곁에 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다. 내가 너의 힘이 되어 준다”(이사야 41,10).

“내 가르침을 마음속에 간직한 백성아, 사람들의 모욕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악담에 낙심하지 마라”(이사야 51,7)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도 더 귀하다”(마태오 10,31)고 하셨고,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고 하시며 “너희 마음이 산란해 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8)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힘을 주신다는 것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전하고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 예기치 않은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천상의 것은 서로를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기를 원하지만 하느님의 뜻은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분명 ‘아니오’ 하고 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어떤 인간적인 힘도 천상 생명에 대한 우리의 희망을 파괴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수많은 참새보다 더 나를 귀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드러나게도 부르시고, 때로는 침묵하시고, 때로는 어떤 일을 우리를 통해 이루시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 때에 그분의 뜻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응답은
좋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이 뒤 틀릴 때, 그때야말로 결단의 순간이고 신앙이 증거 되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사랑이시고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마르코 8,38).

주님께서는
우리의 힘이시니 주님을 경외하고 세상 것에 두려워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운명은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설 때 ‘잘 왔다.
그간 내 뜻대로 살았으니 이제 편히 쉬어라.’는 말씀을 듣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까? 아니면 ‘너는 아무래도 잘못 온 것 같다. 좀 더 단련을 받아야 하겠는 걸?’ 하는 말씀을 들어야 하겠습니까?

주변 사람에게
원성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과 봉사의 삶으로 이웃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주님을 증거 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세례명을 받은 사람다운 품위를 지켜 주님과 하느님 아버지 앞에 당당하기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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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2020년 6월 21일
  |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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