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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두려워하지 말고 선포하여라
조회수 | 234
작성일 | 20.06.19
[서울] 두려워하지 말고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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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감염병 시대에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안녕하신가요. 지난 몇 달, 코로나바이러스로 미사 전례를 비롯한 신앙생활 전반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가는 부분도 있고, 새로운 기준이 되어버린 변화도 있습니다. 신앙에 대해, 또 교회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시절입니다.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지켜야 할까요?

오늘 복음은
‘두려워하지 말고 선포하라’는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이기 때문에 직면하게 되는 곤경의 순간이 오더라도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는 하느님을 믿고 복음의 진리를 삶으로 증거하라는 말씀입니다.

제1독서는
거대한 두려움 앞에 선, 그러나 선포하기를 그치지 않았던 사람, 예레미야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과 백성이 처한 위기를 내다보며 야훼 하느님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백성이 기다리는 ‘야훼의 날’은 구원과 승리의 날이 아니라 패배와 멸망의 날이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예레미야는
섬세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엉뚱하게도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는 일을 위해’(예레 1,10 참조) 파견되었습니다. 평화와 안정을 희구하는 그가 유다 왕국의 종말과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해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겁내고 두려워하던
그가 왕들과 사제들, 거짓 예언자들, 모든 백성을 거슬러 싸움으로써 ‘온 세상을 상대로 시비와 말다툼을 벌이는’(예레 15,10 참조)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는 결코 뒤로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이 그를 파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역경을
이겨낼 힘도 주실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예레 1,19) 하느님의 말씀은 그의 삶을 지탱하는 힘의 원천인 동시에 기쁨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순교하신
우리 신앙의 선조들에게는 예수님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그들을 알아주실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고 불충실과 비겁함에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박해 시대를 살고 있지는 않지만 삶의 매 순간이 복음을 전하고 신앙을 증거해야 할 현장임은 다르지 않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야 하는 순간에 불편함이나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특별한 소망이 담긴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두려움 없이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때,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하느님 구원의 은총이 그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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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유환민 마르첼리노 신부
2020년 6월 21일 서울대교구 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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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전교가 두려운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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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전도 여행을 떠나려는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고 세 번씩이나 격려의 말씀을 해주신다.

전도는
하느님이 가장 원하시는 일이기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사실 두려움이란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생기는 것이다.

거짓말을 한다거나,
도둑질한다거나, 남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고서는 후환 때문에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만, 복음을 전하는 일은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일이기에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마태오 10,27)라고 하시며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주눅이 들지 말고 용기 있게 복음을 전하고 자기가 그리스도인임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라고 하신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당당하고 떳떳한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전교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평판이나 반응, 이것으로 인해 혹 자신이 받을지 모르는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이다. 예수님은 절대로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말씀하시며 복음을 전하는 일은 매우 당당하게 하라고 이르신다.

사실 우리가 믿고 전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에 관한 것이고 세상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참 진리이다.

그런데 사이비 종교들,
특히 요즘 코로나19로 인하여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 ‘신천지’는 대단한 열정으로 목숨을 걸고 전도를 하고 있다. 이들은 그릇된 진리를 전하면서도 대담하게 집집이 방문하여 문을 두드리며 자신들의 믿음을 설명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자신들이 믿는 종교가 사이비인데도 그것을 참된 진리인 것처럼 믿고 전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더 안타까운 것은
정작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의 진리를 가지고 있는 우리 신자들이 전교하기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전하는데 무엇이 부끄럽고 두려운 것이지 생각해 봐야 한다.

과거 우리의 선조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 하나 때문에 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되고, 매 맞고 심지어 순교까지 각오하면서도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당당하게 드러냈고 복음 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느님 믿음 안에 참 진리가 있고 그들이 진정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닌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만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느님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 이외의 모든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두려움은 하느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므로, 복음을 전함에 있어 하느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2020년 주님 부활 대축일 사도좌 축복(Urbi et Orbi)을 통해 “기도 속에 하나 되어 있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머리에 손을 얹으시며,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부활했고 언제나 너와 함께 있다’고 거듭 말씀하신다는 것을 확신합시다”라고 하신 말씀처럼,

오늘도
세상에 대한 온갖 근심과 걱정은 오롯이 주님께 맡기고, 우리는 당당하게 그리고 기도로 하나 되어 전교의 여정을 시작해야 하겠다.

“두려워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하느님 안에 사는 사람은 아쉬움이 없도다.“(아빌라의 대 데레사 성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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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임상만 신부
2020년 6월 21일 평화신문에서
  |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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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지에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들의 부고 명단이 실렸습니다. 10만 명 가까이 되었습니다. 고인들과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아직도 매일 확진자가 생기고 있고, 안타깝지만 사망자도 나오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사라지기를 기도합니다.
치료제와 백신이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미국의 방송에서 한국의 외교부 장관과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한국이 어떻게 코로나19를 잘 막아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한국의 외교부 장관은 3T를 이야기 하였습니다. “Test, Trace, Treatment"라고 하였습니다. 검사, 추적, 치료라고 하였습니다.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증상이 시작되면 이미 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광범위한 검사가 필요합니다. 빠른 진단키트의 개발과 신속한 검사는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하고, 자가 격리 시키는 것이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확진자의 동선과 겹치는 지역에 있었다면 자발적인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이 지역 내 감염을 막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고, 자원 봉사자의 참여가 있었기에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었고, 사망자의 수도 줄일 수 있었습니다. 봉쇄와 단절, 폐쇄로는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을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도
때로 위기와 갈등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Lockdown(폐쇄)가 장기화 되면서 미사 없는 신앙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단체 활동도 중단 되었습니다. 영상으로 미사를 보고 있습니다. 문자로 신자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자동차가 기름이 없으면 달릴 수 없듯이,
공동체의 친교와 나눔이 없으면 신앙의 열기와 활력이 식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다행히 성당 문은 열게 되었습니다. 시간을 내서 성체조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서와 신심서적을 가까이 하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이웃이 있다면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이단과 박해’가 있었습니다.
삼위일체의 교리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부들은 교리와 신학을 수호하였습니다. 이단에 현혹되지 않도록 교회의 전통과 신앙의 진리를 지켜왔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엄청난 박해가 있었습니다.
신앙인들은 드러내고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박해는 점점 심해졌지만 신앙은 점점 뜨거워졌습니다.

한국교회도 박해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박해를 피해 깊은 산속에 교우촌을 만들었습니다. 사제를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기에 사제를 만나면 공동체는 기뻐하였습니다. 순교자들의 피는 103위 성인이 되었고, 124위 복자가 되었습니다. 순교자들은 천상에서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시련과 갈등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모함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느님께 의지하였고, 하느님께서 고난과 역경에서 구해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시련과 갈등은 예레미야 예언자를 더 강하게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을 듣고 하느님께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련과 갈등 앞에서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때 일수록 더 굳게 하느님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걸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말하고 하십니다.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용기와 신앙을 청하라고 하십니다.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 많은 인류를 가엾이 여기시어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고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시어 저희를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하셨으며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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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재형 신부
2020년 6월 21일
  |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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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명쯤 존경하고 좋아하는 성인 성녀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신학생 시절부터 가장 존경하는 성인 중에 토머스 모어라는 성인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유토피아>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성인의 삶을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는 영국의 법률가로서 헨리 8세의 개인 비서로 등용되며 탄탄대로를 걷게 됩니다. 헨리 8세는 유머러스하면서도 박식한 토머스 모어의 성격에 매료되었고 국정의 여러 부분을 함께 상의할 정도였습니다.

독실한 천주교인이었던 토머스 모어는 항상 우직했고 특별히 종교적인 면에서 그러했습니다. 그가 한창 활동하던 시기, 1517년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해 종교 개혁이 일어나자 그는 종교개혁의 부당함과 오류성을 격렬하게 비난했고 여러 신학 서적을 저술함으로써 가톨릭 교리에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토머스 모어는 능력을 인정받아 영국의 대법원장이라는 자리에 까지 이르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토머스 모어와 헨리 8세의 좋은 관계는 끝까지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헨리 8세가 새로운 여자를 왕비로 앉히고 싶어 전 부인과 이혼하기 위해 교황에게 탄원서를 보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토머스 모어는 교황권을 부정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며 대법관직을 사퇴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토머스 모어는 반역죄로 몰려 참수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재판 과정에서 그는 “세속인은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없다”며 교황의 자리를 대신하려는 국왕을 비판했고, 억울하게 목이 잘린 채 죽었습니다. 그 후 약 400년이 지난 뒤, 성인품을 받음으로써 현재 그는 정치인과 공직자들의 수호성인입니다. 저는 학생 시절 이 토머스 모어의 성인전을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잠시 영국에 머물게 되었을 때 토머스 모어의 시신이 있는 성지를 찾아가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유명한 작가이자 성인이고 국민 여론조사에서는 언제나 위대한 영국인으로 선정되는 인물이기에 당연히 그와 관련된 성지가 있으리라 믿었던 것입니다. 물어물어 조사해 본 결과 저는 그의 잘려진 목이 캔터베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지역은 영국 성공회의 최고 수장이 있는 곳, 즉 가톨릭 교회로 따지면 로마와도 같은 곳입니다. 이곳에 성인의 목이 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렇게 캔터베리에 도착했습니다.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카운터에 가서 저는 호기롭게 토마스 모어 성인이 있는 곳을 알려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무도 그곳이 어디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꽤나 큰 안내소였고 근무하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되묻는데 잘 모르겠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아, 여기까지 왔는데 성인을 만나지 못하고 가는 건가? 이 유명한 인물을 이 지역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데, 인터넷 정보가 잘못된 것이었나?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렇게 실망한 채로 나와 다시금 인터넷을 뒤지는데 천만 다행히 성인이 모셔져 있는 성당 이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곳은 캔터베리를 벗어난 외곽에 있는 작은 성당이었고 그러다보니 안내소 직원들이 몰랐던 것입니다.

한참을 걸어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성당은 너무나도 작고 초라했고 곧 무너질 것만 같았으며 마당에는 정리되지 않은 교인들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성당을 들어서는데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가 오르간을 반주하시다가 천천히 저에게 다가와서는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사정을 이야기 하자 할머니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며 저를 꼭 안아주셨습니다.

그 할머니의 오르간 반주와 함께 성당에 앉아 성인의 무덤을 바라보고 기도하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서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정부의 유력자였으며 대법관까지 지냈지만 하느님을 선포하고 왕의 그릇됨을 지적하다 순교를 하게 된 그의 억울하고 비참한 삶에 대하여 말입니다.

그가 죽기 전에 남긴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국왕의 충신으로 죽지만, 그 이전에 하느님의 종입니다.” 그렇게 그의 의로운 삶을 다시 상기하자 그 성당이 참으로 아름답고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캔터베리라면 어디서든 보이는 성공회 교회의 날카로운 첨탑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 하여라.”

이 말씀을 묵상하며 토머스 모어 성인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육신은 죽일 수 있지만 영혼을 죽일 수 없는 헨리 8세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느님을 신뢰함으로써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권위와 재물을 포기하는 행동이었지만 진정으로 정의롭고 올곧은, 영원한 삶을 얻는 새 생명의 삶이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나아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거나 사랑하는 데에 여러 가지 장애를 맞이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하느님이 정말로 나에 관해 알고 계실까 의문이 들기도 하고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시나 의문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이럴수록 우리는 우리의 머리카락 수까지 모두 알고 계시는 하느님의 시선을 기억하며 그분을 증언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일상생활 안에서 어떻게 하느님을 증언하고 있습니까?

이 증언은 비단 말로써가 아닌 실천과 사랑으로 선포되어야 합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한 주, 보다 적극적으로 주님을 증언하며 실천으로 그분의 사랑을 증언할 것을 다짐하시길 바랍니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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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방종우 신부
2020년 6월 21일
  |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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