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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조회수 | 137
작성일 | 20.06.26
[의정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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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당신 십자가에 대한 말씀을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하시곤 하셨습니다. 그럴때마다 제자들은 애써 못들은 척, 안 들은 척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그리 탐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이 잊을만하면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시곤 하였습니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이 별로 듣고 싶어 하지도 않는 당신 십자가에 대하여 말씀 하셨을까요? 겉으로 나타나는 십자가는 분명 고통이요 아픔이요 괴로움입니다.

이 세상에 십자가를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주님조차도 죽음이 다가오자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셨을까요? “아버지, 이 쓴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이 기도를 하실 때 예수님은 피땀을 흘리셨다고 성서는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쓴잔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 아닐까요?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었다면 인류의 죄사함, 우리들의 구원은 과연 가능했을까요? 예수님은 끝까지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당신이 져야 하는 당신 십자가를 포기하지 않고 지고 가셨기에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되었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어느 본당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날 병원 수녀님으로부터 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바로 병원에 와 달라고 하는 전화였습니다. 바로 가방을 챙겨 병원에 갔더니 한 환자가 매우 고통스러워하며 누워있었습니다. 몰골은 까맣게 변했고 배는 복수가 차서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태중에는 아기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어려서 몹시 어렵게 살았고 천신만고 끝에 가정을 가져 행복한 생활을 살려던 그때 갑자기 병원에 오게 되었는 데 간암 말기라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그분은 외쳤습니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나는 열심히 살았고 정직하게 살았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가? 나는 하느님이 원망스럽다.” 그는 하느님의 성사를 거부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끝까지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십자가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병자성사도 기도도 마다하고 자신의 현실도 부정하였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사제관에 막 도착하였는데, 그분의 선종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각자에게 주어지는 크고 작은 자기 십자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십자가를 가슴에 꼭 끌어안고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소중하게 인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 십자가를 내팽개치고 하고픈대로 자기 멋대로 대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지워진 십자가는 무겁고 무섭고 고통스럽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치워달라고 기도하셨는데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은 처음에는 당신의 십자가를 없애 달라 기도하셨지만 곧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십자가의 힘으로 구원되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 역시 우리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그 십자가를 통하여 나를 구원하고 주님의 집에 갈 수 있게 하는 보증수표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우리가 목표를 세운 뒤 겪어야 하는 피땀, 수고, 고통 등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밑거름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지워진 우리들의 십자가 그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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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김경모 야고보 신부
2020년 6월 28일 의정부교구 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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