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가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9 15.6%
[청주] “버림과 따름”
조회수 | 185
작성일 | 20.06.26
[청주] “버림과 따름”

-----------------------------------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들을 뽑아 파견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다시 당부하십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혈연의 정을 모두 끊으라는 말씀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더 사랑한다는 것은 더 마음을 두고 있다는 뜻이기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알고 제대로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의 마음이나 자녀를 향한 사랑의 마음도, 그것이 균형을 잃거나 지나치게 되면, 사랑이
아닌 집착이 될 수 있습니다.

혈연의 정을 가벼이 여기지 않되, 더 큰 사랑은 늘 하느님을 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그 사랑 안에서 모든 관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은연중에 우리는 하느님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섬기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 누구라 하더라도, 또 그 무엇이라 하더라도 하느님보다 더 우위에 놓거나, 그런 것들을 먼저 돌보며 살아간다면, 그것은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우상 숭배와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의 가장 중심에 하느님이 계셔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더 움켜쥐고, 더 채우려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서는 더 버리고, 더 비워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에 역행하는 듯한 이 같은 복음의 가르침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 곧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아니겠는지요?

십자가는 우리 구원을 위한 열쇠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라야지만 우리는 구원의 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우리가 세상 편에 기울어 살아갈 때에는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지만… 우리가 하느님 편에 기울어 살아갈 때에는 훨씬 가볍게 느껴지는 신비한 도구입니다.

새들의 제왕으로 불리는 독수리가 아무리 튼튼한 날개와 힘을 지니고 있다 해도, 그 발에 얇고 투명한 낚싯줄을 묶어 놓으면, 독수리는 날 수가 없습니다.

매일 주님께로부터 파견받아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하느님이 아닌 다른무언가에 기대어 그것을 붙잡고,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잘 살펴야 하겠습니다.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구원을 위해 꼭 필요한 십자가를 잘 짊어지고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청주교구 송홍영 스테파노 신부
2020년 6월 28일 청주교구 주보에서
459 15.6%
추구해야 할 가치

------------------------------------

서로의 의견은 다를 수 있고 그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다르다’는 것이 서로 ‘틀리다’는 것으로 인식되어 서로 등을 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그래서 부모와 ‘의견이 틀리다’는 이유로 집을 뛰쳐나가기도 합니다. 이때 우리는 그가 ‘가출’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똑같이 집을 나간 행위이지만 어떤 뜻을 품고 구도의 길을 걷겠다고 나가면‘출가’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그야말로 ‘출가’의 길입니다.

집착을 버리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단순히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모두를 내려놓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미워한다는 것은
대립하고 등진다는 것이 아니라 더 곰곰이 더 열심히 추구해야 할 것이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탑을 세우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듯
우리 신앙인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민감하게 식별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식별의 결과는 다른 여러 유대관계를 뒤로하고 모든 것에 앞서 주님을 첫째자리에 모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맥에 매이게 되면
자유를 잃고 주님의 뜻을 행하는데 있어서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주님께 집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이신 주님께서 다음 일을 안배하십니다.

가출한 사람은 온갖 것에 마음을 쓰며 궁리합니다.
그러나 출가한 사람은 지금 당장은 집을 버린 것 같지만 결코 집안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주님을 따르는데
어찌 사랑을 외면하고 자기 실속만 챙기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출가한 사람을 존경하고 우러러 봅니다. 어떻게 그 어려운 길을 가게 되었느냐고 묻습니다. 참 훌륭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과 자녀의 출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훌륭하다고 한 그 길에 자기도 가지 않고 자녀도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은연중에 지니고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은 속죄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희생정신을 잊지 말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세상이 부와 출세의 유혹이 갈수록 심해지는 험한 세상의 일상 안에서 주님의 뜻을 찾고 선택한다는 것은 이미 십자가의 길이고 구도의 길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신자들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신앙과 현실사이에서 방황하지 않고 제대로 따라야 하겠습니다.

제자의 길에 신중함이 있어야 하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에는 단호한 결단과 응답이 요구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하느님의 선택받은 자녀입니다. 세상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을 걷겠다고 나선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출가한 사람입니다. 바로 이 사실을 인식하고 산다면 매일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출가하는
하느님의 자녀가 많아지길 기도하며 그 길에 은총이 충만하길 빕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에 서 있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더 챙기고 더 채우는 준비가 아니라 더 내려놓고 더 비우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시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충만하게 해 주시기를 소망하며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탈란트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기쁨을 차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오 10,39).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2020년 6월 28일
  | 06.28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792   [수도회] 인생의 풍랑 앞에서  [5] 2322
791   [광주] 시련은 하느님의 발자국 소리  [2] 2033
790   [수원] 구원을 위한 사랑과 자비  [4] 2103
789   [춘천] 왜 의심을 품었느냐?  [3] 2155
788   [마산] 하느님을 나의 경험의 틀 안에 가두지 말자.  [2] 2218
787   [안동] 진정한 믿음의 기도  [3] 1980
786   [대전] 주님 구해주십시오  [4] 2086
785   [대구]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4] 2480
784   [인천] 예수님의 자리  [5] 2160
783   [부산] 주님께만 의탁하라  [5] 2063
782   [서울] 고통의 바다에서 건져주시는 주님  [6] 2131
781   [전주] 물위를 걸으신 기적  [2] 2133
780   [군종] 유령이 아니고, 나야! 나!  [2] 2000
779   [의정부] 믿음과 의심과 회심  [3] 1996
778   [원주] 숨 고르기  98
777   (녹) 연중 제19주일 독서와 복음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7] 1874
776   [수도회] 오병이어(五餠二魚)  [1] 1953
775   [원주] 빵과 물고기 그리고 나  [1] 93
774   [부산]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5] 2365
773   [마산] 내가 해야 할 몫과 하느님의 몫  [2] 2001
772   [청주] “예수님, 배고파 죽겠어요”  65
771   [서울] 매일 빵의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  [7] 2222
770   [군종] 감사와 청원  [1] 1597
769   [의정부]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1998
768   [춘천] 나눔, 모두 함께 행복해지는 길  [1] 1745
767   [전주] ‘가엾은 마음’  1943
766   [인천] 예수 그리스도의 나비효과  [4] 1869
765   [광주] 비워지는 만큼 풍성하게 채워지는 것  [1] 1649
764   [수원] 하늘나라의 잔치  [4] 1968
763   [대전] 그대들이 먹을 것을 주시오  [1] 1496
762   [대구] ‘나눔과 하나됨’  [2] 1833
761   [안동] 나의 말을 들어라. 너희에게 생기가 솟으리라  [2] 1905
760   (녹) 연중 제18주일 독서와 복음 (오병이어-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4] 1531
759   [수도회] 하늘나라 문을 열어본 사람  [5] 2329
758   [광주] 밭에 숨겨진 보물이란  [2] 2298
757   [대전] 신앙의 보물을 사셨습니까?  [2] 1950
756   [부산] 복 있는 그리스도인  [4] 2961
755   [인천] 하고 싶은 것들  [6] 2284
754   [군종] 진정한 보물은 무엇일까요?  [4] 2250
753   [안동]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  [3] 2389
1 [2][3][4][5][6][7][8][9][10]..[20]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0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