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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빵과 물고기 그리고 나
조회수 | 113
작성일 | 20.07.31
[원주] 빵과 물고기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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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로 서품받은 뒤 긴 시간을 살지는 않았지만,
가끔 느끼는 감정이 있습니다. 마음은 간절하지만 정작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지만 내 능력이 턱없이 부족할 때, 죄송함과 안타까움이 공존하는 그 허탈함을 체험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전해 듣습니다.
다섯 개의 빵과 두 개의 물고기. 하느님을 믿지 않는 분들도 한두 번쯤은 들어봤을 이 이야기에 머무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봉헌하는 것이 얼마나 큰 희망을 불러오는지 깨닫게 해줍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모두가 지쳐있는 상황이 다가옵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들으신 예수님의 축 처진 어깨, 예수님을 따라 호수를 돌아 달려온 군중의 지친 모습들,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싶지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는 초라한 현실까지. 마음대로 되는게 없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상황을 변화시키십니다.
당신의 찬미로, 당신의 기도로 모든 것을 변화시키십니다. 지쳐있던 군중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모두 배불리 먹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보고 흔들렸던 제자들의 믿음은 군중에게 생명과 기쁨을 돌려준 하느님의 일을 보며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찬미를 통해 모두가 지쳐있던 어두운 상황을 기쁨과 감사의 잔치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이렇게 나의 의미를 묻는 순간은 누구도 피하지 못합니다.
어느 때고 찾아올 것이고, 끊임없이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나에 대한, 내 소중한 이들에 대한 사랑 앞에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찾아오는 때입니다.

그럴 때 오늘 복음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말 그대로 턱없이 부족하고 말도 안 되게 작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말문이 막히고 무슨 희망을 품을 수 있을지 묻고 숨거나 도망치고 싶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모든 이에게 생명과 기쁨을 찾아주셨습니다. 군중은 단순히 배부른 양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먹고 마셨고, 예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하느님의 식탁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 자체로 그들은 사랑과 회복을 체험했습니다. 몸뿐 아니라 마음과 영혼의 그 간절했던 목마름을 예수님께서 채워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적은 빵과 물고기로 모두를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부족하고 작아 보이더라도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상황과 조건, 능력을 아느라 하느님께서 일을 이루십니다. 그러니 사랑을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희망을 놓지 않을 믿음을 청하며 감사드리는 하루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당신의 선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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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전봉환 예로니모 신부
2020년 8월 2일 ‘원주교구 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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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환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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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8주일의 말씀은 우리를 주님의 잔치에 초대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생명의 빵’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시니 생기 돋아납니다. 당신의 자녀에게 베푸시는 성사의 은총에 감사드리며, 주님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새롭게 합니다.

지난 주일의 복음에서
우리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깨닫습니다. 그 신비는 하늘나라의 완성을 갈망하는 교회를 통해 드러납니다. 교회는 말씀의 씨앗이 자라 사랑과 정의의 열매를 맺고 하늘의 평화를 누리는 신앙공동체입니다. 주님의 집에서 ‘그리스도의 몸’인 말씀과 성체를 모시는 우리는 행복합니다.

오늘 제1독서 말씀은
‘주님의 종’의 노래로 메시아의 모습을 전한 이사야 예언자(기원전 8세기)가 알리는 주님의 초대장입니다. 목마른 사람, 가난한 자, 고생하는 이들도 주님의 식탁에 무상으로 초대하십니다.

이는 주님께서
다윗에게 베푸신 ‘변치 않는 자애’이고,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고 좋은 음식을 즐기는 ‘지혜의 잔치’이며, 살아계신 주님과 맺는 ‘계약의 잔치’(이사야 55,2-3, 잠언 9,5-6, 사무엘 하권 7장)입니다.

잔치를 베푸신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십니다.” 제때에 먹을 양식을 내어주시는 주님의 손길, 가시는 길마다 의롭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신 주님의 자애에 감사드립니다(시편 145, 화답송).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밝히듯이 사랑의 힘은 강합니다. 사도께서 선교여행을 통해 체험한 환난, 역경, 박해, 가난, 파선을 포함한 온갖 위험을 극복한 힘은 사랑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성사를 통해 지금도 계속됩니다.
삶과 죽음, 천사와 사탄, 현세와 내세, 천상과 지하의 어떤 피조물의 세력도 이 사랑에 대적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요한 1서 4,16).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위대한 사랑의 힘을 발견합니다. 주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와 구원의 희망은 굳건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삶의 현실에서 겪는 모든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고, 신앙의 걸림돌마저 뛰어넘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요한 세례자의 죽음을 가져온 헤로데의 생일잔치(마태오 14,3-12)와 갈릴래아 연안의 외딴곳에서 오천 명의 군중을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 사건(마태오 14,13-21)을 대조시킵니다.

헤로데 잔치는
궁중에서 사전에 계획된 잔치로 교만의 분위기에서 요한의 죽음을 불러일으키지만, 주님은 외딴곳 풀밭에 몰려든 군중을 따뜻이 맞이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친숙합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도 오천 명 가량이나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찬 사건은 네 복음 모두 자세히 전하는 주님 기적으로는 유일합니다.

요한 세례자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외딴곳(벳사이다, 루카9,10)으로 물러가십니다.

여러 고을에서 소문을 듣고
육로로 모인 군중을 보신 주님은 연민의 정을 보이십니다.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은 그들을 돌려보내 각자 사서 먹도록 건의를 드리지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십니다. 가진 것이라곤 어린이가 내놓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요한 6,9)뿐인데 말입니다.

군중을 풀밭에
자리를 잡게 하신 주님께서는 보잘것없는 봉헌물이지만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감사)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십니다. 오천 명이 모두 배불리 먹은 뒤, 제자들이 남은 빵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할 정도로 충만했습니다(마태오 14장19절-20절).

빵을 손에 들고 감사기도를 드리신 다음
떼어 나누어주시는 모습은 마지막 만찬의 정취(마태오 26장26절, 마르코 14장22절, 루카 22장19절, 코린토1서 11장23절)입니다. 이 빵의 기적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늘의 만나를 배불리 먹었던 일(탈출기 16장)을 연상시킵니다.

이는 바로 성찬례의 예표이고, 하늘나라의 마지막 잔칫상(마태오 8장11절, 26장29절)입니다.

미사성제에서
생명의 말씀을 듣고 성체를 모시는 그리스도인은 특권을 누립니다. 성사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을 ‘생명의 빵’으로 내놓으신 사랑의 환대입니다. 성체를 모시고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과 친교로 ‘한마음 한 몸’이 된 우리는 가슴에 사랑의 불꽃을 간직합니다.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는 주님의 크신 사랑에 보잘것없는 사랑으로 보답하면서도 영적 기쁨을 누립니다. 가난과 질병, 불의와 재난에 희생된 사람들이 우리 이웃에 한둘이 아닙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
“서로 밥이 되어주십시오” “나눔은 사랑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썩어 없어질 양식을 구하기보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렵니다.”(요한 6장27절)

축제의 날인 주일에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태오 14장16절).” 하신 주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삶의 현장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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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2020년 8월 2일 가톨릭신문에서
  |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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