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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용서’는 어렵습니다.
조회수 | 158
작성일 | 20.09.11
[청주] ‘용서’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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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란 참으로 어려운 행위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진심으로 용서를 하게 되는 경험을 몇 번이나 하게 될까요? 남의 고민을 들어줄 때는 용서라는 말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정작 내 자신은 쉽게 주변인들에게 관대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용서에 있어 흔히 겪게 되는 오류가 있습니다.
나 자신은 누군가를 용서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진정한 용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저 참고 인내한 결과를, 때로는 대상이나 상황을
잊어버리려 했던 노력을, 때로는 용서라는 개념을 스스로에게 강압적으로 인지시키는 행위 등을 ‘용서’라고 부를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용서를 했다고 생각해도 그 대상이나 상황을 다시 마주할 때 내면에서 문득문득 화가 올라오는 나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아직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본다면 인간에게 있어 ‘용서’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만일 누군가를 용서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이를 받아들이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저는 2가지의 상황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첫째,
‘내가 누군가로부터 용서(이해)받았던 상황들’을 떠올려보곤 합니다.

저 역시 부족하기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의도치 않은 오해를 낳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와 더불어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타인으로부터 지속적으로 크고 작은 용서(이해)를 받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받았음을 인지한다면, 이제 주는 것은 더 수월해집니다. 용서의 시작은, 단지 내가 받은 것에 대한 ‘보답’에서 출발할 수도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려보곤 합니다.

‘과연 예수님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예수님은 분명 여죄를 묻지 않고 용서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도 행하려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5).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스승이 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행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보상과 자유로움은 인간이 주는 것이 아닌 하느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더 깊고 충만합니다.

인간의 행위 중에 단번에 습득되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어느 정도 숙련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용서’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용서란 매우 어려운 행위입니다. 만일 이것이 쉬운 일이었다면, 인간의 역사와 함께 지속적으로 회자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용서를 두고 주저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방법이 있으리라 봅니다.
단번에 이룰 수는 없겠지만 용기를 낸다면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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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김진철 요셉 신부
2020년 9월 13일 ‘청주교구 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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