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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성소주일 = 청소주일(?)"
조회수 | 2,439
작성일 | 05.04.15
제가 시골본당에서 교구 성소담당으로 발령을 받고 짐을 싸고 있는데, 잘 알고 지내는 할머니 한분이 오셔서 “아이고~신부님, 교구청에는 청소할기 많은 모양이지예?, 청소담당으로 다 가시고!” 하시자, 저는 “할매! 청소담당이 아이고, 성소담당입니더!”라고 대답하고 크게 웃은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우리 신학생들도 우스개소리로 ‘성소주일’을 ‘청소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일년에 단 하루 신학교 전체를 개방하는 성소주일,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신학교 구석구석을 청소하기 때문입니다. 신학생들에게 청소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성소주일을 맞아 대대적인 청소를 하게 됩니다. 황금같은 주일 외출을 반납하고 여러가지 성소주일 행사를 하고, 본당에서 찾아온 귀한 손님들을 맞고, 신학교 개방시간이 끝나고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면 신학생들을 반갑게 기다리는 것은 곳곳에 쌓여진 산더미 같은 쓰레기입니다. 이제 작업복 차림의 신학생들은 노련한 몸놀림으로 감쪽같이 쓰레기를 치워버리죠. 어찌보면 신학생들의 생일날이라고 할 수 있는 성소주일, 청소로 시작해서 청소로 끝난다고 말하면 너무 과장된 말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외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청소하는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신학생들을 사랑하기에 바쁜 시간을 내어 신학교를 방문하는 신자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신학생들이 청소하는 것은 신학교 곳곳 지저분한 곳만이 아닙니다. 만약 이것 때문에 ‘청소주일’이라고 생각했다면 문제이지요. 정작 신학생들이 ‘성소주일’을 ‘청소주일’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다른 데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내면에 대한 청소를 하기 때문입니다.

손님들이 돌아가고, 뒷정리를 다 마치고 나면, 이제 조용히 자신을 돌아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주님께서 맡겨주실 자신의 길에 대해서 조용히 성찰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자신 안에 쌓여진 인간적인 쓰레기들을 치워내고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자신 안에 쌓여진 쓰레기들을 치워야만 합니다. 이기심, 탐욕, 집착으로 얼룩진 더러운 영혼은 결코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내면을 청소하면서 신학생들은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떠올립니다. 신학생들의 삶의 목적이 바로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대충 대충 살아가는 사제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착한 목자가 되어 교회와 하느님 백성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사제가 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소주일’은 사제 성소자나 수도 성소자만의 날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 모두의 날입니다. 그러기에 구체적으로 걷는 길이 어떠한 것이든 모든 신앙인은 특별히 ‘성소주일’에 자신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먼저 자신의 내면을 깨끗이 치워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소주일’은 모든 신앙인에게 ‘청소주일’입니다. 아멘.

이태우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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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목자

“어떻게 수녀가 될 수 있었어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동화 같은 꿈을 꾸는 신부님하고 사랑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예수님하고 둘이 하 신 거예요. 전 다만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 같아서 그 렇게 하면 마음이 편하고 기쁘니까 열심히 따라 갔을 뿐이 예요.”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몸이고 싶으세요?”
“다시 태어나도 이대로......
나는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몸 이대로를 선택할 것입니 다.“

‘동행’ 에서

침대에 누워 지내야만 하는 중증 장애인으로서 화가인 윤석인 수녀의 고백입니다. 제게는 이 고백이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 라...... 한 평생 은총과 복이 이 몸을 따르리니, 오래오래 주 님 궁에 살으오리다” 는 노래로 들립니다. 한평생을 살고 난 뒤 죽음을 앞두고 하는 마지막 말이 이 시편(23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팔레스타인 유목민들은 낮에는 넓은 초원을 양을 몰고 돌아다니면서 치다가 저녁이 되면 임시 우리를 만듭니다. 따라서 아주 엉성한데,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말뚝을 박고 거기에 얇은 천을 둘러치는 정도라 합니다. 그리고 목자가 신호를 하면 밖에 있던 양들이 줄을 지어서 들어오는데, 그때 목자는 문 앞에 서서 양들을 하나씩 점검합니다. 병든 양, 상처 입은 양은 없는지, 영양상태는 좋은지, 임신한 양은 없는지 등. 문제가 있는 양은 따로 관리를 합니다. 그 다음, 목자는 입구에 거적을 깔고 누워 문의 역할을 합니다. 양들은 목자를 통과해야만 출입이 가능합니다. 목자는 야생동물의 습격도 감시해야 합니다. 목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양들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참으로 고달픈 직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당신을 "양들의 문"이라 하십니다. 양들이 낯선 목소리를 따라가지 않고 야생동물의 습격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며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는"사명을 스스로 짊어지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후에는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씩 물으시면서 그때마다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고 하심으로 당신 사명을 제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만큼 양들이 소중하셨습니다.

해마다 부활 제4주일을 성소주일로 지냅니다. 이날의 복음이 요한복음 10장의 착한목자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자이신 주님께서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가 이끄시듯 주님은 우리들의 이름도 하나하나씩 부르시어 세례를 통해 당신의 신적 생명에 동참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들의 삶의 모습은 이 목소리를 외면하고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 황금이라는 낯선 목소리를 더 많이 따라가고 있는 듯합니다. 살기는 편하고 즐길 것도 많은데 결국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아브라함아!" "모세야!" "자캐오야!" "마리아야!"하고 부르셨듯 내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생명을 주시는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각자가 받은 삶의 자리에서 성소를 지켜가야 합니다. 위의 수녀님처럼 우리도 내 삶의 자리에서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고 노래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동시에 목적없이 질주하다가 교통사고를 일으키고 마는 것 같은 이 시대. 무너질 줄 모르고 높아만가는 바벨탑을 쌓고 있는 이 시대에, 방향잡지 못하는 양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갈 목자들을 계속 보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태우 프란치스코 신부
  |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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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위기를 기회로

오늘은 성소 주일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생각하고 다양하게 응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기억하고 기도하는 날입니다. 물론 성소 주일이라고 하면 특별히 교회직무의 부르심을 받은 사제, 수도자를 먼저 떠올립니다. 요즘 수도원, 수녀원, 신학교를 지원하는 예비 성소자들이 급감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교구 신학교 지원자가 한자리 수에 그쳤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너무 빨리 현실로 다가와 버렸습니다. 걱정은 하고 있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자격이 부족한 사람으로 채울 수도 없습니다. 문제는 앞으로가 더 심각해 보입니다. 올해 전국성소국장 모임에 참가해서 보니 대부분의 신부님들이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에 먼저 신부님, 수녀님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교구사제 사목지침에, “성소 증진에서 사제들은 다른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성령께서 특별한 성소의 은사들을 끊임없이 부어 주시고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사랑하시는 젊은이들을 계속하여 부르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며, 사제들은 인생의 진로 선택에서 가장 민감하고도 결정적 시기에 있는 젊은이들과 기꺼이 함께 지내야 한다.

성소 증진 노력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기도의 초대와 완전하고도 일관된 신앙생활의 초대로 시작된다. 다양한 봉사와 직무와 은사들을 지니고 있는 공동체는 성소증진에 공동 책임을 지고 있다. 가정과 학교, 부모와 교사들은 인생 진로의 영역에서 특별히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한 가장중요한 당사자는 어린이들과 젊은이들 이므로, 자기 앞에 있는 소명의 모든 가능성 가운데서성숙한 선택을 하도록 사제들은 그들에게 도전을 제기하고 또 도움을 주어야 한다.”라고 밝힙니다.

물론 성소 위기를 겪고 있기는 하지만 위기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세속화 되어가는 오늘날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의 ‘성소 사목’에서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신앙 위에서, 신앙으로 유지되는 그리스도교적 정신을 그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고 과감하게 회복시키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면 성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교적 정신을 회복시키는 것이 가장 우선되는 과제라는 것입니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각자 신분에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교적 정신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을 만큼 우리에게 주님께 대한 절실함과 간절함이 있는가?’ ‘우리의 열정과 관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성소 지원자들이 격감하는 위기를 맞아 미래 교회를 걱정합니다.

이시기에 먼저 우리의 관심을 세상이 아닌 예수그리스도께로 되돌려야할 때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은 우리 마음의 간절함과 온전한 믿음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교적 정신을 회복하고 가정, 교구, 신학교, 성소국, 본당의 성소후원회에서 미래 교회를 이끌어 갈 훌륭한 인재를 발굴하는데 열정을 가지고 더욱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 대구대교구 김병수 루카 신부 : 2017년 5월 7일
  |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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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사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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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활 제4주일이며 성소 주일입니다. 매년 성소 주일이 되면 신학교와 수도원에서는 성소 주일 행사로 시끌벅적할 텐데,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대부분 행사가 취소되거나 축소되어 하루를 보내게 될 것 같습니다.

성소 주일인 오늘,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과 특별히 교회의 거룩한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성직자, 수도자와 예비 성소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각자의 성소를 생각해 봐야하겠습니다.

며칠 전 TV 뉴스에서 인터뷰 장면을 보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일하는 초등학교 6학년 아이를 둔 여간호사에게 기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두 달 가까이 집에도 못 가면서까지 이렇게 치료에 전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여간호사의 대답은 단순했습니다. “사명감이죠!” 이 한마디의 말을 건네는 간호사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와 마스크 자국이 선명하였지만, 보는 이에게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하기 충분하였습니다. “사명감이죠!” 지금도 제 뇌리에 남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가족을 먼저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보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간호사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소중하게 보였습니다. 이번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간호사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대구와 경북으로 달려와 주신 의사, 의료진, 119 구조 대원, 공무원, 자원봉사자들 모두가 자신이 하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너무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오늘은 성소 주일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인 성소의 길을 먼저 가고 있는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성소의 길을 준비하고 있는 예비 성소자들이 가져야 할 사명감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시기에 좋은 본보기를 보여준 그들을 생각하며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제와 수도자들, 나아가 모든 그리스도인이 더욱 투철한 사명감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은 분명 감동할 것이며 많은 이들이 성소의 길에 동참할 것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루카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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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김병수 루카 신부
2020년 5월 3일 대구대교구 주보에서
  |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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