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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우리 삶의 네비게이션이신 예수님
조회수 | 2,470
작성일 | 05.04.22
차를 운전해 본 사람은 경험해 보았겠지만 처음 가는 지역에 가게 되면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길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서 그 근방에라도 가게 되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엉뚱한 방향으로 가서 몇 번의 전화를 하고 겨우 찾아가곤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길치’나 ‘방향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예 처음부터 타 지역을 혼자 운전해서 가겠다는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요즘 ‘네비게이션’이라는 좋은 기계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이것을 이용하면 자신이 원하는 목표까지 방향과 거리 등을 아주 자세하게 음성과 화면으로 안내 받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속하는 차량들이 속도위반에 걸리지 않도록 제한 속도까지 안내해 줍니다. 이렇게 편리하고 정확한 안내기가 있는 한 내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걱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에 있어서도 이 ‘네비게이션’과 같이 확실하고 편리한 안내를 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분은 당신이 직접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당신이 제시해 주신 그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게 하느님 나라에 도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즉 예수님 당신은 우리 삶의 진정한 ‘네비게이션’이십니다.

그런데 복음에서 토마스가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하고 말하였습니다. 이번에는 필립보도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하고 예수님 마음을 안타깝게 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있을 곳을 마련해 주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당신이 직접 십자가를 지고 가며 그 길을 보여주셨는데 왜 제자들은 그렇게 불안해하고 주저하고 있는지요?

이는 그 길이 힘들고 험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그 길을 어떻게든 피해보려는 인간적인 마음이 가득 차 있는 한 예수님의 안내와 표양은 우리에게 더 이상 네비게이션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네비게이션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길을 잘 찾아가듯이 예수님에 대한 확실한 신뢰를 가질 때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영원한 생명으로 찾아가게 해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신자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 삶의 네비게이션이신 예수님께 대한 굳은 신뢰심을 가지고 당신의 십자가 길을 따라 간다면 분명히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고난과 십자가로 천국 영광에 이르는 길을 알려주셨기에 진리 자체이신 주님을 믿고 바라고 주님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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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정성훈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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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로 가는 참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습니다.”(요한 14,6)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와의 구체적인 친교를 가능케 하는 길로서 자신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유일한 중재자이심을 그리고 오직 예 수님만이 우리가 아버지께로 오르는 길로써 존재함을 강 조하는 것입니다.

아오스딩 성인께서도 오늘의 복음을 해설하시며 길이신 예수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써의 그리스도는 당신의 길입니다. 하느님으로써 그리스도는 당신의 본향 입니다. 우리들의 본향은 진리와 생명입니다. 우리들의 길 은 우리들 가운데 사셨던 육화 된 말씀입니다.”(아우구스 티누스 강론 95,5) 라고 하시며 오늘 복음의 중심주제가 되는 길에 대해 우리의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구세주로써, 아버지께로 가기 위한 유일한 길로써 인정하며, 예수님의 삶의 길에 우리의 삶의 발걸음을 일치시키도록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의 현실적인 삶의 길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길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길을 따라 걷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지는 그 순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존재를 믿는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내 인생의 길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길입니다.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께로 이끄시는 길입니다.

그 길은 섬김의 길이었습니다. 봉사하고 낮추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지극히 높은 분이셨지만 높은 곳에 머물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사랑과 겸손의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영광과 환호가 있는 길이 아니라 모욕과 십자가가 존재하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가난한 이들, 힘없는 약한 이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이들, 괴로워하며 슬픔에 우는 이들에게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길을 따라 걷는 그리스도인은 죄인들과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가난한 이들, 힘없는 약한 이들, 고통 받는 이들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자비를 몸에 익히고, 드디어는 그들을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길은 자존심과 평안함을 버리는 사람, 인간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자비롭게 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진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에게 이로운 것만 추구하지 않고, 이유가 있으면 손해도 보고 희생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오늘 서간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우리들은 “선택된 민족, 왕다운 사제, 거룩한 겨레, 그분이 차지한 백성이 되었습니다.”(1베드로2,9) 하느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은 예수님만이 참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고백하고 그 분께서 가신 길을 나의 삶 안에 구체화하여야 합니다. 참된 믿음은 지적(知的)으로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바를 구체적인 삶 안에서 실천하고 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김태형 베드로 신부
  |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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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네비게이션’ 가지고 계시나요? 자동 운반 시스템 혹은 행성탐사 로봇 등에 이용되는 이동 로봇이 스스로 주행 경로를 결정하여 목적지로 이동함을 의미하는 ‘네비게이션’ 이라는 단어를 따서 만들어진 자동차 장착용 기계가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단어의 뜻처럼 네비게이션은 차량 운전자에게 목적지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해 주는 기계입니다. 가고자하는 곳을 입력하기만 하면 출발하는 곳에서부터 도착하는 곳까지의 경로가 자동으로 검색되기 때문에 운전자는 난생 처음 가보는 곳이라도 잘못된 길로 가거나, 길을 잃고 헤맬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혹여 운전자가 실수로 경로를 이탈하면 네비게이션은 금방 새로운 경로를 검색하여 다시 안내해줍니다.

토마스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인도해주시는 분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당신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입으로 하시는 말씀과 가르치는 계명들을 따라 살기만 하면 우리는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잃지도, 잘못된 길로 빠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리와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아버지의 집으로 친히 데리고 가실 주님이 내어주신 길을 따라가야겠습니다. 또한 바른 길을 먼저 보여주신 예수님을 따라 살지 못하고 내 마음대로 다른 길을 가는 일이 없도록 주님의 돌보심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대구대교구 주보 편집부
  |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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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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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인생이라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통해서 도달하게 될 목적지를 추구하며 길을 갑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길은 정해집니다. 그리고 추구하는 목적을 향해 인생길을 잘 가고 있는지 두고두고 따지며 걸어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생의 목적은 정해졌는데 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길이 정말 확실한지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누군가의 인도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무나 따라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엉뚱하고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도 있고, 그래서 자신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고 얻어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당신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인생의 목적이 생명이 아닌 다른 것이라면,

예컨대, 부나 권력이나 명예 등등이라면 예수님께 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다른 것은 얻을 수 있어도 생명은 얻지못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을 얻는다고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마태 16,26)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그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대개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길과 그 길의 참됨 여부, 즉 목적이 분리되어 있지만,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얻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시며, 생명으로 가는 길인 동시에 생명 그 자체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동시에 길이 되고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되십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을 따로따로 찾고 얻으려 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는 길이 바로 진리요, 진리가 바로 생명입니다. 그리고 그 길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길, 진리, 생명은 하나로 수렴되는데, 곧 예수님이십니다.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서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열쇠는 바로 부활에 대한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요, 깨달아야 할 진리요, 누려야 할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 안에서 우리가 따라야 할 확실한 길을, 오류와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을 밝히는 등불 같은진리를, 우리가 받아 누려야 할 생명을 찾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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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이상영 그레고리오 신부
2020년 5월 10일 대구대교구 주보에서
  |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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