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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조회수 | 2,503
작성일 | 05.04.22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시고, 스스로 철저히 사신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이 바로 생명의 원천이시며, 그 가르치심이 진리임을 증명한 사건이다. 그리고 그분을 따르는 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단순히 뛰어나신 성현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신앙, 그것이 참된 신앙이다.

1. 예수 그분은 누구인가?

예수님은 필립보의 가리사리아 지방에 이르렀을 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마태16,15)하고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이 질문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역사상의 여러 성현(聖賢)들 중의 한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요한1,18)고 하는 필립보에게, 예수님은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요한14,9-10)고 하신다. 예수님은 당신이 아버지와 하나이심을 명백히 선언하셨다. 이 말씀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4,6) 하신 말씀과 깊은 관계가 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이며, 그분 안에 참 생명이,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믿고 그 믿음으로 삶을 꾸려 가는 것을 말한다. 나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진정 어떤 분이신가? 이 점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2.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증명한 사건이다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마태22,37-40)고 가르치시고, 스스로 이 사랑을 철저히 사셨다. 십자가의 죽음은 아버지께 대한 철저한 순명이며 인간을 위해 자신을 제물로 내 놓으신 사랑의 절정이었다.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철저한 사랑을 사신 예수님은 죽음을 넘어 부활에 이르셨다. 참으로 사랑은 죽음보다 강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이 단순히 뛰어난 인간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심을 증명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모든 것 위에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경천애인(敬天愛人)'의 가르침이, 인간을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진리임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사랑의 계명을 철저히 사는 것, 예수님을 철저히 추종하는 것이 바로 부활에 이르는 길임을 확신시키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당신의 가르침과 삶과 부활을 통해 당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 하신 말씀을 우리는 믿지 않을 수 없다.

3. 매일 그리스도를 살아야 한다.

일찍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의 백성이 바로 교회이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렇다.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가 바로 교회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오늘 서간에서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1베드2,9) 고 말씀하신다.

세례를 받아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인 것이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백성들은 '신령한 집을 짓는데 쓰일 산 돌'(1베드2,5)이며, 이 살아있는 돌들이 모여 이룩한 공동체가 바로 교회인 것이다. 교회인 우리들은 예수님만이 참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온 세상에 선포해야 한다. 참 믿음은 단순한 지적(知的) 동의가 아니라, 믿는 바를 사는 삶이어야 한다.

"교회는 많은데 그리스도는 볼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의 문제이다. 그것은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가 제대로 그리스도를 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예수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한6,56)고 말씀하신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듯, 우리도 성체성사로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살아야 한다. 성당 문밖을 나서자마자 예수님이 나에게 오셨다는 사실마저 까맣게 잊고 살지는 않는가? 매사에 성체성사로 우리에게 오신 주님께 여쭙고, 주님과 의논하며 사는 삶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분의 삶에 동참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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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유영봉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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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작별을 앞두고 말씀을 나누십니다(13,31-17,26).

오늘 복음 말씀은 “일어나 가자!”(14,31)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끝을 맺는 전반부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18장 1절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에 제자들과 함께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으로 가셨다.”는 구절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13,31-14,31; 15,1-16,33; 17,1-26) 작별 이야기 속에 예수님의 유훈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속한 사람들에게 당신이 돌아가신 후에, 그리고 영광스럽게 되신 후에 어떻게 그들과 함께 하시고 친교를 나누시는지 일러주십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는 말씀처럼 그렇게 이루어집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서로를 위하여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하라고 일깨워 주십니다. 그것은 마침내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이루는 깊은 친교에로 우리를 이끌어 줄 것이라고 말해 줍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참혹한 십자가의 길에 앞서 제자들에게 유훈으로 남기신 예수님의 작별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부활시기를 보내는 오늘 주일 전례에서 듣게 되는 것도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유훈은 모든 시대 모든 교회를 위한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당신께서 하신 일을 보아서라도 믿어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주님의 공동체인 우리 교회에 있어서 언제나 해당되고 있습니다.

하느님 자녀들의 친교 안에서 신앙공동체의 활동은 눈에 띠게 커집니다.
믿는 이들의 활동은 그리스도와의 깊은 결속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활동은 아버지와 하나임을 그리고 당신을 통한 하느님과의 깊은 결속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네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요한 13,35)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도 그렇게 주님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의 친교에는 약속과 책임이 동시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행동으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알고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영이 없는 몸은 죽은 것이듯이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이라면서, 자신은 ‘실천으로 믿음을 보여주겠다.’(야고 3,14-26 참조)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지는 이런 저런 근심걱정과 아쉬움은 그들에게 주로 믿음이 없기 때문이듯이, 대부분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그리스도와의 깊은 결속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교회 안에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신 그리스도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표지와 활동들이 언제나 있어 왔고, 우리 시대에도 있습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악과 고통과 죽음은 극복되었고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그것을 보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마지막에 완성될 것이라는 놀라운 약속입니다. 사람들 저마다에게 이 약속은 죽음을 거쳐 생명 자체이신 그리스도와의 친교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지금 이 세상에서 사랑으로 따른다면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를 통하여 활동하신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분과 더불어 영원한 행복에 이르도록 하는 복된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이제 부활하신 주님께서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습니다.”(요한 14,4)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실 뿐만 아니라,
진리이시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대하여
“나는 진리이다.”하고 말씀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진리”는 하느님의 실제를 나타내는 말이며,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아버지이신 하느님과 하나임을 아셨고, 그래서 당신을 스스로 “아들”(요한 14,13)이라 부르셨습니다. 그와 함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가 드러납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주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은 곧 인간의 죄와 그에 다른 구원의 필요성, 강생을 통한 속량,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구원받은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 심판과 마지막 구원이라는 주님의 모든 구원 업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실제인 진리로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대하여 또한 “나는 생명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생명의 중개자이시며, 또한 우리에게 참 생명을 선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참 생명은 죽음보다 강한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은 여기서 하느님의 생명이며,
그리고 하느님에게만 해당되는
하느님의 하느님이심을 나타내는 다른 표현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생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하느님의 생명은 이미 우리 안에서 싹을 틔웠으며 그리고 성체성사를 통하여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순례하는 우리들의 양식인 성체, 곧 주님의 몸은 이 참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가도록 힘을 줍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데 그리스도 말고 그 어떤 것도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지금 세상에서의 모든 것은 “불완전한 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언젠가 하느님의 충만하고 영원한 생명이 우리 안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 안에 들게 될 것입니다.

필립보가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요한 14,8)하고 청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4) 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이 부활시기를 보내면서
“주님,
아버지께 다가가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십시오.”하고
기도해야겠습니다.

“주님, 길이신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십시오.
우리가 그 길에, 그 단 한 길 위에 서 있도록,
당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십시오.
그 올바른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에게 그리고 그 길에서의 동반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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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차광호 파스칼 신부
  |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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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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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린이날을 전후해서 초등부 아이들에게 어른들(부모님)에게 바라는 것 혹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필요한게 있다면 그냥 사주세요, 공부하지 않는다고 때리지 마세요, 일기 보지 마세요, 아빠도 성당 같이 나와 주세요, 술 먹고 장난으로라도 때리지 마세요…” 중고등부 학생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공부하는데 부모님이 먼저 주무시면 공부할 의욕이 없어져요, 우리한테는 잘못된 것을 고치라고 하면서 어른들은 왜 고치지 않나요?…”(초등학생들과 달리 겨우 얻어 낸 답들입니다.) 아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어른’에 대해, 어른의 역할에 대해 또 한 번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좋은 본이 되는 것, 오늘 복음의 표현처럼 길이 되어주고 진리를 가르쳐주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라고 확고히 말씀해주시는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분명 큰 어른이십니다.

자녀들은 단지 아버지 어머니라는 이유만으로도 부모님을 신뢰하고 존경합니다. 하지만 자녀들에게 사람이 가야할 길, 신앙인이 걸어야 할 길을 곧게 똑바로 걸어가는 본을 보여 주어야 하는 부모의 길은 참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들이 걸어간 길을 거의 같이 따라 걷게 마련이라 그 책임이 더 큽니다. 앞장서서 가는 사람이 제대로 된 길을 가지 못할 때, 그 뒤를 따라 가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큰 혼란을 겪는지를 우리는 충분히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길 자체이시지만, 우리들 역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누군가에겐 길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 걷는 이들인 동시에 자녀들의 길이기도하고 후배 동료의 길이기도 합니다. 또 예비자들의 길이기도 하고 새 영세자들의 길이기도 하고 아직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길을 잘 따라 걸어서 우리를 길이라 여기고 따르는 이들이 우리 때문에 엉뚱한 길로 가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의 크신 은총을 청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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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송재훈 라파엘 신부
2020년 5월 10일 마산교구 주보에서
  |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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