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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행복의 길 :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
조회수 | 2,545
작성일 | 05.04.22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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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을 앞두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남기신 필담 내용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교황님께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온전히 느끼게 하는 말씀입니다. 아울러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되겠는가하는 방향제시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도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요한 14, 1-4)고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께서 우리가 살 곳을 마련해 주시고 또 그 곳으로 가는 길도 알려주실 뿐만 아니라, 거기까지 데려가 주시겠다니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주위의 현실들은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낄 만 합니까? 토마스와 필립보 사도처럼 무엇엔가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분명한 말씀을 듣고도, 토마스는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요한 14, 5)라고 되묻고 있으며, 필립보는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요한 14, 8)라고 한번 더 간청하고 있습니다.

이런 두 사도의 모습이 바로 오늘의 우리 모습이 아닐런지요? 예수께서 다 베풀어 주신다는 데, 왜 우리는 불안해 하고 주저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다 주셨는데 아직도 뭐가 더 부족해서 모자란다고 느끼고 있는지요?

예수께서는 또 설명해 주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 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요한 14, 6-7).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 주시고 그 길을 따라가면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길을 온전히 따라 걷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은 내 안에 하느님 아닌 것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욕심과 걱정거리들이 예수님의 분명한 말씀에 믿음을 가지지 못하게 하여 불신을 조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걸으신 길은 이웃을 살리기 위해 자기 자신을 바치신 길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도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 둘 점이 있습니다. 내가 기도드리고 미사드리는 신앙생활과 가정이나 일터에서 만남을 가지는 일상 생활은 별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따로따로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사신 삶이 바로 그러하셨습니다. 내 안에 가득 찬 나의 것들을 하나 둘씩 버려가며 이웃을 생각하며 살 때, 나는 어떠한 어려움이나 고통 앞에서도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진정한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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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신동철 토마스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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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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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부활의 기쁨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농촌에서는 농사준비에 매우 바쁩니다. 어느덧 봄의 기운이 온 대지를 감싸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운이 약동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필립보 사도는 예수님께 하느님을 보여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하느님은 하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에게서 하느님의 모습을 보고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아버지의 집에 거처를 마련하러 간다고 합니다. 토마스 사도는 아버지께 가는 길을 알려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길을 알려주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 6-7. 9)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몰라 혼란에 빠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심적 혼란을 예방하고 극복하기 위해 '하느님을 믿고 또 아들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학식과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겪는 일상생활에서의 무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한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믿음을 기초로 할 때, 확실한 목적지인 '아버지의 집'을 향하여 길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부활의 기쁨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로 가는 길 역할을 하십니다. 지금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참 생명이신 아버지의 집에 갈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습니다. 길이신 예수님 안에 진리와 생명이 있으니, 그분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진리를 외쳤습니다. 엉뚱한 길이 더 많았습니다. 역사에는 가짜 진리가 많았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결론입니다. 더 이상의 심적 혼란은 없게 되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게 된 초대 교회 공동체는, 가진 것을 나누며 기도와 선행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일에 충실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아 교회 살림을 맡기고 기도와 말씀 전파에 전념합니다(사도 6,2-4).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나, 예루살렘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사제들의 큰 무리도 믿음을 받아들였습니다(사도 6, 7).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저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었습니다. 즉,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이 되었습니다(1베드 2,9).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은 주님의 부활을 믿고 내가 사는 곳에서 그분의 부활을 증언함으로써, 어둠에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부활의 기쁨을 살아가고 있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희가 사는 곳에서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고 그 기쁨을 이웃에 전함으로써, 저희의 사명을 다하게 됩니다.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습니다. 더 이상 심적 혼란에 갇혀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 부활의 증인으로 기쁘게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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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전장호 프란치스코 신부
  |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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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산란한 마음과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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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너희는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요한 14,1)라는 예수님의 권고로 시작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마음이 산란하여 괴로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오늘 복음은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요한 14,1)는 말씀으로 처방전을 내려 주십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믿음'이 우리의 길이요, 답입니다.

믿음이 약해 졌을 때, 토마스의 말처럼 우리도 같은 말을 하게 됩니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요한14,5) 길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이 약해졌을 때, 필립보처럼 말할 수도 있게 됩니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요한 14,8) 하지만, 그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의심상태에 머물겠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믿음을 가지게 되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복음 말미에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요한 14,12) 이 말씀은 교회의 모든 활동과 신앙인으로서의 존재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움직이게 되고 활동하게 되고 성취하게 된다'는 진리를 말씀해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 사도행전은 이렇게 전합니다.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사도 6,1) 교회공동체도 인간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불평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것도 공동체의 산란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산란한 상황도 그 해결책은 '믿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사도 6,3) 교회공동체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사람은 재무능력과 중재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사도 6,3),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사도 6,4)입니다. 이 또한 교회공동체는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의 개인이나 공동체가 “마음이 산란한 이유”는 바로 “믿음" 의 부족임을 인지하여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우리는 이 말씀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신앙인이자 믿음의 공동체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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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이희복 미카엘 신부
2020년 5월 10일 안동교구 주보에서
  |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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