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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미풍처럼 다가오시는 하느님
조회수 | 2,247
작성일 | 05.04.22
윤해영 수녀님이 쓰신 「기도바구니」(성바오로 출판사)란 책을 읽다가 참으로 공감이 가는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어느날 문득 성가 한 소절에 눈물이 핑 돌고 성서 한 구절에 가슴이 탁 트이는 것을 우리는 경험합니다. 살면서 아주 소중한 체험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체험은 경우에 따라 평생 잊지 못하는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기도 하지요."

참으로 지당한 말씀입니다. 하느님 섭리는 오묘하기만 합니다. "내가 이 나이에 변해봐야 뭐하겠어?" "제발 절 그냥 내버려 두세요. 이렇게 살다가 죽게요" 하는 우리 삶에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하느님은 미풍처럼 다가오십니다. 때로 우연히 발견한 상본 한 장, 거기에 적힌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성서 한 구절이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한답니다.

마음이 열린 사람들,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의 순결을 지닌 사람들, 부단히 어제와 결별하고 거듭 길 떠나는 사람들은 아주 쉽게 진리를 터득하며, 진리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갑니다.

동시, 동요 분야의 탁월한 작사 작곡자께서 이런 글을 쓰신 적이 있습니다. 산을 오르시다가 길섶에 핀 아주 작은 풀꽃, 보일락말락한 노란 풀꽃 한 송이를 발견하셨는데, 그 꽃이 너무 예쁜 나머지 땅바닥에 엎드려서 자세히 바라보니, 그 작은 풀꽃 안에 하느님이 계시고, 그 작은 풀꽃 안에 우주의 모든 이치가 다 들어있더라는 말씀. 워낙 영적으로 사시고, 또 맑은 정신과 티 없는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분이다보니 그런 체험을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란 것은 때로 이렇게도 다가온답니다. 아주 작은 사건을 통해, 스쳐지나가는 말 한마디, 시 한 구절과 만남을 계기로 깨달음은 시작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일상적으로 필요한 노력이 보다 단순해지려는 노력, 맑은 정신과 깨끗한 마음을 지니려는 노력, 작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인 것입니다.

영혼이 담긴 시선으로, 마음의 눈으로 이웃을 바라볼 때, 십자가의 원천이던 형제는 어느새 사라지고, 행복의 원천, 기쁨의 원천, 은총과 축복의 원천인 형제가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진리를 깨달음에서 오는 결실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마음은 마치 절벽 앞에 선 듯한 느낌이셨으리라 여겨집니다. 그토록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또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또 다시 이렇게 묻습니다.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누가 메시아인지, 누구를 따라가야 하는지, 어디에 목숨을 바쳐야하는지 그렇게도 열심히 교육시키셨건만 아직도 분위기 파악이 덜된 제자들이었습니다.

아직도 신앙의 눈을 뜨지 못해 갈 길이 멀었던 제자들, 그래서 인간적 잣대로만 예수님을 바라보는 제자들이었기에 구세주를 바로 눈앞에 두고도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던집니다.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너무도 안타까웠던 예수님은 이렇게 탄식하십니다.

"내가 이토록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단 말이냐?"

이제 때가 다 되어 곧 떠나가실 주님이셨기에, 아직 '덜 떨어진' 제자들 모습에 아쉬움을 감추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강조하고 설득해도 영적 눈을 뜨지 못한 제자들이었습니다. 아직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이었습니다. 너무도 서글프셨던 예수님 마음을 느껴봅니다.

어떻게 해서든 제자들과 백성들을 죽음의 길에서 생명과 진리의 길로 돌아서게 하시려는 예수님 마음, 어떻게 해서든 깨닫게 해서 죽음에서 돌아서게 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시는 예수님의 애타는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이번 한 주간 보다 단순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어린이 마음으로 살아가다 보면 우리 시선이 조금씩 정화되겠지요. 인간적 눈, 세속적 눈을 조금씩 감게 될 때, 영적 눈, 순수하고 맑은 눈, 신앙인의 눈, 관상가로서의 눈, 예수 그리스도의 눈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화된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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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 수도회 양승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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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000이다"라는 표현은
하느님이 당신을 계시할 때 사용하시는 표현이다.

모세가 야훼 하느님께 불리움을 받았을 때
"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고 말하면 그들이 '그 하느님의 이름이 무엇이냐?'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곧 나다"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너는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분은 나다-라고 하시는 그분이다'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라."고 말씀하셨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여러 가지 모습으로 계시하셨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생명이요 부활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그 가지이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등 여러 가지로 당신의 정체를 표현하셨다.

사람들이 당신을 모르니까
당신 스스로 당신의 정체를 밝히신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한 두 마디로 당신 자신을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다양하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 것이다.

이렇게 당신의 숨겨진 부분을 드러내는 것을 계시라고 한다. 즉 계시란 하느님 편에서 보여주시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하느님이 보여주시지 않고 가르쳐 주시지 않으면 볼 수 없고 알아들을 수 없다. 보여주셔야만 볼 수 있고 들려 주셔야만 들을 수 있고 가르쳐 주셔야만 알 수 있는 것 그것이 계시이다.

그래서 카톨릭 교회를 계시 종교라고 한다.
즉 인간에 의해서 세워진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 즉 하느님이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인도해주시는 교회라는 뜻이다.

가톨릭 교회의 창시자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톨릭 교회의 교리를 가르쳐 주시고 진리를 가르쳐 주실 수 있다.
예수님만이 하느님의 나라를 가르쳐 줄 수 있고 설명할 수 있고 인도해줄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즉 예수님은 모든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이시고,
알아야 할 진리이시며
먹어야할 생명이시라는 것이다.

예수님만이 아버지께 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줄 수 있다.
그래서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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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수님은 길, 진리, 생명으로 계시하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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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지성과 의지와 감정이 있다.
즉 인간의 구조는 지, 정, 의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가지 기능이 균형있게 조화를 이룰 때 인격자가 된다.
어느 한 부분만 발달되어도 안되고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서도 안 된다.
인간은 의지가 있기 때문에 무엇을 이루고자 한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길을 찾는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걷고 전진하고자 하고 진보하고자 한다.

그러려면 인간이 걸어가야 할 길이 있어야 한다.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의지는 있는데
어디로 가야하는 지를 모를 때 헤메이게 된다.
따라서 의지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좋은 뜻을 이루는 길을 발견해야 하고 반드시 그 길을 가야 한다.
그래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걸어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하고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즉 인간은 길을 찾는 존재요,
길을 걸어가는 존재이다.
그래서 求道者자라고 한다.

인간은 지성을 가진 존재이다.
파스칼이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고 말했듯이
인간만이 생각할 수 있는 존재요, 지성적인 존재이다.
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알고자 하고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이다.
이런 지성이 있기 때문에 발전하는 것이고
지구를 정복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만물의 영장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지성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진리이다.

진리를 알 때만이 인간이 가야할 길을 올바로 걸어갈 수 있다. 진리를 모르면 얼마든지 잘못된 길로 갈 수 있고 결국 멸망의 길로 갈 수도 있다.

지난 4월 27일에 복자품에 오르신 알베리오네 신부님은 자주
"이 인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인간 대중은 어디로 가는가?
가기는 가고 있으나,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 자기의 목적지를 향해서 가고 있는가?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지도 모르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과연 오늘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 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오늘 날 우리 사회와 가정 그리고 개인의 위기는 진리의 위기이다. 즉 무엇인 진리이고 거짓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혼돈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 좋은 머리를 가지고 얼마나 나쁘게 사용하고 있는가? 왜 그런가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즉 옳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진리를 모르니까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고 가야할 길을 가지 않는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내가 가야하고 알아야할 진리를 알고 있는가?

골베신부님은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진리를 뜯어 고칠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고 발견하고
진리에 봉사하는 일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진리가 무엇인가?

요한은 자기복음 서론에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들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1,35)고 하였듯이 예수님이 진리이시다.

따라서 예수님을 아는 것이 곧 진리를 아는 것이요,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을 때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를 알게 된다.

인간이 진리의 길을 걸어갈 때 그것이 곧 생명이다.
즉 생명의 길을 걷는 것이다.
이런 생명의 길을 걸어가려면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하다.
인간이 진리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은총을 주시는 분이 곧 예수님이시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너희는 나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15,4-5)라고 말씀하셨듯이

생명이신 예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생명은 오직 예수님 뿐이시다.
모든 것은 생명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생겨났다.
예수님은 생명의 원천이시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3-4)

인간이 균형잡힌 발전을 하려면 인간의 세 가지 기능
즉 지, 정, 의가 골고루 그리고 올바르게 발전해야 한다.

우리의 신심도 마찬가지이다.

감정만 앞세워서 신앙 생활을 하는 것도 위험하고 지성적으로만 신앙생활을 하려는 것도 위험하다. 모든 것은 다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균형잡힌 인격자가 되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 것은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5,48)라고 말씀하신 대로
인간이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이다.
즉 우리의 완전한 모습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닮는 것이요,
그 아버지를 닮는 것은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예수를 닮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유일한 길이시고 진리이시고 생명이신 분이시다.

진리가 곧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고 진리인
그 길을 걷는 것이 곧 나에게 생명이다.
진리인 그 길을 걸어갈 때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내 인생에 있어서 내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진리이시고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시며 내가 먹어야할 생명이신 분이시다. 생각해 보라.

이 세상에서 생명으로 가는 유일한 진리이시고 길이시고 생명이신 그분을 모르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모르고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길을 잃고 헤메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스도인은 길을 잃고 헤이는 길 잃은 양들을 찾아 나서는 이들이며 그들을 착한 목자에게로 인도해 주는 이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고 혼돈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진리를 전하고 증언하는 이들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7-19)라고
기도하신 것처럼
무엇보다 먼저 진리로 거룩해져야 할 사람들이다.
그래야 올바른 길로 안내할 수 있고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 예수님은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시다."라는 말씀을 항상 기억하며 생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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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오로 수도회 유광수 신부
  |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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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던 발길 멈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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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주일 형제들과 꽤 ‘빡센’ 작업을 하고 왔습니다. 계속되는 육체노동에 힘겹기도 했지만, 따뜻한 봄 햇살에 기지개를 활짝 펴는 한적한 바닷가 풍경을 듬뿍 마음에 담아왔습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올랐습니다. 아침 이슬을 잔뜩 머금은 작은 풀꽃들이 투명한 아침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곤 했는데, 그 자태가 너무나 예뻐 자주 가던 발길을 멈추곤 했습니다. 작은 풀꽃의 아름다운 자태에 한껏 취해 자주 발길을 멈추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를 바라보는 하느님의 시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생을 바라볼 때, 너무나 하찮아 보이고, 정말 보잘것없어 보이고, 또 비참해보이기도 하겠지만, 하느님 시선으로 바라볼 때는 절대 그렇지 않으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하느님의 시선은 우리 인간의 시선과는 달라도 확실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의 인생이 엄청나게 꼬이고 꼬였다 할지라도, 우리 삶이 갖은 죄로 얼룩졌다 할지라도, 우리의 나날이 실패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우리 각자의 삶은 그런대로 봐줄만하리라 확신합니다. 너그럽게 봐주시리라 확신합니다.

그분 눈앞에 우리 각자의 인생은 너무나도 예뻐 하느님께서는 자주 가시던 길을 멈추실 것입니다. 우리의 향기에 도취되셔서 감탄사를 연발하실 것입니다. 특히 흔들리고 방황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분 눈에 더욱 예뻐보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필립보 사도는 예수님께 이렇게 아룁니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한번 뵙는 것, 그분이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것은 당시 제자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과제 중에 가장 큰 과제 역시, 하느님 그분이 어떤 분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그분의 실체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이 사랑 자체이신 분이라는 것을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극진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침 햇살에 빛나는 작은 한 송이 풀꽃의 자태 앞에 넋을 잃고 바라보듯이 하느님께서도 작디작은 우리의 인생 앞에 감탄사를 연발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별 볼 일 없는 한 송이 들꽃 앞에 오래도록 발길을 멈추듯이 하느님께서도 하찮아 보이는 우리 각자의 인생 앞에 오래도록 발길을 멈추고 사랑 듬뿍 담긴 시선을 지속적으로 보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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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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