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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완전한 유일한 이콘(상)
조회수 | 2,499
작성일 | 05.04.22
아버지의 집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아들들을 기다리십니다.
아버지의 집은 지상과 천상의 거룩한 곳입니다.
아버지께 믿음을 두는 아들들이 가는 곳입니다.
거룩함의 집 그 곳은 더럽혀지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 곳에는 아들이 거처해야 합니다.(루가 2,49)
아들이 그 집의 머리이지만
독생자의 모든 형제들인 우리 모두가
바로 그 집을 이룹니다.(에페소서 3,6)
아버지의 집은 제한이 없습니다.
거처할 곳이 많습니다.(요한 14,2)
주님이 제자들이 거처할 곳을 준비하십니다.
주님이 계신는 곳에(요한 12,26 ;17,24 ; 마태오 8,10)
또는 아버지 안에(요한1,18) 제자들 역시 거처합니다.
이것이 바로 모두 함께 하는 거처,
복합성, 통합성이 기초된 공동체적 거처를 말합니다.
모두 함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다른 협조자(파라클리토)를 약속하십니다.(요한14,7)
진리의 영입니다. 진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14,6)
세상 위에 첫 째 영만이 오십니다.
그 영이 거처하고 살게 해주십니다.
영은 아버지께 안내하는 아들의 거처를
제자들이 받아들이도록 준비해줍니다.
영만이 오직 그리스도를 계시하시고
그리스도는 아버지를 계시하시며
영은 아버지께 다시 안내십니다.

영의 활동으로 제자들은 삼위일체의 거처가 됩니다.
그러나 각자의 거룩한 인격의 구별과 기능 안에서 하나의 거처가 됩니다. 제자들은 천상 거처에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여기 아버지의 집이 복된 삼위일체의 거처이고 그곳에서 인간은 구원되고 거룩하게 되며 하느님 같이 신성한 인간은 복된 손님으로서 살아가는 곳입니다. 결국 거처는 상호적입니다.

삼위일체의 중심에 각자 복된 인격이 서로 다른 인격들의 감소나 증가 없이 함께 합니다. 이 같이 상호 일치적 영원한 삼위일체는 모든 구원된 사람들 수용합니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가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요한14,4)

주님은 마지막 계시를 보여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토마는 우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 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냐고 묻습니다. 토마는 늘 확실히 눈으로 보고 길을 가보았어야 믿습니다. 정확한 성격이 좋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제 당신의 호칭을 결정적인 토마의 질문에 맞춰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요한 14,6;출애3,14) 길, 진리, 생명 이 세 가지는 특별합니다.

첫 째 길은 제일 중요합니다.

길은 새롭게 아버지께 가는 길을 가리킵니다. 아버지는 단순히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옮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인격이십니다. 길이신 아들의 인격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습니다. 아들 주님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십니다.

사람 예수 그리스도(1디모테오 1,5)는 유일한 사제적 중재의 궁극적 기능들을 살아가십니다.(히브리서 8,6;12,24)
이 모든 것의 상징적 함축적 표현이 ’나는 문입니다.’(요한 10,9)라고 나타납니다.
이 길은 역시 진리로서 게시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요한1,14.17),

아버지의 결정적인 현실(요한1,18)로서 파견된 진리,

유일한 계시자입니다.(마태11,17)
하느님 안에 있는 진리는 인간을 위한 것이며 거룩한 생명 자체입니다. 또한 빛의 상징으로도 표현됩니다.(요한1,4)

생명은 비록 유일한 것은 아니더라도 하느님 존재의 가시적이고 근본적인 특성을 가리킵니다.(요한11,25;1요한5,20;1,4.16) 아마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신적인 생명 거룩한 생명이 유일하고 참스런 존재라는 감각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는가 생각합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생명을 선물하시고 풍요롭게 생명을 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요한10,10) 그러나 결국 생명은 주님이시고, 우리가 느끼듯이 우리 안에 삼위일체의 인격들의 거처, 그 분들 안에 우리의 거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대들이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입니다.’(요한14,7) 안다는 것(gin sk )은 인식한다, 깨닫는다, 깊은 경험을 갖는다,입니다.

아버지만이 오직 아들 안에서 알게되고, 아버지에 대한 앎은 아들이고 아들을 안다는 것은 이미 아버지를 아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유일한 현실입니다.(요한10,30)제자들은 아직도 혼란스럽습니다.

이제 베드로와 안드레아의 고장 베사이다의 필립보가 질문합니다.’

아버지를 뵙게 해주십시오.’(요한14,7)
모세도 원했던 같은 질문(출애33,18)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대답은 지독한 No!였습니다.
’너는 나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사실 하느님의 얼굴을 보는 인간은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출애33,20)
선한 히브리 사람 필립조는 성서를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의 질문은 감행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방금 말씀하신 것과 일치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오래 전에 제자들을 부르셨고 그들과 오랫동안 함께 지냈습니다.
어떻게 그를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도 신앙생활 하면서도 아직도 주님을 모르십니까?
그들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나봅니다.

그리스도는 볼 수 없는
아버지의 완전한 유일한 이콘(상)입니다.(골로1,15;요한1,18)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선물된 유일한 가능성으로서 아버지의 볼 수 있는 유일한 형태입니다.
하느님의 구체적인 이콘, 하느님을 관상할 수 있는 얼굴, 하느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입, 명백한 살을 가지신 그리스도입니다.
’나를 본 사람은 이미 아버지를 보았습니다.’(요한14,9)
아들이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아들 안에 계시는 상호 존재 방식으로 현존합니다.(10a)
말씀도 당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아들은 진실로 하느님의 위대한 대변인 천사입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위해 봉사하는 분이십니다. ’
진실히 말하거니와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들을 또한 할 뿐 아니라
그보다 더 컨 일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요한14,12)

예수님께서는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형시켰습니다.(요한 2,1-12)
제자들은 영으로 포도주와 빵을
당신 몸과 피로 변형할 것입니다.
제자들도 성서에서
주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요한4,46-54 ; 5,1-9 ; 6,1-15 ; 6,16-21 ; 9,1-41 ; 11,1-45)

제자들은 모든 그들의 믿음을
부활 안에서 준비해야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위해
영이 도와주고 약속합니다.(요한14,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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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곽승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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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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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길눈이 어두운 것을 아는 동기들은 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갈 때면 꼭 한마디씩 거듭니다.

"넌 내비게이션이 없었으면 운전 못했을 거야.”

그렇습니다. 저는 길치입니다. 여러 번 갔었던 길도 잃어버리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내비게이션을 켜 놓고도 길을 잘 못 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전에 갔던 길을 갈 때에도, 지름길로 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며 내비게이션의 말을 아주 잘 들으려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내비게이선이 가고 싶어 하는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신문이나 뉴스를 볼 때마다 세상사의 많은 변화와 어려움으로 가야할 곳이 어딘지, 어떤 것이 정말 중요한 가치인지 모르고 갈팡질팡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는 합니다. 이런 상황 안에서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에 자주 빠지게 됩니다.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삶을 살아가며 산란함에 빠질 수도 있는 우리들에게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동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우리들은 대개 삶의 문제나 어려움이 생기면, 다른 이들에게 조언이나 삶의 지혜를 청합니다.
'아~ 그건 내 경험으론 이렇게 해야 해. 이렇게 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 이렇게 하는 게 가장 좋은 거야. 물론 삶의 풍파를 경험한 인생의 선배들과 지혜로운 이들의 조언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다른 이들의 경험과 성공담을 좇아가는 이들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삶의 가장 첫 자리에 하느님을 모시고 최종 목적지인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는 이들입니다. 바로 최종 목적지인 하느님 나라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가장 좋은 ‘내비게이션’이 되어주십니다.

우리 삶의 여러 난관들과 상황들 안에서 그 앞에 나아가 묻고, 기도하고, 청할 예수님께서 계셔서 다행입니다.

마음이 산란해져 있는 우리들 앞에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 아버지의 뜻을 알려 주시고 그 길로 이끌어 주실 예수님께서 우리 앞에 계십니다.

2000년이 넘게 성체의 형상으로 그 좁은 감실에서 우리를 만나고자 기다리시는 주님, 미사성제 안에서 매번 사제의 축성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와 함께 이 길을 걸어 주시는 주님. 성경 속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으로써 우리를 이끌어 주시려는 주님 앞에 나아가 그분께 도움을 청하는 한 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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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김은석 요셉 신부
2020년 5월 10일 대전교구 주보에서
  |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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