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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하느님의 협조자 파라클리토
조회수 | 3,492
작성일 | 05.04.29
옛날 이스라엘 법정에서는 피고인에게 선고가 내려질 때 권위있는 어떤 사람이 말없이 피고인 곁에 서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를 일컬어 협조자(파라클리토)라고 했습니다.

곁에 함께 서있는 그 무언의 증언만으로도 법정은 흔들렸고 결국 피고인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피고인에게 파라클리토라는 존재는 큰 위로자며 협조자이고 변호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협조자란 단순히 도움을 주는 협력자가 아닙니다. 내버려두면 죽을 것이 뻔한 사람을 살려내고 구해주는 분이 ‘협조자’입니다. 그만큼 힘 있고 자신의 전부를 걸고 사랑해주는 분이 협조자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또 다른 협조자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또 다른 두 번째 협조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 자신이 세상에 기쁜 소식을 가져다주신 첫 번째 협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요청으로, 예수님 다음에 오셔서,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하느님의 사업을 세상 끝날까지 계속하시는 분이 두 번째 협조자 성령이십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은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었지만 그 구원의 소식은 성령을 통해 끝없이 드러나고 증거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협력자는 우리를 고아들처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언제나 함께 계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약속받은 협조자란 원래 어린이나 노약자처럼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들이 부르기만 하면 언제나 달려가 도와줄 태세를 갖추고 곁에 있는 이를 말합니다. 지쳐 쓰러져가는 사람, 고갈되어 죽어가는 사람, 절망 속에 무너져버린 사람, 그런 사람을 일으켜주고,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며, 새 희망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이가 하느님의 협조자 파라클리토입니다.

사도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로 뛰어가서 성령을 전해주는 협력자가 되었듯이(1독서), 우리는 우리가 간직한 희망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라도 답변하며 희망을 전해줄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2독서).

우리는 하느님의 협조자 파라클리토 성령으로부터 생명을 얻고 있지만 우리 역시도 하느님의 협조자 파라클리토로서 생명을 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누가 내게 도와달라는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리는 협조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우리 역시도 도와달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찾아나서는 협조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당신은 하느님과 사람들의 협조자 파라클리토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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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김지현 세례자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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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하느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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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의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모두 주일 미사에 참례하고 계신 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물론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주일미사에 참례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들을 부를 때 천주교 신자 혹 은 그리스도교 신자라고 부릅니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사실 은 어떻게 드러나겠습니까? 연인을 사랑할 때처럼 상상만으로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쿵쾅거리는 모 습을 보고 알 수 있을까요? 하루에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는지를 보고 알 수 있을까요? 아니면 매일 미사에 빠지지 않고 참례하는 모습을 보고 알 수 있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이며 어떻게 알 수 있는지를 알려주십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라고 알려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조차도 사랑해야한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시면서
무한한 용서와 자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재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시면서
자선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가 되려면 꼴찌가 되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겸손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면서
복음화와 전교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웃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예수님의 계명입니다.
우리들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만나는
이웃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모습으로,
또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위하는 모습으로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이웃을 사랑해야한다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진정 하느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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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김문상 디오니시오 신부
  |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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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1985년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세계 젊은이의 날을 제정하시면서 담화문을 통하여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들으라고 호소하셨습니다.

청소년들은
사랑과 진리를 갈망하지만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방황하는 청소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청소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이들을 파견하고자 하십니다.

청소년 여러분,
한 분이신 참 하느님을 경배하십시오. 우상 숭배의 유혹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거짓된 환상이나 일시적인 유행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사랑 없는 성공과 권력에 대한 유혹은 정신적인 공허만을 남길 뿐입니다. 부와 소비주의, 향락산업, 생명 경시를 조장하는 대중 매체의 유혹을 물리치십시오. 우상 숭배의 유혹을 끊고 한 분이신 참 하느님만을 경배하십시오.

청소년 여러분,
성인(聖人)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십시오. 기도를 즐기고 신앙에 충실하며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그리스도 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특히 성체성사와 고해성사에서 힘을 얻어야 합니다. 당신의 복음에로 부르시는 그리스도의 호소를 외면하지 말고 “당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저를 불러 주소서.”(1985년 22차 성소주일 담화문)라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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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성인(成人)들을 통하여 청소년들을 부르십니다. 성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청소년들을 부르실 수 있도록 기꺼이 주님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청소년들을 사랑하신 것과 같이 청소년들을 사랑하십시오. 청소년들을 위한 봉사는 교회를 위한 봉사입니다. 청소년들을 이해하고 인격적으로 친해져야 합니다. 다가오지 않으려 하는 청소년들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어야 합니다.

청소년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 수 있도록 어른들이 힘껏 도와주십시오. 그리하여 청소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복음을 생활하고 생활하는 복음을 또래들에게 전하는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동정 마리아와 함께 청소년들이 그리스도를 따라 바른 인생길을 걷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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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주국진 신부
  |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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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내 안에 너 있고, 너 안에 나 머무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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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너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의 유행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안에 너 있다.”라고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 이 말은 연인들에게 한때 유행이었습니다.
하나임을 뜻하는 이 말을 듣는다면
누구라도 자신이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당신의 크신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나누시는 사랑의 일치에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이신 성삼위 안에 우리를 같은 사랑으로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늘 당신 마음에 우리를 품고 계시는 그분은 결코 우리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복음의 내용인 것입니다. 나와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이 우리 믿음의 내용입니다. 그분은 늘 나와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시므로 우리의 모든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십니다.

이렇듯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 내가 남몰래 지은 모든 죄와 허물을 다 알고 계시기에 거기에 따라 심판을 받는 것 아니냐며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묵상해보면 하느님께서 그만큼 나를 잘 아시기에 나를 이해하시고, 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자비로이 받아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보통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여 비난하고 소외시킬 때는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에 대해서 어설프게 알거나 잘 모르고 그럴 때가 많습니다. 반대로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의 모든 것을 잘 알고 계시는 주님이기에 오히려 우리를 변호하시고 지켜주십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버려짐과 소외의 두려움 속에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생명을 등지는 상황에서 주님의 이러한 사랑은 우리에게 큰 희망과 위로를 줍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그분을 우리 마음속에 모셔야 할 것입니다.

이런 관계에 이르렀을 때 사도 바오로의 고백처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도종환 시인은 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비에 젖지 않고 피는 꽃은 또 어디 있으랴.’
길가에 피어나는 작은 꽃들도
다 흔들리며 비에 젖는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우리의 인생 또한 때로 갈등의 바람에,
유혹의 바람에,
욕심의 바람에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근심과 걱정의 비가 내리고
좌절과 고통의 비가 내리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면 행복의 꽃이 필 것입니다.
사랑의 꽃이 필 것입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고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물 때,
빛이 아무리 작더라도 그 빛은 어둠을 이깁니다.
지금 자신의 몸에 성령의 불을 붙이십시오.
그분의 도움을 청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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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권오관 득인 베드로 신부
2017년 5월 21일 대구대교구 주보에서
  |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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