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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두려워 하지 마라
조회수 | 2,087
작성일 | 05.06.18
오늘 연중 제12주일의 복음말씀은 지난주일 복음의 계속입니다.

지난주일, 길 잃은 양들에게, 그리고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은 곳으로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예수님께서 오늘은 파견받은 제자들이 가져야 할 용기와 각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 핵심은 ‘두려워하지 마라'입니다. 무엇을 두려워하지 마라는 것일까요?

오늘 복음에는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이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그 하나는 “그런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이 두려움은 살아가면서 늘 겪는 두려움이 아니라, 복음 선포를 위해 파견 받는 사람들이 겪는 두려움, 그리고 우리 신앙인이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믿음을 고백해야 하는 순간에 겪는 그런 두려움입니다.

사실 복음이 선포되는 곳이면 어디에나 늘 박해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복음이 거절당하고 박해받는다고 해서 ‘복음의 운명'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감추인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히려 주님으로부터 귓속말로 들은 것까지도 전하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은 후렴처럼 반복됩니다.

두 번째 말씀은
“육신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 곁에는 언제나 박해가 뒤따릅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현세 생명’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박해자들의 힘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현세 생명 이상은 미치지 못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어쩌지 못합니다.
그러니 진정 두려워해야 할 분은 영원한 생명을 심판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아버지께서 너희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세어 두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운명’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현세 생명’도 모두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 하늘의 참새도 들판의 풀잎도 보살피는 하느님께서, 소중한 사람이야 더 소중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하느님께서
나의 머리카락까지도 소중히 여기심을 믿어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생명까지 버릴 각오로, 용기 있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할 현장에 서있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예를 들어보면, 우리는 과연 음식점에서 식사하기 전에 기도합니까?
아니면 생략합니까?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창피하게 생각되어 그냥 모르는 척하고 먹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식사하면서 기도를 안하고 먹는다고 하여 큰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기도하면서 식사를 하는 것에 대하여 왜 부끄러워하는가?'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주님께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그럴 것입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주님을 믿는 것에 대하여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자신이 천주교 신자라는 것을
자랑하기보다는 부끄러워하면 주님께서도 이 세상의 마지막날 심판 때에 우리를 모르신다고 하실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란
남이 못하는 것을 한번 해보는 것이 아니라, 그 결심한 바를 죽을 때까지 지속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고 어려움을 뚫고 믿음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순교라는 영광을 우리 가슴엔 품지 못하더라도 작은 실천이라도 버리지 않고 신앙을 갈고 닦으며, 새로 또 시작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무서울 것 없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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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안상일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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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두려움에 맞서는 힘,
주님의 사랑을 믿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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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는
원치 않았으나 주님으로부터 예언자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눈물의 예언자’로 불릴 만큼 예언자 생활을 하는 동안 내내 번민과 고통 속에서 지냈습니다. 그는 조국이 망하고 백성들이 포로 생활을 통해 겪게 될 쓰라린 미래를 예고하면서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오히려 비난과 반대에 부딪히고 투옥되어 죽도록 고생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런 절망스럽고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탄식만 하지 않고 하느님께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고백하며, 주님을 찬양하는 기쁨의 노래를 부릅니다.

예레미야의 모습에서
우리가 가야 할 참 신앙의 길을 봅니다. 우리는 살아가다 보면 온갖 어
려움과 인간적인 한계에 부딪히며 두려움을 겪습니다. 갑자기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닥친 경우,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난 경우, 자기만족과 욕심만을 채우려는 누군가에 의해 손해를 보는 경우 등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하느님께 불평불만만을 토로하고 탄식하기보다는 나를 향한 주님
의 사랑을 굳건히 믿고, 모든 일을 하느님의 일로 바라보고 받아들였던 예레미야의 모습을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인간적인
불안과 두려움에 둘러싸인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오 10,28)

오늘날 우리는
사회의 구조 악과 더불어 권력과 경제력을 등에 업고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이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들로 인해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두렵지 않을 수 없겠지만, 인간에게서 나온 거짓과 탐욕을 두려워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 물질과 권력 그 무엇으로도 주님께서 지으신 영혼을 죽이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 고통과 불의 앞에 두 가지 자세를 함께 지녔으면 합니다.

하나는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말고, 주님의 사랑을 확고히 믿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매 순간 그 두려움을 이기고도 남을 사랑으로 나를 귀하게 여기시어 나의 고통 중에도 영원한 축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주님 사랑의 힘을 믿고 내 영혼을 어쩌지 못하는 세상의 불의와 불평등과 악의 세력에 두려움 없이 맞서는 것입니다. 실천 없는 사랑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요한1서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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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박혁진 요셉 신부
2020년 6월 21일 군종교구 주보에서
  |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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