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가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9 92.4%
[안동]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
조회수 | 2,404
작성일 | 05.07.22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하느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은 제가 듣기에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라고 가르쳐주시는 것 같습니다.

제1독서에서
솔로몬은 하느님께서 그를 어여삐 보셔서 원하는 바를 말하라고 말씀하시자 이렇게 청을 드립니다. "소인에게 명석한 머리를 주시어 당신의 백성을 다스릴 수 있고, 흑백을 잘 가려낼 수 있게 해주십시오. 감히 그 누가 당신의 이 큰 백성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이런 솔로몬의 청이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장수나 부귀나 원수 갚는 것을 청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는 눈에 보이는 것을 청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청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의 청을 들어 주십니다. 솔로몬은 보이는 것을 청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가치를 충분히 알았기에 하느님께 그런 청을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 역시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농사꾼이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을 발견한 것과 같이, 장사꾼이 값진 진주를 발견한 것과 같이 하느님의 나라는 모든 것을 투자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말하자면 하느님의 나라는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추구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이기에 이렇게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정의와 평화의 왕이신 하느님께서 다스리는 나라요,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이런 분을 왕으로 섬기며 사는 백성은 참으로 행운아일 것입니다. 왕이신 그분은 백성을 강제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백성을 섬기며 다스리실 것이고, 백성들은 마음놓고 이웃을 사랑하며 기쁨을 나누며 사는 사람들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것만 찾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이웃부터 먼저 챙겨주고 사랑과 기쁨을 만끽하며 사는 나라 이것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이런 하느님 나라의 백성은 눈에 보이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즉 나눔과 섬김의 가치를 알고 그것이 인간을 참으로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이고 참 행복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백성입니다. 오늘 예수께서는 바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라고 보물과 진주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우리는 보이는 것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을 돌립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2고린 5,18)

이런 의미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내적인 것이며, 영적인 것이요, 위로부터 오는 것이며, 천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가운데 하나는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보이는 것은 모두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임을 금새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믿음으로써 인간을 참으로 인간되게 하는 것,

즉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현혹되지 않고 좀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더라도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 즉, 사랑과 기쁨 진실과 평화 같은 것들의 가치를 깨닫고 그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또 말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영적이며 천상의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것이
한편으로는 어렵고 괜한 수고를 하는 것 같이 생각되더라도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모여서 마침내는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이 사도의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감사하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어야 하며, 하느님께서 아버지이시기에 어련히 알아서 잘 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열심히 최선을 다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

안동교구 박윤정 바오로 신부
459 92.4%
참된 보물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일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무더운 여름 날씨에 사람들은 저마다 피서 계획을 세우고 있을 요즘 푸른 들판을 벗삼아 더위와 맞서고 있는 우리들에게 오늘 주님께서는 참된 보물인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고 계십니다. 오늘도 이 비유를 통해 희망을 주신 주님의 말씀을 벗삼아 영적으로 시원한 한 주일을 맞이하도록 합시다.

오늘 복음은 지난 주에 들은 ‘가라지의 비유’ 다음에 나오는 말씀으로 하늘 나라에 관한 비유의 마지막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밭에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와 바다에 던져진 그물’을 통하여 하늘 나라의 신비를 말씀하셨는데 놀랍게도 제자들은 이 말씀을 다 깨달았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전쟁이 잦아 밭에다 보물 단지를 숨겨 두고 피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서 피난을 떠난 사람이 살아서 돌아 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보물은 그대로 밭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럴 때 그 밭의 소작인이나 혹은 날품팔이 꾼이 우연히 그것을 발견하고 그 밭을 사게 되면 합법적으로 그의 소유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진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주를 찾는 사람이 우연히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면 그는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살 것입니다. 보물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진주의 비유도 우연히 발견했다는 점과 또 자기 재산을 처분하여 그것을 가졌다는 점이 공통점입니다. 여기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전적인 자기 봉헌을 의미합니다. 이런 봉헌이 가능한 이유는 그것이 가져다 주는 기쁨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물과 진주는 곧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찾고 있는 가장 귀한 보물이며 그 나라에서 우리는 무한한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또한 ‘그물의 비유’도 들려 주셨는데, 고기를 잡은 어부들은 호숫가에서 그물을 풀어 놓고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가려 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어부는 주님을 뜻합니다. 주님께서는 어부로서 그물을 던지시고 또 잡은 고기들을 직접 골라 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잡은 고기를 골라 내시듯 각자의 값어치에 따라 공정한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와 그것을 차지하는 기쁨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가 귀한 보물처럼 우리에게 다가 오긴 하지만 과연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살 정도로 하늘 나라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한번 되돌아 봅시다.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를 벌어 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선물로 받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그 선물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가볍게 생각한다면 그 가치는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복음에 나오는 비유는, 주인이 맡긴 돈을 배로 늘려 주인에게 되돌려 준 종과 그것을 그냥 땅에 숨겨 둔 종의 비유(마태 25,14-30)와 흡사합니다. 주인으로부터 받은 돈을 배로 늘려 주인에게 되돌려 준 종은 칭찬을 받았지만 그것을 그냥 땅에 숨겨 둔 종은 쓸모 없는 종으로 낙인 찍혀 어두움 속으로 내던져 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선물로 받은 하늘 나라를 잘 간직하고 나아가 그 선물에 걸 맞는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삶(1테살 5,17-18)을 살아간다면 그것이 우리가 주인이신 주님께 드리는 이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하늘 나라라는 보물은 기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주인으로부터 갑자기 받은 돈처럼 거저 주어졌다는 사실 때문에 자칫하면 가볍게 생각하거나 소홀히 다룰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큰 위험 요소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에 따르는 위험은 바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이라는 보화를 구태여 찾지 않아도 얻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이 보화는 밭에 묻혀 있듯 이미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분명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가지기 위해 가진 것을 다 팔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았다는 것은 전적인 자기 봉헌과 투신을 의미합니다. 이는 적당히 거래하는 경우가 아니라 거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제자들의 모습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어느 날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하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마르 10,28-3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세에서 받는 백 배의 상과 내세에서 누릴 영원한 생명은 바로 우리가 차지해야 할 보물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고 물은 어떤 한 부자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면 하늘 나라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루카 18,22)”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로운 보물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손에서 내려 놓으라는 말씀입니다. 이렇듯 하늘 나라라는 새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진 것을 다 팔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보물을 얻기 위해 가진 것을 다 팔거나 나누어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씀 하셨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차지하게 될 보물이 너무도 값지고 좋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주고 싶어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 말씀을 믿고 그것을 얻도록 합시다. 그러면 틀림 없이 큰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들려주신 주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는 삶이 되어 봅시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 13,44).

권상목 요한 신부
  | 07.26
459 92.4%
[안동] “어둠에서 빛으로, 차별에서 평등으로”

무더워서 그런지 하루하루가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작년과는 다른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됩니다. 2016년 대한민국의 아침은 한숨과 답답함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뉴스를 보거나 신문을 펼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한 주간을 열심히 살아온 교우분들께 기쁘고 활기찬 이야기를 나누어야하는 주일 강론은 현 정부에 대한 비판과 개인적으로 느끼는 참담한 심정을 토로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잊고 지냈지만 지난 2016년은 세익스피어 사망 400주년이 되는 해로 세계적으로 그의 문학을 재조명하고 기념하는 한 해였습니다. 또한 성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쓰여 진지 50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 두 종류의 책을 통하여 암울한 우리 현실의 이유와 과정 그리고 그 끝을 짐작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희망을 지닐 수 있었습니다.

현명한 판단을 이야기한 오늘 독서와 복음에 관련된 내용을 “리어왕”에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늙은 왕 리어는 세 명의 딸들에게 왕국을 나누어주고 여생을 가장 사랑하는 막내딸과 지내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효성을 시험하여 봅니다. 탐욕스럽고 지극히 이기적인 큰 딸 ‘고너릴’은 “아버님에 대한 제 사랑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아버님을 온 우주와 값비싼 보석보다 아름다움을 지닌 목숨보다 더 사랑합니다. 저는 일찍이 자식이 부모에게 바친 적이 없는 지극한 효심으로 아버님을 모실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둘째 딸 ‘리건’은 “저도 언니와 같은 마음입니다. 다만 세상의 어떠한 즐거움도 아버지를 향한 효심보다 즐거울 수 없습니다. 저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에서 세상의 기쁨과 행복을 찾습니다.”라고 말하여 유산을 받지만 가장 기대를 걸었던 ‘코넬리어’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딸로서 의무를 다할 뿐입니다. 결혼하면 남편도 사랑해야하므로 아버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여 리어왕에게 유산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으며 쫓겨나게 된다. 이후로 리어왕과 그의 자녀들은 폐륜을 저지르다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올바른 판단력 그리고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일인가를 보게 됩니다. 아울러 토머스 모어는 자신의 저서 ‘유토피아’에서 사회적 지배계층의 자본주의를 지향할 때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은 범죄와 기아로 죽음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범죄와 차별이 없는 사회는 공공의 이익(res pubilca, 공화주의)을 위한 기본정신과 평등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유토피아’임을 주장합니다.

한 가지 더 솔로몬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고 싶습니다. 솔로몬은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선물(카리스)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자기 교만과 우월주의에 빠져 1,000명의 부인과 후궁을 두었으며, 어마어마한 그의 소득(년봉 금 666달란트)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탐욕과 차별에 의한 사치와 향락의 삶으로 결국 이스라엘 왕국을 분열과 멸망의 길로 이끌게 됩니다.

저는 두 작가의 작품과 성경에서의 솔로몬에 대한 증언을 통하여 우리의 현실에 대한 슬픔과 울분의 원인을 찾아 볼 수 있었으며,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희망을 지니고 2017년 하반기를 살아갑시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반성할 줄 아는 우리들이었습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우리들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을 발견하고 우리의 모든 능력과 재산을 다 투자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입니다.

어둠이라는 터널을 이제 막 벗어나고 있습니다. 서로가 평등을 지향하며 권리와 의무를 실천하고 누리는 시간이 도래하였습니다. 교만과 탐욕이라는 우리안의 악한 본성을 극복합시다.

오늘의 주일 미사는 이러한 희망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얼굴은 주름지고 노동으로 검게 그을린 교우 분들이 보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식들과 본당을 방문한 이들에게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마음에서 겸손함과 하느님의 마음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 감사”

▥ 안동교구 박재식 토마스 신부 : 2017년 7월 30일
  | 07.29
459 92.4%
[안동] 먼저 보물을 찾을 것인가? 보물을 보는 눈을 청할 것인가?

-------------------------------------------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밭에 숨겨진 보물, 좋은 진주를찾는 상인,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고 하십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에 비유하신 대목은 하늘나라가 밭에 숨겨진 보물 같다는 말이 아니라 밭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 다시 숨겨두었다가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 사람의 심정이 하늘나라의 귀중함에 닿아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는 비유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고,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산 상인의 결단이 하늘나라의 가치에 매료되어 내린 것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는 말은 하늘나라가 완성되는 종말의 날에 이루어질 심판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봅니다.

비유 말씀을 종합해보니 하늘나라를 찾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먼저 하늘나라를 보는 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솔로몬은 주님께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하는 자신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주님은 솔로몬이 청한 바를 좋아하셨고 그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솔로몬이 듣는 마음을 청한 것은 하느님 목소리에 언제든 귀를 열어 있으려는 겸손한 자세입니다. 또한 하늘 나라를 보고 찾아 이룰 수 있는 기본능력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으로 살아가고 각자 어느 곳에 있든 날마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고유한 증언을 하면서 거룩한 사람이 되라고 부름 받고 있습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4항). 거룩한 사람이 되려면 일상에서 하늘나라를 찾고 보고 이뤄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늘나라의 보물을 찾으려고 먼저 나서기보다 보물을 찾는 마음을 달라고 청하는 것이 먼저일 것입니다.

코로나로 모든 것이 멈추고 이전과는 달리진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도 이전 같지 않습니다. 이 시간이 하늘나라 보물을 찾는 우리 사명을 잠시 잊는 시간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이 시간에 보물을 찾는 우리 눈이 흐릿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안동교구 백동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2020년 7월 26일 ‘안동교구 주보’에서
  | 07.24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수도회] 예수님 편에 선 사람들  [2]
!   [인천] 시간이라는 밭에 무엇을 자라고 있는가?  [4]
!   [서울] 그리스도인의 기쁨  [5]
!   [의정부] 소출을 바라시는 하느님  [2]
!   [수원] 악한 소작인들의 비유  [2]
!   [군종] 버린 만큼 채워주시는 하느님 
!   [원주] 지금 우리도 착각 속에 살지 않습니까? 
!   [춘천] 탐스러운 열매를 풍성히 맺으리라  [3]
!   [대전] 하느님 나라 소출을 바치는 민족  [1]
!   [전주] 하느님 사랑 감사하고 나누자  [1]
!   [광주] 포도밭 소작인 
!   [안동] 도조를 잘 내는 백성들  [1]
!   [대구] 내가 해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냐? (이사 5,4) 
!   [부산] 예수님의 일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2]
!   [마산] 우리는 제 때에 도조를 내는가?  [4]
785   (녹) 연중 제27주일 독서와 복음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1] 2079
784   [수도회]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2] 37
783   [전주] 두 아들의 비유 - 회개와 위선  [1] 88
782   [군종] “하느님 앞에 겸손한 사람!”  67
781   [마산]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사람  [3] 2109
780   [제주] 어떻게 생각하느냐?  [1] 1975
779   [의정부]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2] 2167
778   [대전] 맏아들은 누굽니까? 둘째아들은 누굽니까?  [2] 2295
777   [인천] 뒤집어야(?) 산다 - 예수님은 역전의 사나이  [4] 2345
776   [대구] 예, 아니오  [3] 2382
775   [서울] 자기 격려하기  [8] 2199
774   [수원] 신앙은 입에 있지 않고, 행동에 있다  [5] 2411
773   [춘천] 끝까지 가봐야  [3] 2182
772   [부산] 두 아들의 비유  [1] 2128
771   [원주] 아는게 병?  [1] 1397
770   [안동] 두 아들의 비유  [2] 2255
769   [광주] 자신을 아는 것이 천국이다  [2] 2120
768   (녹) 연중 제26주일 독서와 복음 (맏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3] 1731
767   [수도회] 용서만이 우리가 살 길  [1] 1980
766   [원주] 용서의 체험을 통해서 서로 용서할 수 있다  [1] 2281
765   [안동] 용서하는 삶  [1] 2246
764   [청주] ‘용서’는 어렵습니다.  143
763   [의정부]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1] 1640
762   [대전] 주님의 자비 살기  84
761   [대구]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1] 2002
1 [2][3][4][5][6][7][8][9][10]..[20]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0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