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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하늘나라 문을 열어본 사람
조회수 | 2,359
작성일 | 05.07.25
벌써 몇달째 뵙지 못했던 저희 수도원 '단골 할머님'께서 오셨기에 반가운 마음에 차를 한잔 대접했습니다. '자식들이 다들 효자이니 해외 효도관광이라도 다녀오셨겠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면 도로를 걸어가시던 중 한 운전자의 부주의로 대퇴부를 크게 다친 할머님께서는 장장 4개월 동안이나 병원 신세를 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저는 '그동안 꼼짝도 못하시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냐? 지금은 좀 어떠시냐?'고 여쭸는데, 할머님 대답은 저를 더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70평생 처음으로 그렇게 넉달 동안 꼼짝없이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 처음 한두 달은 심신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통증도 컸지만, 가해자가 그렇게 원망스러웠고 미운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석달째 들어서면서 마음을 바꿔먹게 됐다. 하느님께서 내게 대피정 한번 하라고 이런 기회를 주신 것 같다."

아직도 운신이 온전치 못하신데도 할머님께서는 활짝 웃으시면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요즘은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옆 침대에 누워 있던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머리도 다치지 않았고, 뼈도 제대로 붙었고, 정말 고마운 일이다. 병실에서 지낸 넉달이 힘들었지만 내 평생 가장 좋았던 시간이었다. 정말 하느님을 만난 시간이었다."

만만찮은 고통 가운데서, 이해하지 못할 불운한 사건에서도 하느님 뜻을 찾고 하느님의 눈으로 만사를 바라보려는 할머님의 신앙이 참으로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 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할머님의 신앙고백을 들으면서 진정 그분은 하늘나라의 한 귀퉁이를 목격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늘나라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은 할머님처럼 이 세상의 생활양식을 조금씩 탈피하고 초월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하늘나라의 문을 잠시라도 열어본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비본질적이고 부차적인 것, 잠시 스쳐지나가는 이 세상 것에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이 세상 그 너머에 있는 더욱 가치 있고, 한층 의미 있고, 더욱 영원한 것, 다시 말해서 하늘나라를 추구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가치 중에 가장 큰 가치는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누가 보건 말건, 험악한 저잣거리에서건 거친 들판에서건 자신이 처해 있는 자리 어느 곳에서나 기쁘게 사는 사람, 열악한 상황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그 사람은 이미 천국을 맛본 사람, 천국을 사는 사람입니다.

월드컵 예선전을 바라보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너무도 비본질적인 것들, 엉뚱한 것들에 목숨을 건다는 것입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창창한 어린 선수의 인대나 무릎을 걱정하기보다는 오직 득점만을 생각합니다. 선수 생명에 치명적 태클이나 위험한 파울도 좋은 작전이라며 거칠게 몰아붙일 것을 강요합니다.

진지하고 깊이있는 것들, 지적이고 영적인 것들은 대체로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기고 기피합니다. 대신 즉각 효과가 나타나는 것들,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것들에 목숨을 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생활양식은 조금은 달라야겠지요. 우리는 세상에 있는 많은 대상들 가운데서 좀더 고상한 것, 한층 가치 있는 것, 더 의미 있는 것, 좀더 덕스러운 것, 더 아름다운 것, 더 변치 않을 것들을 추구하고 거기에 목숨을 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최우선적 과제는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신 하느님, 보물 중에 보물이신 예수님을 더욱 적극 추종하는 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라는 보물 중 보물을 발견한 진정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있어 다른 모든 것들은 비본질적이고 부차적입니다.

'선택'에는 반드시 '포기'가 요청됩니다. 하늘나라를 우리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을 삶의 이정표로 삼은 우리에게 있어 이제 예수님 이외의 부차적 요소들에 대한 점진적 이탈과 포기가 요청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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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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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두 주 전부터 계속해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 말씀을 주일 복음으로 듣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한 번도 하느님 나라는 어떤 나라라고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하느님 나라는 마치 무엇에 비길 수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 나라가 마치 밭에 묻힌 보물에 비길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비유 하나를 더 들려 주십니다.

곧 하느님 나라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에 비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비유 두 개를 연속해서 들려 주시는 이유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특별히 강조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두 비유는 서로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비유에 나오는 농부와 상인은 모두 보물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보물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팔아버립니다.
그리고는 원하는 보물을 삽니다.
세 개의 동사가 그들의 행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찾다’, ‘팔다’, ‘사다’
모든 동사가 적극적이고 열렬한 자세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이 두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가르침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너무나 귀한 곳이기에,
이 나라에 초대받은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이 나라에 들어가도록 애써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한다는 것은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예수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한다는 것입니다.

성서에서 보면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서 자신이 움켜쥐고 있었던 것을 기꺼이 버렸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아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배와 그물을 버렸고,
세관장 자캐오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사악한 짓들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자신의 찬란했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지만 자신이 움켜쥐고 있는 것을 다 놓아야 한다는 요구 앞에서 큰 부담을 느껴 끝내 귀한 부르심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오늘 비유의 주인공인 농부나 상인도 모든 재물을 팔아 보물을 사려고 했을 때 많은 부담을 가졌을 것입니다. 위험한 모험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가졌을 것이고 가족으로부터 엄청난 반대에 부닥쳤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부자 청년과 달리 주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였습니다.
그런데 부르심에 대한 응답은 세례받을 당시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좀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 것일까요?
예수께서 아주 간단하게 대답을 주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마태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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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송봉모 토마스 모어 신부
  |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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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작가 고(故) 박경리(데레사)님이 죽음을 앞두고 남긴 말이 맘에 와 닿는다. “가장 순수하고 밀도가 짙은 사랑은 허덕이고 못 먹는 것, 생명을 잃은 것에 대한 연민이다. 모진 세월이 지나가고 이제는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한 방송사의 드라마에서 부모가 반대하는 혼인을 고집하는 큰딸이 엄마에게 대들며 말한다. “내 인생 내가 사는데 엄마가 왜 반대해?” 그러자 옆에 앉았던 아버지가 “아빠 인생 속에는 너희들 인생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땅의 부모들은 자신의 삶 속에 자식들의 인생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우리는 소설과 시, 드라마에서도 삶을 배운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그 말씀이 ‘지금 여기’에서 우리를 위해 말하려는 뜻을 찾아야 한다. 성경을 지나간 역사로 알아듣거나 문학 비평적이고 역사 비평적인 뜻에만 얽매여서는 안된다. 우리 각자는 성경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자기의 고유한 구원의 역사를 써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농사꾼, 장사꾼, 고기잡이하는 사람들에게 잘 알아듣도록 비유로 말씀하셨다(오늘 비유는 마태오 복음에만 나온다).

이스라엘에는 전쟁이 잦아 밭에다 보물을 숨겨 두고 피난하는 일이 있었다. 피난 간 사람이 죽었을 때 그 보물은 그대로 숨겨져 있게 된다. 그런데 가난한 소작인 또는 날품팔이가 남의 밭을 갈다가 우연히 보물단지를 보게 되어 그는 기쁨에 넘쳐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그러면 밭에 뭍힌 보물도 합법적으로 그의 것이 된다. 하느님 나라의 참된 가치를 알아본 사람은 이 농사꾼처럼 처신한다.

이처럼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진주는 그리스도 자신이기도 하다. 밭에 묻힌 보물과 진주의 비유는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찾아올 때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어부들은 물가에 그물을 끌어올리고 나서 먹을 수 있는 것들과 먹어서는 안 되는 것들(율법으로 금하는 뱀장어, 메기처럼 비늘이 없는 고기)을 가려 낸다. 이는 종말에 심판을 가리키는 상징이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채워 주지도 못하면서 우리 맘을 차지하고 있는 쾌락과 나쁜 습관을 버려야 한다.

신앙생활을 충실하게 하는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결정적으로 그 분을 차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하느님 나라는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 세상 속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 자신이시다. 하느님 나라는 영원한 생명이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 마음 속에 있다. 회개와 믿음, 희망과 은총에 의해 우리 각자에게 다가온다. 하늘나라는 우리 개인의 성화와 영성을 가져다 준다. 하늘나라는 영혼이 아니라 인간 전체 속에서 이루어진다. 하느님 나라의 풍요로움은 사회생활 안에서 실현된다. 즉 보다 큰 형제 사랑과 연대, 정의와 평화, 기쁨과 나눔 등으로 실현된다.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성 프란치스코).

우리 모두 복음을 실천하자.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마태 13,51) 제자들처럼 “예”하고 대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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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박문식 베네딕토 신부
  |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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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인(all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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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는 테니스부와 골프부가 있습니다.
운동부에 소속된 학생들이 얼마나 운동을 열심히 하는지 모릅니다. 밥 먹고 하루 종일 테니스와 골프만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손은 온통 굳은살로 덮여 있습니다. 개인생활도 거의 포기한 채 운동에만 몰두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목표를 이룰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며 즐겁게 운동을 합니다. ‘이기겠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되겠다.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겠다. ’ 이런 뚜렷한 목표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을 찾아낸 사람과 우리 학교 운동부 학생들의 공통점은 목표가 뚜렷하고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건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전적인 투신이 필요합니다. 아르바이트 하듯이 해서는 보물을 살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 수 있고 성취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느님 나라보다 귀하고 값진 것은 없습니다. 죽음도 좌절시킬 수 없는 영광이 하느님 나라 시민의 특전으로 우리에게 제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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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장동현 신부
  |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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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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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대부분의 문제는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에 따라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인의 삶에 지나치게 집중할 때
그 시선은 때론 위험천만한 비교로 이어지게 되며,
무분별한 분노,
상대적 열패감과 공허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 안에 만연한,
타인을 의식하고 긍정적 평판과 소문을 성공과 출세의 지름길로 여기는 분위기는, 기득권의 편의를 포장하는 위선과 윤리적 타락을 양산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세대를 거듭하여 재생산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모순이며 악순환이 아닐까 합니다.

타인의 삶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더욱 정직하고 겸허하게 집중할 때 인간의 삶은 더 많은 의미와 기쁨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누구의 감시나 무례한 검열에도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빛나게 살아갈 길은 무엇인지를 ‘숨겨진 보물’과 ‘값진 진주’의 비유를 통해 알려줍니다.

■ 복음의 맥락

이번 주에도 ‘하느님 나라’가 소개됩니다.

지난주 복음은 ‘밀과 가라지’, ‘누룩’, ‘겨자씨’ 등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특징을 묘사하였다면 이번 주에는 하느님 나라를 찾고 발견한 인간이 개별적으로 취하는 행동에 주목합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주변 국가들의 잦은 침입과 이방인의 강탈로 인해, 그리고 개인의 자산을 맡기고 관리할 은행이나 금융기관이 없었기에 자신의 보물을 땅에 묻어두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였고 숨겨 놓았던 보물은 의외의 시간에 의외의 사람에 의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러한 사회적 맥락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 숨겨져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좋은

복음의 본문에서 하느님 나라는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에 비유되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사게 한다는 것’입니다.(마태오 13,44-45)

자기 인생을 전부 걸 정도로 귀한 하느님 나라는 ‘좋은’ 것이지만 ‘숨겨져’있다는 특성을 가집니다.

“숨겨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크륍토’의 과거 분사형이며, 오래 전 누군가에 의해 감춰지거나 봉인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좋은”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형용사는 ‘칼로스’로서, 아름다운, 선한, 유익한 등의 뜻을 가지며, 감히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하느님 나라는 ‘발견하고’, ‘찾는’ 행위를 통해 구현되는데 밭에서 일하다가 보물을 발견한 일꾼처럼 예기치 않게, 느닷없이 발견할 수도 있고, 간절한 희망으로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던 상인처럼 항구한 찾음을 통해 발견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다 팔’ 정도로 소중한 ‘하느님 나라’의 가장 고유한 본질은 당연히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이 계시는 곳’, ‘하느님과 더욱 가까이에 있게 되는 곳’이며, 이는 하느님 자신이야말로 숨겨진 보물이고 값진 진주의 실체임을 암시합니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 존재 가장 깊은 곳에 계시는, 즉 우리 마음의 밭에 숨겨져 있는 보물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숨겨진 보물이 있는 밭과 좋은 진주를 파는 상점은 그 어떤 다른 곳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 그 ‘중심’이고, 그렇게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발견하는 것이 하느님 나라를 획득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귀영화나 권력보다 제대로 된 ‘마음’을 갈망하고 이를 하느님께 청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혜의 대왕 솔로몬입니다.

▥ 듣는 마음과 완덕의 여정

제1독서는
솔로몬의 지혜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알려줍니다.

솔로몬은 꿈에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2열왕 3,5)라는 하느님의 질문을 받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높은 지위에 있다하더라도 지혜가 없으면 모든 것은 위태롭고 허술한 스펙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획득되는 ‘지식’과 달리 ‘지혜’는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주어지는 선물이며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알고 있던 솔로몬은 백성을 분별 있게 통치할 “듣는 마음”을 청합니다.(9절)

“듣는 마음”의 히브리어는 ‘레브 쇼메아’이며,
‘샤마’(듣다)라는 동사와 ‘레브’(마음)라는 명사가 연결되어 있는 ‘연계형’입니다.

유다인들에게 ‘레브’는
생물학적 기관으로서의 ‘심장’을 의미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내면, 모든 생각과 지성·의지가 조정되는 중심을 지칭했습니다.

‘샤마’는
무엇을 듣는 행위와 그 들음을 통해 동반되는 순종과 주의 깊은 수용까지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듣는 마음’은
주의 깊은 경청과 이를 통한 전인적 소통을 말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찾고 발견하기 위해
인간이 걸어야 할 삶의 여정은 때로는 불행과 역경, 고난을 포함하기도 하는데 제2독서에서 바오로는 이 모든 것이 선한 결과를 내기 위한 필수적 순간들임을 역설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로마서 8,28)

하느님 나라를 위한 고난은 어느 것도 무용한 시간으로 폐기되지 않는 것입니다.

‘용기’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courage는
라틴어 cor(심장, 마음)에서 기원하며, 이는 전적으로 ‘마음’을 다하고 그렇게 다한 ‘내면의 양심’을 견고하게 지킬 때 우리 각자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세상을 움직이고
개인의 삶을 존엄하게 지켜주는 가장 강력한 힘은 외부 조건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며, 이것이 궁극적 행복의 비밀인 것입니다.

소문과 세상의 평판에 급급해
그 비위를 맞추며 자기 삶을 만들어 가다보면, 고유하고 명료한 내면의 힘은 빈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에 속한 이들조차 주체적 자아는 결핍되고 부재한 채 사회를 이끌어가는 불안을 조성하게 됩니다.

사회적 약자들(여성, 아동, 장애인 등)이 감수해야 할 공포와 수치심, 착취와 학대, 그로인한 절규가 넘쳐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각자에게 질문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열왕기 하권 3장 5절)

단순하고 순진한 마음으로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숙명적인, 우리 실존 전체를 거는 처절하고도 신중하며 단도직입적인 물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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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 김혜윤 수녀
2020년 7월 26일 가톨릭신문에서
  |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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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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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절대 최고의 가치를 지닌, 내 목숨을 내어주고서라도 얻고 싶은 것, 그것은 무엇일까? 참된 행복, 참된 기쁨, 참된 보물, 그것은 무엇일까?

오늘은 연중 17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쳐줍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어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열왕기 하권 3장 5절)라고 묻자, 솔로몬은 대답합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열왕기 상권 3장 9절)

이처럼, 솔로몬은 백성을 분별 있게 통치할 “듣는 마음”(레브 쇼메아)을 청합니다. 여기서 ‘듣다’(샤마)라는 동사는 단순히 듣는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들은 것을 받아들여 수용하는 것, 곧 주의 깊은 경청과 이를 통한 전인적 소통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지혜는 ‘소통하는 듣는 마음’에서 옵니다. 곧 ‘말씀을 듣고 들음 말씀을 받아들여 수용하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줍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로마서 8장 29절)을 밝히면서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로마서 8장 29절)

그러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모상”이 되는 일입니다.

<복음>에서 중요한 것은 “와 있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로 비유됩니다. 오늘 <복음>은 먼저, 그 ‘값진 보물’인 “하느님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밭에 묻혀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마태오 13장 44절)

그 보물은 멀리 하늘 위에, 높이 매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땅,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나의 일터인 내 공동체, 내 가정, 이 세상이 바로 보물이 묻혀있는 “밭”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보물”은 우리 공동체와 이 세상에 그리고 사람 서리에, ‘이미 와서 묻혀있다’는 말씀입니다. 나아가서, <제1독서>에서 말하는 “듣는 마음” 안에, <제2독서>에서 말하는 우리 안, “당신 아들의 모상”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루가 17장 21절)

그렇지만, 그 보물은 누구나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밭을 충실히 일구고 가꾸는 자만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어떤 장사꾼이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것에 비길 수 있다.”(마태오 13장 45절)

그것은 우리의 머리 속, 관념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진주를 찾아다니는” 행동 안에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길을 찾는 발길 그 안에, 진리를 더듬는 손길 그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곧 하느님을 찾아나서는 신앙의 행위, 신앙의 여정 그 안에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그 진주는 누구나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찾아다니는 자만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했다고 해서, 혹은 그것을 만났다 해서, 그것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운데 이미 와 있는 이 “하늘나라”를 어떻게 해야 얻을 수가 있을까?


오늘 <복음>의 두 비유에는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샀다.”(마태오 13장 44절, 46절)

이는 “보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가진 것을 다 파는 일” 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물을 발견하고 찾았다 해도, 그것이 곧바로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 그 보물을 차지하려면, “먼저” 그 보물을 사기 위하여 가진 것을 다 팔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가진 모든 것보다 더 값지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에 따라서는 목숨까지도 팔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 나아가서 자신마저도 팔아야 하는 이 일이 쉽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한 애착과 자애심 때문입니다. 아직은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서 힘이 빠지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중요한 존재가 아님을 인정해 가고, 자신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보물은 결코 자신을 팔지 않은 채, 타인이 가진 것으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가진 것을 다 파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값진 것을 “사는 일”입니다. ‘사는 일’이 본질인 것이지, ‘파는 일’이 본질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보물을 발견했다 해도, 또 가진 것을 다 팔았다 해도, 그 보물을 실제로 사들이기 전에는 아직 그 보물은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살 때라야 비로소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보물”이 있기에, 우리는 그 “보물”을 차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분명한 것은 하느님 나라는 “먼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 나라”가 우리를 이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루카 17장 21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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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하늘나라는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마태오 13장4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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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하늘나라의 그물에 저를 몰아넣으소서.
당신 말씀의 그물로 덮어씌워 당신 뜻 안에 가두소서.
세상의 바다에 저를 던지소서. 당신의 그물이 되게 하소서.
당신이 몰아 온 온갖 고기를 모아들일 뿐, 고르지 않게 하소서.
제가 그물일 뿐 그물의 주인이 아니며,
그물의 주인이 아니듯 고기의 주인도 아님을 잊지 않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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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2020년 7월 26일
  |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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