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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오병이어(五餠二魚)
조회수 | 1,990
작성일 | 05.07.29
19세기 성서학자인 슈트라우스(David Friedrich Strauss)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빵 증식 기적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기보다는 영적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지어낸 이야기라 보았습니다. 초대교회가 신자들에게 사랑의 기적을 알려 주기 위해서 창작한 것이라 보았던 것입니다. 좀 더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개중에는 음식을 갖고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음식을 갖고 온 이들은 기회가 오면 무리에서 벗어나 자기 혼자 먹으려는 심산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진한 한 소년이 자기의 도시락으로 갖고 온 보리빵 다섯 개와 조그만 생선 두 마리를 예수님 앞에 내어놓았습니다. 예수님은 그것들을 무리들 앞에 들어 보이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가진 음식은 모두 이것뿐이니 이것을 가지고 나누어 먹읍시다.” 예수님의 이 모습을 보면서 군중들의 이기적인 마음이 움직였고, 자기가 갖고 온 음식을 풀어 옆에 있는 사람과 나누어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이가 굶주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금세기 놀란(Albert Nolan) 같은 학자는 슈트라우스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여, 빵 다섯 개로 수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인 기적에서 정말로 기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이기적이던 무리가 이타적인 존재로 바뀌면서 사랑과 연대감을 갖게 된 기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학자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가능한 한 이성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정말로 빵 다섯 개를 갖고서 수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였다면, 그것은 자연과학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 됩니다. 이성적으로 설명이 안 되기에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기적 사건으로 해석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학자들의 가설은 빵을 배불리 먹은 군중의 반응 앞에서 설득력을 잃어버립니다. 군중은 예수님의 놀라운 이적 능력을 목격하고는 예수께 달려들어 강제로라도 왕으로 삼으려했습니다(요한 6,15 참조). 만일 이들 학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실제적인 빵 증식의 기적이 없었다면, 곧 군중이 자기들이 갖고 온 음식을 서로 나눠먹는 사랑의 기적만 있었다면, 군중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겠다고 달려드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빵 다섯 개로 수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인 기적은 창작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분명히 있었던 사건입니다. 모든 복음서가 이 기적을 보도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이성을 중시하는 이들 중에는 예수님의 기적이나 놀라운 사건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성서를 공부한다면 성서는 단 두 가지밖에 남지 않을 것입니다. 성서의 앞과 뒤 곧 표지만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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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송봉모 토마스 모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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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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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신학 공부를 할 때 가끔 학장 신부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환자에게 피가 부족하니 피를 나누어 줄 학생들을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한번은 심한 화상으로
피부 이식이 필요하니 피부를 줄 사람을 보내 달라고도 했다. 신학생 5명이 자원을 해서 조직검사를 받았는데 환자와 맞는 사람이 2명이었고 그들은 3주 동안 피부 이식을 위해 입원했다. 이후 그 환자가 살아나서 학교에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이 살갗은 ○○수사님 것이고 여기는 ○○수사님 것이라고 하며 웃었다.

우리 수도회는
엘리사벳 나눔의 집과 부산에 평화장터가 있다. 고마운 은인들로부터 물건을 받아 싸게 팔아서 소년 소녀 가장과 어려운 이웃들의 살림에 도움을 주고 있다. 나눔으로 더 풍요로움을, 기쁨과 보람을 찾는다.

돈, 명예,
권세를 쥐려고 날마다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삶이지만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길이다.

욕심만 더해 가며 사는 사람과
나눔의 삶을 사는 사람은 얼굴 모습과 이웃 사람들의 평가가 전혀 다르다. 평안과 기쁨, 웃음이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나눔은 자신을 내어 주는 행동이다.
나의 생각, 말, 웃음, 기쁨, 재능, 시간, 지식, 그리고 물건과 돈, 장기기증, 그 밖의 모든 것을 나누는 것이 내 생명의 한 부분을 주는 삶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의 정성과 땀, 시간을 바칠수록 이 세상은 복음화된다.

광우병 논란으로 세상이 뜨겁다.
미친 소가 아니라 아픈 소인데… 풀을 먹어야 할 소가 오직 사람에게 먹히기 위해 먹고 싶지도, 먹어서도 안 되는 나쁜 먹이를 먹어 골에 구멍이 뚫리는 병에 걸리고… 그런 쇠고기를 사람이 다시 먹어야 한다면…. 이것은 나눔이 아니라 삶을 죽이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신자인 것은
주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 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빛과 그리스도의 현존이 되어 주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내어 주고 먹히고 다른 이들에게 자양분이 되기 위해서이다”(젱델).

오늘 복음에서는
보리 떡 스무 개로 백 명을 먹인 엘리사 (2열왕 4,42-44)보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이 훨씬 위대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마태오 14장 18절-19절).

여기에서 ‘자리잡다’는 직역하면
‘눕다’라는 뜻인데 유다인들은 비스듬히 누워서 먹을거리를 먹었다. 양식이 적어 나누면 모자랄 것 같지만 일단 나누어 주니까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는 이야기에 따라 나눔의 보람을 새겨볼 수 있다.

거래가 없이
그냥 아무 대가도 없이 퍼 주는 사랑과 나누려는 마음만 있다면 오천 명을 먹일 수 있다. 머리로만 나누는 삶이 아니라 손과 발로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여 기쁨과 행복을 찾자. 제자들에게,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먹을 것을 당신들이 주시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자신의 몸(성체)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서로 사랑을 나누도록 당부하신다.

물질이든 정신이든 마음이든
나눌 것이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고 나눔을 받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서로 돕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정, 교회,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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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박문식 베네딕토 신부
  |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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