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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나눔과 하나됨’
조회수 | 1,864
작성일 | 05.07.29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헤로데가 잔칫상에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잘랐다는 소식을 듣고 따로 외딴 곳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배에서 내리시며 따라온 군중들을 보시고 측은하게 여기시어 아픈 이들을 고쳐 주십니다. 그런데 저녁이 됐습니다.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고민합니다. 고민 끝에 배고픈 군중들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마을로 돌려보내길 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물러갈 필요는 없고 직접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거기 있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드시고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빵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그 빵을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모두 먹고 배가 불렀습니다. 그리고 남은 부스러기들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고, 먹은 사람은 남자만 오천 명이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함께 하는 참된 나눔’이 있다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주목할 점은,
남자들만 오천 명이 되는 그 많은 사람들이 같은 빵을 나누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따라온 사람들 중에는 가난한 사람, 잘 사는 사람, 건강한 사람, 아픈 사람, 율법학자들, 세리들, 또 이방인들도 모두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헤쳐 보내려는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한 사람도 돌려보내지 않고 모두 배불리셨습니다.

사람들을 흩어버리지 않고
하나로 모으신 예수님의 이 기적은 바로 성체성사를 미리 보여줍니다. 그리고 생명의 빵의 식탁은 헤로데의 죽음의 식탁과는 다름을 알려줍니다. 헤로데의 잔칫상은 쟁반 위에 놓인 세례자 요한의 목으로 곧바로 중단돼 버리고 사람들이 흩어져 버렸겠지만, 주님 생명의 식탁은 사람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요한 6,37-39 참조) 하나로 모으는 ‘일치의 식탁’입니다.

오늘 복음인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성체성사 안에서 생명의 빵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몸이 우리를 하나가 되게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성체성사 안에서 당신의 몸을 우리에게 내어주시듯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나눔을 실천하라고 알려줍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고,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빵을 당신의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말씀이 곧 빵이고, 빵이 곧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와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 말씀 둘 다 함께 먹고 나눌 수 있어야겠습니다. 참으로 나눌 때 하나가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떼어 제자들에게 빵을 주셨다. 제자들은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하여 모두 먹고 배가 불렀다.”(마태 14,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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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서동완 비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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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기적을 낳는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시는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오천명이란 여자와 어린이들을 제외하고 남자만 오천 명이라고 오늘 복음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를 채웠다는 것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사건일 것입니다. 누가 나에게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서 많은 사람들을 먹여야 한다고 시키면 우리는 일단 부정부터 하고 포기부터 하고,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불평불만, 투정, 원망이 아니라 오히려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니다. 그리고 난 다음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다 먹고 난 다음에도 열 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고 오늘 복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작은 것을 가지고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기적을 낳는다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삶에 있어서 늘 감사하며 살았던 분이십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느님과 세상, 사람을 향한 원망보다는 주어진 삶에 감사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셔야 하는 그 상황에서 제자들과 만찬을 하실 때에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고---"(마태 26,27) 이 감사는 결국 부활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바울로 사도께서도 하느님을 향한 굳은 신뢰심이 있었기에 어떠한 처지에서도 늘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1데살 5,16-18) 바울로 사도의 이같은 삶은 언제나 부족함이 없는 충만한 삶이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많이 가지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많이 가지고 있어도 늘 적게 가지고 있다라고 생각하면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기 보다는 늘 부족하기에 더 채워달라고 기도하기 바쁠 것입니다. 그러나 욕심은 불행을 낳지만 감사는 풍요로운 기적을 낳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 힘입어 우리 삶에 부족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불평불만을 가지며 살아가기 보다는 하느님을 굳게 믿으며 늘 감사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며 좋을 것 같습니다.

박정근 테오디모 신부
  |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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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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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원에 사는 요셉은 저만 보면 매번 반지나 뭘 사러 가자고 합니다. ‘내일 사러 가자.’고 하면 엉덩이춤까지 추면서 좋아라 하고 방으로 가는데, 저도 빈말만 되풀이할 수 없어 같이 묵주 반지를 사러 갔습니다.

가는 길에 내가 필요한 것이 있어 아웃렛 상점에 잠깐 들렀는데, 요셉은 그 사이 주변의 모자에 눈길이 꽂혔습니다. ‘돈 있냐?’고 물으니 호주머니 탈탈 털어 백 원짜리 동전 다섯 개를 꺼냅니다. 그때 요셉이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이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요셉이 좋아하는 커피를 두 번이나 뽑아 먹을 수 있는 거금을 저에게 전부 준 것입니다. 오백 원과 오만 원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하지만, 자기는 전 재산을 저에게 준 것입니
다. 결국 모자를 안 사 줄 수가 없어 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과 병을 고쳐주시는 능력을 보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고쳐주시고 가르침을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육적인 배고픔까지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딱한 사정을 외면하지 않고 먼저 걱정하시는 분이시며, 빵이 다섯 개 밖에 없어도 배고픈 사람들을 모두 배불리 먹이실 수 있는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빵을 주고, 제자들은 그 빵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니, 남자만도 오천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나의 간절함과 내가 가진 작은 것에 마음을 담아 나누면 하느님께서 채워 주시리라 믿습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태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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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최광경 비오 신부
2020년 8월 2일 ‘대구대교구 주보‘에서
  |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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