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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내가 해야 할 몫과 하느님의 몫
조회수 | 2,010
작성일 | 05.07.29
예수님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였던 모세처럼 기적의 빵을 먹임으로써 당신이 바로 메시아임을 드러내셨다. 이러한 주님의 능력은 사도들이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 뒤 주님 뜻에 맡김으로써 가능하였다. 신앙인의 올바른 삶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의 몫을 다하고는 하느님께 맡겨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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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부르게 먹이시는 메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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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김정일 체제의 가장 큰 위협은 미국의 미사일보다도 인민들의 배고픔일 것이다. 백성들을 굶주리지 않게 하는 것이 영도자의 책임이라는 인식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오늘 제1독서의 말씀은 귀양살이에서 풀려나고 장차 맞을 메시아 나라의 풍요를 말하는 것이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오너라. 여기에 물이 있다. 너희 먹을 것 없는 자들아 오너라 . 돈 없이 양식을 사서 먹어라"(이사 55,1)고 하신다. 당신을 믿으라고 요구하시는 예수님께 유다인들은 "당신은 무슨 기적을 보여 우리를 믿게 하시겠습니까? …… '그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다가 그들을 먹이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요한 6,30-31)하며 메시아라는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한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빵의 기적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는 당신이 누구이신 지를 증명하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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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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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빵을 많게 하신 기적 이야기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오늘의 기적을 "한 아이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빵 두 개를 내놓자, 각자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것들을 다 내 놓아 결국 수 천명이 먹고도 남았다."는 나눔의 기적으로만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이는 기적을 기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아니다.
  
복음이 전하는 상황을 그대로 보자.
예수님을 따라다니다 지치고 허기진 수많은 군중이 있고,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음식을 구하기는 불가능한 답답한 현실이다. 눈앞에 닥친 이 현실에 대해 사도들의 첫 반응은 소극적이고 현실 도피적이었다.

"여기는 외딴 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니 군중들을 헤쳐 제각기 음식을 사 먹도록 마을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마태 14,15).

'외딴 곳', '늦은 시간'에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이 귀찮은 문제를 회피하고자 하는 자세가 역력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마태 14,16) 하시며 사도들이 문제를 직시하도록 하신다. 제자들은 극도의 무력감을 느낀다. 다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구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이것뿐입니다. 당신이 알아서 해 주십시오" 하고 문제를 주님께 맡길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문제에 비해 제자들이 한 노력은 너무나 미미한 것이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마련한 보잘것없는 것으로 엄청난 역사를 이루어 주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권능과 역사 하심을 목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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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가 해야 할 몫과 하느님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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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내가 모든 것을 다하려고 한다.
하느님을 믿고 그분께 내 맡기며 그분이 일하실 기회를 주지 않고, 그 분이 내 삶에 개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 안에 하느님께 대한 참 믿음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이제 당신께 맡깁니다." 하는 자세가 부족한 것이다.

일상 생활 안에서도 최선을 다하고는
주님께 맡기고,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할 수 없을 땐 모든 것이 끝장이라고 절망하며 머리가 돌아버리든지, 때로는 자살소동을 벌이기도 한다.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최선을 다하고 그 나머지는 주님께 맡기고 그분의 뜻에 따를 때, 주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당신의 모습을,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시며 역사하시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사살아가면서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우리에게 닥친 엄청난 문제에 앞에 무력감에 사로잡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갑작스런 사고로 가장(家長)을 잃고 어린 꼬마들만 안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젊은 엄마의 처지나, 평생 모은 퇴직금을 몽땅 사기 당하고 갑자기 살길이 막막해진 이웃의 처지를 볼 때, 또한 해마다 전 세계에서 기아로 죽어 가는 사람이 1800만이 넘는데도, 한쪽에서는 끝간데를 모르는 과소비가 판을 치고, 체중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현실의 불균형을 볼 때 우리의 마음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갖가지 공해로 해마다 수많은 생명이 멸종되고, 하나뿐인 이 지구는 몸살을 넘어 페허가 되어가고 있음을 보면서도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는 이런 크고 작은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이것은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내 책임이 아니다." ,
"내 권한 밖의 일이다." 라고 하면서
포기하거나 외면하기가 예사이다.

분명히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지만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고 여긴다. 문제를 완전히 해결 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내가 할 몫은 해야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주님께 맡기고 의지해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적은 몫을 할 때,
그 노력은 사랑의 기적을 이루고, 주님의 축복과 역사 하심을 불러일으키는 열쇠가 될 것이다. 신앙이란 삶 안에서 주님을 믿고 모험할 수 있는 용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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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유영봉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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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동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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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라는 이론이 있다.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노턴 로렌즈의 이론에 의하면 브라질에서의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작은 것이 계기가 되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이런 나비효과는 자연현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 복음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이다.
이 기적은 예수님께서 허기진 군중에게 측은지심을 느껴 빵을 많게 하는 물리적인 기적을 베푸셨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렇게만 본다면 굳이 예수님이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는 말씀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도 묵상해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요청에 누군가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놓았을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한 사람 두 사람이 나중엔 많은 사람이 빵을 내어놓으면서 일어난 기적일 수 있다. 바로 나비효과처럼 말이다.

본당 성지순례 때나 산행을 하다 각자가 준비한 먹거리를 내어놓으면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음식이 남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이 기적은 오늘 미사 1독서의 “자, 목마른 자들아,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 먹어라.”라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이 실현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오늘 미사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말씀하신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는 일이 생겼다.
바로 코로나19이다. 코로나로 인해 세상은 [Untact(비대면이라는 뜻의 신조어) 시대]가 되었고 그로 인해 인간관계의 단절과 공동체의 파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리 신앙도 교회도 예상 밖의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신앙과 교회를 지킬 수 있을까?

오늘 복음 말씀처럼
우리의 ‘동참’과 ‘내어놓음’이 있을 때 지금의 위기를 이기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먼저 미사에서 빵을 나누는 지금의 일상이 언제든 다시 박탈당할 수 있는 선물임을 기억하자.

마음만은 Untact하지 말자.

그리고 오늘 복음의 군중들이 예수님과 함께 빵을 나눈 것처럼 주님의 식탁에 자주 모여 빵(성체)을 받아 모시고 그 힘으로 사랑과 친교를 나누며 살 수 있도록 은혜를 청하자. 그러면 교회도 신앙도 지켜질 것이고 코로나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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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여인석 베드로 신부
2020년 8월 2일 ‘마산교구 주보’에서
  | 07.31
461 42.8%
[마산] 나눔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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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다는 기적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의 바쁜 기간에 좀 쉬시고 싶으셨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한적한 곳으로 가서 쉬시고 싶어서 군중을 피하여 외딴 곳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 많은 군중이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치유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군종을 측은이 여기시어 많은 병자를 고쳐주셨지만 어느덧 날은 어두워졌습니다. 군중은 예수님을 떠날 생각도 않고 먹을 것도 준비된 것이 없었고 외딴 곳이라 음식을 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예수님은 굶주리는 군중을 가엽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군중을 먹이기에는 턱없이 적은 음식이었지만,
그 작은 음식을 손에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손에서는 끝도 없이 빵과 물고기가 쏟아져 나옵니다. 그래서 그 많은 군중이 배불리 먹었고 남은 음식을 모았더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입니다.

꼭 굶주리지는 않아도
우리 주위에는 가난해서 생활고에 허덕이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우리의 작은 나눔이 큰 기적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눈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성인전을
보면은 많은 성인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이웃에게 아낌없이 회사하고 오로지 하느님을 따르는 생활에만 몰두했는데 평범한 우리에게는 나의 가진 것 중 어느 정도를 이웃과 나눈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신앙심이 있고 또 사랑이 있다면 분명히 우리의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성서를 읽어보면
가난을 그것도 철저한 가난을 강조한 대목이 많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동전 두 닢을 보신 예수께서는 과부의 회사를 칭찬하셨습니다. 과부는 가난했지만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회사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교여행에 파견하실 때에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비우고 오로지 하느님의 배려에 의지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성인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누셨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결단을 하기까지 아무리 성인들이라도 인간적인 많은 생각과 수많은 망설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
하느님을 따르고자 하는 강력한 마음이 그와 같은 과감한 결단을 내리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만한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성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사랑하는 만큼 내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나눔으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하는 많은 이웃이 있고 또 그런 이야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 실천의 이야기가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가장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이웃을 예수님으로 생각한다면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나눌수록 우리는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고
이를 통해서 하느님과의 우정을 깊이하고 그 분의 놀라운 은총을 내 것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작은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꼭 실천해야 할 중요하고도 아름다운 의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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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이재열 신부
  |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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