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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하늘나라의 잔치
조회수 | 1,981
작성일 | 05.07.29
‘아무 것도 우리를 하느님 사랑에서 떼어놓지 못할 것이다’(로마 8,35.37).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의 힘으로 자신의 구원에 장애가 되는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오늘 전례의 근본적 사상이다.

오늘 독서에 나타나는 ‘음식’, '잔치‘, ’빵‘, 그리고 ’물고기‘가 나타나는데 이러한 상징적 표징들을 통해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표현되고 있다. 이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이 스스로 그 사랑을 저버리지만 않으면 결코 거두어지지 않는다.

제1독서 : 이사 55,1-3 : 나의 말을 들어라. 맛좋은 음식을 먹으리라

제1독서는 ‘계약’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바빌론 귀양살이에서 돌아와 온전한 마음으로 당신께 돌아서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약속하시는 축복과 번영을 표현하고 있다(이사 55,7 참조). 낯선 이국 땅에서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낼 때는 조금이라도 더 먹기 위해 노력했지만 허기만 지고 말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귀양간 이들은 돌아오고 노예들은 해방될 것이며, 배고픈 이들은 배부르게 되는 기쁨과 생기에 찬 ‘잔치’를 즐기게 될 것이다(1-2절). 이 ‘잔치’는 주님과 백성 사이의 우정과 친교 그리고 일치의 현실을 의미한다. 그래서 ‘들음’과 ‘귀기울임’을 강조하기 때문에 계약이란, ‘말씀’에 대한 순명과 충실성을 전제한다.

즉 인간이 하느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잔치’는 그분의 메시지를 듣는 잔치이다. 때문에 ! 우리가 ‘말씀의 식탁’(계시 21)을 먼저 갖지 않는다면 성찬의 식탁은 결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복음 : 마태 14,13-21 :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말씀’의 능력은
매일의 식탁에 준비되는 음식을 증가시키는 일을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마태오는 빵의 기적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마태오는 그 기적이 “한적한 곳”에서 일어났다(13절)고 하면서, “저녁때가 되었으니 군중들을 헤쳐 제각기 음식을 사먹도록 마을로 보내기를”(15절) 청하고 있다.

이런 면을 강조하는 것은
마태오가 그리스도의 업적을 구약성서의 빛으로 재해석하여 예수님의 모습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며 만나의 기적(출애 16장)보다 더 위대한 기적으로 백성을 배불리시는 새로운 모세로 표현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인간들의 구체적인 문제에 동참하신다는 것이다.
“측은한 마음이 들어”(14절)는 예수께서 다른 사람들과 같은 입장에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이 ‘측은함’이란 사람들의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영적인 좌절의 상태에까지 확대시킨다(마르 6,34 참조).

빵의 기적도
예수께서 다른 사람들의 궁핍에 참여한다는 의미로 나타난다. 이는 어떤 보상의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필요를 사랑으로 이해한 행위의 결과이다. “오천 명 가량 되는”(21절) 사람들은 먼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었고 허기지고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가까운 마을로 보내 “음식을 사먹도록”(15절) 예수께 말씀을 드리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의 허기를 걱정하시고 특히 연약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염려하신다(마태 15,32 참조).

그러므로 기! 적은 능력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사랑과 동참의 행위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기적은 ‘함께 나누는’ 데서 생겨난다.
즉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17절)는 적은 것이고 ‘얼마 안 되는 것’이었지만 함께 나눌 수 있었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다. 물론 기적을 이룬 것은 예수님의 권능이었지만, 그 기적은 나누려고 했던 마음 자세가 더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보낼 것 없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셨다. 제자들이 ‘우리에게 지금 있는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하고 말하자 예수께서는 ‘그것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16-18절).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나누어지는 행위를 통해서 기적을 이루어주신다. 이렇게 하느님은 항상 우리 인간들의 협력을 필요로 하신다.

또한 이 기적사화는
최후만찬 때에 설정된 성체성사를 예시하는 여러 가지 개념과 해석을 내포하고 있다(19절).

즉 마태오는
이 빵의 기적에서 성체성사의 예표와 예시를 본 것이다. 즉 예수께서는 단 한번 물질적으로 그 기적을 행하셨지만 ‘성사적으로는’ 영원히 그 기적을 완성시켜 주신다. 바로 이것이 우리 모두가 물질적인 음식보다는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원의 양식으로 취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이제 그리스도께서
빵의 기적을 행하실 때 가지셨던 ‘측은함’을 가질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주워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 가량 되었다”(! 20-21절). 남은 조각 ‘열두 광주리’로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 대한 보상으로 이미 충분하지 않겠는가!

이 기적에는 또한 교회론적인 의미도 있다.
이 사화에는 사도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예수께 저녁이 되어 사람들을 가까운 마을로 보내어 끼니를 해결하게 하자고 하였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얼마 안 되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께 가져다 드렸고, 또 사람들에게 그 음식을 나누어주었다.

바로 사도들은
예수의 협력자들이며 예수님과 사람들 사이의 중개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영광 안에 들어가셨지만, 사도들과 또 그들의 사도직을 이어받는 사람들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과 계속 함께 하실 것이다. 사도적 봉사란 예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베풀어주셨던 그 선물을 베풀어주는 것이다.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몸과 피로 이루어주시는 놀라운 이 기적의 ‘잔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 窄? 안 되는 빵과 물고기를 나누려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만이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가 정말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왕국이 될 것이다.

주님의 구원의 은총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 위해서는 지금 이 시대에도 내가 가지고 있는 조그만 것을,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마음과 또한 그것을 주님 앞에 가져다 바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우리의 인간적인 노력이 있을 때에
하느님께서는 그것으로 위대한 기적을 이루어주실 것이다. 이러한 삶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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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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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어느 날 밤 “생로병사”라는 TV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비만의 근원인 야식(夜食)에 관련된 이야기가 방영되었습니다. 방송 중 아나운서는 마더 데레사 수녀님과 관련된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수녀님이 함께 일할 봉사자를 선발할 때 던진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고 합니다.

“첫째, 당신은 밤에 잘 잡니까? 둘째, 당신은 식사를 잘 챙겨 드십니까?” 잘 자고, 잘 먹는다는 것은 자기관리를 잘하고 건강하다는 증거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달 첫 목요일 성체신심 미사 때 존경하는 신부님께서 저희 본당 신자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건강의 3대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신자들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답은 인도에서나 한국에서나 똑같이 적용되는 자연의 순리인가 봅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셨습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병자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소화기 계통에 심한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유는 이러했습니다. 성직자나 수도자나 평신도나 잘 자고 잘 먹는데, 잘 싸지를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성체를 받아 영합니다. 아울러 주님께 “이렇게 해 주소서. 저희가 이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하며 많은 은총을 청하고 또한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몸을 모셨기에 우리 장에서 잘 소화시켜 ‘똥’(사랑과 나눔)을 세상에 내 보내야 하는데 배출을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 몸은 ‘지방’(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어 당뇨나 고지혈증과 같은 합병증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데레사 수녀님도 “당신은 잘 싸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셨으리라 상상해 봅니다. 정말 우리는 잘 싸야 건강하고, 평화롭고,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잘 싸지 않으면 뭔가가 불안합니다.

예수님이 주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먹고 군중들이 ‘싸놓은 똥’이 12광주리나 되었다는 것이 오늘 복음의 골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성체를, 은총을, 사랑을 먹고 배출하지 않으면 이러한 기적은 일어나기 힘들 것입니다. 우리가 배출한 ‘똥’은 세상 어느 밭에 뿌려져 파릇파릇한 새 생명을 움트게 하고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 장에서 나름대로 소화해서 배출시킨 그 똥은 어디선가 “사랑나무”를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 나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열려 세상으로 보내집니다. 그러면 그것을 먹고 사람들은 기뻐하고 건강을 유지하게 됩니다. 기적사건이나 신비라는 ‘거름’보다 우리의 피와 물이 섞여 있는 ‘배설물’을 세상에 많이 뿌립시다. 잘 싸야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합니다.

고유석(사도요한) 신부
  |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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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담은 사진첩

먼지가 뿌옇게 쌓인 사진첩을 보았습니다. 오랜시간동안 조그만 관심조차 주지 못했기에 장롱 구석에서 쓸쓸하게 지냈을 녀석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오랫만에 사진첩을 열어보았습니다. ‘아! 나에게 이런 시간도 있었구나. 아! 이사람 지금 뭐하고 있을까? 야~ 이때 정말 재밌었는데….’ 혼자 사진첩을 한 장씩 넘기면서 얼굴에 지을 수 있는 표정이란 표정은 다 지어가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보았습니다.

지나간 추억들을 떠올려보고, 그 기억들 때문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들 가슴에 아직 사랑이라는 이름의 추억들이 깊이 남아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추억은 사랑을 싣고 계속해서 우리를 따라다닌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옛 기억들은 그토록 소중하게 우리들 가슴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예수님의 사랑을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기적은 서로를 사랑하도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실천은 비록 어렵고 힘들지만,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찰 만큼 후하고 넘치도록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십니다.

훗날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때 그 기적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예수님을 그리워하였을 모습이 지금 이 시간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예수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잊지 못하고 계속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제자들이 마음속에 그 장면을 생생히 찍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진첩이 기억하는 사랑의 추억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진첩을 통해 기억하듯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했던 생생한 추억과 사랑을 마음으로 찍었고, 그들은 그것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 주었습니다.

지나간 시간들, 추억들에 대한 평가는 다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평가는 분명하게 내려졌습니다. 예수님을 담은 사진첩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열두 광주리에 가득차고도 남을 후한 선물을 주시는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참 하느님이심이 밝혀졌습니다.

우리는 제자들이 마음으로 담아 찍어놓은 예수님께 대한 소중한 추억의 사진첩을 통하여, 예수님은 사랑 자체이시며 우리의 구세주 그리스도이심을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정재(베드로) 신부
  |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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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의미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는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따르던 5천여 백성들에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많게 하여서 그들을 배불리 먹이시고 그 조각을 모은 것만도 열두 광주리라 하니 그 기적이야말로 실로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기적은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증명하는 큰 기적입니다. 하느님의 안배는 실로 사람으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오묘한 것입니다. 외따른 무인지경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남을 만큼 빵과 물고기를 많게 하신 기적은 대단히 놀랄 기적이지만 이와 같은 기적은 지금도 그리고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예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알아들어야 하겠습니다.

첫째: 성서에 사도들은 “여기는 외딴 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헤쳐 제각기 음식을 사먹게 마을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사도들은 현실적으로 당면한 문제를 예수님께 제기했습니다. 실로 많은 군중은 예수님을 따라 여러 시간을 같이 있었으므로 배고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사도들의 말도 당연한 말이었습니다만 예수님은 “그들을 보낼 것 없이 먹을 것을 당신들이 주시오”하고 말씀하실 적에 이미 당신 마음속에는 배고픈 군중에게 먹을 것을 마련하실 의도가 계셨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들의 배고픈 사정, 주리고 목말라 하는 사정, 헐벗고 병들어 있는 사정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항상 우리들의 모든 사정을 확실히 보시고 그때 그 백성들에게 베푸신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도 나타내시고 계시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사정을 전연 모르시는 것처럼 우리의 기도도 알아듣지 못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머리카락의 수까지도(마태 10,30) 헤어 두고 계시다니 예수님은 우리 사정을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그리스도는 우리를 항상 눈여겨보시고 지켜보시며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크나큰 그의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면서…….

둘째: 그리스도는 지금도 끊임없이 빵을 많게 하는 기적을 오늘도 내일도 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세계의 인구가 40억을 넘고 있고 그 많은 사람들을 매일 매일 먹이고 계십니다. 한 알의 씨앗을 땅에 묻으면 백 배 천 배의 많은 결실을 하는 것, 오곡백과가 먹고 남을 만큼 결실맺도록 일기를 고르게 하시는 것 등 이것이야말로 큰 기적 중의 기적이요, 빵을 많게 하셔서 오천 여명을 먹이신 기적에 비하여 얼마나 더 큰 기적입니까? 전 한국의 오천 만의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먹는 음식물을 생각할 때 이같은 기적 외에 더 큰 기적이 있겠습니까? 그것도 오늘 하루 뿐 아니고 내일, 모레, 글피… 계속해서 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를 생양 보존하시는 기적이야말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볼 때 감탄 아니할 수 없습니다.

셋째: 이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은 장차 성체를 세우셔서 우리 만백성의 영혼의 양식이 될 표상인 것입니다. 예수님 이래로 세상에 나서 성체를 영하고 영혼의 양식을 삼아 주님께로 나간 사람이 실로 몇 억만 명이나 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참으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고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을 위하여 자기 몸과 피를 음식으로 주시고 우리와 영원토록 같이 계시려는 이 사랑을 알아들어야 하겠고 한편 감사드려야 하겠습니다.

정덕진 신부
  |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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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명을 먹이신 기적

예수님 당시 갈릴래아 지방은 만 오 천명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조용히 쉬기에는 어려웠던 곳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이었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예수님을 많이 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호수 건너편 지방의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 한적한 곳을 찾으시는 그분의 모습은 우리와 같지 않은가? 공생활에 지친 인간으로서 휴식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중들은 병의 치유를 받기 위해 그곳까지 몰려왔기 때문에 예수님은 쉴 수가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군중을 거절하지 않으시는 모습, 측은히 여기시어 맞아주시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내가 피곤하고 바쁠 때 나에게 오는 자에게 어떻게 대하는가? 친절하지 못함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하여, 너의 하느님을 버려라"고 한 사람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는 이들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맞아주시는 분이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도 오천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를 거두는 기적을 보이셨다. 이것은 그분이 당신을 따르는 이들을 보살펴 주시는 인자하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빵의 기적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있어서 제자들의 역할을 말해주고 있다. 예수께서는 빵과 물고기를 축성하시고 그것을 제자들로 하여금 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예수께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당신의 제자들을 통하여 일하신다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선물을 전해줄 전달자를 필요로 하시고 당신의 손으로 도구로 쓰신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가진 바를 저들에게 주어 먹도록 하라!" 했을 때, 그들은 가진 것이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것을 가지고 기적을 베푸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과 다른 이들 앞에 우리의 능력, 우리의 가진 것이 너무나 부족하고 초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우리 각자의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예수님께 가지고 갈 때, 즉 공동체 앞에 내어놓을 수 있을 때, 주님은 바로 그 부족하다고 여기는 그것을 가지고 다른 형제 자매들에게 크나큰 일을, 즉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손에 있을 때는 물고기 두 마리, 빵 다섯 개였지만 그것이 예수님의 손에 바쳐졌을 때, 그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고 12광주리를 남게 거둘 수 있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기쁘게 주님 앞에 바고 있는가 반성해 보아야 한다. 이것이 아까워서 바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기적을 우리는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지만 용기 있게 주님께 드릴 수 있어야 모두에게 풍요하다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더욱 이끌어 주시길 기도하자.

조욱현 신부
  |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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