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가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63 57.2%
[안동] 나의 말을 들어라. 너희에게 생기가 솟으리라
조회수 | 1,939
작성일 | 05.07.29
우리 옛 말에
"어른 말씀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제 1독서인
이사야의 말씀에 바로 이런 뜻의 말씀이 나옵니다. "나의 말을 들어보아라. 맛 좋은 음식을 먹으며 기름진 것을 푸짐하게 먹으리라.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와 영원한 계약을 맺으리라." 오늘 제 1독서는 바빌론으로 포로로 끌려가 귀양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께서 이사야의 입을 빌어 전하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처참한
몰골로 왕에게서부터 백성에게 이르기까지 줄줄이 엮이어 가서 갖은 고생과 수모를 겪으며 살았습니다. 이제 귀양살이가 끝나고 끝까지 버티며 살아 남은 자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 모든 고통이 말끔히 가시고 풍요로움의 결실을 맺으며 살아갈 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것이 오늘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이렇게 귀양살이를 하게 된 까닭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며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하느님께로 돌아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게되면 돈 없이 양식을 사서 먹고 값없이 술과 젖을 사 먹게 해주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이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날이 바로 메시아 시대가 열리는 때입니다. 그 때가 오면 모자람이 없는 풍요와 두려워할 것 없는 기쁨이, 차고 넘칠 것이라는 것이 오늘 제 1독서의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듣는 내용은
예수님 당신이  바로 메시아 시대의 서막을 여는 분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전해주시는 하느님 나라의 말씀을 듣느라 많은 사람들이 며칠을 굶은 뒤였습니다. 예수께서 이들을 딱하게 보시고 이른바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여자와 어린이들을 빼고 장정만도 오천 명이나 먹고 남을 만큼 큰 기적을 베푸십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전했던
메시아 시대가 마침내 도래하고 있다는 표로 예수께서 이런 기적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청중들의 면면들은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먹을 것이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이었다는 것이지요.

가난한 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무전유죄입니다.
가난하니까 병들고 소외 받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이런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계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전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짊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모두 다 나에게로 오너라." 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이 하느님나라의 복음을 전해 듣고, 그들이 기를 펴며 사는 나라가 바로 당신에게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의 말씀인
바오로 사도의 말씀 역시 이를 잘 깨닫고 쓴 편지입니다. 그 말씀을 다시 한번 들어봅시다. "나는 확신합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께서 보여주신 그대로입니다. 예수께선 당신의 백성을 섬기는 분으로 오셨으며 당신 자신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은 나눔과 섬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즉, 하느님의 나라는
메시아에 의해 나눔과 섬김으로 시작되었고, 하느님 나라의 완성은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사는 백성들에 의해 완성되는 것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러하다면 거기에 사는 백성들 역시 이를 잘 깨닫고 살아갈 것이며, 그곳이야말로 모자람이 없는 풍요, 두려움 없는 기쁨만이 가득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런 나라에 사는 백성은 참으로 행복한 백성이 될 것입니다.
'오늘 예수께서 우리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참으로 복되게 사는 방법을 너희에게 가르쳐준다. 그러니 너희는 나에게 와서 배우고 배운 바를 실천하여 내 나라의 백성이 되어라.'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이런 하느님의 사랑을 외면하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없고,  인생의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참 삶과 행복은 오직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고 하느님께로 나아가서야 완성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 

안동교구 박윤정 바오로 신부
463 57.2%
신앙인의 피서법

피서는 다녀 오셨습니까? 비가 오긴 했지만 무척이나 더운 날들이 계속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피서법을 알려주십니다. 참 자상하시게도 말입니다. 더위 때문에 지치고 힘들어 하고 있는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이 무더위를 시원하게 보낼 수 있을지를 알려주십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이나 된 군중 앞에서 기적을 행하십니다. 빵 다섯 개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로 그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 남긴 기적입니다.

이 말씀에서 무슨 피서법이냐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과 제자와의 대화를 한 번 유심히 살펴보면 제 말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전에는 ‘피서(避暑) - 명사: 더위를 피하여 시원한 곳으로 옮김- 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인에게 피서라는 것이 단순히 더위를 피해서 시원한 곳으로 도망(?)가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그런 말씀, 그런 기적을 보여주신 것이겠습니까? 우리의 삶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고 파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주고 나누는 삶입니다. 사고 파는 삶은 이익을 남기는 삶이고, 이러한 종류의 삶에서는 없는 사람들은 항상 부족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 넘쳐나게 됩니다. 한편 주고 나누는 삶은 모든 사람이 골고루 만족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가 살기에 분명히 넉넉히 주셨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나누는 삶’, ‘나눔’입니다. 나눔 그것은 기적을 가져옵니다. 나누는 삶은 적은 음식으로도 엄청난 사람을 먹이는 기적이 나옵니다. 나눔은, 나누는 삶은 인간을 살리는 엄청난 기적입니다.

지금 우리는 더위에 시달리고 지쳐들 있습니다. 나 뿐만 아니라 옆에 계신 분, 앞에 계신 분, 뒤에 계신 분. 모두가 더위에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더위 죽겠다'를 연발하고 있습니다.

나누어 주십시오. 나누어 주십시오. 나눌 수 있는 것이라면 나누어 주십시오. 내 호주머니, 내 이익을 생각하면 더워집니다. 우선은 작은 것, 사소한 것부터 나누면 좋겠습니다.

신앙인의 피서는 땀을 식히는데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뭔가를 나눠줘서 생기는 그 기쁨, 그 충만함, 그 기적으로 더위를 잊고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한 피서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같이 더워하고, 지쳐있고, 힘들어 하고 있는 사람, 내가 만나는 그런 모든 사람 안에 우리의 피서 방법이 들어 있습니다.

인간으로 오셔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어 주신 예수님과 같이 특히 더위로 다가올 한 주간 우리도 내 주위의 누군가에게 나누는 기쁨으로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잠시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그들을 그냥 보내지 마라. 너희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나눠 주어라.” 아멘.

김춘수 이냐시오 신부
  | 08.03
463 57.2%
[안동] 그 많은 군중은 무엇에 배불렀을까?

-------------------------------------------

어릴 때 본당 수녀님이 선물해주신 돈보스코 신부의 만화 전기 「요한아 뭘하니?」를 마르고 닳도록 읽었습니다. 돈보스코 신부님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들에 대해 궁금했기 때문에 생각날 때마다 계속 펼쳐보게 된 것 같습니다.

돈보스코 신부님은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을 모아 <오라토리오>를 만드시고 동네 언덕에 있는 창고를 개조하여 청소년들과 함께 머물 집을 마련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청소년들과 함께 놀고먹고 그들을 위해 당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여있는 아이 중에 먹을 것을 가지고 있는 친구를 찾았습니다. 빵 몇 개가 있었는데 신부님은 그 빵을 가지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고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놀랍게도 모두 다 배불리 먹고 빵은 남았습니다.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한창 먹을 나이인 청소년들이 그 적은 빵을 먹고 배불렀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여러 상상을 해봤습니다. ‘아이들이 신부님 눈치를 보고 배부르지 않은데 먹고 배불렀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빵을 나눠 먹을 때 이미 다른 것을 먹어 배가 고프지 않은 상태가 아니었을까?’

그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상상은 다 해본 것 같습니다.

신학생 때 돈보스코 신부님의 전기를 다시 읽으면서 그 궁금증을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라토리오 청소년들은 돈보스코 신부님의 사랑을 가득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겪은 육적인 허기짐은 사실 그들에게 큰 결핍이 아니었을 겁니다. 정말 작은 양이었지만 빵을 나누는 행위 자체에 영적인 배부름을 느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군중은 예수님을 따르려고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 때 육로로 뒤따라갔습니다. 얼마나 고된 여정이었을까요?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려는 열망 때문에 그런 힘듦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배에서 내려 그들을 보시고 그들 가운데 있는 병자들을 고쳐주셨고 끼니도 해결하게 해주십니다.

복음에서 군중이 먼저 배고픔을 느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그들을 챙겨주십니다. 예수님은 아마도 그들이 당신과 제자 공동체에 함께 하고 싶은 열망을 배고픔이라고 보시고 빵 나눔을 통해 그들을 사랑으로 배를 불리신 것은 아닐까요?

----------------------------------

안동교구 백동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2020년 8월 2일 ‘안동교구 주보’에서
  | 07.31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803   [수도회] 예수님을 따르는 길  [1] 2792
802   [제주] 우리 주교님, 나의 주교님  91
801   [원주] 가깝고도 먼 길  [4] 3078
800   [광주] 누가 우리의 왕인가  [1] 2760
799   [서울] 하늘나라 백성이 지녀야 할 모습  [7] 3323
798   [군종] 자신을 내어 놓는 삶  [1] 1746
797   [인천] 그리스도 우리의 왕  [4] 3019
796   [의정부] 사랑하라는 계명  [3] 2572
795   [대구] 심판의 기준  [2] 2721
794   [마산] 예수님은 나의 왕인가?  [4] 3605
793   [전주] 최후의 심판  [3] 3008
792   [부산] 연민과 봉사의 실천  [6] 3095
791   [안동] 구원의 길  [4] 3027
790   [대전] 희망을 품고 살아 갑시다.  [1] 1567
789   [수원] 그리스도께 합당한 신뢰와 사랑을  [5] 3202
788   [춘천]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3] 3187
787   (백) 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독서와 복음  [1] 2762
786   [수도회] 모든 것이 다 선물입니다  [2] 2166
785   [청주] 주인을 바라보는 눈  181
784   [군종] 내가 가진 작은 것에서 부터  [1] 2235
783   [인천]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  [2] 2357
782   [마산] 나의 달란트 어떻게 쓸까?  2329
781   [춘천] 착하고 성실한 종  [1] 2281
780   [수원] 결실을 맺는 활동적인 신앙생활  [3] 2412
779   [광주] 착하고 성실한 종, 악하고 게으른 종  144
778   [원주] 시든 꽃과 같이  2359
777   [서울] 하느님의 구원 계획  [5] 2650
776   [전주] "묻어둔 달란트를 적극 활용하자”  [1] 2517
775   [의정부] 받은 탈란트를 이웃을 위해  [1] 1776
774   [대구] 자비·겸손·찬미·평화·사랑  [1] 2270
773   [대전]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161
772   [제주] 탈란트의 가치  169
771   [부산] 받은 것을 베풀고 나누고 살자  [1] 2443
770   [안동] 모든 이에게 주신 선물  2069
769   (녹) 연중 제33주일 독서와 복음 (탈렌트talent의 비유)  [4] 1880
768   [수도회] 일상에 대한 진지한 접근  [1] 2591
767   [전주] ‘즉시 그리고 기쁘게’ 나누는 삶  2671
766   [서울]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3] 2917
765   [인천]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  [1] 1475
764   [수원] 깨어 있음의 중요성  [4] 3096
1 [2][3][4][5][6][7][8][9][10]..[21]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1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