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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가엾은 마음’
조회수 | 1,954
작성일 | 05.07.30
[전주] ‘가엾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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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어떻게 남자만도 오천 명 정도 되는 이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을까? 그런 기적을 일으킬 힘은 어디에 있을까?

사실 제자들의 말처럼 그 많은 군중이 먹을 음식이 없었으므로, 그들을 제각기 흩어지게 하여 나름대로 저녁 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군중 가운데에는 그날 먹을 음식이 없는 사람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며칠 동안 굶주린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가진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흩어진다고 하더라도 굶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이들이 눈에서 사라지면, 제자들의 마음은 편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이들의 사정을 잘 알고 계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흩어지게 하실 수 없었다.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마태 14,14)

가엾은 마음, 측은지심은 하느님의 마음이다.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가질 때, 좋은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삶은 관계이다.

이 관계 속에서 때로 사람들이 나에게 불편을 끼칠 때, 우리는 적대적인 생각, 미움이 싹트게 되는데, 이러한 감정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손해를 가져온다.

마음의 불편함을 가져오고, 이 불편함은 일의 능률을 떨어뜨리게도 한다. 그 결과 나와 다른 사람, 모두에게 손해를 가져온다.

그러나 가엾은 마음을 가질 때, 오늘 복음에서처럼 기적과 풍요로움이 온다. 인간적인 생각, 합리적인 생각, 그것이 좋을 것 같지만, 더 좋은 것은 가엾은 마음이다.

이 마음이 하느님의 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께 자비를 구하고, 불쌍히 여기시라고 기도드린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가엾은 마음, 하느님의 마음을 품자. 그러면 풍요로움과 기적이 일어난다.

기적을 원하는가? 풍요로움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가엾은 마음을 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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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경규봉 가브리엘 신부
2020년 8월 2일 ‘전주교구 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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