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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하느님을 나의 경험의 틀 안에 가두지 말자.
조회수 | 2,266
작성일 | 05.08.06
믿음이란 단순히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지적(知的)동의' 만은 아니다. 참된 믿음은 나의 지식이나 경험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도 하느님의 진실하심에 의지하여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에 따라 자신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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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러 가지 믿음

"이 세상에 종교가 없다면 세계는 훨씬 나은 모습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인류사를 되돌아보면 종교와 신앙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전쟁과 비극적인 사건이 많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옛날의 십자군 전쟁뿐 아니라, 현대에도 신앙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테러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종교가 인간과 인간사회의 벽을 허물고 일치를 조장하기보다 오히려 벽과 분열을 조장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종교분쟁은 서로의 종교적 신념과 확신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이끌어갈 자기 나름의 신앙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어떤 것이 참 신앙인가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할 때 단순히 조물주이신 절대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지적(知的)동의'에서부터, 깊은 확신과 그 확신에 따른 철저한 투신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정도도 천차만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신앙생활'이라고 할 때의 신앙이란, 믿음에 따른 추종자다운 삶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사도 야고보는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7) 라고 단언하신 바 있다.

2. 믿음은 하느님을 보는 눈이다.

오늘 복음에서 밤새 풍랑에 시달리던  베드로는 철야로 기도하시고 새벽녘에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다" 하며 소리친다. 그러나 "나다. 안심하여라" (마태14,27)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다혈질적이고 즉흥적이며 성질이 급한 베드로 사도는 "주님이십니까? 그러시다면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하십시오." (마태 14,28)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주님께서 "오너라" (마태 14,29) 하셨다. 어부인 베드로는 물 위에 내려서면 물에 빠질 것임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라고 하시니 어떻게 할 것인가? "오너라"하신 말씀을 들었지만, 물 위로 걸어갈 수 있는 자신이 생긴 것도 아니고,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이 이해가 된 것도 아니다. 다만 자신이 그토록 믿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스승의 말씀을 믿고 자신을  내던졌던 것이다. 그러자 베드로는 물위를 걷게 되었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의 한계를 넘어 주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로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내맡김으로 하느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의심하며 무서워하자 즉시 물에 빠졌다. 오늘의 복음은 믿음의 힘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내가 먼저 하느님의 능력을 체험을 하고 나면, 그 때는 하느님을 믿겠다."고 말한다 . 이것은 앞뒤가 바뀐 말이다. 내가 먼저 나의 상식과 경험의 한계 밖에 있는 것을 받아들이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나를 내 던질 때, 우리는 그 믿음 안에서 하느님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3. 하느님을  경험의 틀 안에 가두지 말자.

물론 신앙인이라고 해서 항상 일상 생활 안에서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을 무시하고 상식 밖의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끔 성서의 요구나 교회의 가르침이 나의 상식이나 경험과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기보다는 나의 경험과 지식을 앞세우며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의 계산을 더 믿는 것이다.

같은 위치에서 같은 장사를 하며 사는 프로테스탄 신자와 천주교 신자를 보면,  천주교 신자는 주일날도 쉬지 않고 가게문을 열고, 수입의 1/10도 바치지 않는다.  인간적인 계산으로 보면, 주일에도 돈을 벌고 십일조도 안 내니까 천주교 신자가 훨씬 수입이 좋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프로테스탄 신자는 주일날 일하고 십일조 안 내면 죽는 줄 알고, 천주교 신자는 주일 날 쉬고 십일조 내면 죽는 줄 안다"는 말도 있다.

성서에는 우리의 일상 경험과 상반되는 요구가 많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그런 요구들을  받아들이며 나를 내 던질 때 거기서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하느님께서 나의 삶 안에 당신의 모습과 능력을 드러내실 기회를 드려야 한다. 우리는 너무나 나의 지식과 경험의 틀 안에 하느님을 얽매어 버리는 때가 많다. 믿음만이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해 준다.

유영봉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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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오늘 복음은 제자들이 겪은 ‘놀라운 기적의 밤’ 일화를 전한다. 빵의 기적 후 제자들은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떠나고 예수님은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가셨다. 배가 호수 한 가운데쯤 이르렀을 때 역풍이 몰아쳤고 제자들은 밤새껏 거친 풍랑과 사투를 벌였다. 갈피조차 잡을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두움’과 ‘예수님의 부재’는 제자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새벽 무렵 제자들에게 다가오신 예수님은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시며 배에 오르시자 풍랑이 멎었다고 복음은 전한다.

마태오복음이 기록될 당시 예수님은 이미 지상에 계시지 않았고 베드로가 선장이 된 교회는 ‘역사의 대해’를 가로질러 항해를 해야 했다. 그러나 교회는 ‘박해라는 역풍’을 만났다. : 스테파노 부제의 순교(사도 7,57-60), 야고보 사도의 순교와 사도들의 투옥 그리고 박해를 피해 뿔뿔이 흩어진 신자들(사도 8,1-3;12,1-5), 로마에서 벌어진 대 박해 등으로 초대 교회는 공포에 휩싸였고 갈피조차 잡을 수 없는 ‘어두운 밤’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박해의 풍랑에 시달리던 교회는 마태오복음을 읽으면서 큰 위로를 받았고 희망과 확신을 가졌다. : ‘주님은 박해의 풍랑과 싸우도록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구원해주러 오신다.’는 것을!

이는 오늘 우리에게도 큰 위로와 희망이 되는 말씀이다. 우리 역시 ‘인생 대해’를 건너고 있다. 그러는 어느 날 우리는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는 ‘인생 역풍’을 만나 사투를 벌일 때가 있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소리친다. ‘주님 저로 하여금 이 시련과 고통의 풍랑 속을 헤쳐가게 해주십시오.’ 그때 주님은 말씀하실 것이다. “오너라.”

그러나 우리가 베드로처럼 몇 발자국 걷지 못하고 ‘시련과 고통의 인생 풍랑’ 속으로 다시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베드로는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져 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는 복음서의 증언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마태 14,30 참조). 시몬느 드 베이유라는 사람은 ‘시선이 그를 구원한다.’는 말을 했다던가!

그리고 주님만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은 물에 빠져드는 베드로의 손을 잡으시며 말씀하셨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 마산교구 김순곤 비오 신부 : 2017년 8월 13일
  |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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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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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풍랑을 맞아 힘들어하는 제자들을 구해주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에 혼자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

제자들이 탄 배는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새벽에야 호수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십니다. 제자들은 처음에는 유령인 줄 알았으나 주님인 줄을 알고 난 후 베드로 사도는 “주님,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오너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 사도는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로 갑니다. 하지만 거센 바람을 보자 그만 무서운 생각이 들었고 이내 물에 빠져들게 됩니다.

예수님을 바로 앞에 두고서도
거센 바람 앞에 두려움을 느낀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물에 빠졌고 주님께 살려달라고 소리칩니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우리도 예수님을 앞에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각자 삶의 자리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며 신앙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인생의 거센 바람과 파도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끼고 힘들어 합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합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용기를 잃지 말고 그분의 이름을 불러야 함을 베드로 사도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짧은 순간 두려움 때문에 물에 빠졌었지만 곧바로 주님을 찾고 주님께 청했던 베드로 사도처럼 우리도 주님을 찾고 청해야 하겠습니다. ‘코로나19’ 뿐만 아니라 더 큰 고통이 밀려와도 주님의 손을 놓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다고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언제 맞바람이 불어 파도가 쳤고 제자들이 힘들어 했는지도 모르게 평온이 찾아온 것입니다.

아무리 힘든 고통과 두려움이 우리를 괴롭혀도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면 내적인 평화를 잃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로 하여금 물 위를 걷게 한 예수님의 말씀이 지치고 힘들어하는 우리 모두에게 큰 힘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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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임효진 야고보 신부
2020년 8월 9일 ‘마산교구 주보’에서
  |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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