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가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63 57.2%
[전주] 물위를 걸으신 기적
조회수 | 2,178
작성일 | 05.08.06
어느 음식점에 갔더니 「원조집」 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었습니다. 그 옆집에는 「우리집은 진짜 원조입니다」라고 걸려 있었습니다. 또 다른 집에는 「우리집이 진짜 참 원조입니다」라고 도배를 해놓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가짜고 자기만 진짜라고 목청을 돋우고, 요란 법석을 떠는 세상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러웠습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가짜가 판을 치는 시대에 바람처럼 일어나 이스라엘의 순수성을 찾으려고 고군분투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위선과 거짓신앙을 폭로하고 바알 예언자들과 한 판 승부를 벌여 피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같은 열정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자신을 죽이기로 작정한 이세벨의 사람들을 피해 먼 길을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어 이제는 지친 몸으로 하느님께 자신의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로소 그는 「진짜 하느님」을 만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대는 바람 속에서는, 가슴 속에 움켜쥔 돌로는, 마음속에 불처럼 타오르는 야망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한 때의 열정이 식으면 남는 것은 허전함이고, 한때의 분노가 사라지면 남는 것은 상처이며, 한때의 광기가 사그라지면 남는 것은 초라한 그림자뿐입니다. 바람도, 지진도, 불도 다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사랑」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합니다. 불같은 열정 속에 숨겨진 야망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천둥과 같은 외침 속에 숨겨진 자기기만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하고, 바람 같은 몸짓 속에 드리워진 오만의 그림자를 볼 줄 아는 사람만이 세상을 끌어안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세상과 함께 갈 수 있습니다.

복음의 이야기는 불같은 베드로와 고요 속에서 일하시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잘 알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을 흔들어 놓은 바람이 무엇인지를, 제자들을 들뜨게 하는 야망의 불길로는 결코 당신의 길을 함께 갈 수 없음을….

그럴 때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사람들의 환호와 거짓 야망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으려고 기도하셨습니다.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선출직후 첫 인사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여러분의 기도에 나를 맡깁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바람과 지진과 불처럼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는 야망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 속에서 본심(本心)을 잃지 않았고, 제자들은 자신들을 뒤흔드는 바람 속에서 헤메이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겪은 풍파와 야심에 찬 베드로를 물속에 곤두박질치게 했던 두려움은 오늘날 우리 자신과 교회가 겪고 있는 현실기도 합니다. 우리는 너도 나도 큰 것을, 강력한 것을,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을 좋아하고 그러한 것들을 추구합니다. 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교회공동체로서도 그러합니다. 외적인 활동에 바쁘고 가시적인 성장만을 추구하다보면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자신의 야망에 집착하게 되어 결국 속빈 강정처럼 내적 공허함이 커지게 마련입니다.

하느님의 위대하심은 큰일을 하시는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숨죽여 사는 죄인들을 구하러 오신 주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 들리지 않는 곳에 계십니다.

믿는 이는 그러한 곳에 눈을 돌리고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믿는 이는 보이지 않는 것, 사람들이 보지 않는 것,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들리지 않는 것, 사람들이 듣지 않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요란한 나팔 소리나 요란한 징과 꽹과리 소리가 아니라 작지만 분명한 침묵의 소리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폭풍처럼, 지진처럼, 불처럼 서로를 흔들어대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갈라놓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슬픔으로 가득 차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와 화해를 호소하는 바오로사도의 간절한 기도는 우리가 가야할 길이고 살아야할 몫입니다.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평상시의 마음이 경박했음을 알았네.
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네.
일을 돌아본 뒤에야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음을 알았네.
문을 닫아건 뒤에야 앞서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이전의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네.
마음을 쏟은 뒤에야 평소의 마음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네」(진계유).

---------------------------------------------------------

전주교구 김영수 신부
463 57.2%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북극 바다 갈매기는 들짐승을 피하여 절벽 위에 둥지를 틀어놓고새끼를 낳습니다.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라 날개짓을 하며 비행 할 때가 되면 어미는 마음아픈 결심을 해야 합니다. 날지 못하는 갈매기는 그 자체가 죽음이기에, 목숨을 건 시험을 시도하는데 절벽 아래로 새끼를 밀어 떨어뜨립니다.

허공에 떨어지는 순간 새끼는 있는 힘을 다하여 날개를 퍼득이다 첫 비행을 하게 되고 그 순간 그 새끼는 새로운 삶이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옳고 좋은 것 같지만 잘못 될까봐 두려워 시도조차 못하고 남의 이목이 두려워 자유로움을 포기하고 마냥 안전권 안에서 적당히 살려고 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성공이란 결실을 기대할 수 없고 하루하루가 신비한 탐험의 여정을 떠날수 없습니다.

오늘 사도 베드로는 아주 특별한 체험을 합니다. 5 0 0 0명을 배불리 먹이신 빵의 기적을 본 제자들은 이 분이야말로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라고 우쭐거릴 때 예수님께서는 일부러(?) 제자들을 먼저 배에 태워 보냅니다. 주님의곁을 떠난 그 날 밤은 그야말로 악몽이었습니다. 깜깜한 밤중에 역풍을 거슬러 간다는 것은 생사를 건 도전이었고 두려움 그 자체였습니다. 두려움에갇힌 마음은 주님까지도 헛것으로 보였습니다.

주님 곁을 잠깐 떠나 있는 동안 제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믿음이 없던 그들을 주님께서는 뜨거운 불에 쇠를 달구어 내듯 단련시키시고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망설임 없이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을 수 있도록 강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날 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주님을 확인한 베드로는 더이상 폭풍이나 어둠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감히 상상할 수도, 있을 수도 없는 청을 합니다. “주님이십니까? 그러시다면 저더러 물 위로 걸어 오라고 하십시오”(마태 1 4 . 2 8 ) “오너라”. 비록 몇 걸음이었지만 베드로는 평생잊을 수없는 체험을 합니다. 주님께 청했더니 허공에 몸을 던진 새끼 갈매기처럼 그대로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약한 것이 사람의 마음, 뒤를 돌아다보는 마음(루가 9 . 6 2 )때문에 또다시 물 속에 빠져버립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고 힘을 잃게 만듭니다. 우리의 관계를 약화시키고 운신의 폭을 좁힙니다.

하느님은 무서운 분이 아니십니다. 어렵고 힘들때 당신 손을 뒤로 감추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그렇다고 우리 대신 모든 것을 당신 능력으로 해결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굶주린 자가 있으면“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마태 14.16) 라고 하셨듯이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주님의 사랑을 믿고 우리의 몫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이겨냅니다.

현유복 신부
  | 08.08
463 57.2%
[전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

짧은 유머입니다.
이스라엘을 여행하던 관광객이 갈릴래아 호숫가에 당도했습니다. 안내원이 “나룻배로 여기를 건너는 데 20달러입니다.”라고 광고하자, 한 관광객이 “아니 뱃삯이 왜 이렇게 비싼 거요?”하고 불평했습니다. “손님, 여긴 역사적으로 유명한 호수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런 줄은 알고 있소만 그래도 너무 비싸지 않소?” “손님! 여기가 바로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신 바로 그곳이잖아요. 그래서 비싼 겁니다!” “거 보슈! 얼마나 뱃삯이 비쌌으면 그 양반이 물 위를 다 걸어갔겠수!”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위를 걸으신 내용입니다.

우리의 삶은 때로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올라가는 때와 내려가는 때를 경험하게 됩니다. 매사가 순풍에 돛 단 듯 잘 풀릴 때가 있는가 하면 역풍을 만나서 힘겨워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의 여정에서 중요한 사실은 올라갈 때보다 오히려 내려갈 때가 하느님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언자 엘리야는 ‘갈멜산’ 위에서
바알의 예언자 450명과 겨루어 놀라운 승리를 거두고 그들을 모두 다 쳐 죽여 버립니다. 이때 엘리야의 기세는 아무도 꺾을 수 없을 만큼 기세등등했지요.

그러나 ‘바알’의 숭배자였던 왕후 ‘이세벨’이
복수를 다짐하고 엘리야에게 칼을 겨누자 그는 두려움에 떨며 도망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 서슬 퍼렇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모두 끝났다고 하느님께 죽여 달라고 애원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엘리야가 하느님을 새롭게 체험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한때의 승리로 오만해질 뻔한 엘리야를 그분 없이는 초라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하시면서 '조용하고 여린 소리'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5천 명을 배불리 먹인 표징을 일으키신 다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먼저 배에 태워 호수 건너편으로 보내십니다. 때는 이미 날이 저물고 난 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기도를 마치시고 풍랑에 시달리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물 위를 걸어서 오십니다. 마치 당신 없이 한번 살아보라는 듯 멀리 계셨다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제자들에게로 돌아오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그분이 배에 오르시자 바람은 그치고 풍랑은 잔잔해집니다.

여러분! 인생이라는 바다에는
때로 사나운 바람과 성난 물결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련이 닥쳐올 때라도 우리는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하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유령처럼 다가 오신다 해도 그분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닥을 칠 만큼 내려 갔을 때에도 우리는 거기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물속에 빠지는 실패 속에서도
주님께 온전히 매달렸기에 잡아주시는 그분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실로 내려가는 때가 바로 그분을 만나는 때요 새롭게 일어서는 때입니다. 엘리야가 그랬고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코로나19의 팬데믹(새로운 질병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것)
상황으로 힘겨운 나날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분의 음성을 듣고 힘을 냅시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

---------------------------------------

전주교구 이성우 마티아 신부
2020년 8월 9일 ‘전주교구 주보’에서
  | 08.07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803   [수도회] 예수님을 따르는 길  [1] 2792
802   [제주] 우리 주교님, 나의 주교님  91
801   [원주] 가깝고도 먼 길  [4] 3078
800   [광주] 누가 우리의 왕인가  [1] 2760
799   [서울] 하늘나라 백성이 지녀야 할 모습  [7] 3323
798   [군종] 자신을 내어 놓는 삶  [1] 1746
797   [인천] 그리스도 우리의 왕  [4] 3019
796   [의정부] 사랑하라는 계명  [3] 2572
795   [대구] 심판의 기준  [2] 2721
794   [마산] 예수님은 나의 왕인가?  [4] 3605
793   [전주] 최후의 심판  [3] 3008
792   [부산] 연민과 봉사의 실천  [6] 3094
791   [안동] 구원의 길  [4] 3027
790   [대전] 희망을 품고 살아 갑시다.  [1] 1567
789   [수원] 그리스도께 합당한 신뢰와 사랑을  [5] 3202
788   [춘천]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3] 3187
787   (백) 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독서와 복음  [1] 2762
786   [수도회] 모든 것이 다 선물입니다  [2] 2166
785   [청주] 주인을 바라보는 눈  181
784   [군종] 내가 가진 작은 것에서 부터  [1] 2235
783   [인천]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  [2] 2357
782   [마산] 나의 달란트 어떻게 쓸까?  2329
781   [춘천] 착하고 성실한 종  [1] 2281
780   [수원] 결실을 맺는 활동적인 신앙생활  [3] 2412
779   [광주] 착하고 성실한 종, 악하고 게으른 종  144
778   [원주] 시든 꽃과 같이  2359
777   [서울] 하느님의 구원 계획  [5] 2650
776   [전주] "묻어둔 달란트를 적극 활용하자”  [1] 2517
775   [의정부] 받은 탈란트를 이웃을 위해  [1] 1776
774   [대구] 자비·겸손·찬미·평화·사랑  [1] 2270
773   [대전]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161
772   [제주] 탈란트의 가치  169
771   [부산] 받은 것을 베풀고 나누고 살자  [1] 2443
770   [안동] 모든 이에게 주신 선물  2069
769   (녹) 연중 제33주일 독서와 복음 (탈렌트talent의 비유)  [4] 1880
768   [수도회] 일상에 대한 진지한 접근  [1] 2591
767   [전주] ‘즉시 그리고 기쁘게’ 나누는 삶  2671
766   [서울]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3] 2917
765   [인천]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  [1] 1475
764   [수원] 깨어 있음의 중요성  [4] 3096
1 [2][3][4][5][6][7][8][9][10]..[21]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1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