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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왜 의심을 품었느냐?
조회수 | 2,203
작성일 | 05.08.06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는 건설된 지 한 세기가 지난 오늘도 장엄하고 견고하게 그 자리에 버티고 있다. 교량이 건설될 때부터 숱한 일화를 남겼는데, 그중 하나를 소개한다.

교량의 높이가 워낙 높고 그 밑으로 지나가는 검푸른 바다 물결이 험난하여 공사 중에 인부가 실족하여 추락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그리고 그 높은 공사현장에서 떨어져서 생존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자 시공자 측에서 내놓은 궁여지책이 건설 중인 다리의 난간 아래로 그물을 쳐 놓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물을 쳐 놓자 실족하거나 추락하는 일이 대폭으로 감소하고 더 이상 같은 재해가 재발되지 않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엉성한 그물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실제로 인부들의 생명을 구해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믿어야 하고 반드시 믿는 데가 있어야 한다. 사람은 그렇게 믿고 살아가도록 설계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믿을 데가 없거나 믿는 것이 없는 사람은 매사가 불안하고 두렵다. 지속되는 불안과 두려움은 끝내 인간을 절망과 좌절의 나락으로 밀어낸다. 계속되는 경제 불황과 사회의 혼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리 위에서 몸을 던지거나 말없이 집을 나가 목을 매는 일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철석같이 믿던 것을 하루 아침에 잃었거나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때문이다. 믿되 누구를 믿고 무엇을 믿느냐 하는 것도 중차대한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대상과 그 번지수를 잘못 찾아가고 있다. 실로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한 때 잘 나가던 베드로 사도가 물속 깊은 심연으로 빠져 들어간 것은 거센 바람과 물결에 그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잃고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자기의 힘이나 재물을 믿는 사람 또한 자신이 믿던 밧줄이 썩어 끊어지는 날, 검고 푸른 죽음의 심연으로 추락할 것이다. “주님, 살려 주십시오.”    

맹석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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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지 마라."

어릴 적 누구나 지녔던 상상의 나래가 있습니다. 그것은 대개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거나 동심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아름다운 꿈들이었습니다. 피터팬처럼 하늘을 훨훨 날고, 월계수 옆에서 방아 찧는 토끼를 만나거나, 호박으로 만들어진 마차를 타고 왕자님의 잔치에 가는 꿈을 꾸곤 했지요. 그런 어린 시절의 꿈 중에 하나가 ‘물 위를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져 마음껏 물 위를 거닐 수 있다면 걷고 또 걸어서 세상 끝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한번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린 경험이 있은 후에는, 깊은 물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다시는 물 위를 걷는다는 비상식적이고 반자연적인 상상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이 끝난 것이지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사람이 물 위를 걷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다시는 그런 상상을 하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예수님은 물 위를 걸으십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핵심은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물 위를 걸으시는 주님의 모습이 아니라, 그 앞에 선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어린 시절의 단순함을 지니지 못한 제자들에게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은 단지 ‘유령’일 뿐입니다. 그러니 캄캄한 밤중에 맞바람을 만나 시달리던 제자들에게 갑자기 나타난 유령은 질겁할 만큼 두려고 무서운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방금 전 빵을 많게 하시어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자신들의 스승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 인간적 공포와 죽음에 직면한 두려움은 순식간에 그들을 불신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은 진리를 바로 인식할 수 없고, 내면에 자리한 공포는 올바르고 건전한 신앙을 방해합니다. 사실 호수 한가운데에서 죽을 것 같은 위험에 빠진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출현은 구원이고 해방이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약한 인간들은 자신들 앞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알아 뵙지 못했습니다.

살아갈수록 세상이 무섭고 두렵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은 어렵고 힘들다고 느낍니다. 날로 자신이 없어지고 매사에 초라하기 그지없는 자기를 발견합니다. 물 위를 걷고 싶던 어린 시절의 꿈은 온데 간데 없고, 물가에는 아예 나가지 않는 소극적 삶을 살기도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묵상합니다. 내가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어느새 내 옆으로 오시어 자상하지만 그러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말씀하시는 그분을 바라봅니다. 일찍이 내가 주님으로 믿고 고백했던 그분, 물 위를 걸어서조차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그분을 향해 손을 내밀고 말합니다. “당신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저의 주님이십니다.” 이즈음 돌아가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생전에 하신 신념 가득한 위로의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신호철(토마스) 신부
  |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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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마라

복음은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과 예수님을 향해 물 위를 걷는 베드로를 통해 우리의 신앙생활을 살피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많게 하여 많은 군중을 배불리시고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먼저 출발하게 하고, 당신은 군중들을 돌려보내고 혼자 산에서 기도하고 나서 새벽에 제자들의 배를 향해 물 위를 걸으셨다. 배는 교회와 우리의 인생여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제자들은 배에서 마주 오는 바람과 파도에 시달리고 어려움을 겪으면서 두려움에 빠진다. 우리도 삶 안에서 여러 어려움을 맞이할 때, 예수님이 멀리 계시거나 계시지 않는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이때에 우리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아야 하고,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한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처한 어려움, 고통 때문에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걸으심으로써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신다. 예수님은 물 위를 마치 땅처럼 걸으시는 분이시다. 우리도 여러 어려움과 고통을 마주하면 제자들처럼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예수님은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시며 제자 들을 두려움으로부터 당신의 평화로 이끌어주신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간청한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베드로의 이 청은 신앙 안에서 무 엇인가를 바라는 우리의 심성이 드러난다. 우리는 자신이 믿는 그 대상까지도 가능하다면 확실하게 눈으로 보려하고, 손으로 만져보려 하며, 나아가 자신에게 어떤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이 청은 또 하나의 신앙고백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어떤 일을 할 때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말씀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의 청을 받아주신다. “오너라.” 베드로는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로 나아간 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실현하려 할 때 예수님은 호의적으로 그러한 활동들을 받아주신다. 베드로는 거센 바람과 낯선 자신의 행동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면서 두려움을 느끼고 물에 빠졌다. 예수님께로 향함에 있어 그 어떤 것으로 방해를 받거나 그 무엇이 자신의 지향에 중심이 될 때 물에 빠지는 것이다. 한 마음은 예수님께로 또 다른 한 마음은 거센 바람과 낯선 자신처럼 눈앞의 현실에 두게 되면 물에 빠진다. 베드로는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절규하였고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베드로의 두 마음, 약한 믿음을 지적하신다. 믿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향할 때 눈앞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그 현실을 초월하시는 주님께 로 향하게 한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활동들을 할 때 믿음을 가져야 하고 그 상황이 아무리 낯설고 어렵더라도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믿음이 있으면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기 때 문이다. 우리가 마주치게 되는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의 활동을 거부해서는 안된다. 주님께서 우리의 활동을 받아주시는지 먼저 기도하고 앞을 향해 나아가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활동들을 때로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도와주시고 적어도 유효적절한 방법으로 도와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용기를 내어 이 세상에 주님의 일을 실천해야 한다.

▦ 춘천교구 이동주 시몬 신부 : 2017년 8월 13일
  |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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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관상기도 함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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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독서와 복음의 주제는 기도이다.
그런데 하루에 몇 시간 기도하면 예수님 말씀처럼 살 수 있을까? 예수님은 우리가 몇 시간 기도하기를 원하실까?

보통 수도원에서는 하루에 4시간 기도하는 것 같다.
‘나는 사제가 되면서 평균 3시간씩은 기도했었다. 이렇게 하면 기도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도 나는 알코올 중독, 일 중독 등을 겪으면서 혼돈에 빠졌다. 여기에 마음의 병까지 심해져 우울증, 분노 조절 장애증 등이 겹쳐 사제생활이 기쁘지 않았다.

매일 5시간씩 기도를 2년 하고부터는
이런 병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이제는 죽을 때까지 매일 9시간 기도하기로 서원하였다. 잠은 못 자고 밥은 못 먹어도 내가 약속한 기도 시간은 꼭 지킨다.

매일 9시간 기도하면 어떻게 될까?
돈도 필요 없다. 친구도 필요 없다. 돈이 있어도 돈 쓸 시간이 없고, 친구가 필요할 정도로 외로움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 기도하는 것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래서 유튜브에 “관상기도 함께하기” 채널을 만들었다. 페이스북에도 친구를 많이 신청했다. 매일 새벽 3시 30분부터 9시 50분까지, 오후에는 7시부터 11시 30분까지,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실시간으로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방송하고 있다. 기도의 중요성을 알려 주기 위해서이다.

백세시대에는 기도가 답이다.
외로운 사람,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 모두 기도가 답이다. 살아있다는 것, 시간과 마음을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다는 것, 이만큼 더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관상기도 함께하기”
채널로 오세요. 틀어만 놓으시고 듣고만 계셔도 됩니다. 제가 대신 기도해 드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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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정원일 가브리엘 신부
2020년 8월 9일 ’춘천교구 주보‘에서
  |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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