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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주님께서 가신 길
조회수 | 2,513
작성일 | 05.08.26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주님이시라 고백하고 믿고 따르는 분. 그분은 이 세상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사셨기에 누구보다도 더 사람의 본성을 잘 이해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부와 명예, 권력과 사랑, 세속적인 쾌락과 행복이 있음을 주님께서 왜 모르시겠습니까! 그럼에도 그 분은 제자들 앞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선포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수많은 세속적 가치를 쫓는 길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신 겁니다.

세상에 만연한 세속적 가치들보다 더 귀하디 귀한 그 무엇이 있음을 알리고자 하십니다. 말씀만이 아니라 행위로도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진리를 증거하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이신 그 분께서 십자가의 어리석음과 죽음을 통해서 세상에 보여주고자 하신 그 고귀한 것을 베드로는 알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믿고 따르던 스승의 목숨과 명예를 지키고자 합니다. 그것이 바로 베드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겠지요. 저라도 그 상황이라면 주님을 말렸을 겁니다. 스승의 목숨과 명예를 지키고자 하는 제자의 마음 그리고 자신의 목숨과 명예를 바쳐서라도 가장 고귀한 것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시는 스승의 마음은 부딪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베드로는 스승을 지키고자 그 가시는 길을 말렸는데도 그 때문에 심한 꾸중을 듣습니다.

베드로보다 못한 저 자신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서글픕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가장 소중한 한 가지, 하느님의 일,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는 그 길을 알면서도 사람의 일에 여전히 매여 있는 저 자신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서글퍼집니다. 하느님의 사제로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생을 바치고자 다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돌아보면 어느새 사람의 일에 마음이 매여 있고 세속적 가치를 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단호히 당신의 길을 가신 주님을 생각합니다. 아무리 붙들고 말려도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그 고난의 길을 향해 가신 주님을 생각합니다. 주님은 참된 스승이십니다. 말로만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몸소 보여주십니다. 그러면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 하십니다.

하느님의 예언자들도, 사도들도, 성모님도, 주님마저도 자신을 버리고 세속적인 가치들을 뒤로하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쫓아서 가신 그 고난의 길, 그 길이 바로 생명의 길이요 부활의 길임을 가슴깊이 새기고 살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제2의 그리스도로서 살아내고 싶습니다.

이제 사제 생활 만 4년이 지났는데 처음의 그 마음이 무디어져 있음을 깨닫습니다. 제 자신을 가다듬고자 이제 또 버리고 비워야 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방선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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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또 버립시다.

늘 삶에 대해 불평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 비해 자신이 너무 힘들고 어렵게 살아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예수님을 찾아가 따져물었습니다. “예수님, 왜 저에게만 다른 사람들 보다 무겁고 큰 십자가를 지워 주셨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를 십자가가 가득 차 있는 큰 창고로 데려가 '자신의 십자가를 찾아보아라.' 하셨습니다. 그는 제일 먼저 가장 무겁고 큰 십자가를 살펴보았지만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한참을 찾다가 드디어 자신의 이름이 쓰여 있는 십자가를 찾았는데 그것은 가장 작고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삶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예화처럼 자신이 가장 무겁고 큰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왜! 나만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거야?” 하고 불평합니다. 이렇게 불평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내 앞에 닥친 상황만을 생각하였지, 내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평하는 이유를 곰곰이 따져 보면 자기 비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을버린다는 것은 집착을 끊는다는 것입니다. 즉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탐욕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에서의 끝없는 인간적 욕심 때문에 자신을 버리지 못하고 있고, 그로 인해 자신이 지고 가는 십자가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집착(욕심)에서 벗어날 때 진정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또한 세상을 향한 욕심을 비워 나갈 때, 우리가 진 삶의 십자가는 더욱 가벼워 질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를 버리고 또 버리는 삶을 통해 진정한 구원의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주님으로 채워나감으로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번 한 주간 작은 것부터라도 우리의 집착(욕심) 버리기를 시작합시다.

김성일 모세 신부
  |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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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오늘 베드로 사도에게 말씀하시는 사람의 일과 하느님의 일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요? 하느님은 하늘로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본인과 하느님이십니다.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버지와 하나이어야 하겠지요? 하느님께서는 내게 전부를 열어 보여주시고 내어주시는 분이시기에, 진리와 아가페적 사랑 말고는, 가리고, 감추고, 속이고, 계산하여 그분 앞에 서려 하는 마음은 무엇이든지 가능하게 할 수 없습니다. 내 아픔, 미약함, 부족함까지도 사랑하시는 아버지시기에 우린 언제나 사랑을 고백할 수 있음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자리에서 하늘을 뵈올 수밖에 없음을…. 그렇다면 각자의 환경과 이적(현재)적 사명을 다할 수밖에….

풀어서 표현하자면 각자의 상념, 하루하루의 생활을 무엇으로, 어디로 향해 가고 있나 생각하여야 합니다. 또한 성인의 삶을 본받을 각오와 하늘의 환희를 동시에 받아들이려는 의식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요. 어려운 일일 수도 있으나 너그러우신 자비의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저 감사와 흠숭의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고개 저어 부정하는 것도, 원망과 좌절, 세상을 향해 화를 내는 것도, 더구나 너를 탓하는 것도 길이 아님은 끝내 궁색한 변명과 속 좁은 생각 속에 빛의 생명력을 잃어가는 모습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기꺼이 주어진 모든 것을 품고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는 것이 천상적 삶에 가까이 다가서는 것임을 알게 된다면, 지금의 나의 처지는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겠지요?

해마다 매서운 찬바람 불던 계절이 지나면 또다시 연둣빛 새싹들로, 알록달록 예쁜 꽃으로 세상을 옷 입히시거늘, 오늘 만난 타인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하길 기도한다면 천상적 요소의 환희와 행복을 담는 것입니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고뇌의 환경은 기쁨으로 성화하여, 평화와 행복을 위한 삼위일체적 염원을 신앙 안에서 펼칠 수 있음을…. 그렇게 너와 나를 하나로 묶어주시는 하늘을 향해 행복의 미소를 자꾸자꾸 지어봅시다.

“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를 도와주고, 주님의 법은 건실하여 둔한 자를 가르치고, 주님의 계명은 올바르니 마음을 즐겁게 하고, 주님의 법은 환하시니 눈을 밝혀주도다. 주님을 경외함은 순전하니 영원히 남고, 주님의 판단은 참다우니 모두가 다 옳도다. 금보다 순금보다 더 바람직하고, 꿀보다 진꿀보다 더욱 달도다.”(시편 19,8-11) 아멘.

하상범 바르나바 신부
  |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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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신앙인의 선택

지난주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바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베드로의 대답을 통해 인정하셨고,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기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지난주일 복음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가 해야 할 일은수난과 죽음을 통해 이 세상을 구원하는 일임을 밝히십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스승이 죽어야 한다니 ‘맙소사! 안됩니다!’ 하면서 놀라 펄쩍 뛰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크게 꾸짖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입니다. 신앙인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가장 중심에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의 생각보다는 하느님의 생각을, 나의 의지보다는 하느님의 의지를, 나에게 좋은 것보다는 하느님께 좋은 것을 먼저 선택하고 하느님께 자신을 맞추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오늘 2독서인 로마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2)

오늘날의 세상은 너무 많은 것들로 우리들을 유혹합니다.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어지럽히는 어둠의 문화들이 ‘괜찮아, 괜찮아. 누구나 다 그렇게 하잖아. 아무것도 아니야.’ 하며 빛의 자녀인 우리들을 유혹합니다. 세상을 따르자니 신앙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거부하자니 사회에서 도태되고 소외될까봐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둠의 문화에 익숙해지고 친숙해지는 동안, 우리의 영혼은 하느님을 그리워하며 애태웁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느님 안에서 비로소 기쁨과 행복과 평안을 얻기 때문입니다. 우리 영혼의 고향은 바로 하느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신앙인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무엇이 정말로 우리를 살리는 것이고 우리를 위하는 것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참된 삶의 길이 아니라 어둠과 죽음의 길로 나를 이끄는구나!” 하며 뿌리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현세적인 기쁨과 쾌락을 따르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으면 결국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주님께 있습니다. 주님을 따라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신앙인이 됩시다!

▥ 대구대교구 김종률 스테파노 신부 - 2017년 9월 3일
  |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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