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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사랑의 실천은 나눔에서 시작
조회수 | 2,324
작성일 | 05.09.02
예수님께서는 자나깨나 불조심이 아니라,
사랑의 길을 가르치시고 하느님과 이웃에 관한 애덕 실천의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도 변함 없이 사랑의 여러 가지 방법을 가르치시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ꡒ어떤 형제가 당신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단 둘이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 주시오ꡓ 하시며, 형제적 권고 혹은 형제적 견책이 중요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남이야 어떻든 간에 무슨 상관이야 하는 사고방식이나,
남이야 전봇대로 이를 쑤신들 무슨 참견이야 하는 생각은 사랑의 실천과는 거리가 먼 인사일 것입니다. 사사건건 남의 일에 참견하려는 몰상식한 수다쟁이 앞에서나 통하는 말투일지언정 화해와 평화의 길목에서는 영원히 사라져야 할 말버릇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형제 중 누가 잘못하였을 적에
그저 비웃는 낯으로 방관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는 우리 형제요, 같은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들입니다. 그의 잘못은 나의 잘못이며 공동체적인 의식으로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가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군대라는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고립된 생활을 하다보면 나 하나만 잘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됩니다. 사고방식을 멀리 추방할 때 사랑의 삶은 시작됩니다. 예수님을 충실히 따르고 봉사하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선언한 우리는 진실하게, 올바르게, 의롭게 착한 것을 항상 생각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으로 옮기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형제들이 잘못할 적에는
사랑의 정신과 아껴 주는 마음으로 순순히 타일러 주어야 하겠습니다. 따스한 봄볕에 얼어붙은 얼음이 살살 녹듯이 그 완고하고도 괴팍한 이웃 사람의 마음이 고요함과 평화를 찾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ꡒ형제 하나를 얻은 것입니다ꡓ(마태 18,15).

일보 전진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들과 사랑을 나눔으로써 일치의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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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박성민 요한 크리소스토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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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몇해 전 이 세상에서 가장 눈빛이 아름다운 배우로 프랑스의 이자벨 아자니가 선정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배우의 눈빛이 신비롭고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가 흥미로운데요, 시력이 극도로 나쁘기 때문에 눈빛이 그렇게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즉, 흐리게 보이는 세상을 흐린 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눈빛이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네요. 사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 안경을 벗고서 물건을 볼 때, 눈을 찡그리면서 억지로 보려고 하기 때문에 얼굴이 주름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흐린 모습일지라도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면, 오히려 신비한 눈빛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상주의 화가로 유명한 모네는 말년에 점차 시력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그 흐린 시력으로 본 정원을 그대로 받아들여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그렸지요. 그래서 그때 그린 ‘수련’이란 작품은 모네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흐리게 보이는 세상도 있는 그대로 볼 때, 스스로 신비롭고 아름답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렇게 흐리게 보이는 세상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분명하게 보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이 점은 친구를 사귀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친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게 도움이 되는 그 친구의 어떤 면을 바라보면서 상대를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내게 도움이 되는 면만을 찾으려고 하니 얼마나 힘들까요?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을 억지로 볼 때 눈을 찡그려야 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이렇게 찡그려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점점 보기 싫게 변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우리들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모든 면을 있는 그대로 봐주라고 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용서인 것이지요. 물론 이 용서라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용서하지 않는다고 해서 변화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미워하는 그 사람의 삶이 내가 용서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불행해질까요? 아닙니다. 변화되는 것은 딱 한 가지, 바로 내 마음의 눈이 찡그려지면서 점점 보기 싫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길 원하시는 주님의 뜻에 과연 우리들은 얼마나 적합하게 살고 있을까요? 나의 모습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박윤배 신부
  |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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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조언을 해주는 용기

가톨릭교회에서 주관하는 어떤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몇몇 신부님들과 인사를 드리는 중에 어느 원로 신부님의 코에 코털이 길게 내려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데, 저는 그 신부님을 볼 때마다 자꾸만 길게 내려온 코털만 눈에 띄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신자들을 만나러 가실 텐데, 주변에 비슷한 연배의 친한 신부님들이 이야기 좀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정말 못 보는 건지 못 본척하고 있는 건지 아무도 이야기를 안 꺼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다 연세도 많으셔서 뭔가 예의에 어긋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조심스럽더라도 코털에 대한 조언을 해드리는 것이 이후 많은 신자들을 만나러 가실 그 신부님을 사랑해 드리는 일이 아니었나 싶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 일들을 종종 겪습니다. 나보다 계급이 높고, 연배가 높고, 거기에다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닐 때, 그 사람의 코에 코털이 나와 있으면, 이빨에 고춧가루가 끼어 있으면 참 난처합니다. 말해주고 싶은데, 말을 꺼내면 관계가 어색해질 것 같고, 그렇다고 말을 안 해주면 계속 모르고 다른 사람들을 만날 텐데, 그것이 그 사람에게 결코 유익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내 곁에 있는 누군가가나에게 죄를 짓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 사람의 잘못된 언행 때문에 내가 상처를 받았는데, 막상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며 그것이 죄라고 말해주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습니다. 내가 말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즉시 변하지도 않을것 같고, 괜히 그 사람의 죄에 대해 지적하는 것을 오히려 그 사람이 불편하게 느껴서 관계가 틀어질까봐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그 사람이 나의 상관이나 손윗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에 대해 오늘 복음은 구체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저지른 죄가 마치 안 친한 사람의 코털 같고 이빨에 낀 고춧가루 같다 하여도, 나를 위해, 그리고 그를 위해이야기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나 혼자 말하기 조심스럽다면 그 사람과 친한 한두 사람을 통해서라도 그가 저지른 죄를 깨닫도록 도와야 하며, 그것도 안 된다면 교회에라도 알려야 합니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언행이 죄였음을 깨닫도록 만드는 것이 내 상처가 치유될 수 있는 방법이며, 또한 그 사람을 구원의 길로 초대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죄에 대해 조언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색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건네는 한마디 조언이, 그 사랑의 실천 하나가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할 수도 있음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군종교구 최혁 베드로 신부 - 2017년 9월 10일
  |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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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용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행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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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는
우리를 더 아름답게 빛내주는 단어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단어들 가운데 ‘용서’라는 단어를 참으로 좋아합니다.

‘용서’라는 단어는
내가 다시금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용서’라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실천하기 힘든 행동 가운데 하나이기에, 우리는‘용서’를 함에 있어서 다양한 기준과 잣대를 통해어떠한 조건을 걸고서 용서를 실천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
나에게 고통을 주었던 사람 등 생각만 하여도 기분이 상하고 치가 떨릴 정도로 용서하기 힘든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삶에서 실천하기 힘든 용서를 실천할 수 있게끔 이끄는 힘은 무엇에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기대어 의탁하는 것입니다. 곧 내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던 무한한 사랑과 용서의 체험을 다시금 기억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복음 말씀을 통해
‘용서’라는 행동이 분명 하느님의 사랑을실천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행동임을 알게 됩니다. 또한 용서의 행동이 소중한 사람을 얻을 수 있게 할 만큼 가치 있는 모습임을 우리는 오늘의 복음말씀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교우 여러분!
우리의 삶은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의탁하며 살아가는 마음으로, 나, 우리 가족, 우리 이웃과의 만남을 통해 주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이 하루를 함께 지내며, 사랑하는 가족, 이웃들에게 다음과 같은 따듯한 사랑과 자비의 말을 전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고맙습니다.”,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교우 여러분 모두에게
오늘의 이 하루와 이번 한 주간의 삶이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는 시간으로 가득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용서를 필요로 하는 죄인임을 깨달을 때 이웃을 쉽게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이웃을 용서하려면 우리 자신이 먼저 용서받아야 합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에게 다가오는 그 누구한테도 ‘당신을 용서해요.’라는 말을 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입니다.” (성녀 마더 데레사,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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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유윤상 토마스 베켓 신부
2020년 9월 6일 ‘군종교구 주보’에서
  |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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