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가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60 66.4%
[대구] 충고는 사랑의 모험
조회수 | 2,414
작성일 | 05.09.02
우리는 일상의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잘못이나 실수를 합니다.
그리고 타인의 잘못이나 실수도 보게 됩니다.
타인이 실수나 잘못을 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나요?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생각해 버린다. / 별 사이가 아니라면...
마음이 아프지만 ‘그렇게 하지 마라’며 충고한다.
충고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이라면...

얼마 전
평일 미사 때의 복음 말씀 중에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우리 신자들은 어렵지만 용서를 실천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이 말씀만 보면 무한정으로 용서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 말씀을 보면 ‘무작정 용서’하는 그 차원을 넘어서 상대방에 대한 사랑을 시도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형제가 너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단둘이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 주어라. 그가 말을 들으면 너는 형제 하나를 얻는 셈이다.” 하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 혼자 용서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으로 있기보다는 ‘진솔한 대화’에 ‘사랑의 모험’을 띄우라는 말씀입니다.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을 촉구하기란 분명 하나의 모험입니다. 잘못했다가는 서로의 마음에 상처만 더 크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되레 멱살을 잡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앞섭니다.

그러나
개인적 충고가 효력을 내지 못할 경우 예수님께서는 더 나아가 한 두 사람의 증인을 대동하여 재차 충고하고 그것도 여의치 못하면 공동체에 알려서 처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허나 여기까지 가기란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큰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이 비극일 수 있습니다. 해서 딜레마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구에게 충고를 할 때는 상대방을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감정을 실어서, 혹은 악한 마음으로 하는 충고는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미운 마음만 생기게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할 때,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 소중한 친구를 얻게 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용서하는 마음이 기본으로 작용해야 하겠지요.

제2독서에 나오는 말씀에서
바오로 사도께서 이렇게 얘길 합니다. “남에게 해야할 의무를 다 하십시오. 그러나 아무리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라고요. 때문에 용서와 충고는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 것입니다. 혹시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충고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 그분 상대방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고 용서를 하고 사랑의 모험을 시도해 보십시오. 나머지는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간직하며 지내는 날들이 되시길 바래봅니다.

---------------------------------------------------------------

대구대교구 한창현 요셉 신부
460 66.4%
가서 타일러라

어릴 적 밖에서 놀다가 동네 형한테 맞고 들어 온 적이 있었습니다. 울면서 집으로 들어오는 저를 본 바로 위의 누님이 즉시 달려 나가 나이도 더 많고, 덩치도 더 큰 그 형과 싸워 KO를 시켰습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와 힘이 났을까요? 우리는 우리의 형제자매들, 곧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잘못 되었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잘못 되든지 말든지, 죽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서로에게 무관심하지 않으며 서로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합니다. 만일 우리가 가족 중에 누가 잘못 되었을 때 별로 마음이 아프지 않는다든지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줄 마음이 없다면 우리 안에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오늘 독서와 복음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녀야 할 사랑의 의무와 책임에 대해 가르쳐줍니다. 제 1독서에 보면,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를 향하여 예언자의 사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만일 죄인이 그 잘못을 타일러주지 않아서 그가 죽었다면 그 사람이 죽은 책임을 나는 너에게 지우리라’. 곧 예언자는 하느님을 떠나 그분의 계명을 저버리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잘못을 바로잡을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2독서에서는 그것이 바로 사랑의 의무요 책임이라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진정 우5리가 주님의 제자로서 사랑의 계명에 따라 사는 사람이라면 타인의 불행에 대해서 결코 무관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공동체의 형제자매가 공동선을 해치고 죄를 지을 때, 공동체는 그를 고쳐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교회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내쫓을 권한도 있지만 공동체의 사명은 그를 내쫓는 데에 있지 않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는 착한 목자처럼 그를 찾아오도록 노력하는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사실 요즘은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것이 보통의 일이 되었습니다. 괜히 잘못 관여했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것을 보고도 모른 척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교회공동체 내에서도 누가 잘못을 해도 그것을 바로 잡아 주려하기 보다는 그냥 참거나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무시하거나, 또는 왕따를 시켜 버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으로 살아야 하는 신앙인의 삶의 모습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사람을 포기하는 것 보다 더 큰 잘못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혜를 다해서 노력한다면 분명히 주님께서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신현욱 신부
  | 09.03
460 66.4%
[대구] 끝내 포기하지 않을...

아픈 사람은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 유능한 의사(醫師)를 필요로 하고 좋은 약을 필요로 합니다. 물론 좋은 병원이나 검사장비도 필요하겠습니다. 하지만 환자 자신이 낫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면 그 어떤 명의(名醫)나좋은 약도 소용없습니다. 낫고자 하는 의지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픈 사람이고 치료받아야할 환자임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치료는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몸을 이루는 교회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속담에도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있듯이, 어느 한 지체가 아프면 온몸이 아프기 때문에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우리는 아픈 곳을 치료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이러한 교회 공동체가 나아가야할 모습을 보여줍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그를 타일러라.’고 예수님께서 당부하십니다. 어떤 죄를 지었는지 모르지만 복음 말씀에서 언급되는 그 형제는 공동체의 친교에서 벗어나 있고, 영적으로 아픈 사람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자신이 영적인 의미에서 환자임을 인정하도록 도와주는 일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단 둘이 만나서 타일러도 안 되면 한두 사람을 더 데려가고, 그래도 안 되면 교회에 알리라고 하시는 말씀은 곧,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관심과 사랑을 쏟으라는 말씀입니다.

복음 말씀은 그러한 관심과 사랑뿐만 아니라 처방까지도 안내해줍니다. 자신이 아픈 사람이고 영적으로 치료받아야할 환자임을 인정하는 이에게 용서와 기도로써 도울 것을 오늘 복음은 권고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8,18)라는 말씀은 고해성사를 통해서 죄를 사하는 권한을 교회에 주셨음을 뜻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하느님의 용서를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로써 도와야 하니, 예수님께서도 이르시기를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마태18,19)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이 요구하는 바는 신앙의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인맥에 의존하는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랑의 의무 앞에서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순 없기 때문에 형제를 위한 충고나 그에 준하는 관심과 사랑, 용서와 기도는 또 다른 형태의 사랑실천이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교회 공동체가 서로 이루는 친교, 그 사귐의 신비에는 모든 사람들이 초대받았습니다. 우리가 실천하는 사랑은 모든 사람들을 향해 넓혀져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오늘둘째 독서에서 밝혔듯이, “사랑은 율법의 완성”(로마 13,10)이라는 사실은, 그렇게 살아가려는 우리에게 좋은 지침이 될 것입니다.

▥ 대구대교구 최의정 바오로 신부 - 2017년 9월 10일
  | 09.08
460 66.4%
[대구] 율법의 완성 - 사랑이 되기

----------------------------------------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그러므로 너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들을 때마다,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 네가 악인에게 그 악한 길을 버리도록 경고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기 죄 때문에 죽겠지만, 그가죽은 책임은 너에게 묻겠다.” (제1독서)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복음)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루카 복음 17장 3절)

예언자는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입니다. 이웃이 죄를 짓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이는 예언직의 수행이면서 사랑의 의무입니다.

한편, “미련한 자는 제 길이 바르다고 여기지만 지혜로운 이는 충고에 귀를 기울인다.” (잠언 12장 15절)

“외톨이는 제 욕심만 채우려 하고 충고하기만 하면
화를 낸다.” (잠언 18장 1절)

“충고를 듣고 교훈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마침내지혜로워진다.” (잠언 19장 20절)예수님께서는 예언직 수행의 다른 길도 가르쳐 주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너희의 빛이 사람들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마태오 복음 5장 14장 16절)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복음)

하늘과 땅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특히 성찬례 안에서 하늘과 땅은 하나가 됩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나입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제2독서)

사랑은 이웃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웃에게 유익한 일을 하는 것,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심오하고 궁극적인 사랑, 완전한 사랑은 십자가를 통하여 드러내십니다.

믿음으로 십자가 제사의 재현이요
현재화인 성찬례 안에서 그 사랑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미사성제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드러내시는 사랑은 – 아버지께 온전히 바치는 – ‘봉헌하는 사랑’이요, – 바치신 그 몸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선물로 내어주시는 – ‘선물이 되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미사성제 안에서 일어나는 신비,
사랑의 신비에 참여함으로써 변화되어 갑니다. 성찬례 안에서 능동적으로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사제가 되어 자신을 제물로 바치고, 선물이 되는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사랑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분은
우리 아버지 하느님이십니다. 사랑으로 변화되는 것, 사랑이 되는 것이 우리에게는 구원입니다. 그런 까닭에 미사참례는 신앙생활의 중심, 그리스도교적 수행의 중심입니다

---------------------------------------------

대구대교구 서덕교 바오로 신부
2020년 9월 6일 ‘대구대교구 주보’에서
  | 09.05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수도회] 내려가는 길, 예수님의 길  [1]
!   [의정부] 낮추인 마음 
!   [수원] 겸손하게 하소서  [1]
!   [인천] 진정 아름다운 모습이란  [2]
!   [서울] 어리석은 나귀와 충직한 나귀  [1]
!   [대전] 자신을 낮추어 높아지게 하라 
!   [전주] 위선자에 대한 책망 : “자기를 낮추고 남을 섬겨라” 
!   [군종] 나는 좁쌀 한 알 입니다  [1]
!   [춘천] 너희는 서로 섬기는 사람이 되어라 
!   [원주] 당신의 마음안에 주님의 말씀은 숨 쉬고 계십니까? 
!   [마산] 참된 신앙의 시작  [1]
789   [부산] 그리스도인은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2] 2272
788   [안동] 먼저 더 사랑하라  [1] 2049
787   [대구] 겸손한 마음  [1] 2159
786   (녹) 연중 제31주일 독서와 복음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1] 1674
785   [수도회] 사랑하기  [3] 581
784   [원주] 최고의 계명 ‘사랑’  [2] 710
783   [부산]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5] 2936
782   [청주] 이웃에게 눈을 감으면 하느님도 볼 수 없습니다.  [1] 703
781   [전주] 주님께 대한 사랑과 헌신을  [2] 95
780   [의정부] 법대로가 아닌 사랑으로  [2] 2349
779   [인천] 반성문 -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6] 2705
778   [수원] 하느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  [4] 2471
777   [서울] 가장 큰 계명  [7] 3491
776   [군종]서로 사랑하여라.  [1] 565
775   [대구] 사랑을 나중으로 미루지 말라  [2] 2230
774   [안동] 애주애인(愛主愛人)  [3] 2611
773   [광주] 사랑의 계명  [2] 738
772   [대전] 이웃 사랑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  [2] 2863
771   [마산] 가장 큰 계명 - 참사랑  [2] 2699
770   [춘천] 이웃 사랑  [4] 2711
769   (녹) 연중 제30주일 독서와 복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5] 2261
768   [수도회] 신앙의 핵심은 오직 예수님  2074
767   [전주]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2139
766   [청주] 내 생명, 내 재산, 내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  1273
765   [대구] 하느님께 바쳐야 할 몫은 내 안에서부터!  [1] 2263
764   [춘천]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1] 2228
763   [원주] 거지신앙과 순교신앙  1030
762   [수원]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로”  [1] 2156
761   [군종] ‘너는 나를 알지 못하지만’  1114
1 [2][3][4][5][6][7][8][9][10]..[20]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0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