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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조회수 | 2,016
작성일 | 05.09.10
오늘 복음은 ‘용서’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자신감에 넘쳐 예수님께 말합니다. “형제가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베드로로 봐서는 엄청난 제안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상상도 못할 제안을 하십니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용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무조건 용서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일만 달란트(한 달란트는 육천 데나리온, 한 데나리온은 하루 일당)나 되는 많은 빚을 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왔습니다. 왕이 빚을 갚으라고 하였으나 그 사람은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곧 다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애걸하였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 사람을 가엾게 여겨 그 많은 빚을 탕감해 주고 놓아 보냈습니다. 물론 그 사람은 왕에게 빚을 탕감해 달라고 애걸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애걸하였습니다. 하지만 왕은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빚을 모두 탕감해 주는 큰 자비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왕과는 달리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이 사람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사람에게 빚을 빨리 갚지 않는다고 호통을 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엎드려 ‘꼭 갚을 터이니 조금만 참아 주게’ 애원하였지만 오히려 그 동료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모르는 무자비한 종입니다.

빚은 바로 우리들의 잘못이고
우리들의 부족한 부분이고 우리들의 죄악들입니다. 과연 우리들은 자비로운 왕의 모습입니까? 과거를 모르는 무자비한 종의 모습입니까? 결국 은혜를 잊어버린 무자비한 종의 마지막 모습은 형리에게 넘겨지고 말았습니다.

흔히 우리들은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하면,
우리는 재물이나 신분, 지위 혹은 권력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앙갚음 하려하고 저주하고 조건을 말합니다.

“나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도저히 용서가 안돼.”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끼리도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 내 앞에서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도저히 같이 살 수가 없어요”,
“네가 나에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네가 어떻게 변하는 것 봐서.
네가 나에게 그렇게 많은 상처를 주었는데 어떻게...
어떻게든 복수하고 말거야.”

우리들은 주님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죄를 용서받으며 살아갑니다. 알면서도 지은 죄, 모르면서도 지은 죄. 행동으로 말로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 주고 상처 받고 살아갑니까?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죄를 묻지 않으십니다.

지난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주님께는 우리들의 죄가 크고 작고를 묻지 않으시고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중요한 것은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통회하고 마음 아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이웃을 용서하며 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나뿐만 아니라
내가 미워하고 저주하는 사람도 똑같이 사랑하시고 용서하십니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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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김병수 루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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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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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형제가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하는지’를 묻는 베드로에게 끝없이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매정한 종의 비유’로써 이 말씀을 설명해 주시는데, 그 비유 안에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용서’ 대 ‘인간의 옹졸함과 비정함’이 잘 대조되어 있습니다.

비유에는 1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과 100데나리온을 빚진 사람이 나옵니다. 1탈렌트는 당시의 로마 화폐로는 6천 데나리온이었는데, 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따라서 품삯을 5만 원으로 계산해도, 1만 탈렌트는 약 3조 원에 해당하는 거액입니다.(6천만 데나리온×5만원)

로마 시대의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쓴 『유다의 고대 풍속』이라는 책에 따르면, 기원전 4년에 유다와 이두메아와 사마리아 지역에서 거두어들인 세금의 총액이 600 탈렌트(약 1,800억)였고, 갈릴래아와 페레아에서는 연간 200탈렌트(약 600억)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감안한다면
1만 탈렌트는 개인이 진 빚으로는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그리고 100데나리온은 약 500만 원입니다. 3조 원과 500만 원! 과연 이게 비교가 됩니까? 따라서 3조 원이나 되는 엄청난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자기에게 단돈 500만 원 빚진 사람을 못살게 굴고 감옥에 가두었다는 것은 너무나 파렴치한 태도입니다. 그야말로 적반하장(賊反荷杖)인 것입니다.

어쨌든 오늘 비유 말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부채를 탕감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하심으로써, 우리는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하늘나라를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일만 탈렌트나 빚진 종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엄청난 은혜를 받은 우리 역시, 작은 잘못을 범한 형제들에게 자비와 용서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이러한 하느님의 엄청난 은총이 작용하는 결과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100데나리온 정도의 가치밖에 안 되는 우리의 선행이나 공로도 반드시 거기에 보태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작은 선행과 공로에 따라 하느님의 은총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비유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엄청난 은총을 묵상하고 감사드리며,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형제들에게 자비와 용서를 베풀고 많은 선행과 공로를 쌓아야 할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하느님께는 미미하고 하찮은 것일 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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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김성태 엠마누엘 신부
2020년 9월 13일 ‘대구대교구 주보’에서
  |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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