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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용서하는 삶
조회수 | 2,257
작성일 | 05.09.10
외국 영화 중에 "데드 맨 워킹(Dead man walking)"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실제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사형수 문제를 다룬 영화입니다. 사형집행을 기다리던 사형수가 드디어 수감되어 있던 방에서 마지막으로 나와서 사형장을 향해서 걸어갈 때, 간수가 크게 외칩니다. "데드 맨 워킹(Dead man walking)!!" - '죽은 사람의 걸음걸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사형을 당하면 곧 죽은 사람이 될 터인즉, 죽기 전의 마지막 발걸음을 사형수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말입니다. 그 영화는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한 남자가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다룹니다. 그 과정에서 사형수는 헬렌이라는 한 수녀님을 만나고 그 수녀님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사형 집행을 기다립니다. 결국 그 남자는 사형을 당하고, 그 영화는 우리 사회에 사형제도와 인간 생명의 고귀함, 용서와 화해라는 엄청난 화두를 던져주고 끝나게 됩니다.

그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헬렌 수녀님께서 얼마 전에 한국에 오셨었습니다. 한번은 대구에서 강연회를 하시면서 사형제도 폐지와 용서하는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셨습니다. 수녀님께서는 "잔인한 살인에 대해 분노와 울분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하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렇지만 살인자가 무고한 생명을 죽였다고 해서 똑같은 방법을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은 또 다른 살인"이라고 하면서 한국에서도 사형제도 폐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강연회를 마치고 아주 의미있는 만남 하나가 이루어졌었습니다. 유영철이라는 사람을 기억하시지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 손에 사랑하는 외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아내를 잃은 고정원씨와 헬렌 수녀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고정원씨는 하루아침에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하느님을 찾아서 루치아노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결국 소중한 가족을 모두 죽여버린 그 원수같은 사람을 용서하신 분이셨습니다. 헬렌 수녀님께서는 고정원씨에게 "직접 피해를 입은 당사자로서 어떻게 그런 용기와 사랑으로 살인자를 용서하게 되었는지 너무나 감격스럽고 감사하다"라고 인사를 하셨고, 고정원씨는 "처음엔 인간적으로 너무나 고통스러웠는데 이젠 모든 것을 용서하고 나니까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라고 답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두 분은 사형제도와 서로가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신 다음 만남을 마치셨습니다. 그리고 헬렌 수녀님께서는 "고정원씨의 행위는 신앙인이 하느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산 본보기"이라며 "고정원씨의 염원이 한국 땅 전역에 널리 퍼져 생명과 사랑의 세상이 이뤄지길 바란다"라는 말씀으로 그 만남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용서한다라는 것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자기에게 아픈 상처를 준 사람을 진정으로 용서한다라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용서한다라는 것은 그냥 단순히 그 사람의 잘못을 물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 사람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기에 예수께서도 용서에 대해 참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주어라."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당신 스스로 용서하는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당신을 십자가에 메단 사람들을 보시면서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이웃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라. 그러면 네가 기도할 때에 네 죄도 사해질 것이다." 내가 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진정한 용서가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죄를 짓고 어둠 속에서 갇혀있는 이웃들을 평화와 해방의 나라로 인도하는 이웃 사랑의 길입니다. 나를 위해,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것이 참 용서입니다. 용서는 신앙의 행위입니다. 용서는 예수님의 모습을 따르는 길이며 또한 예수께서 명령하신 이웃사랑의 길을 실천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혹 지금도 나의 용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는지 우리 마음을 잘 살펴봅시다.

김종길 제오르지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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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처럼 우리도

사랑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 주간 주님의 사랑 안에 잘 지내셨는지요? 영원하신 주님의 사랑을 지난 한 주간 잠시만이라도 체험할 수 있었던 복된 주간이었길 기대합니다.

오늘 연중 제24주일 마태오 복음은 서로 용서하라는 메시지는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베드로는 묻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용서해라.”라는 요청이 아니라, “용서해야만 한다.”라는 명령입니다. 이 구절은 여러분도 수없이 들으셨겠지만, 신학적으로 “완전한 숫자”를 상징하는 “일곱”에 다시 일곱을 붙여서 “77”이라는 숫자가 등장합니다. 즉, 이 복음의 구절은 “완전하고 완전하게, 몇 번이고 끊임없이, 언제나 용서해야 한다.”라는 강한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의 근거로 주인의 무한한 사랑을 등진 종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종은 주인에게 부채가 있었습니다. 부채가 있는 종은 아내와 자식까지 팔아서 그 부채를 갚으라는 주인에게 “제발 참아 주십시오.”라고 사정합니다. 주인은 가엾은 맘이 듭니다. 그래서 받을 생각 않고 빚을 탕감해 줍니다. 주인은 이렇듯 엄하면서도 한없이 자애로운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용서받은 종, 빚을 탕감 받은 종은 그 사랑을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다시 말해 자신의 종도 아닌 형제에게 오히려 멱살을 잡고, 돈을 갚을 때까지 감옥에 그를 가둡니다. 현실에 치여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손실만을 보는 우리 모습 같습니다.

그러자 주위의 동료들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사실을 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주인은 그 종을 불러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그리고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라고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교형자매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받은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고,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이 세상을 우리에게 무상 임대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성의 시대와 과학의 시대를 거쳐 이제는 경제의 시대를 살면서 이 땅이, 이 하늘이 우리의 것인 양 주인의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닌 것을 우리의 것으로 착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용서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받은 사람이 사랑할 줄 알고, 용서받은 사람이 용서할 줄 안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를 받은 사람이 하느님처럼 형제들에게 사랑과 용서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는 사랑받은 것과 용서받은 것을 잊고, 내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고 있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하느님처럼 우리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희복 미카엘 신부
  |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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