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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용서만이 우리가 살 길
조회수 | 1,992
작성일 | 05.09.10
제가 담당하고 있는 일이 청소년 교정사목 분야인 관계로 가끔씩 사형폐지 관련 행사에 참석하곤 합니다. 지난 봄 사형폐지운동에 적극적으로 헌신하고 계시는 헬렌 프리진 수녀님께서 한국에 오셨을 때, 아주 특별한 분을 뵌 적이 있었습니다. 고정원 루치아노 선생님이십니다. 2년 전 한 연쇄살인범에 의해 노모와 부인, 4대독자인 아들까지 모두 잃은 피해 당사자입니다.

수녀님 강연이 끝난 후 한 편지글이 낭독됐습니다. 고 선생님께서 쓰셔서 연쇄살인범 본인과 담당판사 앞으로 보낸 탄원서였습니다. 눈을 감고 조용히 탄원서 내용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어느 순간, 저는 너무도 큰 충격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구기동에 사는 고정원입니다. 당신의 손에 우리 어머니와 사랑하는 처, 4대 독자인 아들이 죽었습니다. 사회의 잘못된 현실에 그 책임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부디 하느님 은총과 사랑으로 살아가시며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만약 사형을 당하면 나도 그날이 사형 날입니다. 판사님, 절대로 죽여서는 안 됩니다. 가족을 대표해서 용서를 빕니다."

고 선생님이 처음부터 이런 마음을 가질 수는 없었겠지요. 끔찍했던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범인을 잡으면 아무 이유도 없이 단란한 가정을 파탄시킨 그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복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범인도 죽이고, 저 또한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죠. 이런 생각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 했습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엄두도 못 낼 용서의 마음을 갖게 된 건 세례를 받게 된 후부터였답니다. '가톨릭 신앙에 귀의하지 않았더라면 용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가해자를 용서하는 제 행동을 아직까지 수용하기 힘들어하는 딸에게도 제 마음을 이해해 달라고 전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가족을 죽였다고 해서 또 다른 생명이 인위적으로 꺾이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오히려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줘야지요."

강연회 내내 저는 멀찍이 뒤쪽에서 고 선생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고 선생님께서는 가끔씩 먼저 떠난 아들이, 아내가, 노모가 생각나셨는지 자주 손수건을 꺼내드셨습니다. 그간 견뎌온 나날들이 얼마나 힘든 세월이었겠습니까? 입장을 한번 바꿔놓고 생각해보십시오. 병으로 가족이 세상을 떠나도 가슴은 미어질 듯 아픕니다. 그런데 아무런 잘못도 없이 연쇄살인범 손에,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부인을 포함해서 세 명이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저 같았으면 도저히 그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 가정을 완전히 파괴해버린 그 사람을 도저히 용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 선생님은 가해자를 용서한 것입니다. 그냥 용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용서하셨습니다. 용서했을 뿐 아니라 사형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판사에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간곡히 청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신앙의 소유자이십니다. 진심으로 용서하라는 예수님 복음을 온 몸으로 실천하신 분이십니다.

고해소에 들어가 앉을 때마다, 신앙상담 차 사람들을 마주하고 앉을 때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용서'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단란했던 가정을 완전히 파괴한 사람, 목숨처럼 사랑했던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간 바로 그 '인간', 철저하게도 나를 망쳐놓은 그 '짐승'을 용서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용서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우리는 빨리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용서가 없는 곳에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는 마음의 평화도, 내적인 고요도 없습니다. 용서하지 못할 때 정상적 신앙생활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용서 없이 육체적 건강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날이면 날마다 스트레스나 잡다한 질병이 끊이지 않습니다.

용서가 이뤄지지 않는 영혼 안에는 매일 분노와 증오만 쌓여갑니다. 용서 없는 곳에 은총도 구원도 영원한 생명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결국 용서만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고 말씀하시는데, '일곱 번씩 일흔 번'이면 도대체 몇 번입니까? 사백구십 번입니다. 한 형제에 대해서 사백구십 번이나 용서해주라는 말씀은 잘못할 때마다 무조건 용서해주라는 말씀, 다시 말해서 속을 다 내어주라는 말씀,  평생 용서하면서, 언제나 손해 보면서 바보처럼 살라는 말씀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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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뜨면 용서하십시오! 밥먹듯이 용서하십시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 평생에 걸쳐 매일 매순간 밥먹듯이 되풀이해야하는 매일의 과제, ‘용서’에 대해서 생각하는 주일입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오 복음 18장 22절)

우리 모두 용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 내게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해서,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덮어주는 일입니다.

그러나 용서란 개념이 그리스도교 안으로 들어오면, 훨씬 폭넓은 의미로 확장됩니다. 잘못한 사람의 죄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을 넘어섭니다. 용서의 대상을 완전히 새롭게 하여 의로운 상태를 만들어주는 것을 포함한 하느님의 거룩한 구원 활동이 곧 용서입니다.

2007년 개봉되어 큰 화제를 몰고왔던 이창동 감독님의 ‘밀양’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늘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남아있습니다. 주인공 신애(전도연 분)는 모든 것을 잃고 난후, 어린 아들 손을 잡고 죽은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내려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던 신애에게 업친데 덮친격으로 청천벽력같은 사건이 발생합니다. 유일한 희망이고 의지처이던 아들이 유괴·살해된 것입니다.

너무나 큰 충격 앞에 주저앉아 있던 신애는 오로지 신앙에 매달리며 돌파구를 찾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변 사람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면회하러갑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그를 용서해주러 간 것입니다.

면회실에서 신애는 살인범의 태도에 또 한번 무너지고 맙니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며 백번천번 준비했던 말을 꺼내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란 말을 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꺼내기도 전에 살인범은 세상 편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제 죄를 다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신선같은 미소를 짓는 것입니다.

밖으로 나온 신애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부짖습니다. 이렇게 외칩니다. “그 사람은 이미 용서 받았데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또 다시 그를 용서하냐구요?”

곰곰히 따지고 보니 용서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용서에는 식별과 절차와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누군가와의 관계 안에서 큰 상처를 입었는데, 원인을 곰곰히 분석해보니 50:50 쌍방과실이라면, 용서하는 게 맞습니다. 50:50까지 아니어도, 상대방이 70, 내가 30 정도 된다 할지라도, 억울하겠지만 큰 마음 먹고 용서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이 한 세상 살아가다보면 1:100 같은 경우도 만납니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우 말입니다. 그럴 경우에 필요한 것이 용서 이전에 정당한 과정이요 절차입니다. 때로 징계나 처벌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진정성 있는 사과가 뒤따라야겠지요.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이 용서인 것입니다.

씻을수 없는 깊은 상처와 치명적인 고통을 안겨준 인간 말종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사과 한 마디 없이 큰소리 떵떵치는 사악한 존재들, 피해자들은 매일 죽어가고 있는데 해맑은 얼굴로 호의호식하고 있는 인간들은 결코 용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섣불리 용서했다가는 나중에 두고두고 홧병을 앓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한 인생이나 가족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범죄자들, 끝까지 인간이기를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는 일제군국주의자들, 친일파들, 자기 한목숨 건지기 위해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 사익을 위해 선량한 백성들에게 총부리를 겨눈 군부 독재자들은 그냥 용서하면 안됩니다. 합당한 처벌과 배상, 진정성있는 사과가 반드시 먼저 이루어져야 마땅합니다.

물론 무조건적 용서는 가장 좋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어렵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노력이 예수님의 권고에 따라 일흔일곱번 용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눈만 뜨면 용서하는 것입니다. 밥먹듯이 용서하는 것입니다.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되, 인간의 힘으로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무조건 하느님께 맡겨드려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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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2020년 9월 13일
  |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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