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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예수님 편에 선 사람들
조회수 | 1,927
작성일 | 05.10.01
소년분류심사원에서 만났던 한 아이를 저희 집에 데려오려고 가정법원에서 재판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이 말로는 연고자가 전혀 없다고 했는데, 법정에 나가보니 건장한 체구의 할아버지께서 나와 계셨습니다.

오해가 생길지 몰라 할아버지께 최대한 공손하게 제 신분을 밝히며 인사를 올렸습니다. 그간 경위도 차근차근 설명해드렸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안심하시고 아이를 저희에게 맡겨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할아버지에게서 '고맙다.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말씀을 기대했는데, 웬걸 난리가 났습니다. 잠시 할아버지 눈동자에서 불꽃이 이글거리기 시작하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더군요.

"네 이놈, 내 손자 데려가서 뭐하려고? 고얀 놈 같으니! 생긴 걸 보니 인신매매범이 분명해. 내가 너 같은 놈, 여럿 봤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보호자들 시선이 일제히 제게 쏠렸습니다. 너무 황당하기도 하고 창피스럽기도 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할아버지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게 아니에요. 할아버지,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저쪽으로 가셔서 말씀 좀 나누시죠."

만만찮은 할아버지는 사람들 호기심 어린 눈길을 등에 업고 더욱 의기양양한 얼굴로 저를 궁지로 몰아넣더군요.

"가긴 어딜 가자고 그래. 분명히 뭔가 켕기는 것이 있느니 구석으로 가자는 거지?"

저는 순식간에 그 사람 많은 데서 인신매매범으로 몰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일이 떠오를 때마다 그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 신뢰한다는 것이 참 힘든 세상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세상이 하도 흉흉하다 보니 사기꾼들도 많아지고 서로를 속이고 이용해야 살아남는 세상이다 보니  한번 의심해보는 풍조가 보편화된 듯합니다.

이런 풍조는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등장해서 선량하고 무지한 백성들을 끊임없이 현혹시켰습니다.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의 타락과 착취는 백성들을 불신과 의심, 불안 상태로 몰고 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조차도 거부하는 결정적 실수를 범하고 맙니다.

믿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그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 특히 신앙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일생일대를 건 도박과도 같은 일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에는 정확한 목표선택과 그 목표를 향한 철저한 투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강한 하느님 체험을 바탕으로 한 확고한 신앙, 그것은 우리 신앙생활의 가장 핵심적이고도 근본적 조건입니다.

유다인들이 저지른 과오 중에 가장 큰 과오는 가장 값진 보물이 자신들 손 안으로 굴러들어왔음에도 그 보물을 절벽 밑으로 멀리 던져버린 행위였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고대해왔던 메시아, 자신들을 죄와 악에서 구해줄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자신들 코 앞에 나타났음에도 그분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형에 처한 사람들이 바로 유다인들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죽어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쓸데없는 자존심이나 교만으로 가득찬 사람들입니다. 재물이나 권세, 명예에 눈이 단단히 먼 사람들입니다. 가끔씩 밑으로 내려가 인생의 밑바닥 체험도 기꺼이 할 줄 알아야 하는데, 끝도 없이 올라가려고만 기를 쓰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메시아는 바로 우리 가까이에 계시는데, 천국문이 바로 우리 일상에 자리잡고 있는데, 진리는 바로 내 발밑에 있는데, 우리 눈이 너무 높기에, 기대치가 너무 높기에, 너무나 물질 만능주의, 세속적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기에 이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단순한 사람, 소박한 사람, 가난한 사람,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언제나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무런 거부감 없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이 세상 도래로 이제 세상 모든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눠지게 됐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수용하는 쪽과 거부하는 쪽. 불행하게도 많은 유다인들은 예수님 반대편에 서게 됩니다. 이는 유다인들이 저지른 실수 가운데 가장 큰 실수, 일생일대의 대실수였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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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조를 잘 내는 백성

오늘 복음에 나오는 소작인들은 참 못된 사람들이다. 땅도 주고 망대도 세워주고 울타리도 쳐주었는데 도지를 내지 않으려고 주인이 보낸 종을 죽이고 주인의 아들까지 죽인다. 하지만 대사제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들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아들었다.

예수님은 복음서 여러 곳에서 대사제와 바리사이파·사두가이파·율법학자들을 무섭게 질타하신다. 나는 예수님이 그들을 배척하신다고 믿었고 가난한 이들 편에만 서시는 예수님이라고 생각했다.

연구소 식구들과 복음 안에서 예수님이 사람들을 격려하셨던 행적을 찾아본 적이 있다. 그러면서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먼저 예수님의 질타는 사랑의 표현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님은 사람들의 요청을 모두 받아주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복음을 선포하셨고 많은 요청을 받으셨으며, 누구의 요청도 거절하신 적이 없다. 오라는 곳에 가셨고, 찾아온 사람들을 맞아들였다. 병이 낫기를 바라는 사람, 옷자락을 잡는 사람, 부스러기라도 받아먹으려는 사람…. 예수님 혼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에게 구원되기를 바라는 이들의 마음속 갈망과 고통, 그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함께 어우러져 기적이 이뤄진 것이다.

또 바리사이파의 초대에도 응하시면서 혹독하게 야단도 치신다.(루가 11,37­-54) 그런데도 그분은 여전히 찾아가시고 서슴없이 할말을 하셨다. 그분의 꾸중은 바로 회심으로 초대하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결코 어느 한편에만 서는 분이 아니시다.

주님은 도조를 잘 내는 백성이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라고 하시는데 나는 과연 도조를 제대로 내고 있는지 두려운 마음이 든다. 오늘 복음을 사랑의 질타로, 함께 하느님 나라에 살자는 초대의 말씀으로 삼아야겠다.

▥ 이정희 (한국 파트너십 연구소)
  |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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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사람이 문제다

-하느님 포도밭의 소작인들-

사람이 문제입니다. 내가 문제입니다. 내가 몸담아 살고 있는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포도밭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물론 하느님의 나라 포도밭의 주인은 하느님이고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포도밭 소작인들입니다. 결코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소작인들이 아니라 잠정적인 소작인들입니다. 과연 착하고 충실한 소작인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인지요?

우리의 사명은 단 하나 내 몸담아 살고 있는 오늘 지금 여기 하느님의 포도밭을 잘 가꾸는 것입니다. 매 가을마다 풍요한 열매들을 내는 여기 수도원의 배밭처럼 우리 하느님의 포도밭 하느님의 나라를 잘 가꾸어 정의와 공정의 풍요로운 열매들을 내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포도밭 주인이신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의 ‘포도밭의 노래’가 참 의미심장합니다. 우리 삶의 포도밭을 가리키는 노래같습니다. 하느님의 슬픔이, 실망이 가득 담긴 탄식조의 노래같습니다. 얼마나 공을 들인 하느님의 사랑하는 포도밭인지요! 들어보세요.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어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네. 그 가운데에 탑을 세우고 포도 확도 만들었네. 그러고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 들포도를 맺었다네.”

하느님으로 상징되는 포도밭 주인은 너무 답답한 마음에 우리 모두에게 하소연하듯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이, 유다 사람들이 가리키는 바 하느님의 포도밭 소작인들인 우리들입니다.

“자 이제, 예루살렘 주민들어, 유다 사람들아, 나와 내 포도밭 사이에 시비를 가려다오! 내 포도밭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했더란 말이냐? 내가 해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 어찌하여 들포도를 맺었느냐?”

그대로 소작인들이자 주님 포도밭의 포도나무들인 우리들을 두고 하는 말씀같습니다. 내 삶의 포도를, 좋은 포도가 아닌 들포도는 아닌지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마침내 포도밭 노래의 숨겨진 의미가 완전히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심중을 고스란히 반영한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입니다.

“만군의 주님의 포도밭은 이스라엘 집안이요, 유다 사람들은 그분께서 좋아하시는 나무라네. 그분께서는 공정을 바라셨는데 피 흘림이 웬 말이냐? 정의를 바라셨는데 울부짖음이 웬 말이냐?”

결코 낭만적 포도밭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포도밭을 제대로 가꾸지 못한 우리 모두에 대한 주님의 탄식과 슬픔이 가득담긴 말씀입니다. 오늘의 사회현실에도 고스란히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우리 몸담고 있는 교회의 포도밭 현실도 돌아보게 됩니다.

하느님이 바라시는 좋은 포도 열매는 바로 공정과 정의입니다. 그런데 공정과 정의의 현실이 아닌 들포도 같은 피 흘림과 울부짖음이 가득한 현실이라면 하느님의 아픔은 너무나 클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없는 역사는 반복됩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현실이 오늘 마태복음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아니 오늘날도 여전히 반복되고 재현되는 불의와 불공정의 역사입니다. 과연 인간의 진보가, 역사의 진보가 가능한지 때로 회의하게 됩니다. 편리하고 빠른 첨단 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의 내면과 심성은 날로 황폐화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하느님 사랑이 증발됨에서 기인합니다. 믿음만이 아니라 희망도 사랑도 증발되는 현실입니다. 남는 것은 소작인들인 우리의 탐욕뿐입니다. 하느님을 잊은 업보입니다. 믿음, 희망, 사랑의, 신망애信望愛의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은 마르지 않는 샘입니다. 이런 하느님 샘으로부터 끊임없이 샘솟는 믿음, 희망,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의 악한 소작인들은 자기의 신원을 잊어버렸습니다. 포도밭의 주인은 하느님이요 자기들은 단지 소작인들이라는 너무나 자명한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하여 포도밭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람들을 보내는 족족 매질하고 죽이는 악행을 저지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무지와 탐욕만 남은 참 잔인한 사람들입니다. 마침내 포도밭 주인이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까지 죽인 악한 소작인들입니다. 이런 박해의 역사는 오늘도 알게 모르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공정과 정의는 사라지고 세계 곳곳에서의 피흘림과 울부짖음이 참으로 하느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진정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느님을 알고 비로소 무지와 탐욕으로부터 해방입니다. 무지와 탐욕, 교만에 대한 답은 하느님 사랑 하나뿐입니다.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바로 복음의 소작인들은 이런 하느님을 몰랐기에 천인공노할 악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무지無知가 바로 죄罪이자 악惡이자 병病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길은 사랑 하나뿐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힘을 다해 마음을 다해 정신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멀리 갈 것 없습니다. 내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하느님 포도밭부터 공정과 정의의 하느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회개입니다. 회개의 열매는 공정과 정의의 실천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결국은 하느님의 승리입니다. 하느님께는 좌절이나 절망이 없습니다. 악한 소작인들은 정리되고 새 사람들이 하느님의 포도밭 소작인들이 됩니다. 악한 소작인들은 전혀 하느님을 탓할 수 없습니다. 자기들의 악행으로 자초한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포도원 소작인들의 우화에서 악한 소작인들이 가리키는 바, 바로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었음이 드러납니다(마태21,25). 이들이 대한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 우리에겐 경각심을 갖게하는 동시에 희망의 메시지도 됩니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마태21,42-43).
시편을 인용하여 파스카의 예수님을 찬양하는 초대교회신자들입니다. 집짓는 이들이 버린 돌 모퉁이의 머릿돌 파스카의 예수님 위에 지어진 교회입니다. 바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 교회의 새 일꾼들인 소작인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사랑으로 늘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 역시 복음의 악한 소작인들이 될 수 있고 또 교회의 역사가 증명합니다. 어떻게 하면 공정하고 정의로운, 착하고 성실한 하느님의 포도밭, 하느님 나라의 소작인 일꾼으로 살 수 있을 까요? 바로 바오로가 제 2독서에서 답을 줍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끝으로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4,6-9).

바로 이렇게 살 때 하느님의 놀랍고 풍요로운 사랑의 선물입니다. 저절로 하느님의 찬미와 감사, 기쁨과 평화, 온유와 겸손, 공정과 정의의 일꾼이 되어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착하고 충실한 당신 포도밭의 소작인들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당신을 바라는 이에게, 당신을 찾는 영혼에게 주님은 좋으신 분!”(애가3,25). 아멘.

▥ 분도회 이수철 신부 - 2017년 10월 8일
  |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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