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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구원의 잔치에 초대합니다.
조회수 | 2,543
작성일 | 05.10.07
신앙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응답하는 삶이라면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풍성한 은총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신비에 대한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로운 초대에 응답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어느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푸신 것에 비유하시며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얼마나 좋은 것들을 마련해 두시는지, 그리고 그 좋은 것을 누리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오늘 비유에 나오는 왕은 혼인 잔치준비를 다 해놓고 종들을 시켜 초대 받은 사람들에게 ‘어서 잔치에 오라’는 전갈을 보내었습니다.

귀중한 분이 베푸신 잔치에 초대를 받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고,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혼인잔치에 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들은 오지 않은 것일까? 초청을 받은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자기 밭으로 일하러 갔고, 어떤 사람은 사업을 위해 갔고, 또 어떤 사람은 아예 심부름 온 종들을 잡아 때리기도하고 죽였다고 했습니다.

이 세 종류의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즉 자기 밭으로 간 사람과 장사하러 간 사람은 하느님의 뜻 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우선시 하여 신앙적인 일을 등한시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다른 부류는 자기 자신과 양심을 속이며 신앙적인 가치를 거부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일상적인 생활과 삶에 충실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일 때문에 영적인 일이 무시당하거나, ‘최선’이 아닌 ‘차선’이 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충실함 때문에 영적인 일을 등한히 하거나, 신앙이 내 삶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차선이 되어버린다면 신앙생활은 형식적인 차원에 머물거나 주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은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무슨 일이든 더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한량없이 풍요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중 가장 거룩한 날은 주일입니다.
주일은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에 감사하고 또 한 주간에 필요한 은총과 힘을 얻는 날입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내는 사람은 거룩한 한 주일을 보낼 수 있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우리네 인생길에서 주님께 마음을 열고 자신의 삶을 봉헌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주십니다. 행복한 삶은 나에게 베풀어지는 은총을 감사할 줄 아는 삶이며 그 은총을 나눌 줄 아는 삶입니다.

일주일에 단 하루만이라도,
하루에 잠시만이라도 주님 안에서 내 삶을 돌아보고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총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새롭게 깨닫고 감사할 때 행복한 삶의 길도 열립니다.

주일을 지키지 못할 정도로 바쁘고 일이 많다면
그 삶은 얼마 못가서 인생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사실은 우리가 바빠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일주일 내내 자신의 일에 바쁘고,
자신만을 위한 시간으로 소일하면서 단 하루도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총에 감사할 시간이 없이 산다면 우리의 삶은 거룩해 질 수도 없고 진정한 영혼의 평화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예복’은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사랑의 잔치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할 삶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신앙인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주님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하는 삶,
하느님께 받은 사랑에 감사하며 그 사랑을 공동체 안에서 나누는 일,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따뜻한 마음은 주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갖춰야할 예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마련하신 구원의 잔치에 모든 사람을 초대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공동체는 하느님께서 베푸신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누리는 기쁨이 넘쳐나고, 그 초대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나누는 사랑이 흐르는 공동체입니다.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 구원의 잔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하고 그 기쁨을 이웃에게 전하며 살아가는 것이 곧 전교입니다. 전교의 달을 지내며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귀한 잔치에 더 많은 이들과 함께 기쁘게 참석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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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김영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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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잔치’에 기쁘고 즐겁게

9월의 시작에 세례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전담해서 예비자 교리반을 맡았고, 교재를 이것저것 잘 살펴가면서 적어도 이단자를 배출(?)하지는 않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교리를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보낸 6개월 교리교육 시간이 훌쩍 지나 그들은 이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기뻤습니다. 그들이 시작한 신앙의 여정에 미약하게나마 동참했고, 하느님이 그 결실을 보람으로 선물해 주셨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런 보람과 기쁨도 몇주 새에 잊혀졌습니다. 그분들 중 절반을 주일 미사때에 볼 수 없어서 였습니다. 교리공부가 있는 매주 목요일마다 그렇게 열심히 나오던 그 자매님들과 형제님들의 얼굴을 주일날 볼 수 없어 허전했고, 내가 교리를 잘못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됐습니다.

몇 주 만에 그 중 한 자매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그 자매님에게 정말 오랜만에 뵙는다고, 왜 나오시지 않으셨냐고 물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뜸을 들이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세례받기 전에는 세례받으려고 열심히 성당에 나왔는데, 세례를 받고 미사를 드릴 때에는 말을 걸어주거나 아는체해주는 사람 하나 없고, 말이라도 걸어볼라치면 미사에 참례한 사람들 표정이 너무나 엄숙해서 말걸기가 두려웠다는 겁니다. 이 자매님에게 주일미사가 즐거운 일이라기보다 어두운 일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잔치’에 비유하십니다. 이미 황소와 살진 짐승들을 잡아 여타의 준비가 다 마련된 잔치입니다. 와서 즐겁고 신명나게 그 잔치상을 들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초대를 거절합니다. 그 마련된 잔치를 즐기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그 마련된 잔치가 여타의 것들보다 덜 중요한 것은 그 잔치가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생각합니다. 그것은 ‘잔치’를 ‘잔치’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잔치’를 ‘잔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언가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잔치집’이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잔치집’의 모습인 ‘친교’와 ‘나눔’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즐거움이 없는 그들은 잔치에 참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왕의 명령 때문에 끌려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즐겁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왕은 이렇게 말합니다. “혼인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초대받은 자들이 갖추어야 할 준비, 그것은 아들의 혼인에 기뻐하고 ‘친교’와 ‘나눔’으로 잔치를 즐기는 마음입니다.

우리 모두는 잔치에 초대받았습니다. 그 잔치를 준비하고 참여하는 일은 초대받은 사람의 몫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리라 믿고 기다리던 우리의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아들의 혼인잔치에 초대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말씀에 즐거울 수 있을 때, 그 잔치를 제대로 된 잔치로 받아 들일 수 있을 것 입니다.

이상훈 신부
  |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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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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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오려하지 않았다. 같은 내용의 루카 복음에서는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핑계를 대었다)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가고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첫째 사람은 “내가 밭을 샀는데…”.다른 사람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또 다른 사람은 “방금 장가를 들었소.”라고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핑계를 대었다)

“내가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열매를 따 먹었느냐?”하고 물으시자
사람이 대답하였다. (아담은 핑계를 대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조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여자도 핑계를 대었다) “뱀에게 속아서 따 먹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모습을 그냥 넘기지 않으셨습니다.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버렸다. 임금은 노하여 종에게 일렀다. 「…처음 초대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아기를 낳을 때 몹시 고생하리라) 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 그는 너의 주인이 되리라.(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살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 그리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그리고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끝까지 내버려 두시지도 않습니다.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잔치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억지로라도 데려다가),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

“튼튼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사실 나는 의인 (선한 사람)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미사는 잔치입니다. 말씀의 잔치, 만찬의 잔치! 말씀의 식탁, 성찬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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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박종탁 마태오 신부
2020년 10월 11일 <전주교구 주보>에서
  |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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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잔치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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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우리가 간절하게 희망하고 원하는 일입니다. 신앙생활은 그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생활입니다. (누가 강요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희망하지 않는 사람을억지로 붙잡아서 끌고 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오라는 ‘초대장’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만,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은 간절하게 원하고, 또 자격을 갖추려고 충실하게 노력하는 사람만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모든 사람에게 ‘초대장’을 주신 일입니다. 신앙생활은 그 초대장을 입장권으로 바꾸기 위한 생활입니다. 초대장을 받기 싫다는 사람에게 그것을 억지로 주는 일은 없습니다. 또 초대장을 받아들이긴 했어도 입장권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은, 즉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의 밖에 남아 있는 것을 그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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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하고 말하여라.’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마태오 복음 22장 2절-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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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유를 겉으로만 보면,
잔치에 참석해 달라고 임금이 사람들에게 사정을 하는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사람들 쪽에서 잔치에 참석하게 해 달라고임금에게 애원을 하고, 임금이 그 애원을 받아들여서 초대장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아니더라도
잔치에 참석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몇 사람이 안 온다고 해도 임금 쪽에서는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입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이
잔치에 가지 않고 밭으로 가거나 장사하러 간 것은, 눈앞의 일에만 정신이 팔려서 자기들이 애원했던 일은 잊어버렸음을 나타내기도 하고, 자기들이 아쉬운 것이 아니라 임금이 아쉬운 상황이라고 착각하고 있음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아쉬울 때에는 하느님께 울고불고 하면서 매달리고, 아쉬운 상황이 지나가면 하느님을 잊어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사실 그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이 잔치에 참석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아직 결정되지 않았는데, 그들 자신들이 스스로 참석을 거부했으니그들은 자격을 영영 잃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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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마태오 복음 22장 6절-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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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하느님의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인 살인자들에게엄한 심판과 처벌이 내릴 것이라고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임금이 군대를 보내어 살인자들을 처벌한 일은, 혼인 잔치에 참석하기를 거부한자들을 처벌한 일이 아니라, 임금의 심부름꾼들을 죽인 자들을 처벌한 일입니다. 혼인 잔치에 참석하기를 거부해서 결과적으로 참석하지 못한 자들은, 잔치에 참석하지 못한 것 자체가 처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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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마태오 복음 22장 8절-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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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만 보면
처음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아서어쩔 수 없이 아무나 불러다가 잔칫방을 채운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아니고, 새로 초대받은 사람들도 초대받기를 원하고, 또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복음 선포가 이스라엘에게 먼저 선포되고,
그 다음에 이방인들에게(모든 민족에게)선포된 것은 하느님께서 정하신 순서가 그렇게 된 것이고, 이스라엘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한 것은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로마서 10장 12절-13절)”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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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하나를 보고,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오 복음 22장 11절-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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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유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은 잔칫방에 들어갈 수 있는데, 식탁에 앉아서 음식을 먹으려면 입장권을 받아야 합니다. 입장권을 받으려면 혼인 예복을 입고 있어야 합니다. 쫓겨난 그 사람은,거리에서 갑자기 불려 들어가서 예복을 입을 틈이 없었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예복을 안 입은 사람은 그 한 사람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예복을 입고 있었을까?

초대받기를 원하고,
기다리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미리 예복을 입고 있었거나,아니면 초대를 받자마자 바로 집에 가서 예복으로 갈아입었을 것입니다.

(초대에 응답하고 성당에 들어가서 앉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체를 받아먹는 것은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또 세례를 받았더라도 대죄가 없어야 성체를 받아먹을 수 있습니다. 잔치를 구경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잔치 음식을 먹는 것은자격을 갖춘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하느님 나라를 밖에서 구경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나라의 안에 들어가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은자격을 얻은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그 자격은 ‘충실한 신앙생활’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비유에서 혼인 예복은 ‘충실한 신앙생활’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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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신부
2020년 19월 11일
  |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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