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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구원의 잔치에 초대합니다.
조회수 | 2,212
작성일 | 05.10.07
신앙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응답하는 삶이라면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풍성한 은총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신비에 대한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로운 초대에 응답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어느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푸신 것에 비유하시며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얼마나 좋은 것들을 마련해 두시는지, 그리고 그 좋은 것을 누리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오늘 비유에 나오는 왕은 혼인 잔치준비를 다 해놓고 종들을 시켜 초대 받은 사람들에게 ‘어서 잔치에 오라’는 전갈을 보내었습니다.

귀중한 분이 베푸신 잔치에 초대를 받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고,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혼인잔치에 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들은 오지 않은 것일까? 초청을 받은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자기 밭으로 일하러 갔고, 어떤 사람은 사업을 위해 갔고, 또 어떤 사람은 아예 심부름 온 종들을 잡아 때리기도하고 죽였다고 했습니다.

이 세 종류의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즉 자기 밭으로 간 사람과 장사하러 간 사람은 하느님의 뜻 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우선시 하여 신앙적인 일을 등한시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다른 부류는 자기 자신과 양심을 속이며 신앙적인 가치를 거부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일상적인 생활과 삶에 충실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일 때문에 영적인 일이 무시당하거나, ‘최선’이 아닌 ‘차선’이 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충실함 때문에 영적인 일을 등한히 하거나, 신앙이 내 삶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차선이 되어버린다면 신앙생활은 형식적인 차원에 머물거나 주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은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무슨 일이든 더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한량없이 풍요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중 가장 거룩한 날은 주일입니다. 주일은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에 감사하고 또 한 주간에 필요한 은총과 힘을 얻는 날입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내는 사람은 거룩한 한 주일을 보낼 수 있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우리네 인생길에서 주님께 마음을 열고 자신의 삶을 봉헌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주십니다. 행복한 삶은 나에게 베풀어지는 은총을 감사할 줄 아는 삶이며 그 은총을 나눌 줄 아는 삶입니다. 일주일에 단 하루만이라도, 하루에 잠시만이라도 주님 안에서 내 삶을 돌아보고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총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새롭게 깨닫고 감사할 때 행복한 삶의 길도 열립니다.

주일을 지키지 못할 정도로 바쁘고 일이 많다면 그 삶은 얼마 못가서 인생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사실은 우리가 바빠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일주일 내내 자신의 일에 바쁘고, 자신만을 위한 시간으로 소일하면서 단 하루도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총에 감사할 시간이 없이 산다면 우리의 삶은 거룩해 질 수도 없고 진정한 영혼의 평화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예복’은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사랑의 잔치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할 삶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신앙인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주님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하는 삶, 하느님께 받은 사랑에 감사하며 그 사랑을 공동체 안에서 나누는 일,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따뜻한 마음은 주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갖춰야할 예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마련하신 구원의 잔치에 모든 사람을 초대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공동체는 하느님께서 베푸신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누리는 기쁨이 넘쳐나고, 그 초대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나누는 사랑이 흐르는 공동체입니다.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 구원의 잔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하고 그 기쁨을 이웃에게 전하며 살아가는 것이 곧 전교입니다. 전교의 달을 지내며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귀한 잔치에 더 많은 이들과 함께 기쁘게 참석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영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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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잔치’에 기쁘고 즐겁게

9월의 시작에 세례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전담해서 예비자 교리반을 맡았고, 교재를 이것저것 잘 살펴가면서 적어도 이단자를 배출(?)하지는 않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교리를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보낸 6개월 교리교육 시간이 훌쩍 지나 그들은 이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기뻤습니다. 그들이 시작한 신앙의 여정에 미약하게나마 동참했고, 하느님이 그 결실을 보람으로 선물해 주셨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런 보람과 기쁨도 몇주 새에 잊혀졌습니다. 그분들 중 절반을 주일 미사때에 볼 수 없어서 였습니다. 교리공부가 있는 매주 목요일마다 그렇게 열심히 나오던 그 자매님들과 형제님들의 얼굴을 주일날 볼 수 없어 허전했고, 내가 교리를 잘못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됐습니다.

몇 주 만에 그 중 한 자매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그 자매님에게 정말 오랜만에 뵙는다고, 왜 나오시지 않으셨냐고 물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뜸을 들이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세례받기 전에는 세례받으려고 열심히 성당에 나왔는데, 세례를 받고 미사를 드릴 때에는 말을 걸어주거나 아는체해주는 사람 하나 없고, 말이라도 걸어볼라치면 미사에 참례한 사람들 표정이 너무나 엄숙해서 말걸기가 두려웠다는 겁니다. 이 자매님에게 주일미사가 즐거운 일이라기보다 어두운 일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잔치’에 비유하십니다. 이미 황소와 살진 짐승들을 잡아 여타의 준비가 다 마련된 잔치입니다. 와서 즐겁고 신명나게 그 잔치상을 들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초대를 거절합니다. 그 마련된 잔치를 즐기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그 마련된 잔치가 여타의 것들보다 덜 중요한 것은 그 잔치가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생각합니다. 그것은 ‘잔치’를 ‘잔치’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잔치’를 ‘잔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언가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잔치집’이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잔치집’의 모습인 ‘친교’와 ‘나눔’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즐거움이 없는 그들은 잔치에 참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왕의 명령 때문에 끌려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즐겁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왕은 이렇게 말합니다. “혼인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초대받은 자들이 갖추어야 할 준비, 그것은 아들의 혼인에 기뻐하고 ‘친교’와 ‘나눔’으로 잔치를 즐기는 마음입니다.

우리 모두는 잔치에 초대받았습니다. 그 잔치를 준비하고 참여하는 일은 초대받은 사람의 몫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리라 믿고 기다리던 우리의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아들의 혼인잔치에 초대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말씀에 즐거울 수 있을 때, 그 잔치를 제대로 된 잔치로 받아 들일 수 있을 것 입니다.

이상훈 신부
  |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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