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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
조회수 | 2,539
작성일 | 05.10.07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들려 주시는 비유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임금님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사람들은 그 초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핑계를 대고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초대의 소식을 전하러 온 종을 때려 주거나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상식 밖의 행동에 대해 임금은 몹시 노하여 초대를 거부한 사람들을 잡아죽입니다. 그리고 종들을 시켜서 거리에서 아무 사람이나 가리지 않고 마구 데려다가 잔치 자리를 채우게 하는데, 이 또한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임금은 마구잡이로 데려온 손님들 중에서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았다고 야단을 치고서 바깥으로 내 쫓습니다. 분명 그 사람은 길 가다가 초대를 받고 와서 예복을 갖출 새도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임금이 공연히 생트집 잡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 비유는 구약과 신약의 역사를 배경으로 할 때 비로소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듯이,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과의 친교에로 초대하셨습니다. 하느님과의 친교를 이루게 되면, 하느님 친히 풍성한 잔치를 마련해 주시고,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주며 기쁨을 주십니다(제1독서). 그리고 이런 친교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하느님 한 분만을 공경하고,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인간들 서로 형제 자매가 되는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참된 목자인 하느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면서, 서로 간에 착취와 폭행을 저지르는 악행을 반복함으로써 하느님의 초대를 거듭 거절하여 왔습니다.

이제 선민 이스라엘은 하느님과의 친교를 이루기에 부적절한 사람들로 판명되고, 그 대신에 업신여김을 받던 이방인들이 초대를 받습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거리의 행인들이 가리지 않고 잔치에 초대를 받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자격이 없는데도 불림을 받았다고 해서 계속 자격 없이 살아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일단 잔치에 초대받아 잔칫상에 앉았으면 그에 합당한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 초대받아 그분과의 친교 속에 머물기 위해서는 합당한 자세, 즉 오직 하느님만을 섬기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복을 입지 않았다고 잔치에서 쫓겨난 사람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초대를 받아 세례를 받고 은총의 잔치인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잔치를 통해서 “한량없이 풍요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제2독서). 혹시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은총의 잔치에 참여하기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닌지, 잔치에 참석하더라도 그에 걸맞은 예복을 입고 있는지, 즉 오롯이 하느님만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지 자주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손희송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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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당신

로마로 출발하기 일주일 전에 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의 실무자로부터 빨간색의 긴급표시가 달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가톨릭 라디오 회의(6월19일~21일)에서 제가 아시아를 대표해 한국의 평화방송 라디오에 대한 발표를 해 달라는 간곡한 요청이었습니다. 늦게 청탁해 미안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빠른 응답을 요구하는 때늦은 초대가 제 마음을 매우 불편하게 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기 전에 해 놓아야 할 일도 산적한 가운데, 발표문을 준비하고 또 국제회의에서 발표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선뜻 거절하고 싶었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가톨릭 라디오로 평화방송을 선정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평화방송을 국제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까? 초대에 응했지만, 로마로 떠나는 전날 밤 늦게까지 발표문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세계 45개국에서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해 사흘의 일정으로 열린 가톨릭 라디오 회의는 둘째 날 낮 한 시 경에 교황님 알현을 마련했습니다. 교황청궁 3층의 접견실에는 의자가 줄지어 있었는데, 첫 번째 줄에는 사회홍보평의회 의장인 첼리(Claudio Maria Celli) 대주교님을 비롯해 각국에서 참여한 주교님들과 고위성직자들이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메일을 보냈던 실무자가 발표자들은 두 번째 줄에 앉으라고 했습니다. 교황님이 참가자 전체에게 훈화를 마치신 후, 개별 알현이 시작되었고 사정상 두 번째 줄까지만 허락되었습니다. 저는 운 좋게도 교황님의 손을 맞잡고 친구하고 대화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발표 초대를 수락했던 것이 저에게는 교황님을 알현하는 뜻밖의 행운을 가져왔습니다.

오늘 복음(마태 22,1-14)의 비유에 나오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임금처럼,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께로 끊임없이 초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초대하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이 이 초대에 응하지 않습니다. 비유에서처럼 초대를 거절하고 자신의 일에 매몰되어 밭으로 가고, 돈을 벌기 위해 장사하러 갑니다. 자신의 일과 장사라는 현실의 삶에만 매달려 하느님의 잔치를 거절합니다. 하느님의 초대를 거절할 때, 비유가 가르쳐 주듯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후회와 슬픔이고, 결국 하늘나라의 잔치에서 추방됩니다.

구원의 역사를 기록한 성경에는 하느님의 초대를 수락한 사람들이 구원을 얻었음을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구약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초대를 받아들여 믿음의 조상이 됩니다. 신약에서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초대를 수락하여 믿는 이의 어머니가 됩니다. 아브라함과 마리아는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하느님의 초대를 수락합니다.

신앙인의 지상 여정은 구원의 잔치를 준비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초대를 기꺼이 수락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삶의 현실에서 믿음으로 마음의 문을 열어 하느님의 초대를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도 구원의 영광이 주어집니다. 하느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잔치에 참여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참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김영춘 베드로 신부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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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더욱 빛을 내는 선행의 예복

오늘 복음에는 특이한 혼인잔치가 벌어지고 이상한 손님들이 등장합니다. 어떤 임금이 아들의 혼인 잔치에 손님들을 초대했지만 사람들이 통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초청장을 가지고 온 사람마저 때리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지요. 몹시 노한 임금은 군대를 보내 그들을 없애 버리고 아무나 잔치에 불러 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래서 종들은 거리에 나가 만나는 대로 사람들을 다 데려왔고, 잔칫집은 큰 성황을 이룹니다. 임금님은 잔치가 성황리에 잘 진행이 되고 있는 것을 흡족히 둘러보다가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참석한 사람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쫓아버립니다. 예복을 입을 시간을 주지도 않은 채 복장 검사만으로 사람을 쫓아내는 이상한 잔치입니다.
 
복음을 통해 두 가지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첫째는 임금의 초대를 우습게 여기고 잔치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아무나 다 불러오라고 명령했던 임금이 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끌어내어 쫓아버렸을까 하는 점입니다.
 
첫 번째, 임금의 초대를 우습게 여긴 사람들은 누구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 유다인을 지칭합니다. 유다인은 구세주가 오실 것을 오랜 세월 동안 고대했지만 막상 하느님께서 그들을 초청하자 초대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전하러 왔던 많은 예언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박해했으며 마지막에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마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지요.
 
초대에 응하지 않는 유다인들을 보신 하느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만나는 대로 불러오라고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지요. 그래서 이제는 유다인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이 하느님 잔치에 초대를 받게 된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렇게 초청 받은 모든 사람이 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이것이 오늘의 두 번째 묵상 주제입니다. 답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예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예복은 파티복을 입었느냐, 한복을 입었느냐, 전례복을 입었느냐 따위가 아닙니다. 예복은 바로 믿음과 선행을 의미합니다. 신자가 됐다고 해서 모두가 다 하느님 나라의 천상잔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선행의 예복을 입은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영국의 템스 강변에서 거지 노인이 낡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그 때 웬 낯선 외국인이 그를 측은히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지금 제게 돈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도 바이올린을 좀 다룰 줄 아는데 대신 몇 곡만 연주해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거지 노인은 바이올린을 건네줬습니다. 그런데 그가 활을 당기자 놀랍도록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 나왔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지요. 거지 노인의 모자에는 순식간에 돈이 쌓였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이 뜨거운 박수를 쳤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외쳤습니다.
 
"저 사람은 바로 파가니니다!"
 
바이올린 명연주자였던 파가니니가 런던에 연수차 왔다가 잠시 산책하던 길에 거지 노인을 도와준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과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을 나누며 사는 것은 돈 몇 푼의 자선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길이 빛나는 일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마음을 담은 예복을 우리는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옷장에 쌓아둔 아름답고 눈부신 옷들은 때가 되면 다 사라져 버리지만 믿음과 선행의 예복은 죽은 후에도 하느님 대전에서 더욱 그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적 선행의 옷장에는 얼마나 많은 예복이 걸려 있습니까?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 22,14).

이기양 신부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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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초대장

“하느님이 인간을 빈손으로 세상에 보낸 이유는 누구나 사랑 하나만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고, 하느님이 인간을 빈손으로 저 세상으로 데려 가는 까닭은 한평생 얻어낸 그 많은 것 중에 천국으로 가지고 갈만한 것은 오직 사랑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라는 어느 소설가의 말이 명주실 같은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타고 마음 한가득 비추는 계절입니다.

어릴 적 동네 냇가에서 뛰어놀 때는 작은 그물 하나면 충분했고 뒷동산을 오를 때면 운동화 한 켤레면 충분했습니다. 어릴 때는 세상 살아가는 데 이렇게 많은 것들이 필요하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에 비해 불과 몇십 센티의 키가 자랐을 뿐인데 필요로 하는 것들은 수천 배, 수만 배로 늘어난 느낌입니다. 욕심 보를 키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반대로 욕심 보를 줄여 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먼 훗날 욕심 보 때문에 천국 계단을 오르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지나 않을지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오늘도 세상 잔치에 골몰하느라 천상 초대장을 까마득히 잊고 살아가는 느낌입니다.

오늘 복음 속에서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혼인 잔치를 베푼 임금에 비유합니다. 임금은 손님들을 기다리지만 초대된 이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초대에 응하지 않고 보낸 종들마저 죽이는 일이 벌어집니다. 실망한 임금은 초대된 이들 대신 다른 이들로 잔치를 벌인다는 이야깁니다. 초대된 이들은 이스라엘을, 보내진 종들은 예언자들을 뜻합니다. 결국, 하느님은 당신 아들을 통해 마지막 초대장을 발송하며, 이제 그 초대장이 이교 백성을 향해 날아갈 것임을 경고합니다. 2천 년이 지난 오늘날 하느님은 오늘도 초대장 발송에 정신이 없습니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수취인이 달라졌다는 점이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초대장을 받아든 신앙인들 역시 2천년 전 이스라엘 백성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싶습니다.

오늘도 천상 잔치보다 지상 잔치에 골몰하는 우리는 하느님 말씀보다 동네 아파트값 오르내림에 희비가 교차하고 미사와 기도 시간은 아껴도 건강을 위해 몇 시간씩 운동을 하는 것은 마다하지 않으며 천상 양식인 성체모시는 것은 주저해도 이것저것 몸에 좋다는 보약과 비싼 건강보조식품은 꼭 챙깁니다. 노년을 위해서는 얼마의 돈이 저축되어 있어야 하고 연금이나 건강보험 몇 개는 들어놓아야 안전하다고 믿는 모습 속에 천상 초대장은 기쁨이 아닌 빚 독촉장처럼 부담스럽기까지 합니다.

초대받았지만 방 한 곁에 던져진 초대장은 갈바람에 뒹구는 낙엽처럼 마음만 심란하게 할 뿐, 예복조차 준비하지 않는 어리석음이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집니다. 하느님이 가을을 아름다운 붉은 단청으로 채색하신 까닭은 우리의 마지막도 그렇게 아름답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함이듯, 이제는 천상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욕심 보 늘리기가 아닌 욕심 보 줄이기에 조금 더 열심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생의 가을에는 그래서 삶의 리모델링이 참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기도 합니다.

권철호 신부
  |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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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원 잔치에 초대 받은 우리

왜 하필 이스라엘이었을까요? 이런 질문을 한 번씩들 가져보셨음 직합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 수많은 민족 가운데 왜 하느님은 이스라엘백성을 콕 집어 당신 백성으로 삼으셨을까요? 하느님이 분명 ‘어디 오늘의 운세를 시험해볼까?’ 하며 무작위로 추첨한 끝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아니었을 텐데요. 얕은 인간의 지혜로는 하느님이 왜, 어떤 의도로 다른 민족이 아닌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뽑으셨는지 정확히 알 길이 없습니다. 당신만의 뜻이 있으시겠지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이 특별히 잘난 민족이라 당신 백성으로 뽑으신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주님께서 너희에게 마음을 주시고 너희를 선택하신 것은, 너희가 어느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사실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수가 가장 적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어 … 너희를 구해 내셨다.”(신명 7,7-8)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 된 뒤, 선민의식에 빠져 겸손함을 잊고 자신들이 특별한 무엇이라도 되는 양 스스로의 영광에 도취 되었으며, 그렇게 제 잘난 맛에 취해자신의 안위와 번영만 도모하다가 정작 참 하느님은 잊고 이방인의 신들을 섬기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는, 일차적으로는 이렇게 하느님의 백성으로 불리움을 받았으면서도 마음의 완고함으로 인해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통해 베풀어지는 구원의 잔치에 나아가기를 거부하는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고집스럽게 당신을 거부하던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마태 21,31)고 선언하셨듯이, 이제 선민을 자처하는 이스라엘이 거부한 구원의 잔치에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 곧 모든 민족들이초대를 받습니다. 선한 이든 악한 이든, 유다인이든 이방인이든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느님 구원의 잔치에 초대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초대된 이들이 바로 오늘날의 우리그리스도인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런 무차별적인 초대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바는, 우리 또한 무슨 자격이 있어 하느님께 불리움을 받고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종들에게 그야말로 “아무나 만나는 대로잔치에 불러 오너라”고 명하였고, 그렇게 불리움을 받은 것이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하느님의 자녀로 불리움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안도하고 그에 안주하기보다, 그 부르심에 합당한 예복을 갖추어 입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봉헌하는 기도와 자선, 희생이야말로 우리가 초대받은 구원의 잔치에 합당한 참된 예복이 될 것입니다.

▬ 서울대교구 최규하 다니엘 신부 - 2017년 10월 15일
  |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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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랑을 위한 사랑의 예복

오늘은 연중 제28주일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2011년 라메지아 테르메(Lamezia Terme)를 사목방문하셨을 때 미사 강론 중에 “‘혼인 잔치의 비유’(마태 22,1-14 참조)에서 ‘혼인 예복’은 본질적인 것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사랑’을 상징합니다”라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모름지기 하느님 나라에 불린 그리스도인은 ‘사랑의 예복’을 잘 준비하여 갖춰 입어야 합니다.

모든 민족들을 위한 잔치(이사 25,6 참조)

크리스토프 쇤보른 추기경께서는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만났습니다」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창조된 모든 존재의 원천이기에 그 사랑은 모든 피조물을 향해 흘러갑니다.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아무리 비참하고 가련하더라도, 하느님의 사랑은 모든 피조물을 향해 흘러갑니다”라고 강조하십니다.

오늘 제1독서는 흔히 ‘이사야 묵시록’이라고 부르는 내용의 일부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이야말로 우리의 희망이시고 구원이시다”(이사 25,9 참조)라는 선포를 장엄하게 합니다. 사실 우리에게서 “기쁨은 모두 자취를 감추고 세상의 즐거움도 사라진”(이사 24,11) 것 같은 상황일지라도, 한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이 멈춘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시는 하느님(필립 4,19 참조)

예수의 성녀 데레사께서는 「영혼의 성」에서 “영혼, 즉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돌이켜볼 때, 자기에게 지워진 의무보다 얼마나 적게 섬기고 있는가, 적은 그것이나마 흠집투성이요, 이지러지고 얼마나 게으름으로 뒤범벅이 된 것인가를 똑똑히 보게 됩니다”라고 가르쳐 주시면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자기를 맡겨 드리는 편이 나은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부연하십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께서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는 사람”(필립 4,12 참조)이라고 담대하게 증언하십니다. 이와 같은 사도의 당당함은 이른바 ‘다마스쿠스 체험’(사도 9,1-19; 2코린 5,11-21 참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결국 내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깨달았을 때에 비로소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릴 수 있는 마음이 시작됩니다.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마태 22,4)

리비오 멜리나 몬시뇰께서는 「사랑의 길」에서 “인간의 자유는 하느님에게는 큰 모험입니다. 인간의 자유는 인간의 진정한 사랑의 목적에서 불러 일으켜지는 것이라서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거부에 직면했을 때 하느님의 사랑은 십자가의 형태를 띠게 됩니다. 십자가는 인간 자유에 대한 궁극적 초대이자 존중입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이들에게 진노했다는’(마태 22,3-7 참조) 비유로써 ‘하늘 나라’에 불린 이들이 지녀야 할 마땅한 응답을 성찰케 하십니다. 참으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넘치는 자유를 선사하셨는데, 이 자유는 사랑을 통하여 구원을 올바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은 신앙의 가장 순수한 작용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께서는 「신앙생활에 대하여」에서 “사랑이 신앙의 직접적인 작용, 즉 신앙 활동이며 신앙이 숨을 쉬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랑이 없는 신앙은 분명히 질식해 버릴 것입니다”라고 새겨 주십니다.

교형 자매 여러분,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 22,14)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사랑을 살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의 회심을 일으키고, 무관심과 무의미를 깨뜨려서 참된 자신을 보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신분증이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알아보시는 유일한 증명서”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가 하늘 나라의 잔치를 위한 예복 준비에 설레는 기쁨을 누리시길 빕니다. 아멘.

▬ 서울대교구 정연정 신부 - 2017년 10월 15일
  |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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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5   [대구]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  [4] 2473
694   (녹) 연중 제28주일 독서와 복음  [3] 1713
693   [서울] 그리스도인의 기쁨  [5] 2232
692   [수도회] 예수님 편에 선 사람들  [2] 1927
691   [전주] 하느님 사랑 감사하고 나누자  [1] 2088
690   [의정부] 소출을 바라시는 하느님  [2] 2004
689   [춘천] 탐스러운 열매를 풍성히 맺으리라  [3] 2024
688   [인천] 시간이라는 밭에 무엇을 자라고 있는가?  [4] 2094
687   [원주] 지금 우리도 착각 속에 살지 않습니까?  147
686   [수원] 악한 소작인들의 비유  [2]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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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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