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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본당 어르신은 조약돌
조회수 | 2,343
작성일 | 05.10.07
오늘 주일복음은 혼인잔치의 비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어느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잔치를 베푼 것에 비길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복음의 주제는 인간을 사랑하시고 무한한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예수께서 혼인잔치의 비유로 설명하시는 하느님나라는 어떤 나라인가요? 또한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초대된 사람들이 예복을 입지 않았다고 내치시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게 만드시는 무정한 분이신가요? 아니면 끝까지 기다리시고 마지막엔 외아들까지 세상에 보내시며 인간을 구하시는 분이신가요?

사제는 본당에서 사목하며 구원의 의미를 깨닫게 될 때가 많습니다. 함창본당 신자 분들은 대부분 연세가 많으신 어른들입니다. 70세 이상 되시는 분이 50%가 넘는 전형적인 시골 본당입니다. 이들은 평생을 오직 천당에 간다는 희망으로 살아오신 믿음이 깊은 분들이십니다. 이들을 바라보노라면 이분들이 바로 하느님나라에 가실 분들임을 느끼게 됩니다. 서두르지 않고 흥분하지도 않으며 옆도 뒤도 보지 않고 오로지 영혼구령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두고 신앙생활 하시는 어른들의 믿음은 이미 구원에 다다른 신앙인의 삶처럼 느껴집니다.

세상에서 수많은 사연과 함께 희로애락을 다 겪으신 어른들, 또한 그분들의 신앙적 삶도 인간관계 안에서 수많은 부딪침과 아픔, 실패, 실의 그리고 생의 기쁨을 수레바퀴처럼 겪으시면서 다듬어진 모습입니다.

교회도 어느 사회와 만찬가지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별별 사람들이 다 모인 교회공동체에서 얼마나 자주 서로 마음을 다치고 서로로 인한 아픔을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미사를 통해 하나의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서로 용서하면서 하느님의 사람으로 자신의 모습을 가꾸어 갑니다.

성체를 모시고 서로 참회와 갖가지 성사로 은혜를 받으며 자란 신앙인은 자신의 마지막 죽음 앞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깨닫고, 회개의 눈물을 흘립니다. 이것이 주님께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고 구원의 표징이며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부족한 이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함께 모여, 살아 계신 주님의 몸인 성체와 성혈를 먹고 마시며, 영혼의 양식으로 참 생명이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공동체와 함께 하면서 서로가 다듬어집니다. 이렇게 다듬어진 신앙인은 바닷가의 조약돌처럼 아름다운 주님의 작품이 됩니다.

오늘 복음말씀인 혼인잔치 비유는 혼인이 인생의 행복을 의미하듯, 교회 공동체도 성찬의 전례인 미사가 가장  행복한 하느님 나라임을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오늘 미사에서 참회와 용서 그리고 말씀의 은혜로 마음을 가다듬고 오로지 주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참 생명이신 주님을 모시고 무한하신 주님 사랑에 감사하면서 영생의 잔치인 하느님나라를 소망하며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주님의 모습을 증거하는 신앙인의 삶이 나의 행복임을 오늘도 힘차게 전합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구원의 삶을 평생 소박하고 은근하게 살아오신 어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목이 저에게도 큰 기쁨과 행복이 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사랑의 주님, 주님의 자녀들 한 분, 한 분을 기억하며 이들이 주님의 가장 귀한 보물임을 고백하면서 그들을 위해 마음을 다하여 미사를 봉헌하오니 기꺼이 받아 주소서. 아멘!"

이상복 비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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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나라

연중 제28주일인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하느님 나라에 대해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고난의 역사를 거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께서 잔치를 베풀고 그들을 위로해 주실 것이라 선언하고,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 약속된 잔치는 이미 준비가 끝나 초대받은 사람들을 부르러 종들을 파견하였다고 알려주시며,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믿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이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매일 매순간을 영원히 되돌아오지 않을 마지막 시간으로 생각하며 전례주년을 따라 최선을 다해 살아오고 있는 신자들에게도 연중 마지막 시기가 가까워지는 무렵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특별히 세상에 안주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종들은 임금의 초청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이는데, 그 이면에는 그들이 그만큼 세상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풀고 종들을 초청하는데, 그 초청에 기뻐하거나 고마워하기는커녕 초청하러 온 종들을 붙잡아 때리거나 죽이기까지 할 만큼 그들은 현실의 삶에 절박하게 쫓기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오늘날 매스컴을 통해 쏟아지는 살인, 강도와 같은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거나 경제적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처럼 출구가 없는 눈앞의 현실에 사로잡혀 그들을 위한 잔치가 마련되어 있다는 초청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성서주석가들은 그들이 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들이나 구약의 백성들을 지칭한다고 설명하지만, 사실 오늘 이 시대 물질적 가치에 짓눌린 모든 사람들의 마음자세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잔치에 초청받은 종들이, 밭으로 가거나 장사하러 가는 것은 중요하게 여긴 반면 초대받은 잔치에 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는 주일미사에 참석하는 것보다 우선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요즘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낙오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야 하는 사람들의 처지에서는 당장 눈앞의 일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고, 급변하는 세상에 맞추어 살다보면 어디로 가는지 생각할 여유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미친 듯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길에 장애가 된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초청장을 가지고 온 사람들을 죽이는 종들처럼, 분노의 감정에 휩쓸리기 쉽고, 스스로 파멸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눈앞의 현실을 전부로 생각하는 잘못에 빠지지 않도록 권고하시는 한편,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현실적인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다른 권고도 덧붙이십니다. 잔치에 참석했지만 잔치 집에서 쫓겨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라는 지적이 그것입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잔치집이 어떤 곳인지 개의치 않는 태도를 가진 사람, 즉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려는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이고, 예복은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 따르면 그리스도를 덧입는 것, 즉 예수님의 사랑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을 잊어버릴 만큼 세상일에 빠지지도 않고 비록 좋은 사람은 못 된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도 아는, 사랑을 간직한 사람을 위한 곳입니다. 교회 전례력으로 한 해의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시기에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우리가 초청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잠시 하던 일을 놓고 각자 사랑의 예복을 얼마나 정성껏 준비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합시다.

권용오 신부
  |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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