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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예복은 미리 준비해야 필요할 때 입을 수 있습니다
조회수 | 2,398
작성일 | 05.10.08
오늘 우리는 잔치를 벌이고 손님을 초대하는 임금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잔치 준비는 끝났지만 초대받은 이들이 오지 않습니다. 두 번이나 손님을 청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모욕적인 반응입니다. 그러자 임금은 새로운 방식으로 손님을 초대합니다. 마침내 잔치는 열리고 집은 사람들로 가득 찹니다.

처음에 초대받은 이들은 그에 합당하지 않은 자들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목숨을 잃고 마을마저 파괴됩니다. 고관대작이나 저명인사라고 하더라도 그에 걸맞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자신의 구미에 맞는 것만 하려다가는 결국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이들까지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음(복음 마태 22,7)을 말해줍니다.

예복을 갖춰 입지 않고 잔치에 참여한 사람도 결국 쫓겨납니다. 다른 이들이 맛난 음식과 흥겨운 가락 속에서 "기뻐하고 노래하며 즐거워할 때"(1독서 이사 22,9) 그는 캄캄한 밤거리로 내쫓깁니다. 그도 초대되었지만 합당한 조건을 갖추지 않았기에 결국 어둠 속에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이 복음 말씀을 대하면서 저는 잔치에 참여하기 위한 '합당한 자격'이라는 말씀에 마음이 갑니다. '합당하다'는 말은 '꼭 들어맞는다', '알맞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알맞은 자격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갖춰 입어야 하는 예복이란 어떤 것입니까?

그 자격 요건은 높은 수준의 지식이나 사회적 지위, 재산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는 것이 많고 가진 것이 많음에도 하느님의 부르심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면, 그가 가진 것은 아무 소용없는 싸구려 장식일 뿐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제 때에 바로 알아들어야 비로소 자격을 갖추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르심에 응답했다고 해서 자격이 갖춰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그에 걸맞는 복장을 갖춰 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 마음에 드는 복장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방식대로 내 뜻대로, '부르니까 간다만, 내가 가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지'라는 생각으로 그 부르심에 응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며 오해입니다.

이미 우리는 잔치에 오라고 불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그 잔치에 합당한 준비를 갖추고 가야 합니다. 그것이 성사와 전례에 참여하고, 주님의 말씀에 맞춰 사랑을 실천하며 겸손과 온유로 이웃을 대할 때 갖춰지기 시작한다는 것은 이미 누누이 들어온 이야깁니다. 그 준비는 미리미리 해야지 닥쳐왔을 때 하려면 너무 늦습니다. 예복은 미리 준비해야 필요할 때 입을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는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는 오늘 말씀에서 쫓겨난 이처럼, 그 기회가 오더라고 영영 놓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매 미사에서 영성체 직전에 "주님 제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라고 기도합니다. 이 기도 말씀을 매일 되새기면서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응답할 수 있도록, 주님의 잔칫상에 함께 앉아 기쁨을 나눌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이용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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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복은 입으셨나요?

오늘 선포된 복음 말씀은 ‘혼인잔치의 비유’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오늘 말씀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사람들은 그 초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핑계를 대고 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초대하러 온 종을 때리거나 죽이기까지 합니다. 상식 밖의 행동입니다. 그러자 임금은 몹시 노하여 초대를 거부한 사람들을 잡아 죽입니다. 그리고 종들을 시켜 거리에서 누구든 가리지 않고 마구 데려다가 잔치 자리를 채우게 합니다. 그런데 이 역시 상식을 벗어난 것입니다. 게다가 임금은 마구잡이로 데려온 손님 중에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았다고 야단을 치고 바깥으로 내쫓습니다. 보통 생트집이 아닙니다. 예복을 갖춰 입지 않았던 그 사람 역시 그저 길을 가다가 초대를 받고 예복을 갖출 시간도 없이 잔치에 왔을테니 말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구세사를 배경으로 할 때 비로소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하듯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먼저 초대하셨습니다. 하느님과의 친교를 이루게 되면, 하느님께서는 친히 풍성한 잔치를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 잘 익혀 맑게 거른 술과 연한 살코기가 잔칫상에 등장하고, 그동안 흘렸던 눈물을 닦아주고 수치심도 말끔히 없애주실 것 입니다 (제1독서). 이러한 친교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하느님 한 분만을 섬기고, 그 분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면서,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하느님은 예언자와 사도들을 보냈지만 그들에게서 돌아온 것은 싸늘한 냉대뿐이었습니다. 진노한 하느님께서 군대를 풀어 도시를 멸망시키는데, 기원전 66-70년의 제1차 유다 독립전쟁과 로마군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이 연상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초대를 거듭 거절해 왔습니다.

이제 선민이라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과의 친교를 이루기에 부적절한 사람들로 판명되었고, 그 대신에 업신여김을 받던 이방인들이 초대를 받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거리의 사람들이 잔치에 초대 받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자격이 없는데 불림을 받았다고 해서 계속 자격없이 살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즉,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기 위해서는 합당한 자세,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섬기면서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복을 입지 않았다고 잔치에서 쫓겨나는 사람의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하느님의 초대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잔치에 참석은 하더라도 그에 걸맞는 예복을 입고 있는지,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늘 성찰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문화미디어국
  |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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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 받은 사람과 선택된 사람

찬미 예수님, 형제자매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충만히 내리시기를 빕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혼인잔치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하느님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몇 가지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주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회개하여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마태 4,17) 잘못된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바꾸어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하느님과 화해하여 하느님의 선택을 받게 됩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 9,13) 회개하는 사람 그는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원수를 사랑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미워하고 원수처럼 여기면서 하느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미워하고 원수처럼 대하는 그 이웃 역시 나처럼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녀를 미워하고 원수처럼 여기는 사람을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또한 예수님은 당신만을 믿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우리들 중에는 사주, 궁합, 철학원, 타로, 점, 심지어는 무당을 찾아가, 그리고 집에 불러들여 굿까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재물과 탐욕에눈이 어두워 하느님께 대한 신앙인으로서, 하느님 자녀로서 최소한의 도리조차 소홀히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우리의 마음과 생명과 혼을 하느님으로 부터 빼앗는 모든 유형무형한 것들은 우상이요 우리가 평생 경계해야 하는 위험한 유혹입니다.

우리가 이승에서 하느님을 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마지막 날에 하느님의 선택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주님은 형제를 판단하거나 단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네가 네 형제를 판단하고 단죄 한다면 나도 너를 판단하고 단죄 하겠다.” 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자비를 베풀어야 할 것이 아니냐?” 끝으로 주님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해줄 것을 요구하십니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루카6,32) 우리는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대상을 예수님처럼 범위를 넓혀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 세리, 창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신앙인, 비신앙인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를 마음을 다하여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죄인인 나도 이토록 분에 넘치도록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그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마지막 날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축복된 자녀가 되도록 합시다.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바칩니다.

김경모 신부
  |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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