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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우리의 구원에는 예복이 꼭 필요합니다.
조회수 | 2,260
작성일 | 05.10.08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오늘 복음의 비유는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풍성하게 베풀고자 하시는 기쁜 구원에로의 초대를 뜻합니다. 이 초대에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초대의 보편성으로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여 모두를 예외 없이 초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초대받은 많은 사람들의 태도는 냉랭하고, 그 소중한 초대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초대보다도 일상적인 밭일이나 장사에 더 마음을 두고 구원의 초대를 거부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려 주기도 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초대와 부름을 받고 구원의 잔치에 참석하고 있는 그리스도 신자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는 구원에 합당한 예복을 입지 않은 신자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 초대와 부름을 받고 잔칫상에 앉았다는 사실만으로 구원이 보장된 것은 아니고, 최종적인 구원은 예복을 입은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이 예복은 천으로 만든 옷이 아닙니다. 이 예복은 우리의 삶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구체적인 회개와 사랑의 실천으로 복음이 요구하는 바에 응답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채운 사람만이 입을 수 있고, 구원의 영원한 잔칫상에 참여할 수 있는 합당한 자격을 주는 예복입니다.

만일 우리가 구원 잔치의 초대에 응했으나 오늘 복음에서 초대를 거부한 사람처럼 하느님 나라 자체를 소홀히 여기며 외면하거나 지금의 삶이 더 중요하고 급하다는 마음으로 이 세상의 일에만 집중하면서 기도 생활을 게을리 하거나, 주일 미사 참여를 귀찮게 여겨 조그마한 구실만 있으면 쉽게 빠지고 있다면 구원에 필요한 예복을 입지 않은 신자들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나만을 바라보는 이기적인 마음과 이웃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내 주변의 어렵고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만약 보았다 하더라도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도와줄 거야’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그 이웃의 곁을 피해가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사랑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지 않고 있다면, 구원에 필요한 예복을 입지 않은 신자들입니다.

우리는 ‘주님, 주님’하고 부르면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지 않고 자기 뜻만을 실행하는 때가 자주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우리의 길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부와 명예와 일시적인 안일을 추구하는 길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구원받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자기의 길을 포기해야 합니다.

“사람 눈에는 바르게 보이는 길도 끝장에는 죽음에 이르는 수가 있다”(잠언 14,12)라는 말씀처럼 구원의 잔치를 거부하거나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제 갈 길을 간’ 자들이므로 죽음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재물을 모으기 위해서, 남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 이 세상의 자기 일에만 힘쓴다면, 그래서 내 이웃들에게 무관심해진다면, 우리들은 마지막 날에 주님으로부터 심한 책망을 듣고 결국은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김용백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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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단 한 벌 만인 나의 예복 - 내 삶”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혼인 잔치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그리고 오늘 이 비유도 지난 주일의 복음과 비슷한 종말론적인 주제를 전해 줍니다.

지난 주 복음에서 포도밭 소작인들은 자기 몫의 소출을 바쳐야하는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은 물론 그 포도밭을 차지하려는 욕심에서 주인의 종들과 아들을 죽였기 때문에 엄중한 벌을 받고 그 포도밭은 제때에 충실히 소출을를 잘 내는 다른 소작인들의 차지가 되어버립니다.

오늘 비유에서도 어떤 임금이 몸소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을 마련하여 잔치를 차려놓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핑계를 대고 오려하지 않습니다. ‘밭으로 가고, 장사하러 가고’ 심지어는 심부름하는 사람을 해치면서까지 노골적으로 그 초대를 거절합니다. 그러자 그 임금은 분노하여 그 살인자들을 모두 죽이고 그 고을을 불살라 버립니다. 하지만 잔치 그 자체는 취소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오늘 혼인 잔치의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고 그분이 보내신 예언자들을 박해했던 구약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을 나무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보잘 것 없던 민족인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통하여 온 만민을 당신의 나라로 부르시려는 구원계획을 세우셨으나 그들이 그 거룩한 소명을 거절한 것입니다.

이제 하느님 나라는 새로운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어 졌습니다.

바로 우리 자신들이 하느님 나라의 풍요롭고 거룩한 잔치에 초대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고 ,지금 당장 해결해야하고 ,지금 당장 챙겨야하는 우리들에게 오늘의 복음은 다시한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미 초대받은 사람으로서 그분의 말씀은 대수롭게 여기고 내 살기도 바쁘다는 핑계로 이웃의 아픔을 모르는 채 하지는 않고 있는지, 이해타산적인 우리네 삶이 언제까지나 계속되리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타성에 젖은 신심으로 마냥 그렇게 흘러가고 있지는 않는지...

오늘 제 2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 나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넘치도록 풍성한 아버지의 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 더 늦기 전에 자기만의 소박한 사랑의 예복, 믿음의 예복, 희망의 예복을 입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풍성한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조정제신부
  |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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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인간을 찾으신다

창세기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부분을 나누어 가졌다고 말한다. 서로의 부분을 나누어 가졌다는 것은 서로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온전한 아담이 되기 위해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 그리워해야 하고 하나 되어야 한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 대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창세기가 말하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하느님과 사람의 관계와 서로 대칭을 이룬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느님은 당신의 숨을 불어 넣으신다. 당신 생명을 나누어 주신 것이다. 하느님에게 사람은 나누어진 생명이다. 서로 생명을 나누어 가졌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하느님은 당신에게서 나누어진 생명을 찾으신다. 사람 또한 불완전한 생명에서 완전한 생명으로 가기 위해서 같은 생명을 나눈 하느님을 찾아야 한다.

생명을 위해 하느님과 인간은 서로에 대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진실과 하나 된 쪽은 하느님이지 사람은 아니다. 하느님은 사람의 등 뒤에서 사람을 쫓으신다. 사람이 당신에게서 멀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약속이나 계약을 통해 하느님이 사람을 쫓으신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생명을 위해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이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재앙일 것이다. 선택의 여지를 남겨 둔 이는 머물러야 할 곳에 제대로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이는 초대에 흔들린다. 오늘 복음은 사람을 찾으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혼인잔치에 사람을 초대하는 임금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임금은 그들을 애타게 부른다. 초대장을 보내고, 다시 종들을 직접 보내어 그들을 부르고, 그래도 거부하자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다른 종들을 보낸다. 혼인잔치는 만남의 장이다. 그 장으로 하느님은 사람을 애타게 부르신다. 그러나 사람은 그들의 생명을 위해 선택해야 할 다른 것이 있다고 믿는다.

오늘 복음은 그런 인간의 현실이 인간 자신에게 재앙임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임금은 잔치를 포기하지 않는다. 잔치의 여부는 임금에게 선택사항이 아니다. 임금은 지금 올 수 있는 사람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을 잔치로 불러 모은다. 하느님께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사람을 당신 앞으로 불러 모으시는 잔치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분의 초대 역시 멈추어 지지 않는다. 하느님은 우리 영혼의 깊숙한 곳에서 당신에게서 나누어진 생명을 통해 지금도 초대하신다.

자기 영혼 깊숙한 곳에 있는 조각난 생명의 요구를 감지하는 자만이 그 초대에 대답할 수 있다. 대답에 대한 인간의 운명은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서 나누어진 생명이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 영혼은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속삭인다. 결국 우리에게 초대된 자리란 거기 밖에 없음을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느님 역시 선택의 여지없이 우리를 향해 계시다는 것을 우리 영혼은 속삭인다. 사람이 세상에 나면서부터 그에게 주어진 대답의 의무는 그 속삭임에 대한 대답이다. 그 속삭임에 대한 대답이 혼인잔치에 입고 갈 예복이다.

김유겸 신부
  |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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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우리

오늘 복음에서 혼인 잔치가 벌어집니다. 어떤 임금이 혼인 잔치를 마련하고 사람들을 초대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상황들이 벌어집니다. 과연 어떤 잔치이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오늘 잔치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 계획을 비유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이 잔치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이사 25,6) 분명 넉넉하고 풍성한 잔치입니다. 그런데 이런 잔치 안에 엄청난 선물까지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이사 25,8) 너무도 큰 축복과 기쁨이 가득한 잔치입니다.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랑과 애덕이 가득한 잔치입니다. 하느님은 이런 잔치를 마련해주시고, 우리들을 초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런 초대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큰 은총과 기쁨의 선물을 보지 못하고, 지금 자기 할 일에 빠져서 임금의 초대에 응답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초대를 간섭으로 여기며 내 삶에 끼어들지 말라는 식의 태도입니다. 밭에 가는 것이, 장사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지만, 신앙인에게 있어 우선순위를 두지 않았을 때 그것은 부질없거나 하느님과 멀어질 수 있습니다. 교황님께서 ‘오늘날 세상의 위기는 하느님 없이 무엇인가를 하려는 인간의 욕망’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러 가야 하는 주일과 기도하고 애덕을 실천해야 하는 삶의 순간들에서 나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지 살펴봐야 할 대목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결국 이렇게 초대를 거부했던 사람들은 임금에게 벌을 받거나 쫓겨납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이 잔치는 이제 모든 민족들에게 열리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구원이 처음 선택되었던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예수님을 통해 이제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임금의 잔치는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 가릴 것 없이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예복을 갖추지 않아 쫓겨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던 가짜 그리스도인들, 즉 회개하지 않는 신앙인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서도 삶의 변화는 일으키지 않는 신앙의 미지근함을 하느님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실까요?

처음 잔치를 마련하고, 초대한 임금의 마음으로 되돌아가서 우리 자신을 바라봅시다. 넉넉히 준비하고, 함께 즐길 사람들을 기다리시는 하느님께 나는 과연 어떻게 다가가고 있습니까? 여전히 내 옷만을 고집하며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내가 좋아하는 곳만 찾아다니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구원의 잔치에 맞갖은 옷 한 벌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초대된 잔치에 알맞은 예복을 마련할 날은 바로 오늘이라는 것!! 우리 모두 하느님께서 초대한 잔치에 알맞은 예복을 차려입고 하늘나라의 잔치를 즐길 수 있길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특별히 군대에 있는 우리 모두의 아들들, 형제들을 기억하면서 많은 관심과 기도 부탁드리며, 항상 군 복음화를 위해 많은 도움과 사랑을 보내주시는 교우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마산교구 김현우 가브리엘 신부 - 2017년 10월 15일
  |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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