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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느님 것은 하느님께
조회수 | 2,162
작성일 | 05.10.15
오늘 주일복음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트집을 잡아 올가미를 씌우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것과 또 거기에 대해 예수님이 명쾌하게 대답하시는 내용입니다.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의 간악한 속셈을 아시고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마태오 복음 22장 21절)"라고 대답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로마황제의 흉상이 새겨진 주화 데나리온을 황제에게 인두세(주민세)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황제에게 바칠 것이 세금이라면 하느님께 바칠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는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타고났으며, 본래부터 하느님의 것이기에 인간의 삶 전체를 하느님께 바쳐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 바쳐야할 신앙인의 삶이란 무엇입니까?
신앙인은 성사생활을 하는 존재입니다.
지난 주일에 성체성사의 의미를 묵상했다면,
금주엔 고해성사의 의미와 연관지어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고해성사 때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고 성찰합니다.
선과 악,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인간은 나약성 때문에 죄에 떨어질 수가 있습니다. 또한 죄에 떨어진 인간은 죄를 뉘우치며 주님의 용서를 청합니다. 인간은 고해성사로써 주님의 자비와 용서를 받습니다.

주님 앞에서 행하는 양심성찰과 고백,
이 얼마나 진솔한 인간의 모습입니까?

하느님과 인간에게
잘못한 죄와 사랑의 부족을 고백하는 인간의 모습은 가장 겸손하고 아름답습니다.

"저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못했으며
그분과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저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사탄에게 저를 맡겼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눈물을 흘리는 참회자는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교회 앞에 무릎을 꿇고 죄를 고백하는 참회자가
다시는 주님과 인간에게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약속하는 그 행위야말로 인간이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선물이며 완전한 봉헌이 됩니다.

인간은 선과 악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번뇌하듯
세상과 교회 사이에서도 같은 일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마태오 복음 22장 21절)"는 주님의 말씀에 고민하는 신앙인의 참된 모습을 주일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에게서 봅니다. 고백소 앞에 줄을 잇고 서 있는 신자들의 모습과 미사 중에 경건하게 성체를 모시는 신자들의 모습에서 하느님께 모든 것을 드리는 믿음을 봅니다.

"주님, 매주 주일미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모든 이들을 당신께 봉헌하오니 기꺼이 받으시고 크신 축복을 허락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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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이상복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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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것

찬미예수님!
연중 제29주일인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하느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몸소 이끌어 가시며 우리 모두는 이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협력하도록 선택받았음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알지 못하는 키루스 황제를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한 도구로 선택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통해 당신 자신을 알리시는 분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구원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써, 세례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권고합니다. 반면에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세상의 지배자와 동등한 경쟁자로 격하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예수님께 올가미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면서도 그들을 배척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세상의 모든 가치 기준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존재를 받아들이도록 다시금 타이르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는 예수님의 답변은 곤경을 모면하기 위한 임기응변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선민으로서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신앙의 자세로 되돌아가도록 그들을 완곡하게 권면하시는 말씀입니다.

근래 교회의 현실 참여를 두고 일부 신자들이 정치와 종교의 분리 문제를 들고 나오고 있는가 하면, 일부 개신교에서는 오히려 기독교 정당을 만들어 정치적 활동을 본격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습니다.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 얽힌 복잡한 우리의 현실은 세금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의 고민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고민의 이면에는 항상 이해관계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현재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현실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이해관계에 맞추어가다 보면 하느님의 존재는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어느 사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안 중의 하나로 인식되는 순간, 종교는 그 설 자리를 잃고 세상으로부터 외면되고 말 것입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황제의 것이 따로 있고 하느님의 것이 따로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더욱이 이 두 가지가 서로 경쟁이나 대립관계에 있는 것처럼 오해해서도 안 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하느님이 만드셨고, 당신의 섭리로 이끌어간다는 것을 모르실 리 없는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황제에게 세금을 바친다고 그 영혼까지 팔아먹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과연 우리는 눈앞의 삶에 지나치게 얽매인 나머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려고 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 결과 우리는 무엇이 하느님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하느님의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하는지 그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황제의 것에 황제의 초상과 글이 새겨져있다면 하느님의 것에도 그런 표시가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고 믿고 있는 우리 신앙인들은 자기 욕심이나 생각을 뒤로 하고 각자에게 맡기신 하느님의 뜻을 찾아 성실히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권용오 마티아 신부
  |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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