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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하느님께 바쳐야 할 몫은 내 안에서부터!
조회수 | 2,264
작성일 | 05.10.15
우리는 모든 것이 풍족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서 영성의 분야에서는 ‘이것이다!’라고 확신할 만큼 명료함이 빈약한 게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일상과 신앙이라는 큰 삶의 두 축 안에서 조화와 일치를 이뤄가기가 쉽지 않고 동떨어져 있음을 자주 보게 된다.

신앙생활에서
핵심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고,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공동체적으로는 사도신경을 믿고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고 성서와 익숙하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사상들에 흔들리고 있다. 또한 현대문화는 사춘기의 청소년처럼 반항하며 그리스도교 전통과 가르침에 대해 비판과 냉소함을 던지며 거세게 도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 많이 갖고 더 높아지기 위해서는 때론 비굴해져야만 하고,
나의 이익을 위해 속여야하고, 핏대를 올려가며 사람을 모질게 나무라기도 해야 하고.... 그러나 한켠에선 소박함과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또한 무한경쟁과 물질주의에 노출된 자녀들의 미래를 생각할 때, 각박한 삶이 원망스러워 마음속으로 울기도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그저 하루하루 연명해가는 날들 안에서 기쁨과 행복이 먼 섬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오늘 복음에서는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이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워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원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로마 식민정권에 빌붙어 권세와 부귀를 누리던 헤로데 당원들과는 평상시에는 상종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을 제거하는 일에는 그렇게 야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그 시대에 가장 어려운 문제인 납세문제를 들고 나와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예수님을 옭아매려고 했다.

이 물음에 대해,
로마에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말하면 유대인들에게 대단히 큰 모욕적인 대답이고, 세금을 내지 말라고 말하면 그것 또한 로마에 반기를 드는 엄청난 사건이 되는 대답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걸리게 되어 있는 올가미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라고 명쾌한 답변을 하신다.

음흉한 무리들의 교묘한 술책에
일침을 가하는 그야말로 야합꾼들에게까지 경탄의 말씀을 해주신 것이다. 지금 세상의 왕은 카이사르이지만, 하느님은 지금 뿐만 아니라 세상을 넘어 영원한 통치자이시기에 너희가 참으로 섬겨야 할 분은 하느님 한분 뿐이심을 가르쳐주고 계신다.

그러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들에게 있어 카이사르의 것은 무엇이고 하느님의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하느님의 것을 생각하기 전에,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느님은 언제나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시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것은 돌보아주어야 하고 자비와 보살핌이 필요한 이들이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각자의 자리에서 깊이 생각해본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정에서는 누가 자비와 보살핌이 필요한지,
학교와 직장, 교회에서는 누가 자비와 보살핌이 필요한지, 그리고 이 사회에서는 누가 소외되고 보살핌이 필요한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하느님께 바쳐야 할 몫은 내 안에, 또한 교회 안에서도 뚜렷해 질 것이다. 그렇게 인식하고 실천해 나갈 때, 우리의 삶은 일상과 신앙이라는 두 축 안에서 조화롭고 일치를 이루어 생기있고 활기차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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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임종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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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사람들은 ‘소유의 문제’로 분쟁을 많이 일으킵니다. ‘이것이 나의 것이냐, 너의 것이냐? 개인의 것이냐, 국가의 것이냐?’를 따집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세금의 문제도 결국 ‘소유에 관한 문제’입니다. 세금 징수는 국가의 보호와 혜택을 입고 사는 국민에게 국가가 그들 소득의 일부를 소유할 수 있는 합당한 권한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그런 세금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려 합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만약 예수님께서 세금을 바치라고 말씀하신다면, 예수님은 황제를 섬기는 우상 숭배자요, 로마 식민통치의 앞잡이가 될 것입니다. 다른 한 편, 만약 예수님께서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면, 예수님은 로마 황제에게 대항하는 세력으로 간주되어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딜레마의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누구의 것이냐?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라는 말씀을 통해 모든 것은 참된 주인이신 하느님께 귀속(歸屬)되어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다시 한 번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봅시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내가 가진 것을 앞에 두고 진지하게 나 자신에게 질문해 보면 참 좋겠습니다. “이것이 진정 누구의 것인가?” 나의 몸, 나의 정신, 나의 지력과 내가 소유한 모든 것, 그것이 과연 누구의 것인가?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중에 하느님의 것이 있는 것은 아닌가? 만약 그것이 하느님의 것이라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하느님의 것을 사용하는 것이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누구의 것이냐?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봅시다. 나는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 드리며 살고 있는가?

류지현 마태오 신부
  |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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