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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가장 큰 계명 - 참사랑
조회수 | 2,708
작성일 | 05.10.21
[마산] 가장 큰 계명 - 참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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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라. 어떻게 하는 것이 그렇게 하는 것인가. 이스라엘은 율법 준수에서 답을 찾았다. 철저하게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이라 여겼다.

계율에 충실할수록 그만큼 하느님 사랑에 충실하다는 논리였다. 그러니 율법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은 이 생각을 바꾸신다. 계율에 쏟는 정성을 이웃 사랑에 쏟으라는 것이다.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람을 사랑해야 하느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가르침이다. 율법의 자리에 사람을 놓은 것이다. 반발은 당연했다.

예수님 제거까지 시도하였으니 당시 지도자들이 얼마나 당혹스러워 했는지 상상할 수 있다.

그러니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율법보다 소중한 것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마음과 목숨을 다해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인지를. 너무 단순하게 모든 사람이라 생각해선 안 된다.

모든 사람을 그렇게 사랑할 순 없는 것이다. 우선은 나에게 맡겨진 인연을 먼저 떠올려야 한다. 가족이다. 그들에 대한 사랑이 하느님 사랑의 잣대라는 말씀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평생을 함께 해야 하는 가족이 사실은 가장 사랑하기 어렵다. 남에겐 잘하면서 가족에겐 잘못하는 것이 사람이다. 남에겐 친절하면서 가족에겐 까다로운 것이 인간이다.

왜 그럴까. 너무 쉽게 생각해서 그럴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마음과 뜻을 다하라 하셨는지 모른다. 가족을 이렇게 대한다면 진정 사랑이 무언지 서로가 깨닫게 된다는 말씀이 아닐는지.

우리 삶의 이유는 사랑이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그리하여 기쁨과 평화로 살기를 주님은 원하신다. 열정 없이 가능하겠는가. 어림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사랑을 위해 애쓰면 그분은 그런 방향으로 인생을 끌어주신다. 그분 역시 마음을 다해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해석은 참으로 많다. 그렇지만 아직도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다. 그 중 하나가 사랑의 욕심이다. 요구와 기대가 너무 많은 사랑이다. 힘든 인생에서 서로를 지치게 한다면 어떻게 참 사랑이라 할 수 있겠는가. 과욕이 사랑의 기쁨을 앗아간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망각한다.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 하셨다. 그건 바로 사랑에 노력을 쏟으라는 말씀이다. 그렇게 노력해야 참 사랑에 닿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냥 원하기만 한다.

마음만 먹으면 될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오는 사랑은 없다. 사랑도 결실인 것이다. 그리고 첫 단추는 욕심을 버리는 일인 것이다.

다섯 살 소녀가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 병은 소녀의 여덟 살 난 오빠가 얼마 전에 걸렸다 나은 병이었다. 소녀가 살 수 있는 길은 항체가 생긴 오빠의 피를 수혈하는 것뿐이었다. 의사는 오빠를 불러다 말했다.

네 피를 수혈해야만 동생을 살릴 수 있단다. 네 피를 동생한데 줄 수 있겠니. 그러자 소년의 눈에 겁이 서렸다. 잠시 망설이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다. 네, 선생님 그렇게 하겠어요.

수혈이 끝나고 한 시간 뒤, 소년은 머뭇거리며 물었다. 저, 선생님. 저는 언제 죽게 되나요. 그제야 의사는 소년을 사로잡았던 순간적 두려움을 이해하였다.

소년은 자기 피를 줌으로써 동생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참 사랑은 가족 안에서 먼저 이루어진다. 말씀을 실천하는 가정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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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신은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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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감사와 회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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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의 말씀은
사랑의 이중 계명, 즉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가장 큰 계명임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우리는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나름대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기도를 열심히 한다든지, 미사에 열심히 참례한다든지, 나름대로 교회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다든지 등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는 좀 추상적으로 느껴져서 모두가 자기 식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스스로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람이 하느님의 벌이 무서워 이렇게, 저렇게 하지 않으면 벌을 주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하긴 계명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무거움이 있겠지요. 하나라도 어기면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님께서 사랑을 느끼실까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저는 두 가지 단어가 생각이 납니다.
감사와 회개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하느님께는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그분의 수많은 은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많은 것에 대해 감사를 다 드리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은총을 느끼는 순간만이라도 그분께 감사를 드린다면 하느님은 정말 기뻐하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께서도 모든 일에 있어 감사하라는 말씀을 우리에게 남기셨지요. 우리도 칭찬을 바라지도 않은 일을 했는데 누군가가 고마워하면 그 사람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요.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단 한 번이라도 죄를 짓지 않고 살 수는 없겠지요. 죄는 우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죄 때문에 하느님으로부터 숨어 지내는 우리를 보시는 하느님의 마음은 더 힘드실 겁니다. 죄를 짓더라도 빨리 회개하고 용서를 청하고, 훌훌 털어버리고 그분께로 달려간다면 그분은 정말 기뻐하실 것입니다. 탕자를 맨발로 뛰어가서 껴안으시듯이 우리도 껴안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와 회개로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하느님의 그 사랑이 넘쳐 우리 이웃에게 전해 질 것입니다. 감사와 회개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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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남경철 루도비코 신부
2017년 10월 29일
  |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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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사랑은 아무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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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대동본당 보좌 신부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진주지역 교정사목이 하대동본당에 맡겨진 관계로 한 달에 한 번 진주교도소에 미사를 봉헌하러 갔었고 그곳에서 조폭 행동대장 출신의 에드몬드라는 젊은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면담 끝에 제게 편지를 해도 되겠느냐고 묻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고 그렇게 그와의 펜팔(?)은 시작되었습니다. 그곳에 계시는 분들에게 가장 많은 것이 시간이다 보니 그 친구는 하루가 멀다 하고 편지를 보냈고 저는 답장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솔직히 짜증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신부님은 말씀하실 때마다(입만 열면) 사랑, 사랑 하시는데 정작 실천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라며 돌직구를 날렸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교회 목사님은 틈틈이 재소자들에게 양말이며 내의며 간식거리들을 사다 주시는데 신부님은 해준 게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마치 불에 덴 것같이 얼굴이 화끈거리더군요.

그 이후로 종종 양말, 속옷, 간식거리 등등
그 친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보내주었고 그 친구가 춘천교도소에 이감을 간 후에도 긴히 의논할 일이 있다며 면회를 와달라는 부탁에 단 10분간의 면회를 위해 왕복 10시간을 달려간 적도 있었습니다. 출소 후에도 한참 동안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몇 해 전부터 연락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사랑의 종교라고들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 제 사제 서품 모토이고 그 친구의 지적처럼 입만 열면 여전히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제 입에서 나온 말만큼, 아니 1/100, 1/1000만큼이라도 실천했더라면 벌써 제 머리 뒤에는 동그란 테가 걸려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제가 사랑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그 말의 홍수에 갇혀 제대로 된 실천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이면서 사제인 저는
하느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을까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 하시니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고 있는 사랑의 크기를 보면 알 수 있겠지요.

올해 초부터 시작되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진행 중인 코로나19 사태, 역대 최장, 최악이라는 장마와 태풍과 같은 재해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목숨과 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만이라도 다하여 주위를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을 행하지 않고서는
하느님을 저의 주님이라 고백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죽은 자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자들의 하느님이시고, 입에만 달린 사랑,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랑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기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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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윤행도 가롤로 신부
2020년 10월 25일 <마산교구 주보>에서
  |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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