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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깨어 있음의 중요성
조회수 | 3,092
작성일 | 05.11.04
스페인 광장에 있는 세르반데스의 동상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1547-1616, 세르반데스 - 미쳐서 살다가 깨어서 죽었다”

돈키호테를 통해
우리들에게 친숙한 세르반데스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서 세상을 풍자하고 고발하여 모든 세상 사람들과 함께 깨어서 죽고자 했습니다. 깨어서 살다가 깨어서 죽는 것! 이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리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개의 경우 미쳐서 살다가 미쳐서 삶을 마감합니다. 즉 돈에 미쳐서, 권력에 미쳐서, 명예에 미쳐서, 성에 미쳐서, 사람에 미쳐서 그대로 살다가 그대로 삶을 끝냅니다. 겨우 극소수의 사람만이 돈키호테처럼 미쳐서 살다가 깨어서 죽습니다. 이 경우는 그래도 죽기 전에 깨어서 죽었기에 다행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깨어서 살다가 미쳐서 죽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비록 우리가 세례를 통해 ‘세상’에서 죽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의 구원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항상 깨어 있지 못하면 깨어 있는 듯하지만 미쳐서 삶을 마감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미련한 다섯 처녀들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슬기로웠던 처녀들과 함께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마중하러 나갔습니다. 그러나 한밤중 신랑이 왔을 때 등불에 필요한 기름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토록 기다리던 신랑을 맞이할 수 없었고,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란
‘진실로 미친 세상 한가운데서 깨어서 살다가 깨어서 죽고자 분투하는 자들’입니다. 마치 복음에 나오는 다섯 명의 슬기로운 처녀들과 같이 말입니다. 그들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 애타게 기다렸으며 또한 등잔과 그 안에 필요한 기름도 충분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밤중 예기치 않은 날, 예기치 않은 시각에 신랑이 왔을 때, 그들은 그분을 뵈올 수 있었고, 그분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다시 오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날,
예측하지 못하는 시각에, 갑자기, 불현듯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래서 늘 깨어 준비하고 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란 세상 밖에서 깨어 있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깨어 있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즉 세상 안에서 세상의 가치 기준을 거슬러 사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철저히 깨어서 살고자 노력하며 마지막 순간에도 깨어서 죽고자 분투하는 자들이 바로 참된 신앙인들입 니다.

“나는 그대들을 모릅니다!”
혹시라도 마지막 날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도록 선물로 주어지는 일상의 삶에 감사드리며, 항상 깨어 준비하며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부족한 우리들이 깨어서 살다가 깨어서 죽을 수 있도록 주님의 자비를 간절히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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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허성준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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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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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에 새겨진 구절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물쭈물하는 순간 그냥 모든 것은 다 지나가 버립니다. 그렇게 우리가 놓쳐버렸던 소중했던 기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세상 모든 일에는 다 중요한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왔을 때 간절히 원했던 것을 얻어 기쁘고 행복할 수도 있고, 놓쳐버리고 난 후에 되돌릴 수 없는 아쉬운 후회만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설마’하며 꼭 해야 하는 일들을 미루다가 큰 재앙을 만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합니다. 반대로 미리 준비하고 있었기에 재앙을 피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매 순간 준비를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삶이 이렇다면,
우리는 주님을 만나기 위한 마지막 죽음의 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겠
습니까? 더욱더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그때는 반드시 옵니다. 지금 나는 그때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는 ‘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하늘나라를 얻기 위해 어떠한 준비해야 하는지 알려주십니다. 간단히 ‘슬기로운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슬기로운 사람들은 한밤중에 도착하는 신랑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등잔과 함께 기름을 미리 준비했고,

미련한 사람들은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 슬기로운 사람이되어 잔치의 기쁨을 함께 나누길 원하십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늘 깨어 합당한 준비를 하고, 때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 순간을 위해 등잔뿐만 아니라 기름도 함께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하느님의 뜻을 잘 알고, 그 뜻을 온전히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결코 자격만 얻었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한 준비에는 어떠한 이유와 핑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핑계를 대다 보면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게 됩니다. 또 세상적인 행복만 추구하다 보면, 중요한 준비의 시간을 모두 놓쳐 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슬기로운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삶에 감사드리며 ‘기름’을 잘 준비해서 그날과 그 시간이 다가왔을 때 행복한 마음으로 하느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는 기쁨을 함께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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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이용기 안드레아 신부
2020년 11월 8일 <수원교구 주보>에서
  |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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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충분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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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 사세요!”
하는 소리를 요즈음 동네 어귀에서 듣기가 힘들다. 그나마 간혹 드라마를 통해서 그 모습을 간접적으로 볼 수가 있다. 신부 측은 함을 지고 온 함잡이를 신부의 집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돈 봉투를 여러 장 충분하게 마련하고 술상도 넉넉히 준비해 놓는다. 이런 것들이 부족하다 싶으면, 함잡이는 좀처럼 움직이려고 하지 않고, 그 순간부터 신부 측과 실랑이가 벌어진다. 물론 나중에 함잡이는 돈 봉투를 마지 못하는 듯 안주머니에 슬그머니 챙기고 술잔을 몇 잔 받아 마시고 못이기는 척하면서 신부의 집으로 들어가서 함을 건네 준다.

이것이 한국의 결혼 풍습 중에 한 면이라면,

오늘 복음 속에서 보여주는
팔레스티나 지방에서 예수님 당시의 결혼 풍습은 다소 생소하게 보인다.

그 지방에서는 결혼을 할 때,
신부 측에서 열 명의 처녀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신부와 함께 신랑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우리나라 ‘함’은 밤에 오는데, 팔레스티나에서 ‘신랑’은 신부 측에서 방심한 틈을 타서 예기치 않은 때에 온다. 그 때문에 신랑이 한 밤중에 오기도 한다. 신랑이 일단 도착하면 문이 닫히게 되고 뒤에 오는 사람은 그 잔치에 참여하지 못한다.

이 결혼 풍습을 통해,
오늘 복음에서 등에 기름이 떨어져 기름을 사느라 늦게 잔칫집 문을 두드린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잔치에 참여하지 못 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깨어 있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 팔레스티나 결혼 풍습에서 실제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혼 풍습의 비유를 들면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고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는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오 복음 25장 13절).

그렇다면 어리석은 다섯 처녀들은 무슨 문제가 있었는가?

그 처녀들은 ‘충분히’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
슬기로운 처녀들과 마찬가지로 등에 불을 켜고 있었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 등에 기름이 다 되어서 그만 꺼지고 만 것이다. 이것이 졸음을 쫓고 졸면서 신랑을 기다리나, 끝내 신랑과 함께 잔칫집에 들어가서 향연을 누리지 못한 원인이 된다.

이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깨어 있다’는 의미를 다시 묵상하게 된다.

‘깨어있다’는 것은
신앙적으로 ‘충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충분한 준비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늘 ‘지금, 현재’ 시점에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신앙생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내 자신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가 하늘나라 잔치에 참여하고, 하지 못하는 관건이 된다는 것이다.

내 자신이
‘지금, 현재’ 신앙인으로서 성실하게 살아갈 때 내가 들고 있는 등에 기름이 떨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등에 기름이 충분히 있기에, 주님이 오신다는 외침을 듣더라도 기름을 준비하기 위해서 허둥대는 일 없이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 나라 잔치에 참여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깨어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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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안기민 사도 요한 신부
  |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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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우리에게 반드시 오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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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려주십니다. 비유에서 보면,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던 슬기로운 처녀들만이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혼인 잔치의 문은 닫히고 맙니다. 기름을 넉넉히 준비하지 못한 다섯 명의 처녀들은 얼마나 안타까워 했을까요!

이 비유를 통해
우리는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되라는 초대를 받습니다.

비유에서
열 명의 처녀들이 잠든 것은 언제 오실지 모르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는 정성을 다해 그분을 맞이할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명한 처녀들이
어리석은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누어 주지 않았던 것처럼,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는 남이 대신해 줄수 없습니다. 등불을 밝히는데 필요한 기름은 바로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 안에는 우리의 신앙이 녹아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 아버지와 이웃에 대한 사랑이 등불이 되어 주위를 환하게 밝혀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로 부터 등불을 부여받은 등불의 주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 등에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연료를 넣어 주위를 환하게 밝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이 등불로 계속 환하게 주위를 밝힌다면 우리는 비유 속의 어리석은 다섯 처녀처럼 신랑이신 예수님을 눈앞에서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오늘 제1독서를 통해서 우리는 지혜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특성을 알수 있습니다.

지혜이신 하느님께서는 늘 빛을 발산하시며,
당신을 찾는 이들이 쉽게 당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다가와 당신을 알아보게 해주십니다. 이처럼 우리도 주위를 환하게 밝혀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특성을 본받아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통해 주위를 환하게 밝혀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는 모두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밝게 빛나는 등불을 들고 하늘나라의 잔치에 들어가야만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등불의 연료를 가득히 준비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랑이신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등불을 밝힐 연료가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지만, 반드시 우리에게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등불의 연료를 반드시 넉넉하게 준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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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이도걸 아드리아노 신부
  |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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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눈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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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인 ‘열 처녀의 비유’를 묵상하면서,
이번 주 복음 생각의 주제를 ‘준비’로 해야지 맘먹고 있는데, 마침 매사에 준비가 철저한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처음엔 그 친구의 성격이 꼼꼼해서 그런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어린 시절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하면서 그러한 생활에 익숙해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보이스카우트나 걸스카우트 대원들의 모습을 어쩌다 볼 때면 그들이 참 멋져 보였습니다. 모자를 쓰고, 단복 위에 스카프를 매고, 가슴에는 몇 개의 배지를 달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무언가 달라 보이며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스카우트 대원들은 ‘준비’라는 표어를 갖고 활동한다고 합니다. 스카우트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항상 준비 상태에 있게 하려고, 마음과 신체를 단련한다고 합니다. 어릴 때의 이런 교육과 봉사는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서도 영향을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모범적인 삶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 나오는
슬기로운 처녀와 어리석은 처녀의 차이는 바로 ‘준비’에 있습니다. 신랑과의 만남, 혼인 잔치, 첫날밤에 대한 기대 등으로 가슴이 콩닥콩닥 뛸 정도로 설랬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과 설렘, 희망의 기다림은 열 처녀 모두 비슷했겠지만, 이들의 준비성은 서로 달랐습니다.

등과 함께 기름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들과는
달리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는데, 한밤중에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라는 소리에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불을 챙기는데,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누어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라고 대답하며, 매몰차게 그 부탁을 거절합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이 닫힙니다. 기름을 사러 갔던 처녀들이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하고 청하지만, 주인은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들려주시며,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니 깨어 있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준비되어 있지 않은 기쁨과 희망 그리고 행복은 오히려 슬픔과 절망, 아픔과 불행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인생의 기쁨과 희망 그리고 행복을 밝힐 기름을 준비하지 않으면, 꿈과 같이 사라질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 준다고 하였습니다. ‘지혜를 찾으러 일찍 일어나는 이는 지혜를 쉽게 만나고’, ‘지혜를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완전한 예지이며’, ‘지혜를 얻으려고 깨어 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진다.’라고 하면서, ‘지혜는 자신에게 맞갖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 돌아다니고, 지혜는 자신을 찾고 알아보며 만나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상냥하게 드러내며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만나준다.’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는 준비된 이들에게 온전히 주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격언과 그 뜻이 통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와 노력이 중요하다’는 교훈적인 가르침입니다.

교황 요한 23세는 교황이 된 후,
오래된 유골(遺骨)을 머리맡에 두고 지내셨다고 합니다. 교황님은 자신의 죽음과 그 뒤의 일을 미리 염두에 두고 사신 것입니다. 교황님께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개최하여 교회의 커다란 방향을 설정하시고, 인류에게 쇄신의 빛을 선사하려 했던 그 힘은 바로 죽음을 넘어선 생명을 염두에 두고 사셨기 때문에 비롯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황님께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덧없음’과 그 덧없음 너머의 세계를 찾고 갈망하며 사셨기 때문에, 인류와 교회에게 덧없음 너머의 커다란 문을 열어주시며 밝은 빛이 들어오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차세대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기름을 준비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교황 요한 23세께서 유골을 머리맡에 두고 사셨던 삶은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의 기름을 준비하며 살았던 차세대 리더의 모습이며, 슬기로운 처녀의 삶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위령성월을 지내는 우리 모두,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시는 하느님’을 행복하게 맞이하는 진정한 지도자, 슬기로운 처녀가 되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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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최인각 신부
  |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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