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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조회수 | 2,912
작성일 | 05.11.04
“하늘나라는 열 처녀가 저마다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것에 비길 수 있다.”

흔히 ‘열 처녀의 비유’로 불리는
오늘 복음(마태 25,1-13) 말씀은 마태 24~25장을 읽을 때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학적 관점에서 볼 때
마태오는 예수의 말씀과 행위를 크게 다섯 묶음으로 모아 자신의 복음서에 배치해 두었습니다. 마태 24~25장은 그 중 마지막인 다섯 번째 예수의 말씀과 행위묶음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 다섯 번째 예수의 말씀과 행위묶음에서 거의 결말 부분에 위치하면서 종말에 완성될 하늘나라(직역한다면 ‘하늘들의 왕국’)에 관련된 예수님의 비유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
“하늘나라”가 무엇인지 또는 어떤 곳인지가 설명되기를 우선 기대하겠지만, 그와 같은 기대는 이 비유를 통해 채워지지 않습니다. 히브리적 사고방식을 따른다면 “하늘나라는 … 에 비길 수 있습니다”(마태 25,1)를 “하늘나라에 관련하여 … 와 같은 비유를 들 수 있습니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즉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와 관련된 어떤 것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즉 구원 받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지혜로움’입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어리석은 다섯 처녀를 대조적으로 등장시켜 ‘지혜로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로움이란
우리에게 언제 어떻게 시작될지 모르는 하늘나라의 도래에 대한 준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어리석음이란
자신들이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은 채 단지 하늘나라를 기다리기만 하면 그곳에 들어 갈 수 있으리라는 착각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복음은
우리에게 단지 기다리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언제가 될 지 아무도 모르는 “그 날과 그 시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듣고 보는 지혜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입으로는 고백하면서 ‘하느님 나라’라는 종말사건을 단지 내세적 사건으로 여기며, 삶의 한 귀퉁이로 밀어놓은 듯이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교회공동체에는 오늘의 복음에서처럼 한 손에는 등불을 다른 한 손에는 그 등불을 계속 밝힐 기름그릇을 들고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현장감이 살아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교회가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세상을 밝힐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면 그 날과 그 시간에 우리 역시 굳게 닫힌 문 앞에 넋을 잃고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등불”은 무엇이고,
그 “기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마태오 복음사가가
자신의 독자들에게 던졌고 나아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해 던지는 열려 있는 질문입니다. 바로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깨어남을 위한 참 좋은 출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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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최승정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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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평신도 주일이다.

그리스어로
‘하기오스’,
‘크리스티아노스’라는
말에 어원을 두고 있는 평신도라는 말은
‘거룩한 백성’,
‘하느님께 경건하게 예배드리는 자들’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받은 신자’(로마 1,7), ‘아버지 하느님께 복받을 사람들’(마태 25,34),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로마 1,6) 등 신앙 안에서 이미 복을 받은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평신도에 대한 정의 가운데 진정한 의미 하나를 선택한다면,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1테살 5,6-8)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평신도들은
대체로 주일에 성당에 모여 미사를 봉헌하고 흩어져 한 주간을 세상 속에서 사회인으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올바른 평신도의 삶은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미사가 끝나고 서로 흩어진 후에 각자의 생활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어진 사명의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초대 교회의 모습은
평신도들이 각자 신앙의 공동체에서 흩어진 후에 자신의 생활터전에서 수행하는 사명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군중은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사도 8,4-6)

하느님께서 주일마다
평신도들을 당신 교회로 모으시는 것은 그들이 함께 모여 미사와 전례만을 행하기 위함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평신도들의 사명을 재확인하고 다시 세상으로 흩어지는, 아니 ‘파견’되는 주님의 사도가 되도록 이끌어 주시는 섭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의 평신도들은
주님의 신비체인 교회에서 지체로서 공적 예배와 신앙 고백을 통해 신앙의 성장과 더불어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세상에 나아가 많은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 할 책임을 주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자들인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였다(에페 1,23). 이 말은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 신비체인 교회의 지체로서 다 중요하며 각자가 고유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씀은 ‘평신도’이기에
교회의 모든 일을 성직자들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어떠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비조직적 구성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신학자 칼 라너 신부는 교회론을 통하여 평신도라는 말이 교회에서 사라져야 교회가 정상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평신도라는 말이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고 전파해야 하는 모든 책임을 사목자에게 전가시키고 자신들은 이 책임을 회피하는 용어로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을 비유로 알려주셨다. 등과 기름을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마태 25,10ㄴ)는 말씀이다.

등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안심한
어리석은 처녀들은 결국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우리도 평신도 사도로서의 복음적 삶과 선포를 통하여 등에 기름을 채우고 잔치에 들어가도록 해야 하겠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마태오 복음 7장 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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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임상만 신부
2020년 11월 8일 <가톨릭평화 신문>에서
  |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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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준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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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명지휘자
이탈리아의 토스카니니(1867∼1957)가
걸은 지휘자의 길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토스카니니는 원래 첼로 연주자였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는 아주 심한 근시여서 앞에 놓인 악보조차 잘 볼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관현악단에서 첼로 연주를 할 때마다
토스카니니는 항상 악보를 미리 외워서 연주회에 나가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은 연주회 직전에
갑자기 지휘자가 공석이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악단에서는 지휘자를 대신할 사람을 바쁘게 찾았습니다.
악단을 지휘하기 위해선
연주할 곡을 전부 악보 없이 외우고 있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오케스트라의 단원 중에
곡을 전부 암기하여 외우고 있던 사람은 오직 토스카니니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임시 지휘자로 발탁되어 지휘봉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19세,
바로 세계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준비된 사람에게 늘 새로운 기회가 찾아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서“항상 깨어 주님의 날, 주님의 시간을 잘 준비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우리 신앙인의 준비 자세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비유에서는 열 처녀 중에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을 맞을 준비로써 등잔뿐만 아니라 기름까지 준비했습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을 위해 충분한 기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충분한 기름으로써 등불을 밝히며 밤늦게 찾아온 신랑을 마중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잔만 준비했지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기에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항상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이 준비와 실천에 따라 그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철저한 준비와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정직과 성실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그리스도인이라는 등잔이 있습니다.
하지만 등잔만 가지고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등잔에 참 그리스도인이라는 진정한 신앙생활의 기름이 필요합니다. 착한 행실과 열심히한 기도생활, 그리고 이웃을 위한 희생과 봉사가 참 그리스도인이라는 기름이라고 하겠습니다.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서
기름을 충분히 준비했던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우리도 항상 준비하는 생활로 우리의 기름을 채워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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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고준석 마태오 신부
  |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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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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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력
‘가해’의 마무리를 앞두고 ‘평신도 주일’을 다시 맞이했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19라는 초유의 상황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언택트(untact), 온택트(ontact)’ 등의 용어뿐 아니라,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 등을 보다 생활화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활동이 취소 또는 축소되거나 비대면으로 진행하게 되는 상황에, 더구나 내년까지 지속될 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걱정 가운데 모두 이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세상 곳곳에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이사 6,8)라는 주님의 말씀에 이사야 예언자는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8)라고 응답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구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이사야처럼 우리 시대에도 누군가 그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일까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살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해야겠지만 특히 평신도들이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하는 길이고, 평신도 주일을 기념하는 의미입니다. 평신도 사도직은 교회 공동체 안과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평신도 사도직은
교회의 구원 사명에 대한 참여이며, 모든 이는 세례와 견진을 통하여 바로 주님께 그 사도직에 임명된다. …평신도들은 특별히 교회가 오로지 평신도들을 통해서만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장소와 환경 안에서 교회를 현존하게 하고 활동하게 하도록 부름 받고 있다. …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다 관련되는 이 사도직에 더하여 평신도들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교계 사도직과 더 직접적인 협력을 하도록 불릴 수도 있다.”(「교회헌장」, 33항)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제의 동반자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일도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그러나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눈과 귀, 손과 발이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먼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느님의 마음이 어떠하실지?’를 헤아려 봅시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느껴봅시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합시다! 곧 하느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교회 공동체를 사랑하고, 세상 만물을 사랑합시다!

이렇게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 그분의 사랑에 기초한 희망의 메시지를 모든 사람, 장소, 만남에 전하는 삶, 이것이 바로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하는 일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할 때가 되면,
특히나 위령 성월이 되면 어릴 적 읽었던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 스크루지 영감이 떠오릅니다. 나의 ‘비문’에는 무엇이라고 써질까? 기름을 준비해 두었던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되어야겠습니다.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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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성풍 아우구스티노 신부
2020년 11월 8일 <서울대교구 주보>에서
  |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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