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가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63 42.4%
[수도회] 일상에 대한 진지한 접근
조회수 | 2,589
작성일 | 05.11.04
저희 수도회 형제들은 사제품을 받기 직전, 원로회원들을 찾아뵙고 '인생특강'을 청해 듣곤 합니다. 가끔씩 저도 곁다리로 끼어 그 소중한 강의를 함께 듣습니다. 오랜 세월 묵묵히 그리고 겸손하게 수도회 성장을 위해 헌신해 오신 한 원로회원께서 이런 조언을 해주시더군요.

"우리 '예비 신부님들'께 유언처럼 드리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여러분이 몸담게 될 공동체를 먼저 사랑하십시오. 함께 살아가게 될 형제들을 첫째 위치에 놓으십시오. 함께 일하게 될 직원들, 교사들, 평신도들에게서 신뢰와 존경을 받도록 노력하십시오. 바깥에 있는 사람들, 먼 데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제가 되십시오."

평범하고 소박한 한 마디 말씀이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인생의 진리가 담겨있는 소중한 말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가끔씩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기란 아주 쉬운 일입니다.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인정받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 살아가는 사람들, 배우자, 부모, 자녀, 직장동료, 친구, 이웃들을 지속적으로 사랑하고, 그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기란 거의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 하시며 마지막 날을 잘 준비하라고 당부하십니다. '마지막 날'을 잘 준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돈보스코 성인께서 자주 강조하셨던 '일상의 영성'을 기억합니다. 일상의 영성은 수도자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에게 꼭 필요한 영성입니다.

일상의 영성은 다름 아닌 매일 삶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영성입니다. 매일
만나는 이웃들, 가장 가까이 몸 붙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영성입니다. 또 매일 주어지는 작고 하찮아보이는 일상 업무들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영성입니다. 일상에 대해 진지한 자세로 접근하고자 노력하는 영성입니다. 일상에 대한 지속적 충실성이야말로 마지막 날을 효과적으로 준비하는 가장 바람직한 태도일 것입니다.

저희 수도회 오랜 전통 가운데 '착한 죽음의 연습'이란 것이 있습니다. 돈보스코 성인께서 당신이 설립한 청소년 기숙사에서 행하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저희 집 같은 양성공동체에는 아직도 그 좋은 습관이 남아 있지요.

'착한 죽음의 연습'이란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피정을 한 번 하는 것입니다. 월말이 다가오면, 월례피정을 하면서 피정과 동시에 자신의 생활공간과 주변을 깨끗이 한 번 정리정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불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공동체 앞에 내어놓습니다. 언제 죽더라도 잘 정돈된 모습으로 떠날 수 있도록 외적, 내적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최근 저희 공동체에서도 '착한 죽음의 연습'을 실시했습니다. 사용하는 침실도 서로 바꿨습니다. 저도 형제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침실을 바꿨습니다. 침실을 바꾸기 위해 바리바리 짐을 싸는 형제들, 그 짐을 옮기느라 낑낑대는 형제들을 저는 그냥 두지 못합니다. 인정사정없이 혼냅니다.

"수도자가 무슨 짐이 그렇게 많은가? 수도자가 이사 갈 때, 양손에 가방 두 개만 달랑 들고 바람처럼 떠날 수 있어야지!"

그러면서 저는 보란 듯이 '폼'을 잡습니다. 몇 벌 안 되는 옷가지만 이불에 뚤뚤 말아서 어깨에 메고 단 한 번에 침실을 비워버립니다.

뭐든지 모으기 시작하면, 거기에 마음이 쏠립니다. 그중에는 반드시 애착이 가는 값진 물건도 있겠지요. 그러니 당연히 문단속도 잘 해야 합니다. 어디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누가 훔쳐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언제부턴가 새로운 것은 절대로 사지 않고, 모으지도 않고 늘 정리하며 살아가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 없습니다. 침실을 바꿀 때, 공동체를 바꿀 때, 그렇게 간단할 수 없습니다. 침실 문을, 사무실 문을 언제든지 활짝 열어놓고 살아갑니다.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돼 있으니 마음이 편안합니다.

매일 버리는 사람들, 매일 떠나는 사람들, 매일 정리하는 사람들, 매일 어제와 결별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은 지상에서 하느님 체험입니다. 매일 자기 버림을 통해 보다 단순하게, 보다 소박하게, 보다 홀가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잔잔한 호숫가에 서있는 듯한 감미로운 평화가 친구처럼 찾아올 것입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463 42.4%
11월의 가을입니다.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소멸하는 것의 아름다움입니다. 사라져가는 것의 아름다움입니다. 지금, 우리는 전례력으로는 마지막 시기에 와 있고, “위령성월”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죽음과 종말, 그리고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이 전례의 중심주제로 선정되고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지혜’를 인격화하여 표현해줍니다. 곧 “참 지혜”이신 하느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니 ‘지혜’라는 단어 대신에 ‘하느님’이란 말을 넣어서 읽어보면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지혜(하느님)를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완전한 예지입니다. 지혜(하느님)을 얻으려고 깨어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집니다.”(지혜6,15)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전하신 ‘지혜’를 말해줍니다. 곧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다시 오심’을 통하여 우리를 당신께로 데려가실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1테살 4,17)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하여, ‘지혜 있는 이들’의 삶의 자세를 말해줍니다. 이 비유에서 ‘신랑’은 그리스도이시며, ‘혼인잔치’는 하늘나라에서 펼쳐지는 하느님의 다스림을, ‘기름’은 신앙의 삶을, ‘등’은 그리스도의 빛과 생명을, ‘열 처녀’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신앙인을 표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가르침을 이렇게 요약하십니다.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마태 25,13)

“깨어 있어라” 하십니다.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곧 당신이 다시 오실 날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는 깨어 있되, ‘신랑’을 향하여 깨어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깨어” 있어야 할 우선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신랑’을 맞이하게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깨어있음”은 ‘신랑’을 기다리는 것이요, 희망하는 것입니다. 곧 사람이 되어 오신 주님의 ‘첫 번째 오심’을 기억하고,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으로, ‘언제나 계시며, 또한 오시는 주님’을 희망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깨어있음’은 곧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러한 기다림이 있기에 인생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 기다림은 하느님의 개입이 야기 시킨 놀라움이요 경이로움입니다. 그러기에, 그 기다림은 순간순간이 그분께 대한 신뢰와 사랑을 드리는 만남의 시간이 됩니다. 그것이 곧 “깨어있음”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역사를 그저 스쳐 지나서 통과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새롭게 하고 변형시키기 위해 역사 안에 임하십니다. 곧 당신의 구원계획에 우리를 참여시키기 위해서 인간의 역사 안에 들어오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은 아름답고 행복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임을, 소중한 임을, 주님이신 신랑을 기다리기에 오늘도 행복합니다. 그분께서는 진정 오실 분이시기에,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이는 미래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미래는 현재 안에서 그리고 현재를 통해서 얻어진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곧 현재는 미래를 결정짓는 마당이기에, 현재를 등하시하는 것은 결국 미래를 등한시하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곧 현재를 살되 미래를 바라보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깨어 있을 수는 있는 것일까?”

당연히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깨어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깨어 있어라”라고 하십니다.

곧 우리는 “깨어나야 할 존재”가 아니라,
이미 “깨어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곧 계시된 바를 믿고 받아들인 우리는 “이미 깨어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깨어” 있을 수가 있으며, 또한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구원받은 존재이며, 하늘나라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이 세상에 왔고,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이미 깨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 비유의 결론은 예기치 않을 때에 예수님께서 재림할 것이니 ‘깨어 있어라’는 단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기뻐 여기시는 행동을 해야 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이 가을,
결실의 아름다움과 소멸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자비의 완성의 때를 기다려야 할 일입니다. ‘신랑’을 생각하는 설레임과 부푼 가슴으로 살아가야 할 일입니다.

동시에,
이미 혼인잔치의 기쁨과 사랑을 살아가야 할 일입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살지 않고, 성령의 생명의 불꽃을 태우는 ‘등불’을 켜고 기다리는 지혜로움을 살아가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 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깨어 있어라.”(마태 25,13)

--------------------------------------------------

주님!
눈을 부릅뜨고 깨어 있되, 신랑인 당신을 향해 깨어있게 하소서.
당신을 희망하고 기다리며, 더더욱 갈망하게 하소서.
빛 속에서 은총을 볼 줄 알게 하소서.
그 은총이 얼마나 큰지, 경이로워하고 놀라워할 줄 알게 하소서.
임을 보게 하소서. 임의 사랑을 보게 하소서.
당신 사랑에 기름칠 되게 하소서. 사랑의 등불을 켜들게 하소서.
당신의 놀라운 자비와 사랑에 깨어있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2020년 11월 8일
  | 11.10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804   [수도회] 예수님을 따르는 길  [1] 2782
803   [제주] 우리 주교님, 나의 주교님  84
802   [원주] 가깝고도 먼 길  [4] 3075
801   [광주] 누가 우리의 왕인가  [1] 2757
800   [서울] 하늘나라 백성이 지녀야 할 모습  [7] 3319
799   [군종] 자신을 내어 놓는 삶  [1] 1737
798   [인천] 그리스도 우리의 왕  [4] 3014
797   [의정부] 사랑하라는 계명  [3] 2565
796   [대구] 심판의 기준  [2] 2717
795   [마산] 예수님은 나의 왕인가?  [4] 3596
794   [전주] 최후의 심판  [3] 3007
793   [부산] 연민과 봉사의 실천  [6] 3085
792   [안동] 구원의 길  [4] 3019
791   [대전] 희망을 품고 살아 갑시다.  [1] 1566
790   [수원] 그리스도께 합당한 신뢰와 사랑을  [5] 3197
789   [춘천]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3] 3179
788   (백) 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독서와 복음  [1] 2753
787   [수도회] 모든 것이 다 선물입니다  [2] 2161
786   [청주] 주인을 바라보는 눈  176
785   [군종] 내가 가진 작은 것에서 부터  [1] 2230
784   [인천]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  [2] 2352
783   [마산] 나의 달란트 어떻게 쓸까?  2326
782   [춘천] 착하고 성실한 종  [1] 2277
781   [수원] 결실을 맺는 활동적인 신앙생활  [3] 2407
780   [광주] 착하고 성실한 종, 악하고 게으른 종  140
779   [원주] 시든 꽃과 같이  2353
778   [서울] 하느님의 구원 계획  [5] 2644
777   [전주] "묻어둔 달란트를 적극 활용하자”  [1] 2511
776   [의정부] 받은 탈란트를 이웃을 위해  [1] 1772
775   [대구] 자비·겸손·찬미·평화·사랑  [1] 2261
774   [대전]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159
773   [제주] 탈란트의 가치  166
772   [부산] 받은 것을 베풀고 나누고 살자  [1] 2437
771   [안동] 모든 이에게 주신 선물  2063
770   (녹) 연중 제33주일 독서와 복음 (탈렌트talent의 비유)  [4] 1877
  [수도회] 일상에 대한 진지한 접근  [1] 2589
768   [전주] ‘즉시 그리고 기쁘게’ 나누는 삶  2667
767   [서울]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3] 2912
766   [인천]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  [1] 1472
765   [수원] 깨어 있음의 중요성  [4] 3088
1 [2][3][4][5][6][7][8][9][10]..[21]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1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