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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하느님의 구원 계획
조회수 | 2,647
작성일 | 05.11.11
지난 주 복음(마태 25,1-13)에 이어
연중 33주일 복음(마태 25,14-30)을 읽으면, 두 복음이 문학적인 면에서 서로 닮은 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열 처녀의 비유’가, 금주에는 ‘달란트의 비유’가 전 세계 천주교 공동체를 향해 선포됩니다. 이 두 비유는 모두 하늘나라에 관련됩니다. 과연 누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사람인지 한 쌍의 비유로 은유적인 답을 합니다.

한 달란트는 매우 큰 금액입니다.
당시 일꾼들에게 주던 하루의 품삯이 한 데나리온인데, 한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어떤 일용직 근로자가 16년 반을 휴일도 없이 쉬지 않고 일했을 때 벌어들일 수 있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주인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세 명의 종들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그리고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습니다. 그들 중 두 종은 자신들의 “능력에 따라” 주인이 맡기고 떠난 것을 두 배로 불려놓았으나 마지막 종은 주인이 두려워 그 돈을 땅에 묻었다가 돌려 줍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독자들은 숨죽이며 주인의 반응에 귀 기울이게 됩니다. 다른 종들에 비해 훨씬 더 주인에 대한 두려움, 즉 경외감이 가득했던 마지막 종에 대한 주인의 반응은 충격적입니다. 그 마지막 종은 쓸모없는 종으로 낙인 찍혀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쫓기고 맙니다. 그에게는 더 이상의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은 하늘나라를 종말론적으로 설명하며,
하느님 백성이 하늘나라를 맞이하는 종말에 어떤 질문을 받을지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너는 내가 너에게 맡긴 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였는가?”

이것은 질문이 아니라 수사적 경고입니다.
마태오 복음은 이 경고를 예수님의 수난 바로 앞부분에 배치함으로써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그 제자들이 이루게 될 공동체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예수께서 맡기신 것을 단지 땅에 묻어두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만으로는 결코 하늘나라에 들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엄중한 경고의 음성은
마태오의 청중에게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를 향합니다.

오늘의 교회 공동체에도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달란트가 주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받은 달란트를 어딘가에 묻어둔 채 하느님의 커다란 구원 계획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잊은 채 살아갑니다. 즉 우리는 구원의 ‘대상자’로 우리의 신원을 규정하면서도 우리가 구원의 ‘협조자’로 불림받았다는 것은 망각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오늘의 복음은
그 구원에 이르는 올바른 길이 바로 우리의 ‘능력’에 따라 맡겨진 일들을 두려움 없이 충실히 해 나가는데 있다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구원 공동체는 종말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구원의 ‘대상자’만이 아니라, 주님께 대한 신뢰와 사랑으로 풍요로운 구원의 ‘협조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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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최승정 베네딕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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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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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아는 우리들은 기쁨의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자기가 맡은 일을 하기 싫은 노동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성가시고 하기 싫은 힘든 노동이 아니라 매사가 기쁜 일일 뿐입니다.

노동이 빵을 구하기 위한 직업과 관련이 있다면
일은 소명과 관계가 있습니다. 일은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고 기쁨으로 그 일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을 합니다"(요한 5,17).

사제로서 살아가는 것도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요,
그래서 직업이 아니라 소명(召命)을 사는 일입니다. 기쁨으로 사제직을 살아가는 신부들은 보기에도 좋습니다. 기쁘게 미사를 봉헌하고, 기쁘게 성사를 집행하는 사제들은 아름답습니다. 그것이 사제들이 일상에서 해야 할 작은 일들입니다. 그 작은 일에 충실한 사제들을 교우들은 좋아할 것입니다.

돌아가신 마더 데레사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부터 시작되는 사랑은 작은 일들이나
자질구레한 일들도 귀찮아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하게 합니다. 작은 일에 충실하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일입니다. 그러니 언제나 작은 일에 충실하십시오… 하느님께 사소한 것이란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 이야기에서
주인은 자기 재산을 사람들에게 맡겨 줍니다. 사채놀이하며 고리대금업자가 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들 각자에게 알맞은 은총을 나누어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면에서 우리는 각자 하느님 은총의 관리자들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 은총이 어떻게 해서 풍요롭게 되는지 그 비결을 알려줍니다. 우리들에게 맡겨진 작은 일을 기쁘게 하고 충실하게 하는 것이 그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작은 일에 충실했으니 이제 내가 더 큰 일을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자, 오십시오. 와서 여러분의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눕시다!"

하느님 은총은
그것을 고맙게 받아들일 때 점점 더 풍요로워집니다. 하느님 은총은 그것을 자기 것으로만 움켜잡지 않을 때 더 풍요로워집니다. 하느님 은총은 그것을 기쁨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때 점점 더 풍요로워집니다. 이것이 하느님 은총의 신비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작은 일에 충실하고
그 일을 기쁨으로 하는 것이 기본일 것입니다. 기쁨이 없다면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작은 일에 결코 충실할 수가 없을 것 입니다.

언제나 하느님의 일을 열심히 함으로써 자신을 잊고(發憤忘食 발분망식),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니 기쁨 가득하여 근심 걱정이 없습니다(樂而無憂 낙이무우). 그렇게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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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박성칠 미카엘 신부
  |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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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루이> 왕 시대에
<바르나베>라는 가난한 곡예사가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저녁, 헐어빠진 깔개에 공과 칼을 말아서 겨드랑이에 끼고 저녁도 굶은 채 잘만한 헛간을 찾아 걸어가던 곡예사는 마침 같은 길을 걷는 수도자를 만나자 공손히 인사를 했습니다. 수도자는 바르나베와 이야기를 하는 도중 그의 순박한 마음에 감동돼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르나베 친구,
나와 함께 갑시다.
내가 원장으로 있는 수도원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겠소."
 
이리하여 바르나베는 수도자가 됐습니다.
그가 들어간 수도원에는 적지 않은 수사들이 정성을 다해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과 지식을 봉헌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박식한 모리스 수사는 글을 양피지에 옮겨 쓰고, 알렉산드로 수사는 거기에 아름다운 세밀화를 그려 넣었으며, 마르보드 수사는 쉬지 않고 석상을 깎고 있어서 수염과 눈썹, 머리칼이 온통 먼지로 하얗게 뒤덮여 있었습니다.
 
수도원 안에는 또한 시인들도 있어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송가나 산문을 짓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퉈 하느님을 찬송하고,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쌓이는 것을 보고 바르나베는 자신이 단순하고 무지한 것을 탄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바르나베는 기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성당으로 달려가더니 한 시간 이상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는 저녁 식사 후에도 또 성당을 찾았습니다. 이때부터 매일 성당이 비어 있는 시간이면 바르나베는 어김없이 성당에서 지냈습니다. 하루는 그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수도원장이 고참 수사를 데리고 성당으로 가 문틈으로 유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바르나베 수사가 성모님 제단 앞에 거꾸로 서서 허공에 쳐든 발을 여섯 개의 구리공과 열두 개의 칼을 가지고 재주를 부리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수사가 분개해 그를 끌어내려 할 때였습니다. 성모님께서 제단에서 내려와 푸른 옷자락으로 곡예사의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나톨 프랑스, 「가난한 곡예사의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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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각기 그에 걸 맞는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 재능은 최선의 노력을 통해 나와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쓰여야 합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사에는
'황일광'이라는 백정 출신 천민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하루는 백정인 황일광이 세례를 받고 신자들 모임에 나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양반들이 천민중의 천민인 황일광의 소매를 끌어당기며 자기들 모임에 들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대의 내노라 하는 석학들은 그를 '형제'라고 부르기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황일광은 그때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천주님을 믿으면 죽어서 천당 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게는 천당이 두 곳이 있다. 지금 여기가 천당이고 죽어서 갈 곳도 천당이다.'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았던 한 백정에게 눈부신 천국을 살게 한 것은 양반 신분의 그의 이웃이었습니다.

누구에게는
왜 다섯 탈렌트를 주고 두 탈렌트를 주며, 또 왜 한 탈렌트를 주었느냐고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교하기보다는 남과 다른 재능을 받은 만큼 부지런히 잘 활용해 세상을 복음화시키라는 것이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에디슨의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재능이 무엇이며, 나는 지금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를 한번 돌아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대로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 25,21)는 말과 함께 영광스러운 초대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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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이기양 신부
  |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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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로를 돌본다면 이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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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성실하면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눌 것’이라는 말씀입니다(마태 25,21 참조).

올 설 연휴를 지낸 직후부터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것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19’입니다. 많은 이가 자신의 안위에 몰두하며 마스크를 쓰고 누가 바이러스를 옮기지나
않을지 전전긍긍했습니다.

한편에서는
마스크가 없는 이들을 위해 집에 여유가 있는 마스크를 모으자고 제안해서 필요한 곳에 나누기도 했습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기나 건물에 대한 방역작업을 시민 스스로 모여 솔선수범했습니다. 서로를 돌보는 모
습입니다.

내(가족)가 소유한 자산(부, 재능)은
나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으며,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노동과 자연의 도움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받은 것을 이웃과 나눠야 하며,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재물이나 권력이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으로 여기며 함부로 휘두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는 하느님 대신에 그 어떤 것을 숭배(재물,
권력, 쾌락, 국가 등)하면 ‘우상 숭배’라고 가르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113항 참조).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오 복음 25,40)라고 하시며, 우리가 행해야 할 길을 분명히 제시하십니다.

오늘은 ‘제4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이며,
교황님의 담화 주제는 “가난한 이에게 네 손길을 뻗어라”(집회서 7,32)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회적 약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우선, 우리 주위에 차별받는 분들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예를 들어
연령 차별, 계급 차별, 장애인 차별, 성차별, 인종 차별, 종교 차별, 직업 차별, 학력 차별을 당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차별을 개선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회 제도와 구조를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탤 수 있습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들을 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표징이 된다”고 선포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443항). 가장 약한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것은 서로를 돌보는 일입니다. 세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어느 것도 우리와 무관한 것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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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황경원 안드레아 신부
2020년 11월 15일 <서울대교구 주보>에서
  |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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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은 것에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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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들이 두 차례에 걸쳐 나오는데, 우선 13장에 기록된 일곱 가지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에는 지상에서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성장 과정에 대한 가르침이 담겨 있고, 후반부21장과 22장 그리고 오늘 복음 25장은 하느님 나라를 통해 곧 다가올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 심판에 대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는
대부분 다가올 ‘종말론적인 하느님 나라’를 직접 언급하면서 그 나라를 성실하게 준비한 사람들보다는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무시하고 오직 옛사람의 모습으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심판을 유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의 핵심은 다섯 탈렌트와 두 탈렌트를 받은 사람이 더 많이 벌었기에 칭찬받았다는 내용이라기보다는 한 탈렌트만 받았다는 이유로 그 가치를 외면하고 땅에 묻어버린 악하고 게으른 종에 대한 책망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늘 복음은
결코 적지 않은 한 탈렌트나 되는 돈을 받은 종이 왜 게으르고 악한 종으로 전락하였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30억 원 정도의 엄청난 금액을 받았음에도 다른 종들과 비교해 볼 때 너무 적게 보였고 자기 능력에 비해 턱없는 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더 이상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는 주인의 성실한 종이 아니라 주인의 반대편에 서서 그와 맞서보려는 잘못된 판단으로 게으르고 악한 종이 된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직후
의료사고로 뇌성마비가 된 시인 송명희는 그의 찬양시를 통해, 자기는 남에게 당연히 있는 그 무엇도 받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남들이 느낄 수 없는 ‘보는 마음’과 주님의 말씀에 기울이는 ‘듣는 마음’이 있기에 언제나 하느님께 감사하며 산다고 고백하고 있다. 가진 정도에 상관없이 하느님께서는 이미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셨음에 늘 감사했다는 것이다.

복음에서는
받은 것에 감사하지 않는 게으른 종을 악한 종으로 동일시하고 있다. 사실 사람의 몸이 게으르다고 해서 그의 혀까지 게으르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게으른 사람일수록 그의 입은 불평하는 것으로 분주하고 모든 일에 핑계를 대느라 매우 바쁘기 때문이다. 이 게으른 종도 주인을 비판하기에 매우 바쁜 모습을 보인다. 성실한 종들은 단지“주신 것으로 더 벌었습니다”(20절, 22절)라는 말이 전부였지만, 게으른 종은 계속 불평하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느라 말과 핑계가 많아서 그의 혀가 분주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옛말에
“소인은 크고 특별한 것에만 성실하고, 위인은 평범한 것에도 성실하지만, 성자는 작은 것에 크게 성실하다”는 말이 있다.

따지고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도
아무 가치가 없어 보이는 작은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감사했기에 일어난 기적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예수님을 통하여 시작된 하느님 나라를 사는 성실한 신앙인의 삶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신앙생활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하기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것에 대한 감사’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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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임상만 신부
2020년 11월 15일 <가톨릭평화신문>에서
  |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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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연중 제33주일이며,
교황님께서 제정하신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11월 달이면 저의 작은 형이 생각납니다.
10월은 가을이고 단풍이 아름답습니다.
추석이 있어서 가족들이 모이고, 풍요롭습니다.
12월은 한해의 끝이라서 설레는 마음으로 지냅니다.
성탄이 있어서 더욱 아름다운 달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합니다.
11월은 가을과 겨울의 중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왠지 아련하고, 쓸쓸해 보입니다.
큰형은 부모님의 기대와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장남이기 때문입니다.
셋째인 저는 부모님께서 어딜 가시면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아직 어리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께서 세 아들을 똑같이 사랑하셨겠지만
작은 형은 일찍 홀로서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11이라는 숫자는 다리처럼 생겼고, 젓가락처럼 생겼습니다.
우리는 다리를 이용해서 쉽고 편하게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다리가 없다면 멀리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젓가락을 사용해서 음식을 편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 손재주가 좋은 것은
젓가락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작은 형은 어쩌면 다리처럼,
젓가락처럼 우리가족들을 위해서 일찍 홀로선 것 같습니다.
11월이 있기에 10월은 더욱 풍요로울 수 있었고,
12월은 더욱 빛날 수 있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세계 가난한 이들을 위한 날’을 제정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셨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성서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여러분이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아픈 사람을 위해서 왔습니다.”

착한 목자의 이야기도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 곁에는 가난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라는 율법학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당신은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합니까?” 율법학자는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당신도 그렇게 하십시오.”

예전에 읽은 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글을 모르는 사람도,
세상의 지혜를 모르는 사람도,
특별한 수행을 하지 않은 사람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진리의 길은, 깨달음의 길은 구원의 길은
아주 평범한 곳에 밝혀 놓으셨다고 합니다.
하늘의 별, 구름, 들의 꽃, 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하느님의 진리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내가 세상을 변화 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내가 변하는 만큼 세상은 그만큼은 변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구원의 문제도 그리 큰 숙제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우리들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면 세상은 그만큼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가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가 싹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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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재형 신부
2020년 11월 15일
  |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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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2   [마산] 나의 달란트 어떻게 쓸까?  2328
781   [춘천] 착하고 성실한 종  [1] 2280
780   [수원] 결실을 맺는 활동적인 신앙생활  [3] 2410
779   [광주] 착하고 성실한 종, 악하고 게으른 종  144
778   [원주] 시든 꽃과 같이  2359
  [서울] 하느님의 구원 계획  [5] 2647
776   [전주] "묻어둔 달란트를 적극 활용하자”  [1] 2515
775   [의정부] 받은 탈란트를 이웃을 위해  [1] 1774
774   [대구] 자비·겸손·찬미·평화·사랑  [1] 2268
773   [대전]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161
772   [제주] 탈란트의 가치  167
771   [부산] 받은 것을 베풀고 나누고 살자  [1] 2441
770   [안동] 모든 이에게 주신 선물  2066
769   (녹) 연중 제33주일 독서와 복음 (탈렌트talent의 비유)  [4] 1879
768   [수도회] 일상에 대한 진지한 접근  [1] 2591
767   [전주] ‘즉시 그리고 기쁘게’ 나누는 삶  2670
766   [서울]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3] 2916
765   [인천]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  [1] 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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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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