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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받은 것을 베풀고 나누고 살자
조회수 | 2,440
작성일 | 05.11.11
오늘 복음은 어떤 사람이 길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재산을 맡긴 이야기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들은 대로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란트, 또 한 사람에게는 두 탈란트, 그리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탈란트를 각각 맡겼습니다.

탈란트는
그 시대 화폐 단위 중 가장 큰 것입니다.
한 탈란트는 일용직 근로자 한 사람이 20년 동안 노동하여 받는 품삯에 해당하는 거액입니다.

따라서 다섯 탈란트는
근로자 한 사람이 백 년 동안 일하여 받을 임금액입니다. 비천한 종에게 그런 거액의 돈을 맡긴다는 것은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이 복음은 신앙인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 지를 말합니다.

오늘의 이야기에서
다섯 탈란트를 받은 종과 두 탈란트를 받은 종은 각각 그것을 값지게 활용하여, 다섯 탈란트 혹은 두 탈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그러나 한 탈란트를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자기가 받은 것을 묻어두었습니다. 그는 받은 탈란트를 활용하지 않고 자기의 미래를 위해 안전하게 보관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주인이 돌아와서 셈을 밝힙니다. 다섯 탈란트를 받은 종과 두 탈란트를 받은 종은 그것을 값지게 활용하였다고 주인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한 탈란트를 받은 종은 그가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불행을 당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하느님으로부터 우리가 받은 것을 값지게 활용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은 종들과 셈을 하지만,
종에게 나누어주었던 재산과 그 종이 벌어들인 재산을 회수하지는 않습니다. 이 주인은 자기 재산을 늘리기 위해 종들에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종들이 받은 것을 내어주고 쏟아서 값지게 활용해 줄 것을 바랐습니다. 그래서 값지게 활용한 종을 축복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미래만을 생각하며 받은 것을 처리한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비난과 더불어, 받았던 것마저 빼앗겼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우리의 생명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그리스도 신앙인입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생명이고, 부모의 자상한 보살핌으로 성장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부모에게 감사하는 사람이 자녀입니다. 스승이 자기를 위해 쏟은 정성을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자기가 사는 사회로부터 받은 것이 많다는 사실과
그 사회를 위해 자기도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건전한 시민입니다. 자기가 받은 것을 전혀 감사하지 않아도, 한 인간으로 먹고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부모에게 감사하지 않아도, 스승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아도, 사회를 위해 전혀 공헌을 하지 않아도, 자기 한 몸 잘 먹고 잘 살 수는 있습니다.

신앙인이 된다는 사실은 전혀 강요된 것이 아닙니다.
죽어서 갈 지옥이 두려워서 신앙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신앙인이 되어야 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도 아닙니다. 하느님을 믿으면 사업이 더 잘 되고, 지위가 더 올라가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인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보는 사람입니다. 부모를 소중히 생각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조금 더 보는 사람입니다.

스승과 사회에 대해서
감사하고 보답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조금 더 보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이 베풀고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입니다. 베풀어진 것이 다섯 탈란트일 수도 있고, 한 탈란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은혜로운 일이고 축복입니다.

베푸심과 축복의 결과로 내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 사실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보아야 하는 사실 하나를 보지 못한 것뿐입니다. 자기의 삶을 은혜로운 것으로 만들어주는 빛 하나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우리를 구분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과 우리가 하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저기 하늘 높은 곳에 계시고 나는 여기 땅에 있다는 식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이 하신 일은 내가 한 것이 아니고, 내가 한 것은 하느님이 하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자는 말입니다.

내가 벌어서 만든 재산,
내가 노력하여 얻은 기술과 자격증,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은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느님이 베푸신 은혜로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느님의 베푸심으로 보이는 곳에 풍요와 감사가 있고 자비와 헌신의 실천이 나타납니다.

그와 반대로
내가 가진 것이 나의 것으로만 보이는 곳에 불만, 욕심, 무자비 등의 어둠이 보입니다.

“빛이 어둠 속에 비치고 있다”고 요한복음서(1,5)는 말합니다.
우리 자신만을 생각하는 어둠 속에,
베푸심이 보이게 하는 빛이 비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의 이야기는
주어진 것을 가지고 자기의 미래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주인이 베풀었듯이, 받은 사람도 베풀어서 값지게 활용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베풀어서 활용하지 않는 사람은 불행하다는 뜻입니다.
“어둠이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도 요한복음서는 말합니다. 베푸신 분이 계서서 그 결과로 내가 있고 내 것이 있습니다. 그 빛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어둠 안에서 자기 자신과 자기가 받은 탈란트를 봅니다.

신앙이라고 하면서
우리도 욕심의 어둠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베푸심이라는 기원이 사라집니다. 베푸심이라는 기원이 사라지면 우리의 생명, 재산, 지위, 자격증, 이런 것이 모두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빛을 받아들여 우리의 삶을 보자는 운동입니다.
이기심의 어둠에서 한 발 물러서면 하느님의 빛이 다가옵니다. 신앙은 하느님께 빌고 바쳐서 더 많이 얻어내고 더 높아지겠다는 수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욕심의 연장입니다.

신앙은
베풀고 축복하시는 하느님의 일을 연장하여 우리도 은혜로움과 축복을 실천하며 살자는 운동입니다. 다섯 탈란트, 두 탈란트, 한 탈란트 모두가 은혜로운 것입니다.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은혜롭게 주어졌습니다.

우리가 받아 누리는 것도 어느 날 우리를 떠나갈 것입니다.

땅에 떨어져 구르는 낙엽이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는’ 생명의 순리가 어떤 아름다움인지 말해 주는 계절입니다. 베풀어주신 생명이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빛 안에서 한껏 푸르게 살면, 그렇게 떨어져 가는 것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계절입니다.

우리도 베풀어진 것을 나를 위해 묻어두는 어둠 안에 머물지 않고,
베푸심의 빛을 받아 한껏 푸르게 또 은혜롭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베푸셨습니다.
그 빛의 순리를 따라 살아서 낙엽이 되고 싶은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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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서공석 신부
463 49.6%
[부산] 나눔만이 우리를 우리답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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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떠한지요?

영국의 정치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의
“1명의 부자가 있기 위해서 500명의 가난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라는 말은 지구촌의 현실 자본주의를 잘 대변해 주는 말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경쟁적으로
더 많은 가난한 사람을 만들어 가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때론 전쟁도 불사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오늘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지냅니다. 세상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더 많이 가지려고 폭주를 하고 있는데, 우리 교회는 작은 브레이크라도 되고자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지난 2월 5일 교황청 사회과학 학술대회에서 “세상은 부유해졌지만 우리 주위에 가난한 사람은 늘어만 갑니다.” “부자 상위 50명의 재산으로 가난한 모든 이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독서에서도
훌륭한 아내는 여러 가지 중에서 “가난한 이에게 손을 펼치고, 불쌍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잠언 31,20) 주는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자기 가족뿐 아니라 이웃의 어려운 사람도 보살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주님의 날이 도둑처럼 덮치지 않을 것”(1테살 5,4ㄴ)이라고 합니다. 항상 함께 나누고 베풀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어둠의 자식이 아니라,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복음은 달란트의 비유로
각자가 가진 것을 땅에 묻어 썩히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럼 비록 얼마 되지 않는 것도 빼앗기거나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가진 것을 모두 내어놓고 나누고 사용하면 더 많은 열매를 맺고 더 받게 된다는 사실을 주님께서 명확히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지기 위해서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이유는 가지고 쌓아 놓기 위해서 아니라, 더 많이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우리가 나누지 않고 쌓아 두려고 한다면 가진 것을 빼앗길 것이며, 심지어 도둑처럼 갑자기 덮쳐와 우리를 데려가실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길은 오직 나눔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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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김윤태 루카 신부
2020년 11월 15일 <부산교구 주보>에서
  |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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