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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결실을 맺는 활동적인 신앙생활
조회수 | 2,407
작성일 | 05.11.11
오늘의 전례도
또 다시 우리의 삶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깨어 기다리라고 한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활동적’인 면이다. 즉 깨어있는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들이 결실을 맺도록 하는 활동적 특성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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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 잠언 31,10-13.19-20.30-31 : “그 손이 일한 보답을 안겨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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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실이 제1독서에서 강조되고 있다.
내용은 자기 가족들을 보살피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데 자신을 바치는 ‘현숙한’ 여인에 대한 내용이다. 이 ‘현숙한’ 여인은 의인화된 ‘지혜’(8,22 참조)를 묘사한 것으로 본다. 이 대목은 마치 잠언의 ‘지혜로운’ 메시지를 종합하는 것 같다. “지혜로운 여인은 칭찬을 들을 것이다. 그녀가 자랑해야할 것은 오직 야훼께 대한 경외심뿐이로다”(LXX에 첨가됨). 하여간 현숙한 여인의 가장 빼어난 점은 하느님과 남편과 자식들 그리고 이웃에게 성실히 헌신하는 그의 ‘활동’에 있다는 것이다. “그 손이 일한 보답을 안겨주고 그 공을 성문에서 포상해주어라”(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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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독서 : 1데살 5,1-6 :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어 있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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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오로께서도
데살로니카 신자들이 곧 다가올 주님의 재림에 대한 걱정을 없애주고자 하면서 “그 때와 시기는” 아무도 모르며 주님께서 “밤중의 도둑같이”(1-2절)오실 것이니 깨어있으라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빛’ 속에 살면서 ‘빛’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살 때에는 도둑처럼 덮쳐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깨어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태만하지 않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켜 가면서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러한 삶으로 주님께서 나누어주시는 선물들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분이 오시는 날, 우리는 그분을 맞이하기에 합당한 자가 될 것이다. 그분이 오시는 날은 ‘심판’과 ‘수확’의 날이다. 그 날은 우리가 이룬 ‘결실’에 대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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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마태오 25,14-30 : 달란트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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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는
이 달란트의 비유를 통하여 종말론적 의미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비유는 항상 종말론적 ‘깨어있음’을 배경으로 윤리 도덕적, 행동적 의미가 담긴 내용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주인이 종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맡기는 행위는 ‘신뢰’에서 비롯된 행위이다. 이에 맞추어 종들도 그 재산이 자기 것인 양 잘 관리하여 그 신뢰에 보답하여야 한다. 이 때문에 맡긴 돈을 땅에 ‘묻었던’ 게으른 종은 주인의 신뢰의 선물에 대해 신뢰로 보답할 줄 몰랐기 때문에 지탄을 받는다.

1달란트는 금 42kg의 매우 많은 액수의 돈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의미한다. 여기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준 것은 그 종들의 ‘능력’에 대한 평가이다(15절). 여기서 주인이신 그리스도는 인색한 분이 아니라, 베풀어주신 선물에 비례하여 ‘요구하시는’ 의로운 분이시다. 하여간 앞의 두 종들은 그 돈을 이용하여 두 배로 늘렸지만,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가서 그 돈을 땅에 묻었다”(18절).

“얼마 뒤에”
주인이 돌아와 자기 종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19절). 주인은 돈을 두 배로 늘린 종들을 칭찬하고 상을 주었는데 “더 큰 일을 맡기겠다”(21.23절)고 한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주님의 “기쁨”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그분이 가지시는 통치권에 참여함으로써 누리게 되는 기쁨이다. “자,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23절). 다른 곳에서는 천상잔치라는 상징적 개념으로도 표현되고 있다(8,11).

반면에 게으른 종을 보자.
이 종의 태도에서 비유의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는 두 사람의 좋은 결과를 보고 자기의 염려가 헛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는 ‘두려워서’(25절) 그가 맡은 한 달란트마저 잃어버릴까 염려하여 “땅에 묻었다”(25절)고 한다. 이것을 잘못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받은 것을 되돌려 주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주인은 이러한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두려움’이란 ‘신뢰’의 관계에 있어서는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 종은 주인이 ‘신뢰’의 관계를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단순히 고용관계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이것이 바리사이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주인의 뜻에 맞게 우리가 살지 못하고 우리의 달란트를 사용하지 못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게으른 종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땅에 묻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책임한 모험을 하라는 것도 아니다.
용기는 개방이며,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어머니의 행위와 같은 사랑의 봉헌의 행위이지 자기 자신의 안위 때문에 위험을 두려워하는 행위가 아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자연적 초자연적 선물 모두가 마땅한 결실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권고가 담겨있다. 이 때에 하느님은 더욱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은 또한 우리가 속해있는 공동체의 성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 개인이 성숙하지 못하면 교회도 성숙하지 못한다.
“땅에 묻어놓은” 우리의 달란트는 곧 모든 이를 위한 기회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주인의 판결은 준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해 자신의 달란트를 결실 맺도록 하라는 것은 이러한 ‘종말론적’ 긴박 때문에 용기를 내야하고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신앙이란 것은
단순히 신경을 암송하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의 신앙은 내가 잘못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더라도 이 세상 안에서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게 밀어주는 그런 신앙이어야 한다. 무엇인가 잃을까 ‘두려워서’ 무기력하게 있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여봐라, 저자에게서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해지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기 것이다“(28-29절).

이것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가 받을 상급보다도 더 큰 상급을 받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며, 없다고 생각하여 ‘땅에 묻는’ 사람은 그것이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잃어버려도 잃어버린 줄조차 모르게 잃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충실하고 열심한 그리스도인으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주실 더 큰 선물을 기다리면서, 그분이 이 지상생활에서 베풀어주시는 모든 선물에 대해 감사드려야 한다. 항상 그분의 선물에 감사하면서 ‘활동적’인 삶으로 결실을 맺어 내어놓을 수 있는 생활을 이루어 가도록 주님께 도움을 청하며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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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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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탈렌트 - 주님의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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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님께서는 ‘탈렌트의 비유’로 잘 알려진 말씀을 들려주신다.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내가 받은 탈렌트는 무엇일까?’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명확한 답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다시 말해서,
‘아하~ 주님께서 내게 주신 탈렌트는 이거였구나!’하고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알맞은 탈렌트를 주셨다고 했는데, 왜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일까?

그 이유는
우리의 눈높이가 너무나 높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탈렌트를 생각할 때, 무언가 뛰어난 능력이나 남들이 지닐 수 없는 독특한 능력을 떠올린다. 물론 그러한 능력도 맞다. 하지만 주님께로부터 받은 탈렌트가 곧 뛰어난 능력, 독특한 능력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탈렌트는 어떤 특정한 능력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모든 ‘은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는
주님께로부터 많은 은총을 받는다. 우리의 1분 1초가 은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은총 안에서 생활한다. 날마다 맞이하는 새로운 하루도 주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생각해본다면, 우리 모두는 은총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주님께로부터 아무런 능력도 받지 못하였는가?
나는 왜 탈렌트가 없는가?’ 등 여러 가지로 불평해서는 안 된다.
또한, ‘나는 아무런 탈렌트도 못 받았는데,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나 많이 받았는가?’라는 식으로 비교해서도 안 된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은총인 탈렌트를 받았다.
그것도 누구는 더 많이, 누구는 더 적게 받은 것이 아니라 모두 똑같이 받았다. ‘주님께로부터 받은 탈렌트가 모두 똑같다?’ 이 말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탈렌트를
어떠한 능력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종들을 불러”라는 말씀 안에서 바라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이라는 탈렌트를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탈렌트를 각자에게 주어진 어떠한 능력이라고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전에 먼저 ‘주님의 부르심’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 각자를 불러주셨다는 확신이 있다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능력들이 주님을 위한 특별한 능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두 종에게도 주인이 나를 선택해서 불렀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주인이 나를 불렀다는 사실을,
주인의 목소리를 들었던 순간만이 아니라 마음 깊이 새겼던 것이다. 그 결과, 두 종은 주인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나머지 한 명의 종은 그러지 못했다. 그도 주인의 부르심을 받고 응답도 하였지만, 마음 깊이 새기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는 주인이 나를 선택해서 불렀다는 사실을 잊었다.

우리는 주님께서 손수 선택하시어 당신의 제자로 불러주신 사람들이다.
이는 우리 모두 주님께로부터 탈렌트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주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는 이 소중한 탈렌트를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잘 간직하고 확신할 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능력을 포함해서 우리의 모든 능력들이 주님을 위한 특별한 능력으로 변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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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인진교 요셉 신부
  | 11.10
463 42.4%
[수원] 신앙 활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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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일상 속에서 얼마나 자주 내가 신앙인임을 자각합니까?
또 신앙인으로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실 우리는 교회보다
세속사회 안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기에 자신이 신앙인임을 자주 잊게 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잊어선 안 됩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신앙’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중한 ‘선물(탈렌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종 세 명에게 각자의 능력에 따라 탈렌트를 나눠주고 여행을 떠납니다. 이 사람이 자신의 종들에게 돈을 맡긴 이유는, ‘이 돈을 얼마나 성실하게 잘 활용하는가?’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주인의 의도를 잘 파악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탈렌트를 잘 활용한 두 종은 주인에게 칭찬을 듣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의도를 알아듣지 못하고 그냥 땅에 묻어 두었던 종은 큰 질책을 받고 밖으로 쫓겨납니다.

사실 주인에게 있어서 중요했던 것은
그들이 얼마나 많은 이익을 남기는지보다 ‘작은 일에도 성실하고 충성을 다하는 자세’에 있었습니다. 얼마나 주인을 믿고, 주인의 말을 충실히 따랐는가 하는 데에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탈렌트를 땅에 묻어 두었던 종은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면서 주인을 모질게만 여기고, 주인의 뜻을 헤아리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편안함만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습니까?
나에게 주신 탈렌트를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잘 활용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냥 묵혀둔 채 변명과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있습니까?

<제2독서>에 바오로 사도께서는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테살로니카 1서 5장 5절)임을 상기시키며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을 것”(테살로니카 1서 5장 6절)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1독서>에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표상으로 ‘훌륭한 아내’의 모습을 제시합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 없이 잘해주고,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며,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을 도와주고,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잠언 31장 12절-13절. 20절. 30절),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이라는 탈렌트를 잘 활용하는 모습이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신앙은 뭔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내게 주어진 신앙을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사용하는 것, 즉 소중하고 가치있게 가꾸면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작은 일에 성실하여
주인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눴던 슬기로운 두 종의 모습처럼,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신앙이라는 탈렌트를 성실하게 활용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나라의 기쁨을 가득 받아 누리는 행복한 신앙인, 거룩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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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현수 마티아 신부
2020년 11월 15일 <수원교구 주보>에서
  | 11.13
463 42.4%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능하다고 믿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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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탈렌트의 비유’입니다.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을 향하기 때문에 ‘심판’에 관한 복음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지난주엔 ‘열 처녀의 비유’였습니다. 여기에서는 기름으로 상징되는 ‘성령’을 지켜내기 위해 규칙적인 기도를 할 줄 아는 사람이 구원에 이른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구원은 ‘믿음’에 의해 결정되는데, 성령을 받기 위해 규칙적인 기도 생활을 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것으로 판결이 납니다.

오늘 복음은 믿음을 판결하는 또 다른 방법을 말해줍니다.
바로 ‘자신이 믿는 자신의 능력’입니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종은 두 탈렌트를 받은 종보다 더 많은 능력을 받았다고 믿고 두 탈렌트를 받은 종은 한 탈렌트를 받은 종보다 더 받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은 하느님이 모질어서 자신에게만 적은 능력을 주었다고 불평만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라 모두에게 다섯 탈렌트씩 주신 것입니다. 능력이 없다고 믿는 것은 그만큼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것은
하느님께서 자비롭지 못하신 분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악과에까지 손을 뻗친 것입니다. 하느님이 자비롭다고 믿지 못하는 이들은 그래서 하느님이 주인이심을 인정하기 위해 바치는 십일조도 소홀히 합니다. 그리고 불평만 하다 자신의 감추어진 능력을 땅속에 묻어놓고 삽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주님 앞에 빈손으로 가는 일이 없습니다. 이 믿음은 ‘자존감’과 밀접히 연결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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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커디’는 공부를 꽤 잘하는 학생이었으나
자동차 사고로 뇌에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지적 능력이 상당히 저하되어 남들보다 네 배는 더 노력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조금 느리지만 결국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까지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믿음은 혼자 힘으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은사 교수님이 절망에 빠진 에이미에게 “너는 할 수 있고, 너는 하게 될 거야!”라고 말해 준 것에 기인합니다. 그녀는 그 말을 믿었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기 위해 원더우먼 자세나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는 자세를 2~3분만 취해보라고 합니다. TV에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뇌는 침을 발산하게 합니다. 뇌는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리를 조금 벌리고 양손을 옆구리에 붙이는 원더우먼 자세를 취하면 뇌는 잠시나마 자신이 그런 능력자가 되었다고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슈퍼맨 자세도 있습니다.
슈퍼맨이 하늘을 날 때 양손을 위로 번쩍 들어 올리는 것입니다. 선수들이 결승선에 들어올 때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데 이는 승리의 표시입니다.

개가 두려울 때는
꼬리를 자신의 몸쪽으로 내리고 머리를 숙입니다. 그러나 강함을 뽐낼 때는 꼬리를 올리고 머리를 치켜듭니다. 보통 사랑받는 주인이 자신과 함께 있어 줄 때 그렇습니다. 주인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기 때문에 움츠러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하느님께서 아버지가 되어주시고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우리야 더 얼마나 어깨를 펴야겠습니까? 이것이 믿음이 아닐까요?

강연에서 에이미 커디의 이야기를 접하고 이런 자세로 용기를 얻은 사람들의 수많은 사례가 그녀의 책 『자존감은 어떻게 시작되는가』에 나옵니다. 그중 두 가지만 소개합니다.

세이지라는 세 살짜리 아이가
공포영화를 보더니 자신의 인형들이 자신들에게 달려들 것이라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인형을 모조리 치워버렸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세이지에게 물건을 가져오라고 시키거나 방에 혼자 있으라고 할 때, 잠깐이라도 원더우먼 자세나 슈퍼맨 자세를 취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인형은 숨겨두었지만 언제든 내면의 원더우먼을 불러낼 준비가 되어있다고 믿는 아이는 1년 뒤 두려움에서 거의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윌이라는 남성은 오리건 대학의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부업으로 배우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기획사가 윌에게 대형 상업영화의 오디션을 보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기껏해야 TV 상업광고에 몇 번 출연했고, 단편영화 두 편에 출연했으며, TV 드라마에 한 번 단역으로 출연한 것이 전부인 그가 전문 프로 배우들이 오디션을 보는 헐리우드 영화에 오디션을 봐서 붙을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까웠습니다. ‘어차피 떨어질 것, 그냥 경험 삼아 가보자!’라고 오디션에 응했습니다. 어차피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니 떨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자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숨이 목까지 찼습니다. 그는 친구의 조언을 기억하고 화장실로 뛰어간 심호흡을 하며 원더우먼 자세를 2분 동안 취했습니다.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러자 어깨가 펴지고 당당한 자세로 앉아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어떠한 초조함도 없이 스스로 참 잘했다 싶을 정도로 오디션을 잘 봤습니다. 그는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리즈 위더스푼 주연의 ‘와일드’란 영화에 당당하게 출연자로 발탁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일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뿐입니다”라고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내가 무언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면 하느님께서 그만큼 나에게 능력을 주시지 않았다고 불평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능력을 다 주셨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편하게 쉬며 여행 다니다가 죽는 게 어떻게 소원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한 탈렌트의 가치를 땅에 묻어놓는 것과 같습니다. 한 탈렌트도 6억 원에 가깝습니다. 그것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금이 됩니다. 나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것이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기도할 때
졸지 않기 위해 양팔 기도하듯 두 손을 들고 합니다. 그런데 에이미 커디의 책을 읽으며 이 자세도 슈퍼맨의 자세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몸이 쳐지지만, 양손을 위로 올리면 가슴이 펴집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 자세가 예수님의 십자가상 자세와 비슷함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제가 양손을 벌리며 기도할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자세와 비슷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자기를 죽이는 자세가 결국은 그리스도처럼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베드로가 한 것처럼 나도 물 위를 걸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믿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의 결론으로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더 가졌다고 믿는 것이 『더 해빙』입니다. 더 가졌다고 믿는 사람들이 더 가지게 된다는 진리를 세속적으로 풀어쓴 책입니다. 믿음은 더 가졌다고 믿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이 세상에서 성과를 내게 될 것이고 주님께 그에 합당한 칭찬과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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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2020년 11월 15일
  |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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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4   [대전]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159
773   [제주] 탈란트의 가치  166
772   [부산] 받은 것을 베풀고 나누고 살자  [1] 2437
771   [안동] 모든 이에게 주신 선물  2063
770   (녹) 연중 제33주일 독서와 복음 (탈렌트talent의 비유)  [4] 1877
769   [수도회] 일상에 대한 진지한 접근  [1] 2590
768   [전주] ‘즉시 그리고 기쁘게’ 나누는 삶  2667
767   [서울]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3] 2913
766   [인천]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  [1] 1473
765   [수원] 깨어 있음의 중요성  [4] 3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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