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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내가 가진 작은 것에서 부터
조회수 | 2,230
작성일 | 05.11.12
어깨의 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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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녁,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어깨에 얹혀 오는
옆사람의 혼곤한 머리,
나는 슬그머니 어깨를 내어 준다.
항상 허세만 부리던 내 어깨가
오랜만에 제대로 쓰였다.
그래, 우리가 세상을 함께 산다는 건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피로한 머리를 기댄다는 것 아니겠느냐
서로의 따뜻한 위로가
된다는 것 아니겠느냐 ---- [주용일]

억울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외모부터 시작해서 능력까지. 저보다 잘 생기고 인기 있는 사람을 볼 때면, 저보다 적은 노력으로 많은 성과를 올리는 사람을 볼라치면 샘이 나고 한 번씩 잠이 잘 안오기도 합니다. 어쩜 나보다 잘 나고 가진 게 많은 사람이 왜 이리도 많은지. 나는 왜 요 모양인지.


한 번씩 힘이 주~우욱 빠집니다. 에고, 집어치우자!

노력으로 극복된다는 건 대부분 거짓말입니다.
TV에나 나오는 인생역전은 정말로 남의 일입니다. 우리들이 처한 상황은 노력으로 극복되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는 날 때부터 받은 달란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불평등합니다. 최소한 외적인 능력이나 환경의 문제로 봤을 때 세상은 평등하지가 않습니다.

하느님의 평등은 세상의 눈으로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종들이 받은 달란트는 첨부터 달랐습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달란트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주어진 몫에서 얼마나 성실했느냐에 있습니다. 나의 몫이 적다고 불평하고 무시한 종은 결국 그 가진 것 마저 빼앗기고 맙니다. 각자의 몫에서 이룬 성과를 하느님은 동등하게 보아주신다는 게 그분 방식의 평등입니다.

다른 사람의 몫을 샘 낼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에서부터 출발해서 사랑의 성과를 쌓아야 합니다.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얹혀오는 타인의 머리를 향해 내어줄 어깨를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이러한 어깨의 쓸모는 우리에게 사랑의 성과를 쌓게 해줍니다.

주님께로부터 받은 게 적다고
땅에 묻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가진 게 없는 게 아니라 혼곤한 머리를 받을 어깨를 내어 줄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가진 작은 것에서부터 사랑의 성과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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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오정형 세례자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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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그 종은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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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일 복음을 읽다가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왜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은 주인을 모진 분이라고 했을까’라는 질문입니다.

복음을 보면
주인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재산을 맡겼습니다. 또 종들의 능력까지도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종들에게 관심도 많고, 가족이나 친척이 아니라 종들에게 재산을 맡길 정도로 그들을 신뢰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주인입니다.

그런데 왜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은 주인을 모진 사람이라고 했을까요?

그 이유를 알고 싶어 묵상하던 중 오랜 시간 불편해했던 한 선배 신부님이 떠올랐습니다.

그분은 제가 신학생일 때 저희 본당 보좌신부님이셨습니다.
그 당시 전 저학년이라 하나하나 배워야 하는 상태였고, 그러다 보니 신부님께 종종 지적을 받곤 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신부님께서 본당을 떠나신 뒤에도 가끔씩 마주치면 괜히 위축되어 있곤 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뒤 동기가 그분 본당에 파견을 나갔는데 너무 좋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제가 그분 본당에 파견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파견 기간 동안 그 동기에게 들었던 말과 비교했을 때, 저는 동기만큼 인정받지도 못하는 것 같고, 신부님과 잘 못 지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파견 생활이 힘들거나 신부님이 힘든 것보다도 그 동기와 비교했을 때 제가 받고 있는 처사가 부당하게 느껴지는 것이 저를 가장 힘들게 했습니다. ‘내가 걔보다 못한 게 뭐 있다고... 식별력 있는 분인 줄 알았는데 참 사람 볼 줄 모르시네’ 하는 생각으로 인해, 파견이 끝난 뒤에도 괜히 그 신부님을 마주치면 불편한 마음이 올라오곤 했습니다.

교우 여러분. 그때 제 모습, 누구와 많이 닮지 않았나요?
바로 주인을 모진 사람이라 했던 한 탈렌트를 받은 종입니다. 저도 그 종처럼 선배 신부님을 모진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 시작이 뭐였을까요? 바로 비교,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된 질투였습니다. 그 신부님께서는 저는 저대로 그 동기는 그 동기대로 대했을 뿐이었습니다. 파견 기간 동안 저랑 그 동기를 비교하지도 않으셨죠. 그런데 제가 동기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혼자 비교하고 질투하고 원망했던 것입니다.

종도 아마 저와 같았을 겁니다.
‘주인이 나를 믿어주기에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람 볼 줄 모르는구만. 저 녀석에게 열 탈렌트나 주다니. 어쩐지 지난번에도 저 녀석을 더 챙긴다 했어.’ 하면서 마음속에서 주인을 모진 사람으로 여겼을 겁니다. 종도 비교에서 시작해서 질투, 원망으로 나아간 것이죠.

저는 훗날
‘아, 내가 그때 비교를 했었구나. 그래서 그 신부님을 괜히 불편하게 여겼구나. 그리고 난 그 동기가 나보다 더 많은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처럼 보여서 질투했었구나. 내가 그 동기를 무시했었고, 나보다 못나게 생각했던 사람에게 나보다 잘해줬다고 혼자 판단하면서 그 선배 신부님을 미워했었구나. 내가 두 사람 에게 참 잘못했구나.’라는 인정과 뉘우침의 시간을 가진 뒤에야 그 선배님을 편하게 대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와 종에게 일어난 일들은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혼자
비교하고, 그래서 질투하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을 모진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미움은 황산과 같아서 그걸 품고 있으면 내 영혼도 큰 상처를 입습니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비교했구나, 질투했구나’를 말이죠.
그러면 그 질투는 금세 힘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아무리 뿌리 깊은 나무도 뽑아서 햇빛 아래 두면 말라버리는 것처럼 말이죠. 반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계속 나를 괴롭힐 것입니다. 길거리에 널린 잡초라 하더라도 땅속에 심겨 있으면 깊은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말이죠.

만일 누군가를 향한 미움이
나를 오랜 시간 괴롭힌다면
한 번쯤은 하느님 앞에서
묵상해 보면 어떨까요?
‘그 종은, 나는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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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서정훈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2020년 11월 15일 <군종교구 주보>에서
  |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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