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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모든 것이 다 선물입니다
조회수 | 2,161
작성일 | 05.11.12
시각장애인 이재서 교수님 자전 에세이
「아름다움은 마음의 눈으로 보인다」를 읽으면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너무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고난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아픔이지만 창조를 위한 기회입니다. 고난은 언제나 설명서 없이 불쑥 찾아옵니다. 하지만 설명서는 언제나 나중에 옵니다.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고난이 끝인 줄 알고 쉽게 행동하면 안 됩니다. 어떻게든 인내하고 참아야 합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기쁨과 감사로, 그 고난이 무슨 의미였는지를 말해주는 설명서를 받아 읽을 날이 올 것입니다."

이 에세이에는 15살 때 찾아온 실명(失明)을 다정한 친구로,
축복 중 축복으로 여기는 이 교수님의 특별한 인생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실명한 것에 대해 억울해 하지 않고, 원망도 않으시는 교수님은 이렇게 외칩니다.

"실명,
그것은 축복이었습니다.
실명 덕분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실명한 이후 기나긴 좌절과 고통의 세월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네 가지 눈'이라는 제목의 강의였답니다.

"사람은 사물을 보는 육안(肉眼),
지혜를 터득해 가지는 지안(智眼),
마음으로 보는 심안(心眼),
종교의 힘으로 영원한 세상을 보는 영안(靈眼) 등 네 개의 눈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비록 육안은 잃었지만 나머지 세 개의 눈은 정상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이었기에 겪어야만 했던
모진 난관들을 극복해 나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힘이 돼준 것은 다름 아닌 신앙의 눈이었습니다. 육신의 눈이 아니라 신앙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니 그런대로 견딜 만하게 됐답니다.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니 가끔씩 마주서는 절벽 앞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됐답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아쉬워하기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습니다. 자신에게 아직 남아 있는 달란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찾아냈고, 그것을 키워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이 교수님은 보란 듯이 우뚝 섰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강단에 서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북한 장애인 지원 사업에 열정적으로 투신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의 귀감이자 큰 빛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각자가 받은 달란트를 최대한 활용할 것을,
그래서 하느님께는 영광을 드리고,
이웃들에게는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갈 것을 당부하고 계십니다.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고 노심초사했던 종에게 주인은 화가 잔뜩 나서 호통을 칩니다.

"너야말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이 쓸모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곳에 내쫓아라."

주인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성실하게 노력해서 맡긴 재산을 불리기는커녕,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놓고 빈둥거리며 게으름을 피운 종을 주인이 잘 봐줄 리 없습니다. 그는 주인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결실 없는 인생,
자신의 인생에 불충실한 삶, 숱한 은총의 선물을 받고도 감사할줄 모르는 사람을 하느님께서는 슬픈 시선으로 바라보실 것입니다.

나이가 만만찮게 들어가면서,
수도생활 연륜도 점점 늘어만 가는데도 제대로 된 열매 한 번 맺지 못하니 하느님 앞에 부끄럽기만 합니다. 아무런 장애도 없으면서, 특별한 불편이나 어려움도 없으면서 '나는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하며 자신을 비관만 해왔습니다. 그 숱한 황금 같은 시간들을 아깝게도 그저 '죽이며' 지내왔습니다. 아직도 새파란 나이에 '이 나이에!' 하며 거드름을 피웠습니다.

제게 주어진 이 건강한 몸 하나만으로도
저는 참으로 큰 은총을 넘치도록 받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조금만 생각을 바꾼다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은총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약점, 상처, 고통, 십자가조차도 일종의 달란트들입니다. 우리를 보다 큰 그릇으로 만들고자 하느님께서 보내신 선물들입니다.

어떠한 처지에서든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는 하루,
어떠한 시련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하루,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면서도
하느님을 찬미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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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463 42.4%
‘좋은 기다림, 나쁜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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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든 생각이 있습니다. 기다림은 이렇게 모두가 일제히 한 방향으로 마음을 모으는 거구나…. 코로나19의 종식만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에게 이제 정말 중요한 것은, 사라져가는 시간의 뒷모습만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시간의 앞모습을 성실히 맞이할 준비가 아닐까 합니다. 마치 버스의 앞모습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듯이….

오늘 전례의 본문은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착하고 성실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복음)의 대조를 통해 어떻게 기다려야 제대로 기다리는 것인지를 정확히 알려줍니다.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행복한 삶’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기다림’도 누구나 예외없이 경험하는 시간이지만
기다림의 ‘결과’는 분명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 복음의 맥락

지난주에 선포된,
미리 깨어 준비하는 기다림에 대한 주제가 이번에도 이어집니다. 비유가 전개되는 큰 맥락은 비슷한데, 모든 것을 결정지을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이제 그 주인의 도착이 거의 다다랐음을 알립니다. 다만 주인의 도착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도착이 구체적으로 언제일지 알 수 없다는 것, 주인을 기다리는 이들 중 몇몇은 확실한 신뢰와 전망 속에 성실히 준비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이 있다는 것, 결국 생각지도 않은 때에 주인이 와서 최종 평가가 이루어진다는 것 등입니다.

■ 착함과 악함

비유에는 주인과 세 명의 종이 등장하며
주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깁니다.”(마태 25,14) 이때 “각자의 능력에 따라”(15절)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한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세 번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가 주어집니다.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19절) 되는데,
두 명의 종들은 “착하고 성실한 종”(21.23절)으로 평가받습니다. 주어진 탈렌트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받은 선물을 잘 활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때 주인은 종들이 벌어들인 외적 성과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은 종에게나 두 탈렌트를 벌은 종에게나 동일한 평가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21.23절) 주인은 거저 받은 탈렌트에 대한 감사와 성실함이 있었는지의 여부에만 관심을 둘 뿐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26절)이라고 평가받습니다.
‘악’하다고 언급한 부분에 주목하게 되는데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25절)라며 받은 것을 그대로 돌려주는 종을 과연 ‘악’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말을 유의해서 보면 심각한 문제를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받은 한 탈렌트를 그냥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24-25절)

이 대답은
현실에 대한 부정적 판단과 왜곡이 ‘악’임을 알려줍니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사실과 다른 거짓과 오해가 모든 문제를 발생시킨 악의 근원임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종은
주인을 완고하고 아무것도 주지 않는(심지 않고 뿌리지 않는) 인색한 존재로 여기고 있었고, 동시에 그러한 왜곡은 근거 없는 공포로 이어집니다. 주인에 대한 두려움과 그로 인한 이기적 보신(保身)주의가 위험을 감수하지 못하게 하는 무능함과 비굴함을 갖게 한 것인데, 이처럼 불합리하고 부당한 공포가 유혹과 유감의 실체가 됨을 알려줍니다.

■ 빛의 자녀와 훌륭한 아내

복음에서
제시된 두 부류의 사람들(“착하고 성실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의 대조를

제2독서에서는
“빛의 자녀”와 “어둠에 속한 이들”로 표현합니다.(1테살 5,5)

이 구분이 시작되는 지점은
‘시간과 때’에 대한 이해인데(1절) 이 개념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마주하느냐에 따라 빛의 자녀로 살게 되기도 하고 어둠의 자녀로 살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그리스어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이며, ‘크로노스’는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이성적으로 측량할 수 있는 시간을, ‘카이로스’는 측정하거나 계획할 수 없는 시간이지만 결정적이며 의미 있는 사건이 발생하는 시간을 말합니다.

언제 주인이 올지 누구도 알 수 없기에
그 알 수 없이 지나가는 시간은 ‘크로노스’이지만 주인이 당도하는 시간은 ‘카이로스’입니다. ‘시간의 종말’은 크로노스이지만 ‘종말의 시간’은 카이로스입니다. 일상을 ‘카이로스’로 사는 지혜를 제1독서는 ‘훌륭함’으로 묘사합니다. “훌륭한 아내”의 모습을 통해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데 그녀가 훌륭한 이유는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30절)이기 때문입니다.

소통의 불가능성은
현대인들에게 자주 발견되는 한계이며 걸림돌입니다. 소위 ‘불통’이라고 불리는 현상은 대체로, 상대에 대한 의심이나 왜곡 때문에 발생하는데 불통 자체도 문제이지만 사실 더 심각한 것은 그로 인해 삶을 허비하고 스스로를 무기력한 좌절과 우울로 빠지게 하는 퇴행입니다.

1탈렌트는 6000데나리온 정도에 해당하고,
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기에, 1탈렌트를 받았다 해도 사실은 매우 큰 돈을 받은 것입니다. 그다지 부당한 대우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비유의 마지막에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29절)라고 경고하십니다.

지나치게 과민한 부정과
왜곡은 불합리한 공포와 불안을 가져다주지만 겸손과 신뢰, 그로 인한 공감과 집중은 진정한 자유와 존엄을 가져다줍니다.

현실과 주변의 조건을 곡해하여 갈등하는 데에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성실하고 용감한 자세로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고 더 좋은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 ‘훌륭한’ 일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결정적인 순간,
그 ‘카이로스’에 불현듯 구원이 다가와 그동안의 견딤과 기다림의 결실을 보상해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물은 ‘하느님께 대한 경외’를 삶의 중심에 둘 때에 정립되는 가치입니다.

“우아함은 거짓이고
아름다움은 헛것이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은 칭송을”
받기 때문입니다.(잠언 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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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 성모성심 수녀회 김혜윤 수녀
2020년 11월 15일 <가톨릭신문>에서
  |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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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천국天國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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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연중 제33주일이자 제4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다음 주일은 연중 마지막 제34주일이자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위령성월 11월, 깊어가는 만추의 아름다운 가을날과 잘 어울리는 교회 전례력입니다. 지난 주일, 열처녀의 하늘 나라 비유와 이번 주일, 탈렌트의 하늘 나라 비유도 참 적절하고 고맙습니다.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기분 좋게 전개되는 복음 서두 말씀입니다. 우선 이런저런 예화를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어제 깊고 푸근하고 아름다운 만추의 날, 예수성심형제회 6분 형제자매들의 오후 피정이 있었습니다. 강의에 앞서 편안히 자리 잡은 모습을 보면서 나눈 서두 말씀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지상 천국의 성인성녀들 같습니다. 지금 여기 주님의 집 수도원에 초대 받아 있을 수 있음도 기적이자 은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 연옥이, 지상 지옥이 아닌 지상 천국에서 성인성녀답게 사십시오.”

바로 미사중 여러분 모두에게 드리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마침 오늘 복음도 하늘 나라 비유입니다. 하여 오늘 강론 제목도 ‘지상 천국의 삶’으로 정했습니다. 엊그제부터 오늘까지 화답송 후렴 셋이 새삼 생각납니다.

-“1.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떠라 사는 이들!”
2.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
3.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
묵상하며 ‘아, 행복의 열쇠는 주님께 달렸는 데 주님을 모르는 이들, 주님을 믿지 않는 이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들은 어디서 참행복을 찾지?’하는 생각이 충격처럼 와 닿았습니다. 참 고맙게도 우리는 주님을 믿고 사랑하고 알기에 행복하게 지상 천국을 살 수 있으니 정말 큰 은총입니다.

어제 수도원 안 벽에 걸려 있었던 침묵沈默이란 한자판 글씨도 감격스러워 안토니오 수사와 나눈 대화입니다.

-“사랑하는 도반, 안토니오 수사님! 감사합니다. 1988년 요셉수도원에 부임하던 해, 11월 초발심의 열정으로 쓴 글씨를 보니 새 힘이 솟는 듯합니다. 그러니까 만32년전 40세에 쓴 글씨입니다. 수사님의 아주 훌륭한 학사논문이요, 석사 논문으로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시간 나는 대로 정독하려 합니다. 논문대로 인간완성에 이르러 성인 안토니오 수사님 되길 간절히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은혜로운 말씀에 저도 힘이 납니다. 영육간에 항상 건강하시길 빕니다. 성인 수사신부님 되시길 빕니다. 침묵의 필체에서 젊은 시절, 신부님의 하느님을 향한 수도생활의 열정이 투영되는 듯 합니다.”-

이런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긴 메시지들이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 답은 사랑뿐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마침 연중 피정을 알리는 게시판 소식중 강의 주제가 참 특이했습니다.

“곱게 늙기!”

얼마나 재미있는 말마디입니까? 곱게 살기, 곱게 늙기, 곱게 죽기,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사랑뿐입니다. 사랑할 때 예뻐지고 고와집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나를, 내 일상의 삶을, 아니 모두를 사랑하는 길뿐입니다. 성무일도 마리아의 노래 후렴, 즈카르야 노래 후렴 가사도 은혜로웠습니다.

“착하고 충실한 종아, 와서 주님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삶을 사랑할 때 착하고 충실한 종이 되어 살 수 있음을 절감합니다. 우리 모두 착하고 충실한 종으로 살다가 하늘 나라 미사잔치에 와서 주님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은혜로운 미사시간입니다. 어제 게시판에 붙었던 수녀원 부고를 알리는 소식도 충격이었습니다. 5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암투병중 심장마비로 선종한 수녀님입니다. 주님의 자비를 간절히 청하면서 동시에 오늘 지금 여기서 깨어 사는 일이 얼마나 결정적이고 본질적인지 절감했습니다.

서두가 길어 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복음의 칭찬 받은 종처럼 착하고 성실하게 지상 천국의 삶을 살 수 있겠는지 소개해 드립니다.

첫째, 사랑하십시오.

사랑밖엔 답이, 길이 없습니다. 주님은 물론 나를, 이웃을, 일상의 모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참으로 사랑할 때 주님을 만납니다. 탓할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우리의 부족한 사랑입니다. 인생은 사랑의 학교입니다. 졸업이 없는 평생학생의 사랑의 학교입니다. 아무리 공부해도 사랑에는 영원한 초보자인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수행이 어렵고 힘든 것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가난을, 정결을, 순종을, 침묵을, 수도생활을, 형제를 아니 모든 수행을 주님을 사랑하듯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할 때 저절로 성인입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가 아닌 자발적 사랑의 실천입니다. 제가 볼 때 오늘 착하고 성실한 종들은 누구보다 주님으로 상징되는 주인을 사랑했고 자기 삶을 사랑했던 분들입니다. 분도 규칙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아무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말라’(성규4,21)일 것입니다.

둘째. 지혜로우십시오.

사랑할 때 선사되는 지혜입니다. 사랑과 지혜는 함께 갑니다. 한셋트입니다. 마음의 불치병인 무지에 대한 특효약도 지혜뿐입니다. 성서에서 얼마나 강조되는 지혜인지요. 시편, 잠언, 집회서, 지혜서뿐 아니라 성서 모두가 사랑과 지혜의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복음의 착하고 성실한 종은 참으로 지혜로웠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습니다. 어제 평화칼럼(김승월 프란치스코) ‘겸손한 종’에 관한 글 중 반면교사로 삼아야 지도자의 부정적 특징에 공감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반대로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1.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2.잘못을 저지르고도 사과하지 않는다.
3.남탓한다.
4.뻔한 거짓말을 당당히 한다.
5.전체를 보지 않고 자기 편만 바라본다.

이 반대로 하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오늘 지혜서는 흡사 ‘훌륭한 아내’ 찬가 같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삶의 모범입니다.

“그 아내는 한평생 남편에게 해끼치는 일이 없이 잘해 준다. 제 손으로 즐거이 일한다. 가난한 이에게 손을 펼치고, 불쌍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 준다. 우아함은 거짓이고 아름다움은 헛것이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은 칭송을 받는다.”

이런 훌륭한 아내의 자질은 참 좋은 품성으로 모두가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지혜로운 여인이라면 이웃도 사랑할 것입니다. 이런 지혜의 뿌리에는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주님의 경외함이 지혜의 샘임을 깨닫습니다.

‘가난한 이에게 손을 펼치고’ 대목에서는 문득 제4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교황님의 담화문 제목-“가난한 이에게 네 손길을 뻗어라”(집회7,32)-이 생각났습니다. 사랑이 지혜입니다. 가난한 이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는 이들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셋째. 깨어 있으십시오.

요즘 계속 강조되는 내용이 깨어 있음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바치는 기도도 깨어 있음을 목표로 합니다. 우리는 지금 깨어 미사잔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사는 이들은 깨어 있는 이들입니다. 모든 불행과 사고나 유혹은 깨어 있지 않을 때, 어둠중에 있을 때 일어납니다.

무지의 어둠을 환히 밝히는 은총의 빛이 깨어 있음입니다. 성전 뒷면 올빼미의 두 눈도 깨어 있음을 상징합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깨어 있습니다. 사랑-지혜-깨어 있음이 하나도 연결되었음을 봅니다. 오늘 복음의 착하고 성실한 종은 물론 슬기로웠던 여종들처럼 깨어 살았음이 분명합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 역시 깨어 살 것을 강조합니다.

주님의 날은, 죽음의 날은 마치 밤도둑처럼 옵니다. ‘평화롭다, 안전하다’할 때 파멸이 닥치는데 아무도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깨어 사는 이들은 예외입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바오로의 말씀이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대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

넷째, 책임을 다하십시오.

책임을 다할 때 무조건 구원입니다. 사람됨의 기본이 책임감입니다. 운명의 십자가, 책임의 십자가를 사랑으로 지고 끝까지 주님 따라 살면 구원입니다.

오늘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 받은 이들은 책임을 다해 곱절의 결실을 냈습니다. 주님이 보시는 바 삶의 양이, 업적의 양이 아니라 삶의 질, 업적의 질입니다. 자기 주어진 몫에 성실히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결코 이웃이 받는 탈렌트와 우열이나 호오를 비교할 것이 아닙니다.

“잘 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다섯 탈렌트 받아 다섯 탈렌트 남긴 자나 두 탈렌트 받아 두 탈렌트 받은 자나 똑같이 칭찬을 받습니다. 이로써 끝이 아닙니다. 더 많은 일이 주어지고 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 살아야 할 영원한 현역의 일꾼이요, 은퇴가 없는 죽어야 은퇴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싸울 대상은 이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할 자신입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쉽사리 좌절하고 실망하는 내가 적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바 1탈렌트 받은 자의 반응입니다. 너무 소심하고 유약하고 겁이 많고 자폐적이라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1 탈렌트 고스란힌 묻어 두었다가 주인님께 바칩니다.

참으로 무기력하고 무의욕하고 무감각한 사람입니다. 이건 살아있는 삶이 아니라 완전히 폐쇠적인 죽어 있는 삶입니다. 마침내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지탄받으며 쓸모 없는 종으로 내침을 당합니다.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합니까? 그대로 나태와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나라는, 분발하라는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했더라면 자폐증도 치유되고 자기로부터 벗어나 재능을 잘 활용하며 자유롭게 살았을 텐데 참 안타깝습니다. 한 탈렌트 받은 자의 반응은 죄라기 보다는 병으로 보고 싶습니다. 소심하고 유약한 자폐증 현상은 그대로 그의 한계요 병리현상처럼 생각됩니다. 처벌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치유받아야 할 병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평생 자기에 갇혀 살았던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까?

스스로 자초하여 지상 천국이 아닌 지상 연옥을, 지옥을 살았던 한탈렌트 받은 사람의 처신입니다. 혐오의 대상이기 보다는 연민의 대상입니다. 아마 주님은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해 충격 요법으로 한 탈렌트 받은 자를 내쳤지만, 조용히 불러 치유의 손길을 뻗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착하고 성실한 주님의 종이 되어 지상 천국의 삶을 삽시다.

1.사랑하십시오,
2.지혜로우십시오,
3.깨어 있으십시오,
4.받은 탈렌트를 잘 활용해 맡겨진 책임을 다하십시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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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도회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020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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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   [대전] 희망을 품고 살아 갑시다.  [1] 1567
790   [수원] 그리스도께 합당한 신뢰와 사랑을  [5] 3197
789   [춘천]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3] 3179
788   (백) 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독서와 복음  [1] 2753
  [수도회] 모든 것이 다 선물입니다  [2] 2161
786   [청주] 주인을 바라보는 눈  176
785   [군종] 내가 가진 작은 것에서 부터  [1] 2231
784   [인천]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  [2] 2352
783   [마산] 나의 달란트 어떻게 쓸까?  2327
782   [춘천] 착하고 성실한 종  [1] 2277
781   [수원] 결실을 맺는 활동적인 신앙생활  [3] 2408
780   [광주] 착하고 성실한 종, 악하고 게으른 종  140
779   [원주] 시든 꽃과 같이  2354
778   [서울] 하느님의 구원 계획  [5] 2644
777   [전주] "묻어둔 달란트를 적극 활용하자”  [1] 2511
776   [의정부] 받은 탈란트를 이웃을 위해  [1] 1772
775   [대구] 자비·겸손·찬미·평화·사랑  [1] 2262
774   [대전]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159
773   [제주] 탈란트의 가치  166
772   [부산] 받은 것을 베풀고 나누고 살자  [1] 2437
771   [안동] 모든 이에게 주신 선물  2063
770   (녹) 연중 제33주일 독서와 복음 (탈렌트talent의 비유)  [4] 1877
769   [수도회] 일상에 대한 진지한 접근  [1] 2590
768   [전주] ‘즉시 그리고 기쁘게’ 나누는 삶  2667
767   [서울]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3] 2913
766   [인천]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  [1] 1473
765   [수원] 깨어 있음의 중요성  [4] 3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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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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