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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최후의 심판
조회수 | 3,007
작성일 | 05.11.18
교회력을 따라 한 해를 살아가면
자연의 섭리를 따라 질서 있게 나의 삶을 준비하고 살아가는 여유와 세상의 소음 속에 살면서도 우리 삶 속에 함께 하시는 주님의 현존을 깊이 느끼며 살 수 있는 은총을 누립니다. 위령성월과 더불어 맞이하는 연중 마지막 주일은 한 해 동안의 삶을 신앙 안에서 돌아보고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다가오는 새해를 차분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연중 마지막 주일에
우리가 묵상하는 최후의 심판에 관한 말씀은 복음 전체의 가르침의 요약이며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주님의 뜻을 분명하게 가르쳐줍니다. 최후의 심판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며칠 전에 수능 시험을 치렀던 수험생과 같은 마음으로 제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혹시 지나쳐 버린 주님의 모습은 없나 하는 조바심 때문에 제 고개는 연신 저의 삶의 모퉁이를 기웃거리게 됩니다. 시험의 답은 교과서에 있고 인생의 답은 삶속에 있듯이 신앙의 답은 주님께 있습니다. 신앙의 여정에서 주님을 만나지 않으면 신앙의 답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찾는 주님은
너무나 가까이 계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지나쳐 버리기도 합니다. 그분은 상본에 나오는 고정된 이미지로 오시는 분도 아니고, 당신의 이름을 밝히고 도움을 청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오히려 내가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곳에서 누군가의 모습으로 나와의 만남을 계획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내 삶 안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얼굴로 때로는 가까이에서 때로는 멀찍이에서, 친근하게 혹은 냉담하게 내가 대한 사람들 속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작품에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왔던 천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떨어져 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각자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우쳐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함께 살아가기를 원했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걱정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사랑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사는 사람이며, 하느님은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하느님은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결산해야 할 때를 맞이합니다. 심판은 개인적인 결산의 때이며 또한 온 인류가 함께 겪어야할 결산의 시간입니다. 그 결산의 때에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죄를 많이 지었느냐를 따지지 않으시고 얼마나 사랑했느냐를 보시고 우리를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사는 일이 하느님의 뜻이며 하느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축복입니다.

신앙생활은
끊임없는 선택과 결단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를 것인가, 나의 욕망과 만족을 쫓을 것인가의 선택이며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져야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우리가 참된 삶을 살고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기 위하여 선택하고 살아가야할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 길이 너무나 단순하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지나쳐 버릴 수 있는 것들이어서 놀랍기만 합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사랑은 복잡한 기교나 현란한 이론이 아니라 단순하고 소박한 진실입니다. 여기 내 삶 속에 주어진 현실이 사랑의 터전이며,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질문 - ‘가장 중요한 때는? 가장 중요한 사람은?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이렇게 들려줍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사랑만이 사랑을 낳듯이 우리가 사랑하기로 마음먹을 때마다 사랑해야할 일을 새롭게 발견하게 됩니다.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사는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을 위해 세상에 오신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이며,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를 위해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입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계절에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 할 줄 알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감사할 줄 아는 아름다운 삶에 대한 열정으로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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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김영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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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통해 왕이신 주님께 영광을!

교회 달력으로 보자면, 오늘은 연중 마지막 주일이며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교회가 한 해를 마감하는 주간에 신앙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왕’이심을 고백합니다. 신앙인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힘을 다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해 동안 자신들의 사명에 충실해온 신앙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상의 왕으로 고백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오늘 복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세상 심판’에 관한 비유입니다. 이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은 당신이 세상의 유일한 심판자시며 하느님 나라의 임금이시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임금이신 당신께 합당하게 나아가 구원의 심판을 받기 위해 이 지상 여정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세상 사람들이 두 부류로 나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한편은 구원받을 이들이고 다른 한편은 멸망할 이들입니다. 사랑이라는 한 가지 기준에 의해 양쪽으로 갈린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굶주리실 때 먹을 것을, 목마르셨을 때 마실 것을, 나그네 되셨을 때 따뜻한 환대를, 헐벗으셨을 때 입을 것을, 병드셨을 때 돌봄을, 갇히셨을 때 방문하는 사랑을 베풀었는지 아닌지가 그 기준입니다. 구원으로 초대받은 이들은 이러한 사랑에 충실했던 사람들이고, 멸망으로 내쫓긴 이들은 그 사랑을 거부한 이들입니다.

이러한 심판 기준 앞에 양편 사람들 모두, 언제 예수님께서 그런 처지에 놓이셨느냐고 물으며 의아해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이 바로 당신 자신과도 같은 당신의 형제들이라고 선포하십니다(25,40.45). 이는 ‘그리스도인’ 또는 ‘예수님의 제자’라는 테두리를 넘어 어려운 처지에 있는 모든 이가 우리가 주님처럼 섬겨야 하고 주님처럼 사랑해야 할 형제라는 뜻입니다. 곧 신자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어떻게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따질 것도 없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는 모두가 예수님을 대하듯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우리의 형제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장차 이 지상 역사를 마무리하고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임금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입니다. 그분을 임금으로 모신 백성은 임금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을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임금의 뜻과 모범을 따라 사랑을 실천해야 하고, 사람을 가리지 않는 순수하고 참된 사랑을 실천하신 임금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실천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우리의 그리스도시며 임금이십니다. 하지만 그분의 나라는 세상적인 힘과 능력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완성되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왕으로 모시는 우리 신앙인들 역시 주님의 모범과 이끄심을 따라 나 자신이 아닌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온전한 내어줌의 사랑을 살아야겠습니다. 그렇게 살아야만 예수님을 ‘그리스도 왕’으로 모신 참된 신앙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정훈 스테파노 신부
  |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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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우주의 왕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우주의 왕이심을 경축하고, 우리가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기뻐하며, 세상이 왕이신 그리스도의 통치로 인하여 새롭게 되도록 기원하는 축일이다. 교황 비오 11세는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좀먹는 무신론과 세속주의를 경계하고 왕이신 그리스도의 통치권이 개인과 가정과 사회 및 전 우주에 두루 미치고 있음을 강조하는 뜻에서 이 축일을 제정하였다(1925년).

교회는 교회력의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지내는데, 이는 이 세상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향해 수렴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고,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뜻대로 이루어짐을 뜻한다. 사람은 누구나 왕이 되고 싶어 하지만 왕이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이시며, 자신이 심판관이 되고 싶어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심판관이 되신다. 그래서 교회는 최후 심판에 관한 복음을 읽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왕이시며 심판관이심을 드러낸다. 왕이며 심판관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종말의 때에 영광을 떨치시며 모든 천사들을 거느리시고 오실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을 심판하실 것인데,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그렇게 갈라놓으실 것이다. 그리하여 양은 오른편에 서도록 하여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하실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이미 하늘나라를 준비하셨다. 그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 전부터 당신 나라에 들어오기를 준비하시며 기다리셨다. 그런데 그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다름이 아니라 임금을 섬겼기 때문이다. 임금을 섬길 줄 모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사실 그들은 자신들이 섬긴 사람들이 임금인줄 전혀 몰랐다. 그들은 다만 자신들의 믿음에 따라 행했다(야고 2,20-26).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를 따뜻하게 맞이했다(창세 19,1-2; 출애 23,9; 신명 10,18).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사람에게 입을 것을 주고 돌보아주며 찾아감으로써 자신들의 믿음을 실천했다. 그런데 그처럼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 왕이신 그리스도를 돕는 것이었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곧 의인이다. 진정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은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을 돌보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은밀하게 하는 것이다(마태 6,1-4).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지만 사람이 되셨다(필립 2,6-8). 하느님이 인간이 되실 정도로 인간을 소중히 여기셨다. 인간을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은 인간이 당하는 여러 가지 고통과 아픔까지도 소중히 여기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전 생애를 통해 본질적으로 인간의 연약한 한계 아래 머무시면서 그 속에서 아픔과 고뇌를 맛보시었다(마태 8,17; 히브 4,15).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소외당한 사람, 헐벗고 굶주린 사람, 고통 중에 신음하는 사람들과 당신 자신을 일치시키시어 그들과 하나가 되시고, 그들의 위로자요 보호자가 되어 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과 하나가 되고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도 고난당하는 사람의 이웃이 되어야 한다(마태 22,34-40; 히브 13,2).

반대로 저주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와 분리되어 바깥 어두운데 쫓겨날 것이며, 그분과의 관계가 영원히 단절될 것이다. 의인들을 위하여 하늘나라가 창조 이전부터 준비되었듯이 악마와 그 졸도들을 가두기 위해 준비된 영원한 불이 있으며, 저주받은 자들은 그 불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느님의 은총을 거부하고 교만하여 타락한 삶을 사는 사람은 영원히 꺼지지 않고 계속적으로 고통을 주는 심판의 불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저주받은 사람들은 악한 일을 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선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주를 받은 것이다. 남에게 비록 악행을 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 저주의 대상이 된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태만과 무관심은 크나큰 죄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적극적으로 이웃의 필요를 채우는 자세가 요구된다. 이것이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마태 19,19)는 주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삶이다.

저주받은 자들은 자신들이 왜 저주를 받았는지 몰랐다. 그들은 이웃에 대하여 무정하고 무관심했던 자신들의 악행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들은 주님을 만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주님을 돌보아 드릴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헐벗고 굶주리며 나그네가 되어 목말라하며 감옥에 갇힌 자와 동일시하셨기 때문에 놀랐다. 만약 그들이 보잘것없는 형제들을 대하는 태도 여하에 따라 영원한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했다면 그들은 보잘것없는 형제들을 온정과 사랑으로 대했을 것이다. 실로 하찮게 보이는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에게 무신경한 자들은 그들의 형제이며 친구이신 예수님을 무시하고 그분의 뜻을 철저히 짓밟는 자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그들은 영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영벌은 영원한 징벌을 뜻하며, 이 벌은 지독한 고통이며, 최후 심판으로서의 형벌이다(마태 18,8; 2테살 1,9; 유다 1,13). 의인들이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지속되는 지복의 생명, 부활의 생명(1테살 4,14-17)을 누리는데 반해 악인들은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가 영생을 누리는가 아니면 영벌을 누리는가 하는 것이 이 지상에서의 짧은 생애를 통해 결정된다. 이 지상에서 소외되고 고통당하는 이들 안에서 주님을 보고,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는가, 그렇지 않았는가에 따라서 영생인가 영벌인가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짧은 인생을 통해서 영생이 결정됨을 생각하고 이 세상의 삶을 소중히 여기자. 우리 모두 사랑을 가득 담고 살아감으로써 하느님의 영원한 행복과 생명을 누리는 신앙인이 되자.

경규봉 신부
  |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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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진짜 왕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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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전례력으로 일 년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을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지냅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영광스럽게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온 누리의 임금이시오. 우리 모두의 왕이심을 기념하고 경축합니다.

임금 또는 왕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나 다 가질 수 있는 사람. 재산도 권력도 모자랄 것 없이 가지고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나 다할 수 있고, 사람들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부릴 수 있는 사람.

알게 모르게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왕이 되고자 하는 꿈이 있습니다. 왕이 되어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나 다 할 수 있고, 갖고 싶은 것은 다 가질 수 있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리며 살고 싶어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왕이 아니라면,
적어도 내가 살아가는 공간, 내 집, 내 직장, 내 친구와 이웃들 안에서 그런 왕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예쁘고 멋있게 보이는 옷을 입고,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좋은 물건을 더 많이 가지려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더 많이, 더 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진짜 임금, 진짜 왕이셨습니다.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셨지만 그분은 본래 하느님이셨으니,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나 다 하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말씀 한 마디로 앉은뱅이도 일으켜 세우시고, 마귀도 쫓아내시고, 바람도 잠재우시고, 수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그렇게
다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힘과 능력을 지니신 분이셨습니다. 다른 임금들, 다른 왕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단 한 번도 그 놀라운 힘과 능력을 당신 자신을 위해 쓰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그런 왕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할 수 있고, 가져야 하는 이유가 오로지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해 줄 수 있기 위함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진짜 임금이신 예수님께서 사셨던 삶이요, 진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닮아 진짜 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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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이영우 베네딕토 신부
2020년 11월 22일 <전주교구 주보>에서
  |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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